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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인베이젼 - World Invasion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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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지구상에는 미국의 적이 없어서 그런지 최근 헐리우드 영화에서 다시금 예전의 50년대 처럼 외계인 침공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자주 눈에 띈다.
물론 이 영화 '월드 인베이젼'도 그러한 영화들 중 하나이다.
'월드 인베이젼'이란 제목과 외계인 침공이란 소재 때문에 2005년에 나왔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이 자주 연상되어 떠오른다. 제목과 소재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 두 영화는 그러나 참 다른 영화들이다. 물론 '월드 인베이젼'은 군인의 입장에서 '우주전쟁'은 민간인의 입장에서 다룬 영화들이긴 하지만 이 차이는 그러나 그리 본질적이지는 않다. 왜냐면 군인과 민간인이라는 신분적 차이만 있을 뿐, 사실 이 두 인물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두 인물은 모두 주류에서 밀려난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월드 인베이젼'의 주인공 낸츠 하사는 아프간에서 있었던 일로 젊은 병사들로 부터 고립되어 있다. 첫 장면에서 영화는 낸츠가 해변의 구보에서 나이 어린 병사들에게 자꾸 뒤처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 병사들은 그를 한물간 노땅으로 취급한다. 낸츠 하사도 자신이 이미 무력해졌음을 알고 퇴역하려 한다.
마찬가지로 '우주전쟁'의 주인공 역시 가족들로 부터 버림받은 신세다. 자기 멋대로이고 무책임한 성격 덕분에 그는 진작에 아내로 부터 이혼 당했고 아이들 마저 이미 재혼한 아내에게 다 빼앗겨버린 상태다. 정기적으로 자식들과 만나지만 자식들은 아무도 제대로 아버지로 대해주지 않는다. 그는 늘 소통하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아들로 부터의 냉담한 반응 뿐이다.
이렇게 둘은 사실상 비슷한 처지이다. 그런데 그들 앞에 갑자기 외계인이 침공해 오기 시작한다. 낸츠 상사는 하필이면 퇴역 하루 전날, '우주전쟁'에서는 하필이면 아이들을 맡게 된 날이다.
'하필이면'이다. 외계인은 왜 하필 그 때 침공해 오는가?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고 여기엔 침공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의미한다. 즉, 이 영화들에서 침공은 주인공들이 다시 진정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한 일종의 '계기의 촉발'이자 영웅에게 흔히 주어지는 시련 처럼 '통과의례'라는 것을 뜻한다. '통과의례'라는 것은 결국 영웅을 보다 더 영웅답게 만들어주기 위한 '연단'의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통과의례'는 겉으로는 시련이라는 외피를 둘러쓰고 있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영웅의 개인적인 욕망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영화에서 집단적 비극으로 겪는 전쟁은 주인공 개인의 차원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이뤄가는 과정으로 전이 된다. '월드 인베이젼'에서 낸츠 하사는 퇴물 취급이나 받는 노땅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만 병사가 우러러 보는 진정한 군인으로 거듭나고 '우주전쟁'에서는 전쟁을 경험하면서 가족들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진짜 아버지가 된다.
그런데 이 두 영화는 각기 현 시대의 미국이 처한 위기에서 촉발되어 나왔다. '월드 인베이젼'은 서브 프라임 사태 이후의 급속한 몰락과 점차 커지는 중국으로 인해 점점 그 패권적 위치를 잃어가는 현재의 미국에 대한 위기에서 비롯되었고 2005년에 개봉된 '우주전쟁'은 2004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2001년의 그 끔찍한 9/11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초래했던 부시가 다시 당선된 것에 대한 미국인들의 당혹과 충격, 그 정신적 공황에서 태어난 것이다.
두 영화 모두 미국이 겪고있는 위기로 부터 비롯되었지만 계기는 이렇게 달랐다. '월드 인베이젼'은 그 위기가 외부적이었고 '우주전쟁'은 내부적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월드 인베이젼'의 주인공은 신분이 군인이고 '우주전쟁'은 민간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앞서도 말했듯이 주인공들의 신분적 차이는 여기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각 영화들이 위기의 계기를 어디에서 상정하느냐에 따라 두 영화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는 데 있다.
헐리우드영화에서 전쟁을 소재로 할 경우 주제는 크게 잡아서 대략 두 개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하나는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 처럼 전쟁을 치뤘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적'인 영화들이고 다른 하나는 '람보' 같이 특히 패전한 전쟁의 기억을 불러와 그것을 영화를 통해 보복함으로서 미국이 굳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프로파간다'영화들이다.
[주) 프로파간다(propaganda)'라고 하며, '어떠한 사상을 강요하거나 주입하기 위한 목적의 선전, 교육 등의 활동 ]
그렇게, 오로지 위기의 계기를 외부적인 것에만 찾고 있는 '월드 인베이젼'은 프로파간다로의 길을 걷는다. 반면 내부적인 것에서 그 계기를 찾는 '우주전쟁'은 성찰적인 길을 걷는다.
'월드 인베이젼'에 대한 글이므로 거기에 국한시켜서 보려한다.
하면, 어째서 이 영화가 프로파간다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가?
여기에서 보자면 영화의 도입부 그러니까 주인공이 해변에서 구보하고 있는 장면은 정말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옆으로 패닝하면서 뛰어가는 일단의 군인들을 잡는다. 거기서 화면은 Zoom In 해 들어가 뒤처지는 주인공 낸츠 하사를 보여준다. 그는 나이 어린 병사들이 자기를 마구 앞질러가자 곤혹스러워한다. Zoom In 해 들어간 화면은 낸츠 하사를 앞질러가는 병사들을 보여준다. 거기엔 흑인 동양인 히스패닉계 등등으로 아주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다. 이 장면이 뜻하는 것은 명백하다. 그 인종 모두는 각각의 국가들을 뜻하며 그들이 하나 둘 미국을 앞질러 어느새 미국은 뒤쳐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낸츠는 한물간 퇴물 취급을 받는다. 이게 지금 모든 국가가 생각하는 현재 미국의 위치이기도 하다. 그의 고립은 바로 미국의 고립이다.
그런데 그런 낸츠의 자리가 확인된 순간 갑자기 외계인의 전면적인 공습을 받게 된다.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 때 퇴역 신청을 내고 물러나 있던 낸츠 하사는 다시 전장으로 투입될 것을 명 받는다. 여기서도 이 영화의 프로파간다적 의도가 명백하다. 영화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봐라! 미국이 뒤로 물러나 있으니까 이렇게 침공을 받지 않나. 너희들이 미국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았다면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았을텐데 말이야."하고... 더 경악스러운 것은 히스패닉 소대장이 낸츠 하사가 속한 소대를 이끌고, 각 대원들이 낸츠 하사 보다는 소대장을 더 믿고 따를 때 소대원들이 마구 죽어나간다는 사실이다.
세계의 전면 침공의 모습과 더불어 소대원들의 계속된 죽음은 낸츠 하사에게 제대로 된 권위를 인정해 주지 않은 탓 때문이라는 걸 영화는 그렇게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해서, 당연히 세상을 이렇게 만든 그 책임의 대표자로서 히스패닉계 소대장은 죽고 낸츠가 그 뒤를 이어받게 된다. 그 뒤 부터는 일사천리로 승리의 행진을 계속한다. 급기야 그는 구조한 한 가족의 아버지로 부터 아버지라는 자리마저 물러받음으로서 더욱 더 리더로서의 위치가 확고해진다. 군인들이야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있지만 그로부터 자유로운 민간인들마저 '아버지' 자리를 양도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그의 권위에 전적으로 복종하겠다는 암묵적 의사표시이기 때문이다.(아버지가 히스패닉계라는 설정은 왠지 현재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관계를 은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낸츠 하사가 완전히 확고한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자 마자 이제 더이상 외계인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다양다종한 인종들로 구성된 그야말로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할만한 소대는 이제 미국 낸츠 하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오로지 그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덕분에 모든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제 마구 학살당하는 것은 외계인들 뿐이다.
그 거대한 외계의 함선이 무너질 때 최종적으로 영화는 이렇게 선언하는 것 같다.
"보라! 미국을 중심으로 이렇게 뭉치니 세계는 결국 구원되지 않는가!"
따라서,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명백하다.
그들은 현재 미국의 위기를 온전히 남탓으로 여긴다. 그들이 미국을 믿지 않아서 그들이 미국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서 현재 미국의 위기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전세계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이 호소는 오로지 미국 국민들에게 향하고 있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BATTLE IN LA'이다. 가상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이렇게 미국의 고유 영토명이 나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이 영화는 바로 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임을 강조한다. 그것은 지금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위기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 전쟁의 원인이 바로 모든 나라들이 예전처럼 미국을 믿고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자국민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미국 국민들이 겪고 느끼고 있는 모든 위기는 모든 국가들이, 병사들이 그렇게 낸츠 하사를 믿고 따랐던 것 처럼 미국을 믿고 따라와 주기만 하면 깨끗이 해결될 것이라 설파한다. 그러니 자국민들이여 더욱 더 미국을 위해 뭉쳐라! 정말로 노골적인 프로파간다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럼, 같은 위기를 내부에서 찾았던 '우주전쟁'은 어째서 성찰적이라고 하는 것인가?
간단히 살펴본다. 낸츠 하사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도 역시 가족들로 부터 소외되고 아버지라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 영화는 바로 그 이유가 주인공 자신에게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초반부는 이 인물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못 믿을 인물인지 또한 아버지로서 모자라는지 보여준다. 그 뒤에 외계인의 침공이 일어난다. 외계인의 첫 공격 대상이 교회라는 건 참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부시의 재선에 결정적으로 공을 세웠던 세력이 기독교였기 때문이다. 그 영화에서 외계인들은 차례로 미국인들을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들었던 것을 부셔간다. 어느새 미국인들은 학살의 위기에 노출된다. 영화는 그 위기가 바로 아버지가 제대로 아버지가 되지 못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준다. 중반에 스필버그는 2차대전의 유태인 학살의 기억까지 가져옴으로서 그 아버지 답지 못함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주인공이 전쟁을 통해 겪는 여정은 그야말로 진정한 아버지가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가 드디어 진정한 아버지가 된 때 외계인은 느닷없이 종말을 맞이한다.
스필버그는 미국의 위기를 외부에서 찾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미국인들 자체에 그 위기의 원인이 있다고 영화를 통해서 말한다. 모두가 진정한 자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끔찍한 부시의 재선이 일어났다고 말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란 어떤 이해 타산에도 굴복하지 않고 미국의 건국 이념이 되었던 숭고한 정신적 원칙들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우주전쟁'의 가장 마지막 가족들이 진정으로 해후하는 장소가 '하필이면' 미국 건국의 중심 '보스턴'이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005년 스필버그는 이렇게 위기의 원인과 그 해답을 내부에서 찾았건만 2011년의 지금 미국은 어찌하여 남탓만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아마도 서브 프라임 이후 그 정신적 충격 탓으로 스필버그가 진단한 그대로 아직도 미국인들이 진정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프로파간다가 성행하는 것은 국민들이 정신적 공황을 느끼고 있을 때이다. 그렇게 지금 이 영화 '월드 인베이젼' 이 프로파간다로서 기능을 한다는 것은 현재 미국의 정신상태가 얼마나 위기에 처해 있는지 보여주는 징후라고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