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쇼크 - 고령화, 쇼크인가 축복인가
테드 피시먼 지음, 안세민 옮김 / 반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비단 진시황제만의 욕망은 아니다. 성경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은 900년 넘게 살았다고 한다. 아서왕 이야기에 나오는 마법사 멀린은 사람의 수명은 600년이 적당하다고 말한다. 그래야 인간으로서 배워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다 배울 수 있다고. 그래서 그는 그만큼 생을 누렸다. 신화라는 것을 인간이 가장 욕망하는 걸 은유와 상징으로 버무린 이야기라고 정의한다면 이렇게 오래 산 사람들이 나오는 것은 수명의 연장이야 말로 우리의 가장 근원적 욕망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같은 이야기를 스페인의 철학자 우나무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삶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비극적 의미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며 종교를 비롯한 모든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명적인 것들은 바로 그 비극을 조금이라도 지연해보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왔다고.

  다행히 현대에 들어와서 이러한 욕망은 서서히 충족되고 있는 중이다. 테드 C 피시먼의 ‘회색쇼크’에 따르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1시간 마다 평균 수명은 11~15분 정도 늘어나고 평균 수명은 날마다 5시간씩 늘어난다(P.447)’고 하니까.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모두 조금이라도 오래 살기를 원하는 만큼 그렇게 이러한 바람들이 집단적으로 실현이 될 때 개인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각종 사회 문제와 그로 인한 변화들이 마구 생겨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테드 C 피시먼의 책 제목 ‘회색 쇼크’의 의미이며 이 책이 독자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의 전부이다. 

   ‘회색 쇼크’는 말 그대로 점점 수명이 늘어나는 그렇게 노인이 많아지는 ‘고령화 사회’를 다룬다. 하지만 이론적인 틀로 독자를 학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미시적인 측면과 거시적인 측면 모두를 아우르는 실제적인 사례들로써 독자를 그것의 목격자로 참여시킨다는데 독특성이 있다. 한 마디로 '고령화' 사회에서 야기되는 모든 문제와 변화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한 번 체험해 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초점이 실제적 사례들에 맞춰진 만큼 피시먼은 현재 고령화 현상이 가장 집약적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보여 지는 일종의 ‘사례군’으로서의 몇 개의 지역(혹은 국가)들을 골라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에 의해 선별된 지역(혹은 국가)들은 이렇다. 

  먼저 ‘고령화’에 특화된 지역사업들을 개발하여 가장 적극적으로 ‘고령화’에 발맞춰 나가고 있는 미국의 ‘플로리다’로 부터 갑작스러운 '고령화'의 진전으로 부족해진 노동력으로 인한 이민족의 유입과 극심한 재정 압박으로 인해 이제 노인 문제를 가정 내부의 책임으로 전가시키고 있는 ‘스페인’을 비롯, 세계에서 가장 노인 인구가 많아서 ‘고령화의 최전선’으로 불리지만 오히려 그 ‘고령화’ 때문에 젊은 세대가 기성 가치관으로부터 탈피하고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가 퇴색되는 등 가치관 자체가 혼란의 와중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일본을 경유하여 제조업의 발달로 부유한 도시로 손꼽히다가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제조업이 몰락하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이민자들의 대량 유입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늘어난 노인 인구들이 저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시도하는 가운데 오히려 전통적 가족의 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미국의 록퍼드와 오랜 역사 때문에라도 동양의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가 가장 높았던 국가가 ‘고령화’를 맞이하면서 어떻게 해체되고 새롭게 받아들여진 자본주의 때문에 어떤 식으로 다시 조합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중국까지, 피시먼은 마치 현미경을 들이대듯 한 개인의 삶이라는 미시적인 부분에서부터 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부분까지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건져내어 마치 탁본을 떠 보이듯 독자 스스로의 눈으로 그 세세한 부분까지 관찰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야말로 전 세계에 미치고 있는 ‘고령화’의 현재와 그것이 야기할 미래의 모습을 충실히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별로 친절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앞 서 말한 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고령화’의 현상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내가 판단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도움이 될 만한 해석의 틀 같은 것은 이 책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실제 상황을 이야기하기 전에 거기에 대해 일종의 원론 같은 것으로 ‘장수에 관한 짧은 역사’라든가 ‘과학이 노화를 막을 수 있을까?’ 등등의 약간 이론적 틀이라 볼 만한 것들을 부가하고 있긴 하나 정작 논의하고자 하는 것과는 또 맥락이 맞지 않아 오히려 혼란을 부추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한 마디로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아우르기엔 곳곳에 다소 산만한 구석들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너무 개별적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한 나머지 독자로 하여금 전체적인 맥락을 놓치게 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나 싶다. ‘회색 쇼크’ 즉 ‘고령화’는 가까운 미래에 전 세계에 걸쳐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분명 떠오를 문제다. 그것도 부정적 의미에서 말이다. 아마도 피어슨은 거기에 대해 독자 개인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현상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나름대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나 그렇지만 인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제대로 된 시각을 만들어줄 수 있는 틀이 있어야 비로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고령화’가 가져올 변화 그리고 문제들은 절절히 체감하는 바이지만 거기에 대해 평범한 한 개인으로서의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혹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은 그리 제대로 짚어주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다시 말 해 책에 기술된 실제 상황에서 각 나라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령화'에 대처하고 있는데 독자는 그 중 어느 것이 자기에게 적합한지 그 적절한 선택의 기준을 얻기 위한 갈피를 잡기가 어려운 것이다. 물론 바람직한 대처 방안이란게 현실과 깊이 맞물릴수록 존재하기가 어렵지만 스스로 그 잠정적인 대안이나마 도출할 수 있도록 제대로 해석하기 위한 최소한의 이론적 틀마저 주지 않는 것은 다소 불친절한 게 아닌가 싶다. '고령화'가 지금 나에게도 닥쳐올 문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피어슨이 혹시라도 또 ‘고령화’에 대해 쓴다면 실제적 현실과 그것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적절히 안배하여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게끔 해서 독자들이 ‘고령화’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그래서 나름대로 준비 할 수 있도록 좀 친절히 써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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