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 - The Yellow Se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황해'를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자리 운이 없어서 앞에서 보는 바람에 두시간 넘게 길게 목을 빼고 보느라
아직도 목이 살살 아파오네요.


아무튼, '황해'란 바로 서해를 말합니다. 그 서해를 중국은 황해라 부르는데 국제에서 통용되는 이름은 바로 이 이름이죠. 주인공은 '구남(하정우)'이라고 연변에 사는 조선족. 그는 한국에 돈 벌러간 아내에게서 오래도록 소식이 없자 그 아내를 찾기 위해 거액의 수수료를 빚까지 얻어가며 노력했지만 결국 찾지는 못하고 그만 거액의 빚더미에 깔려 벌어들이는 몇 푼 안되는 돈을 족족 양아치들에게 상납해야 할 처지에 있습니다. 그것을 한 방에 해결하고자 늘 마작판을 기웃거리지만 그나마도 있는 돈을 다 털릴 뿐입니다.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인 것이죠. 그런 그에게 같은 조선족 면가(김윤식)가 한국에 가서 사람 하나 죽이고 오면 그 빚을 탕감해 주겠다면서 한국으로 가서 아내도 찾고 해서 새출발하라고 제안을 해 옵니다. 아무데서도 탈출구를 찾지못했던 구남은 결국 면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한국으로 밀항, 자신의 타켓을 처리할 방법을 강구하면서 틈틈히 아내도 찾아나섭니다.

 



 

 줄거리 소개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간략하게 소개된 줄거리에서도 드러났듯이 여기서 황해란 바로 파라다이스로 가는 통로를 의미합니다. 구남은 새로운 희망의 빛을 찾아서 거기를 건넜죠.
그런데 황해를 건너 찾아온 바로 이 곳은 과연 그에게 파라다이스였을까요?
흥미롭게도 영화의 처음 부분에 구남의 나래이션이 나옵니다. 그건 구남이 어릴 때 보았던 광견병에 걸린 개에 대한 추억입니다. 그 개는 광견병에 걸린 나머지 자기가 물 수 있는 모든 것을 죽였고 그래서 동네 사람들에게 쫓겼지만 결국은 잡히지 않았는데 어느날 자신 앞에 홀연히 나타나더니 죽었다고... 그리고 그 개가 죽고난 뒤 광견병이 마을 전체를 휩쓸었다고...

 이 나래이션은 그야말로 황해의 모든 이야기를 집약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얘기했던 개처럼 구남은 그렇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찾아 건너온 이 곳에서 마구 쫓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듯이 한국은 파라다이스가 아니니까요.

물론 이것은 적나라한 현실이지만, 나홍진 감독의 전작과도 어느정도 연속성이 있습니다. '추격자'의 결론에서 이어지는 부분이니까요. '추격자'는 결국 무슨 얘기였을까요? 그것은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한국에 다시 예수가 재림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재림한 예수는 처음에 내려온 예수와는 많이 달랐죠. 네, 그 예수가 바로 하정우가 분한 살인마였습니다. 그렇게 밤으로 가득한 한국이란 사회에 다시 내려온 예수는 살인으로 복음을 전하고 시체로서 신도를 삼고 스스로 죽음의 겟세마네 동산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내려온 예수가 유다에게 결국은 죽음을 당하듯, 새로운 교리를 따르지 않는 신도, 처음에 내려온 예수가 설파한 '사랑'을 믿는 신도에게 죽임을 당하는 거죠. 유다도 사실 처음 예수 이전의 유대교 교리를 충실히 따랐던 바리새파였으니까요. 결말에서 살인마 하정우가 괜히 옆구리에 찔리는 게 아니죠. 그게 바로 김윤식이 가하는 룽기누스의 창이었습니다. 아무튼 제가 '추격자'를 보고 놀랐던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절망의 깊이도 느낄 수 있었죠. 어쩌면 이 감독이 죽이되든 밥이되든 이 한 편으로 모든 걸 폭발시켜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어쨌든 나홍진 감독은 지금의 이 한국을 도저히 믿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전혀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살인마 예수가 종말을 불러와야 할 만큼 이 나라는 오로지 어둠 뿐입니다. 그건 오히려 역설적으로 환한 대낮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하정우에게 살해당하는 서영희에서 완성되죠. 그렇게 이 나라는 살인마 하정우에 의해서 멸망해야할 정당성을 갖게 됩니다. '추격자'의 결말은 조금 희망차 보여도 그건 그냥 속절없는 희망일 뿐입니다. 도시에 거대하게 내려앉은 어둠으로 영화 '추격자'는 끝이 나니까요. 

 그렇게 조금의 구원도 없는 세상... 이 지금 황해를 건너온 자들이 목도하는 세계입니다.
이번 영화에서 한국은 그래서 완전히 협잡과 배신 그리고 야수들이 활개치는 땅이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익히 새겨두었던 한국의 근대적 모습은 잘 나오지 않습니다. 나홍진은 마치 그동안의 발달을 생략해버린 듯이 찍었습니다. 연변과 한국이 그리 다르지 않고 70년대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이 다르지 않습니다. 영원히 문명적 성숙이 배제된 세계...
도처에 널린 빈집이며 폐허들... 도끼질과 칼부림이 가득한 세상...
그렇게 구남의 나래이션 대로 광견병이 모조리 휩쓸고 있는 세상...
두 시간 넘는 러닝타임 내내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마치, '네가 살고 있는 한국이란 곳이 얼마나 처참한 곳인지 두 눈 뜨고 똑바로 보라구!'하는 것 같습니다.
 

- 세세한 분석은 아무래도 보지 못한 분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하지 못하겠네요. 그냥 영화를 본 전체적인 감상만 이렇게 적어두어 봅니다. -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아마도 제작기일에 쫓긴듯 시나리오를 충실히 숙성시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후반의 헐거워지는 부분을 액션으로 땜질하는 듯한 느낌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여주는 액션 장면들이 나무랄데 없었으니(우, 정말 도끼질과 칼부림은 리얼했어요. 김윤식이 정말 후덜덜하게 나오더군요.) 어느정도 보상이 되기는 하는데 그래도 폭발력이 없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때문에 하정우의 후반이 이상해졌습니다. 정작 주인공이 이렇다 할 클라이막스없이 조금은 맥없게 결말을 맞게되는 것 같군요.

 하정우와 김윤식 두 분 모두 연기가 기본 이상이 되시는 분들인지라 당연히 아주 실감나게 연기를 하셨는데 정말 장면 장면을 보니 고생을 참 많이 했겠더군요. 더구나 하정우씨는 그 추운 겨울산의 정상까지 오르고....

 

  개인적으로 눈에 띄었던 분은 바로 이 분! 조성하씨인데... 하정우 김윤식과 트로이카가 될 만큼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 눈여겨 봐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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