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우리 젊은날 - Our Joyful Young Day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인연이라는 것은... 

  

 사람과의 인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한 작품과의 인연도 그렇게 전조도 없이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나보다.  그 날 내가 무슨 연유로 평소에는 거의 보지도 않는 TV를 보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무튼 채널 서핑을 하다 그만 우연히 보게 된 장면에서 누군가 내게 '얼음!'이라고 외친 것 처럼 딱 내 시야가 거기에 고정되고 말았는데 그것은 한국영화였다. 

 바로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 그것이었다. 

 

 

 주말마다 EBS에서 하는 '한국영화특선' 시간이었다. 영화는 이름만 들어봤지 본 적은 없었다. 아마도 내가 본 배창호의 영화는 '고래사냥'이 유일할 것이다. 영화는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진행중이었다. 어쨌든 상관없었다. 중요하지도 않았고. 내가 시야를 고정시키게 된 것은 이야기의 흐름이 아니라 카메라가 인물을 담는 방식 때문이었으니까. 나중에 알아보았는데 '기쁜 우리 젊은 날'은 1987년에 나온 영화라고 한다. 그러니까 6.29선언이 있었던 해다. 영화는 5월 2일 개봉되었다. 그러니까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에 개봉된 것이다. 그 시기를 알고 보니 왜 그렇게 주인공을 맡은 안성기가 영화 내내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는지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그 영화를 안성기는 민주화를 염원하는 우리네 모습으로 짝사랑의 대상인 황신혜는 도래할 민주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무엇보다 두 번의 사산 경험에다 임신중독으로 인해 딸아이만 낳고는 죽어버리는 황신혜로 인해, 그렇게 황신혜에서 새롭게 아이로 바뀌는 것은 다가올 6.29선언 자체를 예언하는 것 처럼도 보여졌다. '아, 배창호는 이렇게 시대적 열망을 영화에 담았던 것이로구나!'  이게 이 영화에 대한 내 처음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해 안가는 게 있었다. 단순히 민주화를 염원하는 시대적 열망을 담아냈다는 것만으로는 포함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영화학자 로빈 우드가 말했던 거기에 속하지 않는 '불균질적 층위'들이 이 영화에 분명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 시야를 사로잡았던 장면의 묘사였다. 그리고 그게 다시금 이 영화를 바라보게 된 처음의 단서이기도 했다. 

 

 2. 아버지라는 것은... 

 

 그건 아버지(최불암 분)과 아들(안성기 분)이 만나는 장면이었다.  화면의 톤과 둘러싼 배경 묘사는 이 영화의 연식이 제법 오래되었음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 두 배우가 나란히 출연하는 걸 보는 것도 신기하긴 했으나 보다 내 시야를 사로잡은 결정적인 원인은 두 인물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이었다. 흔히 옛날 한국 영화라면 이런 경우 말하는 자와 듣는 자를 나눠 찍는 분절된 쇼트들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표정과 대사를 강조하고 줄거리를 인지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배창호는 이것을 롱테이크로 담아내고 있었다. 대화 장면이 짧지도 않다. 게다가 그리 극적이지도 않다. 그저 어디에나 있을 평범한 부자간의 대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카메라는 아주 중요한 장면을 찍는다는 듯이 움직임 조차 사려깊게 하려는 듯 그 공간 전체만을 집요하게 잡아내고 있었다. 거기서 아들은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고 아버지는 이리저리 공간 속을 활발하게 움직이며 말을 하고 있었다. "요즘엔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되서 큰일이라더라." "요즘엔 종합상사가 가장 좋다더라. 너는 거기 들어가라." 의 말을. 아버지의 이 말은 영화에서 자주 반복된다. 안정된 삶을 바라는 아버지의 희구가 느껴진다. 하지만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흘려버리듯 내뱉는 말들은 그의 이말이 되도록 아들에게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묻어있는 것 같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이 이왕이면 어려움 없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래도 왠만하면 자기가 뜻하는 대로 살면 좋겠다는 생각 사이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들 역시도 그랬다. 그저 조용히 앉아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군말없이 '네'하고 대답하고 있지만 사실 그가 원하는 것은 극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아들 역시 자신을 위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그래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의 꿈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그저 단답식의 조용한 대답으로 나오고 있었다. 배창호의 롱테이크는 그것을 잡아내고 있었다. 화면 속에 가로놓인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간격과 똑같이 그들이 들어서길 꺼려하는 그 심리적 간격을. 배창호는 바로 그 간격을 그들의 표정과 말투로 서로를 헤아리고 배려하는 '사랑'의 영역으로 구현해 놓고 있었다. 그랬다. 이 영화에서는 짝사랑하는 존재인 황신혜 만큼이나 아버지의 비중이 높다. 그것이 이 영화를 애초 생각대로 '민주화 열망의 형상화'라는 주제를 고집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자신을 드러내기를 가급적 삼가하고 그저 멀찍이서 조용히 지켜보며 필요할 때 아낌없이 사랑과 위로를 주는 아버지의 존재는 지금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아들이 하는 것과 정확히 닮았다. 카메라는 자주 아들을 위로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는다. 여인에게 처음 마음을 고백했으나 결국 거절당하고 술에 취해 돌아와 드러누운 아들을, 그가 잠든 뒤에도 이부자리를 챙기고 전등을 꺼주는 등 상심한 아들을 보살피는 아버지의 모습을 오래도록 담는다. 그녀가 결혼해서 미국으로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놀이터에서 혼자 있는 아들을 발견하는 것도 그 아들을 조용히 위로하는 것도 아버지다. 

 

 

   아들의 여인에 대한 사랑이 난항을 겪을 수록 배려와 존중으로 놓여져 있었던 그 간극을 아들은 자꾸만 잘라내지만 그 때도 아버지는 늘 그 자리에서 최대한 아들을 배려하면서 조용히 지켜본다. 언제든 기대어줄 어깨와 다독여줄 손을 가진 채. 이렇게 자주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아버지를 보게 되면 정말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다시한 번 생각하게 된다. 배창호는 정말 한 여자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리면서 비록 결실은 맺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그 자체로도 기뻤노라 라는 의미에서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어째서 아들이 그토록 아버지의 행위를 반복하는 것인지 기묘해진다. 아들이 여인을 처음 만나는 장면은 사실은 아버지가 아들의 맞선을 주선하는 자리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의 착각으로 인해 정작 아버지의 맞선 자리로 바껴져 버리는 장면으로 다시금 반복된다. 그런데 그 뒤 배창호는 홀로 남은 아들이 그 여인과 처음 만나는 순간을 혼자 반복하고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그 여인을 처음 만나게 된 것도 아버지가 했던 것과 똑같이 고백했기 때문이었다. 즉 그 자리로 여인을 인도한 것도 아버지의 모방이었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도,  다시금 배창호가 순서를 재배치 함으로써, 아버지를 모방한 것이 된 것이다. 또한 오래도록 멀리서 지켜보던 아버지의 시선 그대로 아들은 그 여인을 지켜본다. 그렇게 사실 그의 짝사랑이란 다름아닌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의 반복된 형태이기도 하다. 더구나 마지막에 엄마 없이 자라게 된 딸과 아버지로서 대면하는 아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엄마 없이 홀로 그를 키운 아버지의 자리를 그대로 이어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3. 배창호의 '회상'적 시선... 

 

 이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표면으론 한 남자의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정작 그 아래에 깔린 것은 그 사랑 자체를 가능하게 해 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킨 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댓가를 바라지도 않으며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부모의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제목의 의미 또한 이제는 바뀌게 된다. 사랑함으로서 기뻤던 게 아니라 우리는 몰랐지만 그렇게 우리 등 뒤에서 지켜보는 부모로 부터 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기에 기쁜 젊은 날이었노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에서 진행되는 내용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바탕이 되고 틀이 된 영화 형식 자체로 부터 드러나는 내용이다. 이러한 전혀 별개의 맥락 자체가 드러난다는 것이 배창호가 이 영화의 형식적인 측면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보여주는데 그가 이렇게 주제와는 별도로 형식에 공들인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영화의 질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였을까 우리는 그것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유념해 볼 것이 배창호가 공간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특히나 앞에서 말했던 내 시야를 사로잡았던 롱테이크 바로 뒤에 이어지는 아버지의 생신 축하 술자리 공간이 묘사되어지는 방식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그 공간은 이렇게 드러난다. 

 

 카메라는 바로 그 곳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5촉짜리 전구의 자그마한 빛 아래 생신 축하를 위해 삼삼오오 모여있는 술자리를  카메라는 아주 멀리서 잡는다. 조명 역시 거기 밝힌 5촉짜리 전구가 전부다. 그러니 술자리의 배경과 관객 가까이의 전경은 어둠속에 잠겨있다. 그것은 마치 꿈결처럼 몽환적으로도 보인다. 거기서 생신을 축하하는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5촉짜리 전구의 빛은 작지만 다사롭게 그들을 둘러싸고 나즈막히 들려오는 그들의 노래소리로 그 장면은 더욱 더 아련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왠지 그 장면은 마치 막 기억하려는 그 순간을 닮아보인다.  우리가 뭔가를 떠올리려 할 때 점점 머리 속 어둠이 밖으로 물러나면서 기억하는 그 장면이 처음엔 작게 시작해서 서서히 다가오듯이 그렇게 말이다. 바로 그와 똑같은 속도로 카메라는 노래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는 그 곳으로 다가간다. 기억 속에 떠오른 장면이 머리 속에 가득찰 때와 같은 똑같은 속도로... 그래서 더욱 분명해진다. 영화의 이 장면이 바로 우리가 하는 기억의 과정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다는 것이... 

 

  배창호의 카메라가 아버지를 담을 경우 드러내는 방식은 이와 같다. 그는 언제나 전경 또는 배경에서 아버지가 서서히 드러나도록 한다. 마치 우리가 아버지란 존재를 기억할 때와 같이. 현재에서 과거의 한 때를 기억하는 것을 특히 회상이라 한다. 회상은 언제나 지금 자신의 입장에서 과거의 그 때를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암기와도 같은 단순한 기억과는 다르다. 그래서 회상은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때로는 그 신념에 바탕을 이루기도 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아버지를 회상함은 영화속에서 경험되는 아버지의 모습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겠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배창호는 어쩌면 그 장면을 찍으면서 정말 아버지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영화속 형식은 그의 아버지를 추억하는 개인적 회상과 그대로 닮아있을 지 모른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은 표면에 전개되는 내용과는 다르게 형식에서 전혀 다른 맥락을 드러낸다. 그건 배창호의 카메라가 '회상'적 시선으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바로 그 '회상'으로서의 측면이 관객에게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그는 화면 톤을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조율하며, 회상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 시간의 지속에 대한 경험임을 비추어 볼 때 장면 마저 분할하지 않고 가급적 롱테이크로서 잡아내는 것이다. 하면 이제 우리는 그가 왜 '회상'적 방식을 영화 표현의 주요한 방법론으로 택했느냐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이건 왜 하필이면 그 '회상'적 시선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는가 하는 질문과 닿아있다. 여기서 우리가 아무래도 고려해야 할 것은 그 시대적 상황이다. 예술가들 역시 국그릇 속의 건더기와도 같아서 아무리 예술적 자의식으로 홀로 독야청청하려 해도 자신을 둘러싼 국물에 젖기 마련이다. 그렇게 시대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시대가 엄혹할 수록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그 암울한 시대에 영화를 하는 예술가들은 어떻게 시대를 헤쳐 나아가는가? 아마도 배창호와 관련해 물어야 할 본질적인 질문은 바로 이것이 될 것이다. 그가 '회상적' 방법을 쓴 이유가 - 그토록 공을 들인 것을 보자면 - 하나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념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스스로 다졌을 그 신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신념은 무엇인가? 같은 시기 나름의 소신을 갖고 역시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저항적 신념을 나타내었던 이장호 감독과 비교하면 배창호의 시대를 헤쳐가는 자맥질의 원형이 좀 더 잘 드러나지 않을까 한다. 

 

 4. 이장호와 배창호... 

 

  이장호와 배창호 모두 형식적은 측면을 중시했고 그것을 통해 시대의 어둠을 헤쳐가려 했지만 그러나 형식으로 드러나는 둘의 입장은 서로 달랐다. 이장호는 영화 '바보선언'으로 대표되듯이 아방가르드 형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 아방가르드는 과잉이고 파괴에 맞춰져 있다. 영화에서 감독 자신은 진짜 영화를 만들 수 없음에 자살하고 음악은 오로지 적을 파괴하는 것만이 목적인 슈팅 게임의 사운드를 카피해 쓰고 있다. 그는 아방가르드를 취하지만 궁극적 목적은 지금의 한국 자본주의적 현실 자체를 부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계속 이어진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방가르드는 원래 모더니즘적이지만 그의 아방가르드는 리얼리즘이 된다. 

  반면 배창호는 기존의 영화 문법을 크게 비틀지 않는다. 장르적 관습도 여전히 따른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내용과 형식을 분리시킨다. 내용은 기존의 사회가 원하는 것을 충실히 복제하지만 형식은 그러한 복제된 진실에 대해 여전히 의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형식에 투영되어진 '회상'적 시선은 사회에 오염되지 않는 개인적 신념을 늘 자각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보여지는 내용과 형식으로 드러나는 의미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배창호의 영화들은 오히려 모더니즘적이 된다. 그러니까 이장호는 기존의 것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고수하는 한 편, 배창호는 그 회상적 시선에 깔린 - 그의 아버지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로 부터 나온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기억함으로서  스스로 하나의 섬이 되어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가치를 지키려 한다. 파괴를 지향하는 이장호에겐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중요하지 않으므로 기꺼이 연대를 위해 내미는 손이 되지만 배창호는 스스로 관찰자의 입장에 자신을 세움으로써 마치 최인호의 '술꾼'이 그렇듯이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따르는 척 하는 모습의 아래에서 그 모든 것을 데카르트적 회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바로 이러한 배창호의 자세가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1인칭 시점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유이다. 그 장면은 두 번 나오는데 한 번은 처음 황신혜를 만날 때이고 나머지는 황신혜가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할 것을 알았을 때이다. 그것은 곧 개인이 희망과 절망을 느끼는 순간과도 같은데 그 때 처음 부분에서 배창호는 안경알 속에 그녀를 담음으로써 선명해진 세상을 부각하지만 두번째 부분에서는 모든 세계가 전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흐릿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1차적 시점의 형상화에 있어서의 차이는 줄거리에 따른 외부적 상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바로 배창호 작가 개인의 신념이 짙게 투영된 결과다. 이른바 '까이에 뒤 시네마'가 말했던 카메라 만년필 효과인 것이다. 배창호 개인은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순수한 영역이 사회 어딘가에 있을 것을 믿는다. 주인공 자신의 순정이 통했다고, 그렇게 역시 순수가 있었다고 생각할 때 세계는 또렷해진다. 하지만 여주인공이 최종적으로 자본을 선택할 때 그의 순수에 대한 믿음은 좌절되고 세상은 그 빛을 잃는 것이다. 그렇게 영상은 정확히 그 형식에서 배창호 개인이 믿는 가치를 반영한다. 이러한 이장호와 배창호의 차이는 공교롭게도 두 감독의 대표작 모두에 출연한 '최불암'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살펴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즉, 이장호의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아버지의 기표로 존재했던 최불암은 마지막에 살해당하지만 배창호의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는 나의 신념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보호막이 되어 주는 것이다. 

 

 5. 덧붙여... 

 

  우연히 보게 되었지만 '기쁜 우리 젊은 날'을 통해 다시금 암울한 80년대를 헤쳐갔던 영화 감독들의 자의식을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오늘자 경향신문 때문이었다. 오늘 경향신문의 1면은 영화 '도가니'로 인해 새삼 깨닫게 된 영화의 저력에 대해 할애되고 있었다. 그것이 정말 어느 정도 현실적 변화를 일으킬지는 앞으로 두고 볼 문제이고 개인적으로는 한국 영화의 감독들에게 불만이 있었다. 지금 역시도 80년대와 다를 바 없는 어둠의 시절인데도, 내 일천한 한국 영화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때 만큼이나 한국 감독들이 동시대에 대해 직접적 발언이 거의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아무튼 다시금 상기된 영화의 저력과 그동안에 쌓여 왔던 내 불만이 같은 암울한 시기의 80년대를 한국의 영화 감독들은 어떻게 견뎌갔던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거기에 얼마전에 본 '기쁜 우리 젊은 날'이 그 촉매제가 되어주었다. 저번주에는 곽지균의 91년작 '젊은 날의 초상'을 방영하던데 앞으로 계속 8,90년대의 영화를 방영할 모양이다. 한 번 차분히 영화를 통해 드러내는 감독들의 견딤의 자세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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