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김영명 지음 / 개마고원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단 전체적인 감상부터 말하자면 속이 시원했다. 나는 기독교를 믿고 이 책의 지은이 김영명은 불교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평신도로서 그동안 내가 기독교(정확히는 한국 기독교 교회라고 해야겠다)에서 가지고 있었던 불만이나 교리와 설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던 호기심을 모조리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가 다른데도 이러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을 보면 초심자 혹은 평신도가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 느끼는 불만이나 부족한 부분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제목 부터가 도전적인 이 책의 부제는 더더욱 도전적으로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이다. 부제만 놓고 보자면 지은이가 불교에 상당히 조예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기 쉽겠지만 천만에 그는 스스로도 밝히지만 이제 겨우 불교에 입문한 초심자에 불과하다. 이처럼 종교 경험이 일천한데도 감히 한국 불교의 문제에 대해서 들고 나온 것은 그저 상식적인 견지에서 아무리 따지고 보아도 한국 불교가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또 정말은 무엇을 중생들에게 주고자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범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너무나 고담준론이라 수양이 깊지 못한 미천한 존재들이라 그런지 그저 뜬구름 잡기 식의 허황된 담론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은이 김영명은 그걸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도 서울대학교를 나오고 뉴욕주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까지 받은 소위 먹물을 먹을만큼 먹은 인사(人士)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교의 이론이 심오하다해도 그래도 이정도 가방끈이면 수박 껍질에 그려진 줄들의 개수 정도는 헤아릴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 개수마저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말들은 한문 투성이고 논리는 비약과 과장으로 범벅이 되어 있으며 강해하는 자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추상적인 이론으로 가득하니 절망하기도 전에 분노부터 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비록 불교의 내공은 깊지 못하나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라고 벽력뇌성으로 일갈하며 오직 그의 무기라곤 그동안 닦은 학자적 수련과 상식 밖에는 없지만 '불교'라는 비약과 허장성세 그리고 고담준론들의 춘추전국과도 같은 강호로 나선 것이다. 그렇게 그는 초심자들의 의문과 답답함을 제대로 풀어주겠다는 일념으로 전체 11장에 걸쳐 불교라는 난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다. 거기에는 어려운 한문만 고집하며 불교의 가장 기본적 개념 조차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하는 한국 불교계 뿐만아니라 흔히들 소승불교는 개인 수양 대승불교는 세상에 대한 자비 실천을 주 이념으로 하나 제대로 둘 다 살펴보니 정작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는 그리 다르지 않는데 굳이 그러는 것은 그냥 자신들을 구분지으려고 억지로 그러한 것들을 갖다 붙인 것은 아닌가 하며 대승불교를 논박하고 거기다 아예 석가모니에게까지 나아가 그가 정말 사람들이 말한는 겸손과 자비의 인물인가를 논하며 아울러 불교의 가장 근본이 되는 고해와 그것을 벗어나는 경지인 해탈과 열반이 사실 제대로 된 개념인지마저 검증한다.

 

  이렇게 그의 칼날은 거침이 없고 위 아래를 따로 두지 않는다. 마치 제대로 살풀이를 하려는 듯 이참에 그는 평신도로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의문점들을 다 해소하려 덤벼든다. 윗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불교라는 것이 도대체 뭣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으니 스스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제대로 한 번 단단히 마음먹고 파악해 보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는 제천대성 손오공이 세상 끝까지 날아가 부처님 손가락에다 자신이 세상의 끝까지 도달했노라 남기듯 그가 찾은 불교의 핵심을 책 마지막에 새겨 둔다. 그가 이해한 불교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불교의 핵심은 수행을 통한 나와 남의 괴로움 제거이다.(P.274)

 

 대단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초심자이자 평신도인 그가 오래도록 고군분투 끝에 도달했어야 할 만큼 한국 불교는 이 단순한 진리를 어렵게 말하고 배배 꼬이고 또한 잔뜩 부풀려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선 이해를 못하면 친절히 가르쳐 주기는 커녕 믿음이 부족하다는 둥 수양이 덜 되었다는 둥 오히려 못하는 자를 타박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강조한다.

 

  그들이 아무리 많이 알고 수양이 높더라도 무턱대고 그들의 말에 기대지 말 것을. 아무리 믿음이 강조되는 종교라 하더라도 그 모든 이론과 교리에 관해 자신의 이성을 가지고 맞는지 아닌지 제대로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한 마디로 그들의 권위에 쫄지마라는 것이다. 종교의 이론이나 교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모든 건 다 똑같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니 스스로 찾고 구하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그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실증하기 위해 지은이 김영명은 이 책을 통해 몸소 시전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그것은 나 역시 기독교 생활을 해 오면서 생각했던 것이었고 그래서 이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지은이에게 적잖이 감명을 받았다. 애초에 내가 불교에 대한 책을 읽기로 한 것은 현재 한국 기독교가 정말로 문제가 많아서였다. 바로 그것을 불교나 여타 다른 종교들을 배워 봄으로써 그 상대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지금의 한국 기독교란 한 마디로 딱 장사아치에 불과하다.(물론 여전히 소명을 가지고 일하시는 목사님들이 많다. 하지만 그분들의 노고보다 더 많이 드러나는 건 돈 밖에는 중심에 두지 않는 한국 기독교의 모습이다.) 이렇게 된 데는 무엇보다 성경이 정말 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성경의 진의를 왜곡하여 설교한 목사들의 책임이 크다. 그리고 기복신앙에만 빠져 무분별하게 목사들의 말을 맹종했던 신도들의 책임 또한 크다. 다행히 지금은 헌금이나 십일조에 대해서 비성경적임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고 그렇게 스스로 자정하려는 노력들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기독교가 진정으로 기독교다워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험란한 고비들이 많다. 이 고비들을 제대로 넘기 위해서라도 이제 평신도가 깨어나야 할 때라고 많은 분들이 목소리를 모아 말한다. 더 이상 예전처럼 목사의 말이라고 무분별하게 수용하지 말고 늘 깨어서 스스로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것은 또한 그대로 이 책의 주제와 상통하는 바이기도 하다.

 

 즉 불교나 기독교나, 그 종교가 제대로 자기답기 위해서는 일반 신도가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설교나 강론에 있어 그저 듣기만 하는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참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진리를 앎이 귄위있는 소수에게만 허락되었을 때는 항상 부패와 타락이 뒤따랐다. 혹세무민은 늘 남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그렇게 스스로는 생각할 줄 모르는 다수가 있을 때 일어났다. 말들은 언제나 참여하는 자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보다 더 정확해지고 제대로 된 의미를 찾게 되는 법이다. 바로 집단 지성이 그 오염된 말을 정화시키기 때문이다. 흔히들 종교는 믿음이라며 그래서 따지기 보다는 그냥 믿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다라는 말을 한다. 물론 헛소리다. 교부철학의 아우구스티누스나 스콜라 철학의 토마서 아퀴나스, 종교개혁을 가져온 루터나 지금의 개신교를 낳게 한 칼뱅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어디 그저 믿기만 햇던가 제대로 따지고 들었기 때문에 바로 오늘의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보다 많은 이들이 권위에 주눅들지 말고 자신 역시도 당당히 하나의 대등한 참여자라는 생각으로 핵심, 이론 그리고 교리에 대해 사유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불교와 기독교 아니 모든 종교를 본래의 모습 그대로 지켜줄 것이다. 그러니 믿음이 무슨 마법의 지팡이라도 되는 양 얼버무리지 말고 아무리 알 수 없는 것이나 모호한 것이라 해도 끝까지 따지고 의미와 이유를 추구하고 사유할 필요가 있다. 불교에 갓 입문한 초심자인 김영명이 이 책에서 제대로 보여준 것 처럼 말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이제와 생각하면 이 말은 단순히 믿음, 기도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바로 종교의 모든 것을 그대로 믿지말고 스스로 사유할 것을 요청하는 말이기도 했다. 즉 진리는 그저 다가오지 않는다. 스스로 나서서 찾고 두드리지 않는 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