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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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의 경제학'의 댄 애리얼리의 또 하나의 카운터 펀치. 그것이 바로 이번에 나온 '거짓말 하는 착한 사람들'이란 책이다. 여전히 그는 우리가 익히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 다만 편견으로 점철된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고안하고 실시한 풍부한 연구 사례를 통해 다소 충격 속에 보여준다. 저번이 경제학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라면 이번엔 도덕성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인들의 도덕성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알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 주위의 사람들을 기회만 되면 얼마든지 비도덕적으로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이러한 믿음은 바로 얼마 전에 방영된 드라마 '추적자'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주인공과 아무리 가까운 친구, 동료라 하더라도 거액의 유혹을 받는 순간 여지없이 배신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그 누구도 설마 어떻게 저럴 수가 하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회의 단면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냈다고 여겼다. 거액의 돈에 굴복하여 친구의 우정과 동료의 신뢰를 져버리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이다. '추적자'는 아예 더 나아가 이 사회 전체가 쉽게 비도덕적이 될 수 있는 곳임을 보여주었다. 돈과 권력 앞에서 검찰이든 언론이든 정부 관료든 무엇보다 도덕적이어야 할 존재들이 꼬리를 살살 흔드는 개로 변해버렸다. 그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 사람은 도덕적으로 태어나지만 사회가 비도덕적으로 만든다고 상세하게 밝힌 바 있는데 바로 그대로였다. 이런 사회이기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들에게 쉽게 남을 믿지 말라고 되뇌인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우리 곁에 있는 타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었다.

 

 

  여기에 바로 댄 애리얼리의 '거짓말 하는 착한 사람들'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시선이 오해에 불과함을 알려주고 결국 그것을 교정시켜 주기 때문이다. 댄 애리얼리가 사람들의 도덕성에 대해 우리의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뒤 흔들고 부셔버리는 데도 이것이 아주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책 전체에 걸쳐 그가 사람들의 도덕성에 대해 정확하게 알기 위해 고안한 독창적인 실험 결과 때문이다. 그것이 너무도 객관적인 데이터로 실증적으로 우리의 도덕성에 대한 생각들이 오해와 편견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주기에 댄 애리얼리의 말에 절로 귀기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도덕성에 가장 흔한 사람들의 생각을 한 예로 들어보자. 플라톤의 책에 나오는 '기게스의 반지'도 있듯이 우리들은 사람들이 들키지 않는 확신만 있다면 얼마든지 비도덕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흔히들 투명인간이 되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 하는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만 봐도 알 수 있다. '은행에 몰래 들어가서 원 없이 돈을 가져오겠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투명인간이 된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우리의 상식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만 댄 애리얼리의 실험 결과는 다르다. 댄 애리얼리는 실험을 통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듯이 남의 시선이 아님을 밝혀내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남의 시선이 아닌 바로 자신의 시선이었다. 놀랍게도 댄 애리얼리의 실험에서 사람들은 아무리 들키지 않는 확신이 있다 하더라도 커다란 부정은 저지르지 않았다. 그것이 아주 고액의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아주 사소한 부정만 저질렀다. 이 놀라운 반전에 댄 애리얼리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또 다른 여러 실험을 통해 이 이유를 알아내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남들이 자신의 부정을 모른다 하더라도 사소한 부정만 저질렀던 이유는 남들은 모르지만 자기는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상 자신이 도덕적 인간이라는 확신에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만 부정을 용인했던 것이다. 즉 사람들이 보다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쁜 놈으로 보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양심이란 게 실제적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또한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이제껏 우리가 알아왔던 대로 이득을 먼저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도덕성인 것이다. 아무리 경제적 선택이라 하더라도 나 자신이 도덕적이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한에서 우리는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굉장한 충격이지 않는가? 당신이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상식을 뒤집는 것은 아닌가?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리고 그 결론이 거듭된 실험 결과를 통해 입증된 것이었기에 납득될 수밖에 없어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 사회에는 이득 때문에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은 어째서 그럴 수 있는 것일까? 댄 애리얼리에 따르면 그 사람들은 그냥 요즘 인기 있는 개그 캐릭터 '갸루상'의 말대로 '사람이 아니무니다'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니다. 사람에겐 최소한의 도덕적 자부심이란 마지노선이 본성상 존재한다. 그들은 그러한 마지노선 자체마저도 무너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비인간(非人間)', 즉 괴물이다. 그들은 우리의 도덕적 인간이 되려는 마음에 상처를 주고 그 노력을 포기하게 만든다. 하지만 댄 애리얼리에 따르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그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기에 그들에게 사람다움의 기준을 갖다 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그러한 모습은 괴물을 닮기 위해 사람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시선은 제대로 교정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존재론적인 이유 말고도 여기엔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 그건 이미지다. 댄 애리얼리는 실험을 통하여 실제 물질적인 현금일 때보다도 현금을 나타내는 이미지 상징 같은 것이 될 때 훨씬 더 많이 거대한 부정을 저지른다는 것을 밝혀낸다. 즉 진짜 돈이 오고갈 때는 사람들은 커다란 부정을 저지르지 못하지만 그것이 돈을 나타내는 수치이거나 다른 표식이라면 아무 거리낌 없이 부정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 실험은 이번 미국의 서브 프라임 경제 위기 때 굴지의 금융 회사들이 보여준 후안무치한 비도덕적 태도가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 말해준다. 그것이 진짜 돈이 아니라 다만 수치로 표시된 돈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많은 미국의 서민 가정을 파멸로 몰아넣었으면서도 반성은 커녕, 스톡 옵션을 행사하고 성과급을 받는 등 자신들의 이익을 철저히 챙기면서도 아무런 양심상 가책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에 저축 은행 사건에서 보듯 너무도 자주 금융 사기나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아마 그 이유 역시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어떤 면에선 과연 사람들이 이러한 사소한 차이 하나로 쉽게 비도덕적이 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할 것이다. 댄 애리얼리는 거기에 대해 그건 우리 인간들의 마음이 아주 교활한 이야기꾼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말하자면 현실의 돈이 아니라 수치로 변환된 가상의 돈은 실제 물리적으로 오고가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기 위해 좋은 변명거리로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한편 도덕적이지만 또 스스로 도덕적 인간이라는 자부심에 상처를 입지 않으면서 비도덕적으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우회로를 또한 만들어내는 데도 능수능란하다. 대개 그럴 때 사람들이 내세우는 변명거리는 세 가지다. 하나는 '남들도 다 하는 것이잖아' 또 다른 하나는 '이번 한 번 뿐이야' 마지막은 '나 하나쯤 그런다고 티나 나겠어' 하는 생각이다. 이런 사소한 마음들이 결국엔 커다란 부정을 낳게 되는 그 첫걸음이 됨을 댄 애리얼리는 잘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겠지만 사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가 본성상 아주 능수능란한 교활한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아무리 말이 안된다 하더라도 필요하면 거침없이 거짓의 이야기를 꾸미는 존재다.

 

  그러니까 결국 이미지란 시선의 교란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모습을 혼란시키기 위해 마술사가 현란한 손동작으로 관객의 시선을 끌어 자신이 정말 하고 있는 것을 숨기듯이 그렇게 우리의 도덕적 자부심을 상처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도덕적이라는 자부심을 계속 가지기 위하여 타인에 대한 시선을 가지고 내 자신의 시선을 교묘하게 뒤트는 것이다. 남들이 저러니까 나도 괜찮아 하는 식으로... 결국 우리들은 스스로 속이기 위해서 남을 이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이 다 그렇게 때문에 내가 날 비도덕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비도덕적이 되기 위하여 남들을 물귀신 작전처럼 끌어내리는 것이다.

 

 

  댄 애리얼리의 이 책이 정말 중요한 것은 보다 자신에게 정직한 시선을 던지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편하게 남 핑계를 댄다. 세상이 이렇게 된 것도 결국은 다 남들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일상에서 참 많이도 하고 산다. 하지만 댄 애리얼리는 그 핑계 아래 정말 움트고 있는 우리의 밑바닥을 보게 한다. 사실은 내가 비도덕적 유혹에 쉽게 굴복하기 위하여 괜스레 남들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렇게 우리의 이웃들은 어떤 선택을 할 때 무엇보다 도덕성을 가장 먼저 고려하는 선하디 선한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 곳에서도 그런 선함을 찾아 볼 수 없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런데 사실 그 아우성은 나의 도덕적인 자부심에 상처를 입지 않고 비도덕적이고 싶다는 아우성에 다름 아니었다. 모든 변화는 자기에게 정직해 질 때이다. 진정한 변화 또한 그렇다. 아무런 기교나 협잡 없이 정직하게 나의 도덕성을 지키려 할 때 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또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댄 애리얼리는 진정한 변화를 위한 가장 소중한 첫 걸음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하여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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