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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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새의 경우 처음 보는 존재가 그의 어미가 된다고 한다. 모친 결정의 매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우리네 취향이라는 것도 행여 그렇게 결정되는 것은 아닐런지. 그러니까 어릴 때 어떤 경로로든지 좋아하게 된 것이 하나의 취향이 되어 자라나서까지도 남아있게 된 것인 아닐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냥 객적인 소리인지도 몰라도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바로 고전미스터리에 대한 내 취향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어쩌다가 이토록 고전 미스터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딱히 그 계기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다만 생각나는 건 그 어느 것 보다 미스터리를 많이 읽었다는 기억 뿐. 왜 그렇게 많이 읽었을까 따져보아도 마치 갓 태어난 아기새가 처음 두 눈에 들어온 대상을 무작정 엄마라 믿듯 그렇게 나 역시 고전 미스터리를 좋아하게된 듯한 막연한 느낌만이 인다. 

 

   한 평생 미스터리만을 위해서 사시다가 얼마전 안타깝게 작고하신 고 정태원님에게 선생님은 어쩌다가 미스터리를 사랑하게 되셨나요 하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실까? 정태원님은 나와는 달리 그 연유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 백조는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운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마지막 울음 소리가 그지없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세상에 내어놓는 작품을 우리는 더러 '스완송', 백조의 노래라고 부른다. 그렇게 나도 이 작품, 정태원님이 직접 선정하시고 번역하신, 셜록 홈스를 쓴 코넌 도일을 비롯하여 모두 10명의 고전 미스터리 작가들의 서른 편의 단편이 들어있는 이 책,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을 고 정태원님의 스완송이라고 부르고 싶다. 

 

 

 

  정태원님은 자타공인 유명한 셜로키언이다. 스스로 주석까지 단 홈스 전집을 번역 출간했을 만큼. 그 홈스 전집은 무엇보다 정확하고 꼼꼼한 주석으로 이름이 놓은데 그런 정도의 주석을 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정태원님의 고전 미스터리에 대한 지식이 아주 방대하고 해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런데 그 정도의 방대하고 해박한 미스터리 지식을 가지려면 왠만한 열정과 애정이 아니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홈스 전집 자체가 그만큼 고전 미스터리를 향한 정태원님의 열정과 애정을 나타내는 하나의 구체적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지금 나온 이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역시도 그 열정과 애정을 드러냄에 있어서 그 홈스 전집과 맞먹는다 하겠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모두 셜록 홈스가 연재되었던 죠지 뉸즈라는 남자에 의해 창간된 '스트랜드 매거진'에서 연재되었던 미스터리 단편들 가운데서 정태원님에 의해서 직접 선정된 것들이다. 많이 알려진 유명한 작품들 보다는 다소 덜 알려졌지만 19세기 당시 고전 미스터리의 다양하면서도 그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선정되었다. 이 중 베로니스 에뮤스카 오르치의 '구석의 노인' 단편들이나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아내를 구하고 대신 배와 함께 죽은 잭 푸트렐의 작품들은 이미 동서 미스터리로 국내에 선을 보인 적이 있으나 내가 직접 찾아보니 각각 단 한 편 만이 겹칠 뿐이고 모두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들이었다. 그만큼 정태원님이 가급적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들로만 세심히 선정했다는 의미가 되리라. 

 

 

 

   그래서 나같이 고전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그 세계를 보다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값진 선물이 될 것 같다. 혹시 어릴 때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세계의 명탐정 45인' 같은 책을 보면서 언젠가는 거기 나온 모든 명탐정들의 작품들을 읽겠다고 꿈꾸었던 이들이라면 더더욱 '종합선물세트'가 되어 줄 것이다. 만듦새도 좋고 번역도 유려하며 거기다 어릴 때 미스터리를 읽으면 꼭 보였던 삽화(여기 실린 삽화들은 '스트랜드 매거진' 연재 당시 같이 실렸던 삽화들이다.)까지 있어서 향수마저 듬뿍 느끼게 해 줘서 금상첨화다. 고전 미스터리의 팬으로써 전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모든 면에서 흡족할 만한 이런 책을 받고 보니 마치 정태원님이 마지막을 예감하시고 당신 자신이 산타클로스가 되어 자신과 똑같이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멋진 선물을 주시고 가시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고맙고 아이가 하나 남은 사탕을 그렇게 먹듯 아껴가며 조금씩 천천히 먹었다. 진한 추억의 내음마저 물씬 머금은 그 단편들을... 

 

   아기새에게 한 번 엄마로 인정된 존재는 영원히 엄마로 남는다. 그렇게 아기새 처럼 내게 낙인처럼 찍힌 고전 미스터리의 취향도 영원히 그렇게 나와 함께 할 것 같다. 이유도 없고 까닭도 모르지만 어쩌겠는가 마냥 좋은 걸. 아마 정태원님도 그렇게 대답하시지 않을까? 좋아하는 이유를 따질 만큼 즐길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그냥 마음껏 즐기고 볼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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