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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성은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검은 계단'은 루이스 베이어드의 '미스터 티모시', '더 페일 블루 아이'에 이은 세번째 팩션이다. 세 소설 모두 19세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면서도 공간적 배경이 되는 나라는 다 다르다는 특색이 있다. '미스터 티모시'는 19세기의 영국을, '더 페일 블루 아이'는 19세기의 미국을 그리고 본 작품 '검은 계단'은 19세기의 프랑스를 각각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나라들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또 그렇게 그 시대 그 나라의 대표적 작가의 분위기를 강하게 띠고 있는데, '미스터 티모시'가 '디킨스'의 분위기를(이 소설의 주인공 티모시는 이제는 자라서 성인이 된, 바로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꼬마 팀이다.) '더 페일 블루 아이'가 '에드가 알란 포'의 분위기를(에드가 알란 포가 아예 직접 등장한다. 이 소설은 포의 짧았던 미 육군생도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띠고 있다고 한다면 이 소설 '검은 계단'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분위기를 강하게 띠고 있다고 하겠다.(이 소설의 설정은 뒤마의 '철가면'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 세 작품의 미국판 표지들 -
때문에 이런 생각도 든다. 혹 이 세 작품들은 어떤 개인적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나온 일련의 작품들이지 않을까 하는. 비슷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나라를 달리하여 각 나라마다 가장 대표적이라 할 만한 작가들의 분위기로 직조되는 이 소설들엔 분명 아무래도 어떤 작가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최근 발간된 후속작 '더 스쿨 오브 나이트'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그 소설은 현재의 미국에서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을 보는, 그렇게 두 세기의 서로 다른 얘기들이 겹쳐진 그런 소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렇게 보는 것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니까 '미스터 티모시'에서 '검은 계단'까지 루이스 베이어드는 19세기를 19세기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종의 '퍼스펙티브 프로젝트'를 끝내었고 '더 스쿨 오브 나이트'에선 이제 하나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려한다고.
만일 이 가정이 맞다면 왜 루이스 베이어드가 하필 19세기적 퍼스펙티브에 따라서 일련의 세 작품을 완성했는지 이유가 보다 분명해진다. 그것은 소설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대와 공간적 배경을 고려하면 보다 명확하다. 이 세 작품들은 모두 이른바 '근대'라는 것을 태동시켰던 가장 대표적인 움직임들의 휴유증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스터 티모시'는 영국의 산업혁명 '더 페일 블루 아이'는 남북전쟁 마지막으로 '검은계단'은 프랑스 대혁명의 휴유증을 다루는 것이다. 결국 베이어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이념들이 인간의 영혼들을 마구 유린하던 시절, 그렇게 커다란 정신적 격변기라 할 수 있는 것을 소설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 속 시간들은 언제나 그 격변기로 부터 수십년이 지난 다음이다. 그러니까 베이어드의 관심은 현재 진행중인 격변기가 아니라 그 격변기가 지나간 후 어떠한 것들이 남았는가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베이어드가 소설을 통해 집중하는 것은 그 격변기가 인간의 영혼에 남긴 흔적 혹은 상처 같은 것들이다. 때문에 베이어드는 이 흔적 혹은 상처를 제대로 파헤치기 위하여 그것들을 모두 한 인간에다 집약시킨다. 바로 소설 초반에 나타나는 시체들은 그러한 집약된 형태가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그것은 누군가의 눈에 밝혀져야 할 대상이 되어 상태와 상처가 관찰가능한 하나의 객체가 되고 나아가 추적을 발동시키는 단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대적 격변이 인간의 영혼에 남긴 생채기를 쫓고자 하는 베이어드의 의도는 결국 그의 소설들을 미스터리로 만들고 그의 눈은 검시관의 그것이 된다.
시체를 꼼꼼하게 검시하는 검시관... 이것은 베이어드가 그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형상화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예술가적 자의식이기도 하다. 때문에 베이어드의 팩션에는 늘 하나의 찬사가 따라 붙는다. 그것은 그 어떤 팩션들 보다도 아주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정확히 복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찬사는 그야말로 베이어드가 검시관이 조그만 증거도 놓치지 않으려 꼼꼼하게 시체를 검시하듯 그렇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형상화했기에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시대적 격변이 남긴 흔적과 상처를 쫓는 검시관의 시선과 검시를 하듯 세부까지 꼼꼼한 인물과 시대상황의 복원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베이어드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얼까? 우리는 그걸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미스터리가 해결되는 쾌락 때문인가? 아니면 처음으로 경찰 기구가 만들어지는(일례로 '검은 계단'의 비독은 아시다시피 프랑스 경시청을 만들게 한 장본인이다.) 특정 시점에 집중하여 경찰력으로 상징되는 국가 권력이 형성되는 것을 보여주려 함인가? 이것도 저것도 물론 답이 아니다. 베이어드가 결국 보여주려 하는 것은 그 시대적 격변기에 처한 한 인간의 윤리적 갈등과 선택이다. 시대적 격변기는 거세한 노도와 같아서 인간을 마구 휘몰아쳐간다. 다른 많은 이념들을 가지고 사람들은 저마다 그 격변기에 뛰어들지만 언제나 꿈은 배신으로 희롱되기 마련이고 신념은 현실과 타협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저마가 그 격변기의 흐름 앞에서 사람들은 윤리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을 맞는 것이다. 과연 인간은 그 거대한 파도 처럼 몰려오는 시대적 요구 앞에서 자신의 개인적 신념에 따른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베이어드가 작품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묻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 소설 '검은 계단'에서 루이 샤를의 존재 자체가 그러한 질문인 것이다.
'검은 계단'은 그렇게 미스터리를 넘어 궁극적으로는 독자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베이어드의 현실적이면서 풍부한 인물 묘사는 그 질문 앞에 선 개인의 고뇌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더하여 세밀하게 복원한 당시의 시대 상황은 현장성을 넘치게 해 슬그머니 독자 자신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하는 자리로 인도한다. 그 자리에 섰을 때, 과연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까? 지금 나는 그 무엇보다도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