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종료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
빈스 플린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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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변상욱 기자의 '굿바이 MB'와 빈스 플린의 '임기종료'가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는 모두 대통령이 임기종료를 1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은  어떻게든 권력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온갖 정치적 공작과 약점을 잡아 협박과 회유를 하는 등의 정치적 뒷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셋은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도덕적인 정권인양, 민주적인 정권인양 한껏 포장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넷은 그러한 정치적 부패와 협잡 그리고 거짓말과 위선에 국민들의 환멸과 분노가 극에 달할대로 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직도 많은 분들이 가장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정치적 현실 역시도 우리나라와 다를바 없다. 한낱 스릴러가 하는 얘기를 곧이 곧대로 믿느냐고 반문하실 분도 있으시겠지만 '뉴스의 헤드라인을 뽑아내듯 오늘날 백악관의 모습에서 착안한 현실적인 캐릭터들'이라고 평한 플로리다 타임스 유니온이나 '워싱턴 정치 기밀의 내부 고발자가 된 것 같은 현실감을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라는  미네아폴리스 스타 트리뷴의 평가가 있는 것을 보면 이 소설의 내용이 단지 허튼 공상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저 그 속사정이 제대로 투명하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미국의 정치나 한국의 정치나 이렇게 빈스 풀린의 '임기종료'가 나와야 했을 만큼 썩을 대로 썩었다는 건 마찬가지인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5년간 60번이나 출판사로 부터 출판 거절을 받는 바람에 작가가 사비를 털어 출간했다. 그렇게 사비로 털어 만든 책이니 별다른 홍보가 있을리는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입소문만으로 이 책은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것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물론 작품의 완성도가 그토록 매력적이라는 증거도 되겠지만 그만큼 미국 시민들 역시도 우리 나라만큼 기성 정치에 염증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근데 염증을 느끼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그건 빈스 플린이 '임기종료'에 담은 내용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결정적으로 오늘의 한국과 빈스 플린이 꿈꾸는 미국의 차이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한국은 그동안의 거짓과 위선 그리고 무능에 대한 환멸과 분노에도 아랑곳 않고 다시금 거짓말에 스스로 속아주는 것을 택했지만(어쩌면 한국인은 독일의 학자 에리히 프롬이 말했던 대로 매저키스트적 민족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치와 같은 파시즘을 양산시켰던 그러한 증후군을...) 빈스 플린의 '임기종료'는 그러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이대로 방관할 수 있다면 진정한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스스로 심판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것도 그냥 외치거나 시위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옛날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를 단두대로 처형했던 프랑스 혁명처럼 무력으로 응징해야 한다고 말이다.

 

 소설은 그렇게 대통령 임기 종료를 1년 앞둔 시점에서 현재 미국 대통령 스티븐스가 재선을 위해 장차 재정적 부담으로 나라의 파산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심성 정책을 법안화하느라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지지표를 모으고 있는 사이 당시 미국 정치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졌으나 또한 그만큼 가장 부패로 악명 높았던 정치인 세 명이 정체불명의 자들에게 국민의 이름으로 처단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 더하여 이것이 시작이며 앞으로 미국의 정치가 올바로 되지 않으면 계속 정치인들을 살해해 나갈 것이라 선언한다.

 

 1776년 미합중국의 건국자들은 영국 국왕에게 독립선언서를 보냈다. 이 선언서에서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썼다. '어떤 형태의 정부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때, 그 정부를 바꾸거나 없애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것은 국민의 권리다.' 우리는 정부가 나아가는 방향을 바꾸기 위해 봉기할 이 권리를 행사하려 한다. 당신들은 미국이 나아가는 방향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 당신들은 지출을 줄일 시간과 기회가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개인적인 욕심과 자신이 속한 정당의 목표를 미국의 경제적 안정과 미래보다 더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당신들의 이기적이고 무능한 지도력 때문에 현재 우리는 5조 달러가 넘는 국가채무를 짊어지게 되었다. (...)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리는 대통령에게 하원에 제출한 예산안을 철회할 것을 명령한다. (...) 만일 헌법 초안자들이 의도했던 제한된 권력만을 행사하는 정부형태를 회복할 능력이 없다면 당장 공직에서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당신의 행동을 면밀히 주시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마지막 경고다. 만약 당신들이 우리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당신들 중 어느 누구도 우리의 손을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P.79~80)

 

 

 하지만 물론 그들은 듣지 않는다. 해서 정체불명의 심판자들이 대통령이 헬기를 탔을 때 얼마든지 타격가능함을 보여 더욱 위협하지만 애시당초 국민에 대한 봉사 따위는 잊어버린지 오래인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적을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한 마디로 지지리도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빈스 풀린이 그려내는 민중의 무력 심판은 더욱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에릭 건전한 토론은 환영이네만, 다시는 나한테 그런 쓰레기 같은 말을 내뱉지 말게. 난 자네가 가르치던 순진한 학생이 아냐. 아첨을 일삼는 정치운동가도 아니고. 난 사람들이 죽는 걸 직접 봤네. 이 나라를 위해 복무하면서 직접 사람을 죽인 적도 있어. 자네의 그 이상적이고 철학적인 이론들이 의사당의 신성한 복도에서는 효과가 있는지 몰라도, 현실속에서는 안 그래. 폭력은 삶의 일부일세. 자기가 원하는 걸 얻으려고 기꺼이 폭력을 쓸 사람들이 쎄고 쌨어. 그런 사람들을 막으려면 역시 폭력을 동원하는 수 밖에.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없다면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사람이 이 세상을 다스릴 걸세. 그리고 자네는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라는 멍청한 말을 하며 돌아다닌 죄로 총살당하겠지" (P.317)

 

 

 주인공 오루크의 할아버지 시머스의 말이다. 비폭력을 주장하던 올슨이 이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봐서 이것이 바로 '임기종료'를 쓸 때의 빈스 풀린의 솔직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렇다고 빈스 풀린이 무력 응징을 진심으로 믿는다고 생각하지는 말길 바란다. 그는 국민이 침묵하면 과연 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좀 과장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전쟁이 없으면 히틀러와 스탈린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에 그 진의가 드러난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그렇게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광기와도 같은 전쟁의 선동과 혹독한 독재 앞에 국민들이 침묵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품 속에서 언젠가 오루크가 중얼거렸던

 

 "이 사람들이(정치가들을 말한다.) 제대로 일을 하게 만들려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라는 질문에 빈스 플린은 소설 전체를 통하여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이 나라의 정치를 바꾸고 싶은가? 그러면 행동을 하라! 행동을 통한 현실적인 참여만이 그것의 근절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개인적으로 정치에 대한 환멸을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분들에게 제스 월터의 '시티즌 빈스(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투표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감동적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와 더불어 권해드리고 싶다. 이번 총선의 낮은 투표율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이번 야권연대의 충격적인 패배도 낮은 투표율 때문임이 출구조사 분석 결과 드러났다. 특히나 18대에 비해 30대의 참여율이 거의 12%나 낮다고 한다. 패배의 충격만큼이나  정책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받을 수 밖에 없는  30대가 이렇게나 참여율이 저조하다니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투표하지 않을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고 말들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상황을 봐 가면서 보장되어야 할 권리라고 생각된다. 만일 당신이 불타고 있는 집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 보라. 물론 구해주지 않았다고 형법이 당신을 처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당신의 행동하지 않음을 무언으로나마 비난할 것이다. 거기에 대해 당신은 구해주지 않을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외치며 스스로를 당당하게 변호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분명 당신 역시도 가책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물론 이 비유가 투표권의 비유로 적절하지 못하다고 나 역시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불난 집과 다르다고 보기란 힘들다고 생각된다. 조금만 눈을 바깥으로 돌리고 살펴보면 마른 들판에 불길이 번지듯 활활 타들어가는 타인들의 고통이 보인다. 그것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이권만 챙기는데 혈안이 된 정치적 부패와 그로 인한 정책적 무능 때문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바꿀 수 있는 길이 투표 밖에 없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 이런 상황인데도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사람들이 안에 있는 활활 타오르는 집을 눈 앞에 두고도 가만히 있는 것과 같지 않을까? 물론 그 불은 그냥 거기서 타오르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언제 어느때 자신의 집마저 옮겨 붙을 지 모른다. 삶이 가진 예측불가능성은 계층의 위 아래를 구분하지 않으니까.  그 때가서 창 밖으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돌아오는 것인 차디찬 무관심 뿐이라면 어떡할 것인가? 미국의 시인인 프루스트는 무관심은 무관심만을 낳을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세계는 아마도 얼음으로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이이상 말을 하면 구구절절이 될 것 같아 이쯤에서 그만두려 한다. 그냥 한번쯤 이 책을 통해서나마 나의 정치적 무관심과 무행동을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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