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라트비아인 매그레 시리즈 1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뭐든 시리즈의 데뷔작이라면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것도 문학사에 있어 아주 뚜렷하고 거대한 족적을 남긴 시리즈의 데뷔작이라면 더욱 더! 그리고 만일 그 시리즈의 팬이라고 한다면 더!더! 더욱 그럴 것이다. 셜록 홈즈의 팬에겐 데뷔작인 '주홍색 연구'가 그럴테고, 엘큘 포와로의 팬에겐 데뷔작인 '스타일즈저택의 죽음'도 역시 기필코 보아야 할 작품이 될 것이다. 그건 아마도 팬으로서 전설의 시작을 확인하고픈 마음일수도 있겠고 처음의 시작이 어땠는지를 살펴 사랑하는 캐릭터가 시간에 걸쳐서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 그 역사를 확인하고픈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그와 똑같이 매그레의 팬임을 자처하는 나에게도 데뷔작 '수상한 라트비아인'은 당연히 기필코 보아야할 작품이다. 전설의 목격이자 역사의 확인으로서... 

   1929년 9월 네델란드 항구의 델프제일에서 '괴짜'를 뜻하는 그의 배 '오스트로고토호'가 수리되고 있는 동안 그 옆의 궤짝에 앉아있던 심농에게 불현듯 떠오른 어떤 환상에 의해 이 매그레 데뷔작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 세계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5억권 이상이나 팔려나갔다는 시리즈의 시작으로서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로 즉흥적인 창조이다. 그래서 혹 이 작품 역시도 즉흥적으로 창조된 작품들이 흔히 가지고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약점들 그러니까 개연성 없는 플롯, 평면적인 캐릭터, 우연의 남발, 억지스러운 해결등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안심하시길, 그런 약점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오히려 그렇게 쓰여졌기 때문인지 몰라도 문장은 마치 흔들리는 배에서 급하게 쓰여진 것 처럼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딱딱 던져줄 정도로 단순 명료하고 거기다 내처 신들린듯 써내려갔는지 전개도 먹이를 덮치기 직전 웅크렸더 덤벼드는 표범처럼 재빠르다. 그렇다고 구성이 빈약한 것도 아니다. 사실 매그레 시리즈를 과연 추리소설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나 자신은 반감이 매우 크지만 아무튼 추리소설이라는 통념을 받아들여 그 입장에 서서 판단해 보아도 소설의 동력이 되는 수수께끼는 빈틈없이 공정하게 잘 해결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추리소설로 보아도 꽤 성공적이라고 보여지며 지금으로 부터 70여년 전에 씌여졌다고는 그것도 그렇게 즉흥적으로 씌여졌다고는 도저히 믿지 못할 만큼 현대적이고 탄탄한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추리소설의 평가만으론 이 작품이 가진 진정한 매력을 말하기엔 턱없이 모자른다. 어차피 당신 역시 이 책을 읽게되면 나중에 남는 것은 추리소설로서의 재미가 아닐 것이다. 분명 추리소설로서의 지적 쾌감 같은 것은 결말에 가서 범인의 고백을 듣게 되면 그로부터 받는 묵직한 울림 때문에 더이상 신경쓰지도 않을테니까. 그래서 앞서도 말했듯이 나는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라 불리는데 저항감이 있고 사실 추리소설로서의 잣대는 이 소설에 있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뭣보다 이 소설에 있어 가장 압도적인 면모는 매그레를 매개로 심농이 그려내는 한 인간의 서글픈 초상이기 때문이다. 매그레를 통해 우리가 정말 보게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이다. 그건 심농 자신이 고백한 바 있다.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매그레를 통해 사건을 중심에 놓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한 인간을 그 중심에 놓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추적이라는 것도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은 그 인간이 왜 그런 짓을 했나?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그렇게 심농에게 중요한 것은 흔히 추리소설에서 묻는 '누가(WHO)'가 아니라 '왜(WHY)이며 여기에서 보자면 이 데뷔작은 그야말로 충실하게 거기에 대해 답변을 하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작품이 자신이 대답해야 할 질문을 '왜(WHY)'로 삼게 되면 액션은 줄어들고 관조적이 되기 쉬운데 그래도 이 작품은 데뷔작이라서 그런지 나중의 매그레 시리즈들 보다 훨씬 더 많이 액션이 넘쳐난다. 그래서 어쩌면 심농이 본격적으로 매그레적 세계를 완성하기 전의 그 과도기적 작품으로도 볼 수 있을 듯 하다. 거기다 이 작품의 테마라고나 할까? 아무튼 천착하고 있는 주제는 일종의 '정체성 바꾸기' 같은 것인데 사실 이것은 뒤이은 매그레 시리즈(바로 뒤이은 '갈레 홀로 죽다'도 여기의 변주라 할 만하다)나 별개의 작품에서도 자주 반복되는(독자적 작품으로는 33년에 나온 '런던에서 온 사나이'에서 아주 유사하게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2007년 벨라 타르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것으로 바로 이 소설 '수상한 라트비아인'에는 심농이 평생 꾸준히 천착해온 주제의 원형 같은 것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데뷔작에서 드러나는 심농 소설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이 겪는 정체성의 변화'이다. 이 작품이 태어난 연대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황금기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그 어떤 추리소설에서도 매그레가 보여주고 있는 것들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매그레가 드러내는 특징적 세계는 오로지 매그레 혼자만의 독보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추리소설의 대세를 거스르면서까지 심농은 그러한 특징들 -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 개인이 겪는 정체성의 변화 - 을 천착했던 것일까? 그것은 또다시 이 소설이 태어난 연대의 유럽의 정치상황을 살펴보면 어느정도 대답이 될 것 같다. 

   1920년대와 1930년대는 그야말로 유럽은 정치상황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1차대전의 휴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가운데 많은 이들이 어려운 경제적 형편으로 곤란을 겪었고 따라서 범죄가 급증했다. 그러한 힘든 경제사정 가운데  이데올로기적으로도 혼란한 상황이었다. 당시의 유럽은 크게 세 개의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충돌하고 있었다. 자유민주주의, 파시즘 그리고 사회주의 이렇게.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은 그대로 그 안에 살고 있는 개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그들 역시도 스스로 갈피를 종잡을 수 없는 형국이었다. 거기다 독일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점차 세력을 확장해가는 파시즘과 소련의 사회주의 독재화 과정속에서 동유럽과 러시아의 많은 유대인들과 사회주의에 내몰린 사람들이 중부와 남부 유렵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러한 대량 이주민의 유입은 당연하게도 원래 거주하고 있던 이들에게는 커다란 두려움을 야기시켰다. 말하자면 이 시대의 유럽인들은 내부적으론 이데올로기적 혼돈을 외부적으로 전혀 다른 이민족들에 대한 두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심농의 매그레가 보여주는 특징들은 이러한 상황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많은 이민자들의 유입, 그렇게 전혀 다른 곳 다른 시간을 살았던 낯선 자들의 대량 유입은 심농에게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고 거센 이데올로기적 혼란들은 심농에게 한 개인이 겪는 정체성의 변화에 주시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은 비단 심농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가사 크리스티 또한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한 작가였다. 세심하게 읽어본 이들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끊임없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타자에 대한 공포를 그리고 있음을 알 것이다. 특히나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작은 시골마을을 무대로 벌어지는 추리소설의 경우엔 더 명확하게 이러한 불안감이 드러나고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그 모든 작품들에서 끊임없이 러시아나 동유럽으로 부터 넘어온 이민자들을 그린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 의중을 알 수 없는 존재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러한 묘사는 특별히 아가사 크리스티가 보수적이거나 국수적이어서가 아니라 상황의 변화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누구네 집에 누구의 숟가락이 몇 개가 있는지 그렇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훤히 다 알았었는데(미스 마플의 작은 전원마을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추리 소설들은 늘 이것을 강조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이민자들이 흘러들어온 뒤 부터는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인들은 저마다 의혹을 지닌 존재로 때로는 깜짝놀랄만한 비밀을 가진 존재로 아가사 크리스티 앞에 나타난다. 그녀는 거기에 대한 혼란을 겪었고 두려움을 느꼈다. 바로 그런 반응이 그녀의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타자에 대한 관심은 두려움의 또다른 표현이었다. 하지만 심농의 경우는 아가사 크리스티와 달랐다. 바로 그 다른 점이 같은 것을 느꼈으면서도 아가사 크리스티의 경우엔 퍼즐러 식의 심리 추리소설로 심농의 경우엔 오히려 인간의 삶에 더욱 더 천착하는 추리소설로  다르게 나아가도록 했는지 모른다. 아가사 크리스티와는 다르게 심농은 그러한 낯선 타인의 삶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심농은 매그레를 통해 그들의 삶은 우리가 보고 들어야할 삶이며 결국엔 껴안고 가야 하는 삶임을 보여준다. 매그레의 깊은 연민의 시선들은 너와 나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통찰이며 아무리 서로가 다른 곳에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이해받지 못할 삶은 없다라는 선언이다. 이렇게 아가사 크리스티와 심농의 소설들이 완전히 다르게 걷게 된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아마도 아가사 크리스티는 미스 마플 처럼 오래도록 한 곳에 머물렀고 심농은 반대로 아주 많이 정처없이 유랑을 했기 때문은 아닌지 속 편하게 생각해 본다. 낯선 곳과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은 허물어뜨리는 경험을 가져다 주니까 말이다. 

   아마도 매그레가 나온 즉시 얻게된 커다란 성공 또한 이렇게 동시대의 유럽 사람들이 겪고 있던 타인에 대한 불안한 심리와 이데올로기적 충돌에 따른 정체성의 변화 같은 것을 잘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매그레가 펼쳐보이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에게서 자신과 조금 아니면 아주 많이 닮은 모습들을 보았을 것이며 그렇게 심농의 동정적인 시선 속에 오롯이 그려지는 범죄자의 삶을 보며 그들을 동정하였듯이 자신을 동정하고 또한 매그레가 범죄자에게 보여주는 연민을 통해 스스로 위로받았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매그레를 자신의 옆자리로 초대했던 것이리라. 아무튼 이렇게 앞서 나온 버즈북의 제목 그대로 매그레는 삶을 수사하고 삶 자체를 담는다. 때문에 범인 찾기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버리는 것이 훨씬 많고 또한 별 재미도 느끼지 못하리란 걸 미리 알려두어야겠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이 '여러분'을 부를 때 했던 그것. 그러니까 하나의 영혼을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 우리가 하는 것. 모든 선입관과 판단의 무장해제 그것이다. 매그레의 소설들은 깊은 밤과 불면의 새벽을 위한 소설이다. 그렇게 오로지 고독한 자기 대면의 시간 가운데서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루이스 세풀베다든 헤밍웨이든 한결같이 고독한 시간에 벗 삼기에 최고다라고 말하는 것에 정말 유념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 그렇게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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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와로 2011-05-29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르메스님이 오픈키드님이셨군요..! 물만두 추리소설 대회 1등이셨던..ㄷㄷㄷ
남다른 안목이 돋보이는 서평인 듯 합니다 ㅋ

에일로이 2011-06-04 02:42   좋아요 0 | URL
포와로님 반갑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서^ ^;
어느새 제 서재까지 찾아오셔서 글까지 남겨주시고
칭찬까지 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