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의 함정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9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지음, 지정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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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말코비치 되기'의 스파이크 존즈가 감독하고 역시 같은 영화의 각본가이자 '이터널 션사인'의 각본가로도 유명한 찰리 카우프만이 함께 만들었던 '어댑테이션' 이란 영화가 있다. 거기서 분명 찰리 카우프만 자신의 모습으로 보이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동생 니콜라스 케이지가 자신에게 기막힌 아이디어가 있다면서 형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단 이건 스릴러인데, 사건이 일어나면 형사가 범죄자를 쫓지. 그런데 결국 형사와 범죄자가 동일 인물이라는 게 밝혀져. 형사는 사실 자신을 고발하기 위해 쫓고 있었던 거지..." 라는.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슬그머니 그 초짜 시나리오 지망생인 동생에게 이렇게 비웃고 싶어진다. 

 "이봐요, 몽상가 양반. 꿈도 야무지시군. 겨우 그 정도를 가지고 아이디어라고 내밀다니. 당신보다 훨씬 이전에 한 프랑스 작가는 범죄자와 탐정 뿐만이 아니라 증인과 피해자 역할까지 모두 한 사람이 하는, 그야말로 1인 4역이라는 전무후무한 미스테리 소설을 이미 써 버렸단 말입니다." 하고. 

1인 4역? 

 범죄자와 형사 뿐만 아니라 증인과 피해자까지 모두 한 사람일 수 있는 게 과연 가능할까?  나도 처음엔 믿지 않았다. '뭔가 말도 안되는 트릭을 믿으라고 강요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가능했다. 별다른 트릭도 없었다. 흔해 빠진 기억상실증 그게 다였다. 그런데도 소설이 끝날 때까지 흥미진진. 도대체 결말이 어떻게 될 지 궁금해서 페이지 넘기기를 그만두기가 어려웠다. 이게 가능할까? 오로지 한 인물에만 집중해서, 오로지 플롯의 기교로 독자를 작품의 세계에 가둬두는 게 가능할까? 그런데 가능했다는 거다. 놀라웠다. 

 혹자는 '기억상실증' 이라는 아주 편리한 방법을 썼다고, 트릭이 너무 진부하다고 혹평을 하기도했다. 비판 받았던 대로다. 이 소설은 아주 전형적인 트릭을 쓴다. 하지만 아무리 망가진 붓이라도 오언 장승업의 손에 들어가면 걸작을 그려내듯이, 아무리 전형적이고 진부한 트릭이라도 작가가 어떻게 능수능란하게 플롯을 엮어가느냐에 따라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진부한 트릭이라는 것은 사실 이 소설에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뻔한 트릭을 가지고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플롯의 구성, 그리고 그것을 엮어내는 작가의 역량이 그것을 넘치도록 보완해주고 있기 때문에. 

 미스터리 소설에서 트릭은 중요하다. 아무래도 기발한 트릭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소설을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동력이 된다. 그럼, 미스터리 소설에 있어서 트릭과 플롯은 어떤 관계를 가지는 것일까? 

 '트릭'이라는 것은 데리다가 말한 일종의 PARERGON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PARERGON은 '장식'이란 의미로 데리다에 따르면 '작품'을 의미하는 ERGON에서 보자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론, 데리다는 장식을 부수적인 것으로 보는 서열의 매김이 본질 우위에 젖어있던 희랍 철학 이래의 부산물로 극복해야 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장식' 자체에 독자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렇게 미스터리 소설에서 만큼은, 트릭은 어디까지나 '장식적인 것'으로 아무래도 탄탄한 플롯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어딘가 밋밋하고 앙꼬 없는 붕어빵 처럼 심심해져 버릴게 분명하다. 물론 내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트릭은 역시, 장식이 그 바탕이 되는 작품과 온전히 조화를 이루어야만 그 빛을 발하는 것처럼, 그렇게 작품의 주요한 뼈대가 되는 플롯과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만 진정한 빛을 발할 수 있는 것 같다. 뭐, 이런 내 생각조차 데리다는 유기체적 사고의 독단에 빠져있어서 그런거라고 한 소리 하겠지만서두... 

 물론, 미스터리 소설은 탁월한 트릭이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트릭이 훌륭하면 플롯의 허술함이 어느정도 상쇄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물론 훌륭한 트릭도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트릭이라도 플롯의 허술함을 보완해 줄 수 없지않을까 싶다. 아니, 애초에 트릭이 '훌륭함'을 느끼려면 플롯이 탄탄히 바쳐주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트릭이 플롯에서 얼마나 적재적소에 있냐는 것이리라. 트릭이 자기 자리를 잘 차지하고 있을 때, 그렇게 장식이 작품에서 온전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양쪽 모두가 더욱 더 빛을 발하는 일종의 플레시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제 아무리 진부한 트릭이라도 플롯이 훌륭하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거꾸로라면 아무리 기발한 트릭도 허술한 플롯 탓에 원했던 효과를 독자에게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조금은 급작스럽게, 트릭과 플롯의 관계를 말하는 것은 당신이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기 위함이다. 당신이 만일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아니 창작의 열정은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왜 미스터리 장르물을 좋아하는가 혹은 매혹되는가?'에 대한 그 이유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면 당장 이 소설을 읽는 것이 좋다. 

 탁월한 플롯이 얼마나 작품을 놀랍게 만드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니까! 

 이 작품에 대해서는 단지 이 말을 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자프리조의 '신데렐라의 함정' 불어판 표지. 

 하지만 미안하게도 당신은 이 책의 탁월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것은 번역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동서 미스터리 문고는 70년대 발간되었던 그대로 지금 발간되고 있기 때문에 시간적 간격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차이로 인해 어색한 문장들이 많다. 거기다 일본어 중역이기 때문에 우리말 같지 않은 표현들이 이 소설의 매력을 맛보는 데 더욱 더 훼방을 놓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책 후반에 실린 자프리조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살인급행 침대열차'이다. 이 소설 역시 꽤 매력적인 소설이지만 '신데렐라의 함정' 보다 더 번역이 엉망인지라 그 매력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있다. 미스터리 소설에서는 특히 번역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장 상황을 제대로 독자가 알 수 있어야 나름의 범인 추적도 가능해지니까 말이다.  미스터리 소설이 여타 다른 장르 문학과 차별되는 점은 작품 스스로가 독자를 단지 지켜보는 관객이 아니라 마치 같이 경주라도 벌이려는 것 처럼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시키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것은 벨라스케스가 그림 '시녀들'에서 그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을 상정하고 그렸던 것과 같다. 

 그런데, 번역이 엉망이면 독자는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거기다 탐문과 심문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장르의 특성상 엉망인 번역은 독자들에게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결국 독자를 소설의 흐름에서 소외되도록 만든다. 그래서 결국 미스터리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만다. 독자가 적극적 참여자가 되기는 커녕 구경꾼 노릇 조차 제대로 못하고 마는 것이다. 이만큼, 미스터리 소설에서 번역은 정말 중요하다. 미스터리 장르를 일종의 스포츠로 인식하고 독자와 공정한 게임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작가 녹스는, 독자와 공정하게 게임하기 위해서 작가가 쓰면서 지켜야 할 10가지 규칙을 마련한 바 있는데, 아무래도 번역을 통해 미스터리 작품을 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은 여기에 한 가지 규칙을 더 집어넣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즉, '정확하고 올바른 번역이라야 독자와의 공정한 게임을 보장한다'고 말이다. 

  '살인급행 침대열차' 영화판 포스터. 

 이렇게 '살인급행 침대열차'는 영화(1965년작으로 감독은 무려 영화 'Z'로 유명한 코스타 가브라스 이다)까지 만들어질 만큼 평가가 좋았던 작품이지만 지금의 번역으로서는 그 매력을 느끼기가 아주 힘들다. 특히 후반의 범죄자와의 심문 부분은 많은 부분이 엉성해서 범죄자가 어떻게 그리고 무슨 이유로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 프랑스의 미스터리 소설들은 -조르주 심농이 대표적이지만 - 범죄자들 역시 투철한 개인적 신념을 그린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내는 경향이 있어서 캐릭터를 형성하는데 있어서도 꽤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소설의 범죄자 역시 심농의 그런 경향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역시나 제대로 의미조차 전달하지 못하는 번역 때문에 그 매력이 빛을 많이 잃고 말았다.

 모처럼 플롯의 정점에 있는 미스터리 소설을 만났는데, 번역 때문에 그걸 제대로 느낄 수 없다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발, 제대로 된 번역으로 다시 발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 리뷰는 그것을 호소하는 심정으로 쓰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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