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오래도록 역사의 변방에 있었습니다.

 

  마치 그 거대한 대륙 전체가 어둠의 장막이라도 둘러쓰고 있는 것 처럼 아프리카는 세계사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오죽하면 우리들 조차 세계사 시간에 근대에 이르도록 아프리카라는 이름을 볼 수 있었던 곳은 단 하나밖에 없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근대까지 그 뜨겁고도 험난한 여정을 이어오는 동안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아프리카는 오로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최초의 인류 화석이 발견 된 지명으로서의 아프리카말고는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아프리카에 있어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듯 했고 그렇게 늘 변함없이 태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습니다. 흔히들 1989년 부터 1999년까지의 아프리카를 '아프리카의 과도기'라 부릅니다. 89년 냉전체제의 종식과 더불어 양극화 체제에서 다극화체제로 서서히 옮겨가자 당시의 냉전 이데올로기에 의해 외부로 부터 지배를 받고 있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스스로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체제를 만들어가려 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소련의 개입으로 일어난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의 전쟁도 끝이나고 많은 나라들이 이제는 자신들만의 체제를 추구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악명높은 인종분리 정책이었던 아라파트헤이트도 폐지되는등 처음으로 변화의 기운이 아프리카에 가득 퍼지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제외한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과도기 조차 찻잔 속의 폭풍일 뿐 이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죠. 오늘까지도 여전히 아프리카 하면 우리들이 세렝게티나 가혹한 굶주림만을 떠올리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2011년 1월. 아프리카를 달리 보게 되는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23년간 튀니지를 독재했던 밴 앨런 정권을 무너뜨린 재스민 혁명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혁명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 번져나가 결국엔 42년간이나 리비아를 독재했던 카다피 정권마저 무너뜨렸습니다. 사람들은 놀랐고 이 혁명이 그 어떤 외부의 개입이나 원조 없이 오로지 아프리카인들이 순수하게 자신들의 힘으로 쟁취한 혁명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혁명이 그 때까지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인들이 여전히 미개하며 자신들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 운동이 지금처럼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도움이 그만큼 절실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아프리카인들이 스스로는 그 어떤 해결도 할 수 없다는 그러한 우리의 편견이 뒷받침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스민 혁명은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려버렸습니다. 그들 역시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기꺼이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제서야 아프리카가 가진 진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아프리카가 왜 그토록 세계사에 있어서 가리워져 있었고 또한 우리는 아프리카인들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이죠.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책이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중 하나를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책은 세상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담고 있고 언제든 우리들에게 그 진실을 들려주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프리카에 대해서 만큼은 에코가 책에 대해 부여했던 그 의미가 그대로 진실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책들을 통하여 왜 아프리카가 재스민 혁명으로 달리보게 될 때까지 그동안 우리들에게 그렇게 나쁜 이미지로만 인식되어 왔는지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라는 것을 말이죠.

 

 우리는 그것을 수잔 벅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에서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수전 벅모스의 책은 우리들이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이 서양이 본격적으로 식민지 정책을 펴나갔던 그 시기부터 형성된 것임을 알려줍니다. 당시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은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해 나갔는데 사실은 무력에 의한 정복이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식민지 건설의 명분이 없으니까 야만을 문명으로 계몽한다라고 미화시키는 것이 보편적 행태였습니다. 때문에 그들이 내세운 '문명화'라는 명분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들이 정복하는 땅의 주인들이 한없이 미개하고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야만적이었다고 해야 했습니다. 아프리카도 여기에 있어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은 바로 서유럽의 제국주의적 팽창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놓고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삼고 그들의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어내었던 편견이 아직도 강하게 우리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것이죠. 수전 벅모스는 하지만 이러한 편견들이 위정자나 자본가들 뿐만 아니라 이성을 찬양하고 자유를 최대의 가치로 부르짖었던 당시의 철학자들 역시도 공유했던 관념임을 밝힙니다. 특히나 헤겔을 통해서죠. 구체적으로 수잔은 우리도 익히 알고있는 헤겔의 저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당시 서유럽을 놀래켰던 아이티 혁명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소상히 밝혀줍니다. 하지만 헤겔 그 스스로는 밝히지 않았고 아이티인들의 혁명을 통해 아프리카인들이 당시의 지배적 관념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그 편견을 깨뜨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역사철학강의에서 아프리카인들은 높은 사고를 할 수 없고 그래서 아프리카는 무지로 어두운 장막이 짙게 드리운 곳으로만 설명했습니다. 말하자면 헤겔은 진정한 아프리카를 짐짓 모른 척 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서구의 역사라는 것 자체가 자기들 외부에 대해 의도적 배제 위에 흘러왔음을 수전은 책을 통해 드러냅니다. 그런데 그러한 행태는 비단 그 당시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현재에도 역시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수전은 그걸 바로 자신의 연구가 어떻게 헤겔 연구가들에게 취급받고 있는가를 통해 나타냅니다. 이렇게 수전이 아무리 아이티 혁명과 헤겔의 상호영향 관계를 밝혀도 지금 헤겔학파 사람들 그 누구도 여기에 관심을 두거나 연구하려 드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헤겔이 아프리카의 진실된 모습을 짐짓 모른 척 했듯이 지금의 헤겔학파 또한 헤겔이 그 아프리카로 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짐짓 모른척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을 통해 수전은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로 인해 타자의 역사들이 멋대로 왜곡되어지는 형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이고 바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역사가 이제는 보편사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의 보편사란 패권을 가진 중심부에서 멋대로 자르고 왜곡하는 현재의 역사가 아니라 그 외부의 타자들이 타자들 자체로서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도록 말하자면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그들을 대변토록 하는 그런 역사를 말합니다. 그렇게 대등한 타자들이 서로 자신의 존재를 다채롭게 드러내는 역사. 그것이 바로 보편사인 것이죠. 수전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는 바로 수전이 지향하는 보편사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히려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해지는 학문의 영역에서 조차 서구중심주의에 기반한 이해관계로 인해 아프리카는 멋대로 왜곡되어 버렸음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비단 수잔 벅모스의 주장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저작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틴 버넬의 '블랙 아테나'란 책입니다.

 

 

 

 

 

 

 마틴 버넬은 먼저 그리스 신화가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단지 상징과 은유의 형태로 기록한 것임을 상세히 밝힙니다. 그렇게 버넬은 그리스 신화를 역사로 볼 것을 주장하는데 얼른 우리는 이것이 참 바보같이만 들립니다. 왜냐하면 그리스 신화가 신화에 불과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사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버넬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수전 벅모스와 마찬가지로 19세기에 팽배한 아프리카에 대한 서유럽 제국주의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학자들이 단순한 신화로 날조한 데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바라보면 무엇보다 그리스 문명의 기원이 바로 이집트로 대표되는 아프리카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당시 아프리카 침략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미개한 열등 인종인 아프리카인들을 계몽한다는 명분이 더이상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당시의 서유럽 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인종주의적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스 문명의 기원을 이집트나 페니키아가 아니라 같은 서양인 미케네 문명을 그 기원으로 날조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날조가 지배적인 견해가 되어 오늘날 우리의 상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음을 버넬은 '블랙 아테나'를 통해 아주 상세히 밝혀줍니다. 여기서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그동안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서 왜곡된 아프리카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아프리카의 어두운 역사를 복기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서구 제국주의에 형성된 그 같은 왜곡된 편견들은 많은 부분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 당당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그대로 우리가 가진 덧칠된 편견들을 걷어내고 그 진실한 참모습을 새로이 알아가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에코가 말했던 책의 의미는 하나의 진실이 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왜곡된 이미지와 역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그동안 세상이 가리고 있는 진실이 이렇게 책을 통해 드러나고 있음을 똑똑히 깨닫게 되니까요.

 

 이렇게 과거의 아프리카가 가진 왜곡으로 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면 이제 현재의 아프리카를 바라보던 인식 역시도 달라지게 되겠지요. 그동안의 굶주림과 미개함 그리고 수동성으로 가득한 땅이 아니라 그 자신의 삶과 역사를 위해 스스로 대안을 찾아나가는 적극성과 가능성의 땅으로 말이죠. 현재 아프리카의 세네갈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윤상욱의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라는 책은 바로 이 같은 아프리카가 가진 현재의 모습을 변화된 새로운 시각으로 정말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현지 아프리카의 경험까지 더해져 정말 생생한 아프리카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는 책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 전반에서 아프리카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곤경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들을 스스로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있는지 그 외부적 시각이 아니라 바로 아프리카 내부의 시각으로써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이 아프리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아프리카 내부라는 미시적 시각에서 보여주고 있다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기획하고 펴낸 '르몽드 세계사 2편', '세계질서의 재편과 아프리카의 도전'은 세계 전체라는 거시적 시야에서 아프리카가 가진 의미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 점점 다극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현재에 있어 서서히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체제와 삶 그리고 역사를 형성하고 있는 아프리카가 거기에 있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윤상욱의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와 이 '르몽드 세계사 2'는 아프리카를 그 내부와 외부에서 고루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병행해서 보면 참 좋은 책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어제의 아프리카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아프리카를 제대로 진실되게 바라보게 해 줄 책들을 추천해 보고 대략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역사와 현재에 관심을 가지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당장은 우리 자신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요. 하지만 앞에서도 이미 말했습니다만 아프리카의 경우에도 드러나듯이 결국 타자의 역사와 현재를 살피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의 역사와 현재를 살피는 일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그들이 걸어온 역사적 경로와 우리가 걸어온 경로도 다르지 않으면 더욱 그렇겠지요. 그런데 우리 역시 그들 만큼이나 역사에 있어선 주변부였고 그들이 지배당했던 만큼 우리도 역시 식민지 지배를 거쳤으며 모든 식민지 경험을 가진 국가의 국민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역시 여전히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에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이만큼이나 과거와 지금 우리의 모습은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때문에 그들에게 덧칠된 편견을 지워가는 건 서구에 의해 우리 자신에게 덧칠된 편견을 지워나가는 일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프리카를 진실되게 이해하는 건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고유하고도 진실된 모습을 찾아가는 또 다른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어제와 오늘의 아프리카를 제대로 바라보게 해 줄 이 책들을 꼭 벗해보실 것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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