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전기 -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유달승 옮김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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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몬 시백 몬티피오리의 '예루살렘 전기'는

 서양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인 예루살렘의 그 탄생에서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보통 지명을 중심으로한 역사서에는 붙지 않는 'THE BIOGRAPHY'라는 말을 일부러 제목으로 쓴 것에서 부터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는 지은이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듯 하다.

 

 예루살렘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이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타자의 역사를 읽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근대화'라는 19세기에 서양에 의해 주도된 보편화를 이미 겪었고 바로 그 보편의 핵심엔 서양 정신의 많은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기독교'가 자리잡고 있는데 예루살렘의 역사란 바로 그 기독교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예루살렘이란 공간은 특정한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지금에 있어서는 하나의 보편으로 자리잡은 공간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역사를 살펴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자리잡은 '보편'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는지 알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일본의 식민지와 그에 뒤이은 미군정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우리 내면속에 자리잡게 된, 그리하여 이제는 거의 '아비투스'가 되어버려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어버린 '서양 근대'를 마치 산란기가 되면 자신의 고향으로 강을 거슬러 돌아가는 연어들과도 같이 그 근원에서부터 되짚어 보는 여정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루살렘 전기'를 읽는다는 것이 마치 오래된 앨범의 옛 사진을 뒤적이듯 과거만을 회고하는 여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2000년 세계무역 박람회가 테러로 무너졌던 9.11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이 예루살렘이라는 공간 자체가 여전히 지금 세계의 가장 커다란 갈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의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지금까지 예루살렘은 대부분 일어나고 있는 테러들에게 그 근원적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현대에 일어난 가장 큰 전쟁인 이라크 전쟁만 보아도 예루살렘이 촉발시킨 갈등이 얼마나 커다란 비극을 불러올 수 있는가는 쉽게 짐작된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을 더욱 잘 이해함과 동시에 '평화'를 가져오는 사전 정지작업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갈등의 물줄기를 근원에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주욱 훑어볼 수 있음으로 그 갈등이 진정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게하고 그것이 이리도 커다란 비극을 낳으며 자꾸만 반복되는 이유를 객관적으로 고찰할 수 있게 만들며 그를 통해 갈등의 연쇄를 끊고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제대로 된 해답을 찾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지은이 몬티피오리가 856 페이지라는 엄청난 분량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역사를 쓴 이유이며( 놀라운 것은 참고문헌 목록만 거의 80여 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문헌을 한 번 읽어보면 지은이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고를 들였는지 저절로 느껴진다. 사실 이 정도로 방대하게 저술한다는 것이 웬만한 열정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이라는 건 쉬이 짐작이 가는 바이지만 참고문헌을 통해서 이 책에 대해 저자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임했는지 더 크게 깨달았다.) 이를 통해 예루살렘을 늘 우리의 뇌리 속에 생생히 되살려야 할 까닭이다. 

 

  

 예루살렘은 한 때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졌고 오늘날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 도시는 아브라함의 종교들이 충돌하는 각축장이자 점차 인기를 얻은 그리스도교, 유대교 및 이슬람 근본주의의 성지이며 문명들이 충돌하는 전략적인 전장이자 무신론과 신앙이 부딪히는 최전선이고, 세속적 매혹의 대상이며 인터넷 시대의 현기증 나는 음모론과 신화 만들기의 대상이자 24시간 뉴스 시대에 전 세계 카메라들의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종교와 정치, 그리고 미디어의 관심으로 인해 예루살렘은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p. 9)

 

  크리스마스 때 어쩌다 이름이나 한 번 듣는 예루살렘.

  그렇게 누군가에겐 전설 속의 옛 지명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순례해야할 성지로만 남아있던 예루살렘. 그렇게 단일한 공간으로만 여겨지던 예루살렘. 하지만 몬티피오리는 처음부터 그러한 예루살렘의 이미지를 깨뜨린다. 그는 단적으로 말한다.

 

 예루살렘은 '전선(FRONT LINE)'이라고...!

 

 그것도 몇 백년이상이나 해묵은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아직도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며 과장되고 부풀려진 인위적인 거짓들과 허위와 왜곡으로 부터 덜 오염된 사실이 총탄처럼 오고가며 교전을 치뤄지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전선인 것이다. 몬티피오리는 그 열기를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려 한다. 그 불길이 어디에서 부터 시작되었으며 왜 아직도 불타고 있는 유전처럼 아직도 거세게 타오르고 있는 것인지 그 이유를 보여주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예루살렘에 대한 역사서들과 다르다. 왜냐하면 이 책이 담고자 하는 열기는 어디까지나 그 공간에 존재하는 이들이 빚어내는 갈등들에서 비롯되는데 바로 그 갈등들을 표현하자면 아무래도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와 또한 무신론까지 다 대등하게 존중하여 각 자의 목소리들을 온전히 들려주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예루살렘의 역사서는 모두 하나의 목소리만을 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기독교 중심으로 예루살렘 역사를 살펴보는 책들은 기독교라는 하나의 목소리만을, 유대교 중심으로 보는 책은 또 유대교라는 하나의 목소리만을 그리고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보는 책은 이슬람교의 목소리만 들려줄 뿐이었다. 하지만 몬티피오리의 이 책은 다르다. 우리는 여기서 예루살렘에 운집한 가지각색의 아우성들을 들을 수 있다.

 

 이 책은 마치 내가 어떤 재판에 배심원으로 불려와 각 피고인들의 변론을 차례로 듣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모든 목소리를 차례로 들었는데 처음엔 예루살렘을 만들고 다졌던 그리고 한 때 추방되었으나 이제는 피의 살육을 통하여 터줏대감이 되어버린 유대교의 목소리를, 그리고 다음엔 유대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다질 때마다 핍박받고 저항했던 이교도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 다음엔 동로마 제국과 함께 건너온 그리스도교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다음엔 그들에게도 성지였던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십자군 전쟁을 불러일으킨 이슬람교의 목소리를 들었고 제국주의의 확장과 더불어 그들의 손발 역할을 했던 '선교'를 통해 들어왔던 개신교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는데 그건 이 재판에서 판사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지은이 몬티피오리가 그 어느 종교적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가치중립적으로 그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역사적 정황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배심원들에게 사건의 정황을 제대로 인식시키는 것이 판사에게 요구되는 정말 중요한 자질이라고 미국의 연방대법관을 지냈던 Oliver Wendell Holmes는 말한 바 있는데 그렇다면 몬티피오리야 말로 제대로 된 판사가 아닌가 싶다.

 

 예루살렘은 예수로 인해 '평화'의 상징 같은 곳이 되었지만 사실은 내내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지금 이스라엘이 세워지게 된 것 역시도 시온주의자들이 벌인 무시무시한 살육 덕분이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또한 타자를 존중하지 않는 독선과 아집이 얼마나 커다란 비극을 반복적으로 잉태하게 하는지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을 위해서일까? 그의 체계적이면서 객관적인 서술은 그러한 사태를 냉정하게 관찰하게 하고 많은 인용들과 평이한 서술은 폭넓은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마치 판사가 마지막 평결을 내리듯이 그는 하나의 진실을 대면하게 한다. 우리가 왜 타자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그에 대한 진실을...

 

  어쩌면 뻔한 결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전혀 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그 수많은 역사적 경험들에서, 비록 상상을 매개로 한 것이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마음으로 부터 납득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몬티피오리는 진심으로 납득시킨다. 정말 저 예루살렘을 갈가리 찢어놓는 철조망은 어디에 있느냐고? 그것은 바로 타자를 나만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눈과 머리 속에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은 그 한 문장을 당신 마음에 깊이 새겨두기 위해 '예루살렘의 역사' 전체를 놓고  재판이 벌어지는 법정과 같다. 그러니까 당신이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그랬듯이 배심원으로 호출된 것과 마찬가지다. 만일 당신이 우리 의식에 있어 근원적인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존재를 제대로 알고 싶고 오늘의 세계를 더욱 잘 이해하길 원한다면 당장 그 호출에 응할것을 정말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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