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스 레인코트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전행선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로버트 크레이스의 1987년도 데뷔작 '몽키스 레인코트'를 읽었다.
 

 공간적 배경은 LA.
 레이먼드 챈들러와 제임스 엘로이가 사랑했던 그 곳.
 왜 사립탐정들은 죄다 서부에 거주하는 걸까?

 더쉴 해미트의 샘 스페이드 조차 샌프란시스코이니...
 어쩌면 누군가(자크 카보)가 말했던 그대로,
 정말 사립탐정 장르는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삼았던 웨스턴 장르 소설의 직계비속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적 배경은 1980년대의 미국. 

 때는 점차 레이거노믹스의 거품이 빠져가기 시작하고
 서서히 만성적 재정적자와 내수 불황으로 인한 경제적 공황이 사람들을 덮쳐오던 무렵이다.
 탄탄해 보이던 삶이 갑작스레 나락으로 추락하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심리적 공황을 느껴가던 그 시절.
 어쩐지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가 등장하던 무렵의 시대적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면, 이렇게 어려운 시절들이 그렇게 사립탐정을 부르는 것일까?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모럴'을 우직하게 밀고나가는 그런 영웅들을...
 과연, 블랙 먼데이가 일어났던 1987년은 또 하나의 사립탐정을 호출(CALL)한다.

 그의 이름은 엘비스 콜(COLE)!

 로버트 크레이스는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하이쿠를 통해
 엘비스 콜이 어떤 식으로 의미를 가지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초겨울 찬비
  원숭이도 도롱이를 쓰고 싶은 듯...

 초겨울의 찬비 같은 한파가 몰려오는 1980년대의 사람들에게
 크레이스는 엘비스 콜이 그들을 조금은 따스하게 덮어줄 수 있는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트, 엘런 랭은 모두 초겨울 찬비를 맞고 있는 사람들이다.
 엘비스 콜은 의뢰에 따라 수사를 하지만 정작 그를 움직이는 것은 돈도 아니고 정의감도 아니며
 진실에 대한 추구도 아니다.
 엘비스 콜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일종의 연민이다.
 118 페이지의 아이의 말을 통해 듣는 밤에 홀로 자신의 사진첩을 보면서 우는 모트의 모습은
 묘하게 가슴을 울리는 장면이다. 엘비스 콜도 늘 그 생각을 한다.
 그렇게 우는 모습을 들킨 아이에게 자신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이게 다 무슨 사진인지 하나도 모르겠구나"
 하고 말하던 그의 모습을... 그렇게 자신의 잃어버린 삶을 바라보며 울고 있을 모트의 모습을... 
 그리고 그는 나즈막히 읊조린다.

 "토토, 여기는 더이상 캔자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p. 167)"
( 이 소설에서 최고의 문장을 뽑으라면 이걸 뽑겠다.)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은 챈들러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 소설의 구도는 결국 챈들러의 소설처럼, 어떤 것을 추적하지만 결국 밝혀낸 것은
 그것이 변질되고 말았다는 확인 뿐이라는 것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말 한 바 있다.
 이건 정말 레이먼드 챈들러와 역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로스 맥도널드로
 계승되는 사립탐정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결국 사립탐정의 '수사'란 '진실의 획득'이 아니라 '변화의 관찰'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소설 내내 단서와 탐문이 이어지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크레이스의 엘비스 콜 또한 여기저기 흩어진 단서를 쫓고 탐문을 하다가
 결국 남부러울 것 없었던 모트와 엘런 랭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벼랑끝으로 내몰리게 되었나 그 변화를 목도하게 된다.

하지만 크레이스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비록 그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적자이긴 하지만(사실 이 소설에서 모트와 엘런 랭의 고향이
캔자스로 설정된 것은 그가 가장 처음 읽었고 감명받았다고 하는 챈들러의 '리틀 시스터'의 오마쥬임이 분명하다.) 

그는 엘비스 콜을 그냥 거리를 두는 관찰자로 남겨두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엘비스 콜이 자신이 느끼는 연민을 통해 뭔가 하기를 원한다.
말 그대로 진짜 위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몽키스 레인코트'가 되기를...
 
때문에 크레이스는 엘비스 콜을 감성이 풍부한,
시종일관 타인에게 시시껄렁한 간섭일지라도 하지 못하고는 못배기는
뭐랄까 인간적인 면모? 그런 것을 많이 부여하고 있다.
아마도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가 험프리 보가트 특유의 '포커 페이스'가 잘 어울린다면
크레이스의 엘비스 콜은 표지에 나온 그대로 엄지를 치켜들고 짓는 익살스런 표정이
잘 어울리는 탐정이라 하겠다.

크레이스의 이 데뷔작은 비록 챈들러의 아우라가 많이 느껴지긴 하지만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어디인지 알고 있고 또 그곳을 향해 뚝심있게 걸어가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 번쯤 읽고 그의 걸음에 동참해 볼만한 좋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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