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9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뭐를 좋아하냐고 물을때 선뜻 대답하기 곤란해지곤 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일본 여류 장르소설가에 대해서 묻는다면 아무 갈등없이 단번에 대답할 수 있다. 그렇게 오래도록 늘 내게 있어서는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둘은 바로 '화차'의 미야베 미유키와 '무라노 미로'시리즈의 기리노 나쓰오이다. 다들 '사회파'로 묶일 수 있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그렇게 비슷하다고 할 수 없다.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미야베 미유키는 풍경화가에 가깝고 기리노 나쓰오는 초상화가에 가깝다고 할 수있다. 그렇게 같이 범죄를 그리지만 미야베 미유키가 그 범죄를 둘러싼 사회의 모습을 오롯이 담는데 중점을 둔다면 그에 반해 기리노 나쓰오는 그 범죄를 일으키거나 추적하는 사람 하나만을 오롯이 담아내는 데 중점을 둔다. 읽고나면 가슴에 왠지 모를 톱밥을 씹고 있는 듯한 씁쓸함이 나는 것도 같지만 미야베 미유키에선 그것이 머리로 이해함에서 온다면 기리노 나쓰오에게선 마치 활자가 그대로 주먹이 되어 가슴을 내리친 듯 멍든 가슴이 만들어내는 공감의 떨림 가운데서 온다. 그것은 미야베 미유키가 우리의 시선을 희생자 보다는 범죄자에게 맞추기 때문이며 반면 기리노 나쓰오는 범죄자 보다는 희생자에게 더 시선이 가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유키에게선 잡기 위한 추적이 되지만 나쓰오에게선 찾기 위한 탐문이 되는 것이다. 추적이나 탐문이나 그에 있어서 바람직한 태도는 동일하다. 언제나 쫓는자 혹은 찾고자 하는 자와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이다. 추적하는 자는 쫓기는 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려 하고, 탐문하는 자는 찾고자 하는 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려한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 타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하지만 미유키의 추적에서 타자의 입장에 섰을 때 정작 보게 되는 것은 범죄자가 아니라 그 범죄자라는 괴물을 만들어 낸 사회의 모습이다. 반면 나쓰오의 탐문에서 그 찾고자 하는 자의 입장에 섰을 때 정작 보게되는 것은 오로지 그 개인 뿐이다. 그 개인이 당했던 생생한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당해야 했던 그의 처지 뿐이다. 그런데 나쓰오는 언제나 그 처지가 그리 특별하지 않게 그린다. 그러니까 그 누구도 얼마든지 때에 따라서는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건 그가 특별히 잘나서도 못나서도 아니고 나빠서도 착해서도 아니며 가진게 많다거나 적어서도 아니요 사회적 서열에 위에 있거나 아래에 있어서도 아니다. 그건 그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언젠가는 죽을 그리고 누구에게도 완전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 분명한 고독한 그런 보통의 인간 존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에게서 범죄는 사회적 모순이 들끓는 용암이 가장 얇은 지층을 찾아 뚫고 나오듯이 그렇게 드러난 것이지만 기리노 나쓰오에게 있어서 범죄란 그저 그런 약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이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채우며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발악이 된다. 단순한 욕망의 충족만은 아닌 어떡하든 이 삶이란 것에 붙잡고 매달리고 싶은 절박함의 표현이 된다. 그래서 아주 괴물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아임 소리 마마' 조차 그 주인공이 살려고 발악하고 발악하다 끝내 물에 빠져 익사할 때는 왠지 처연함마저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나 기리노 나쓰오나 그 밝고 어둠엔 별 차이가 없다. 둘 다 아예 어둡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에게 있어선 그 어둠을 창 밖에 두고 바라보는 것과 같다면 기리노 나쓰오에게 있어서는 그 어둠 속에 완전히 함몰되어 바라보는 것과 같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미야베 미유키의 어둠에선 우리가 쉽사리 빠져나올 수 있지만 기리노 나쓰오의 어둠에선 쉽싸리 빠져나올 수 없다. 이 둘의 우열은 사실 나누기가 상당히 어렵지만 어둠의 매력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따라선 기리노 나쓰오에게 손을 더 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둘은 작품에 담는 것도 작품을 통해 바라보는 것도 다르므로 결국은 해와달 처럼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작가들이다. 대낮엔 태양의 하프소리를 듣고 심야엔 달빛의 피리소리를 듣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소슬한 바람이 대나무 잎새를 서걱거릴 때, 개다리 소반 위 호롱불 흔들리는 불빛처럼,  그렇게 지워질듯 이어지고 이어질듯 지워지는 가느다란 피리소리를, 팔배게를 하고 누워, 호롱불 그림자가 천장에 그려내는 비틀거리는 자기 그림자를 보면서 듣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들에서 그 가장 원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을 들라고 한다면 - 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라면 그래도 - 이 무라노 미로 시리즈를 꼽고 싶다. 

  개인적으로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마지막인 '다크'를 아주 충격가운데 읽었고 - 이것이 정말 작가가 되기 전에 그냥 평범한 주부로만 살았던 여자의 작품이란 말인가? 하고 정말 놀라기도 했고 이런 어둠을 품고 어떻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는지 새삼 일본 여자가 제일 두렵다는 이토 준지의 말이 가슴에 팍 와 닿기도 했다 - 그것이 만들어내는 블랙홀과도 같은 어둠에 매혹된 탓도 물론 있지만 그래도 나중에 그녀의 다른 소설 '아웃'이나 '아임 소리 마마' '잔혹기' '암보스문도스' '그로데스크'를 다 읽어 보니 역시나 무라노 미로 시리즈야 말로 기리노 나쓰오의 핵심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내가 기리노 나쓰오에 대해서 읽고 혹시나 그녀를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야말로 그 시작은 무조건 무라노 미로 시리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난 마지막 '다크' 부터 읽었고 그 때는 앞의 시리즈가 번역이 안된 탓에 어쩌다 보니 아직 1권도 읽지 못한 지경에 이렇게 2권부터 읽게 되었지만 당신은 운좋게도 이미 1권이 번역되어 있으니 순서대로 읽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거기다 '다크'를 이해하기 위해선 반드시 읽어두어야 할 무라노 미로의 아버지 무라젠을 주인공으로 한 외전 '물의 잠 재의 꿈'까지 덩달아 나와주었으니 이건 팬으로서 하는 말이지만, '무라노 미로를 벗하라!'는 신의 계시나 다름없다. 

  내용에 대한 언급 없이 오로지 이렇게 추천의 말만으로 리뷰를 끝내는 경우는 전혀 없는 나인데 이것만은 예외로 해야겠다. 입은 근질근질하지만 무라노 미로 만큼 그저 읽고 어둠에 푹 잠겨, 느껴야 할만한 소설은 없는 것 같으니 억지로 입에 자물쇠를 채울 수 밖에.(하지만 이래놓고 못 참게되면 언제 여기로 다시 돌아와 마구 입을 놀리게 될 지 모르겠다. 어쩌면 '물의 잠 재의 꿈'에서 같이 얘기해버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장 그르니에 '섬'의 서문에서 알베르 까뮈가 했던 말을 그대로 여기에 인용하고 싶다 

  "나는 정말 부러워한다. 이 책을 이제 처음으로 펼쳐서 읽게 될 당신을!" 

   나 역시 알베르 까뮈와 똑같은 심정이다. 무라노 미로 시리즈를 1권 부터 차례대로 읽게될 당신을 너무도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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