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레이지 - Outrag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아웃레이지를 보면서 떠오른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조직과 인간' 

이것은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의 오렌지'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간되어졌을 때 붙여진 제목이었습니다. 아마도 스탠리 큐브릭의 동명 영화가 상영금지되었기 때문에 같은 제목을 붙일 수 없어서 그런 제목을 붙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정말 이 말 만큼 이 영화의 핵심을 보여주는 말은 없다고 생각되더군요.

처음 영화는 이제 부터 이야기의 중심이 될 야쿠자 조직이 얼마나 강고한 조직인가 부터 보여줍니다. 그것도 부하 - 중간 보스 - 최고 보스 이렇게 계급을 구분해서 차례 차례 말이죠. 

이것은 서열이 확실한 조직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서열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지극히 계산적으로 화면속의 담는 공간을 차차 줄여나갑니다. 부하들이 있는 텅 빈 공간에서
중간 보스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장면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것은 바로 최고 권력자 보스 한
사람의 클로즈 업... 이렇게 말이죠. 이것은 관객에게 지금 이 조직의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가
를 자연스럽게 알려주기 위함이죠. 

뒤이어 열을 지어 도로를 다니는 벤츠의 행렬은 바로 그 조직의 강고함을 더욱 더 강조하기
위한 것이고 그렇게 한 대의 벤츠가 화면에 꽉 차 있을 때 '아웃레이지'란 제목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뒤이어 보스의 근심 - 중간보스 하나가 자신의 조직에 속하지 않는 보스와 어울려서 걱정이라고 오른팔에게 말하는 장면 - 이 나옵니다. 오른팔은 그 둘이 의형제라서 그런가보다고 대답하죠. 

관객에게 견고한 조직을 먼저 보여주었던 것이 바로 이 배신의 정도가 어느정도 의미가 있는가를 알려주기 위해서였다는 게 드러나는 순간, 거기에 또 의형제라는 게 끼어들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아주 익숙한 장르적 컨벤션을 발견하게되고 때문에 이 영화가 좀 진부한 주제를 다루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되죠.

아무튼, 마치 댓구를 이루듯 강고한 '조직'과 '배신, 의형제'라는 아주 인간적인 동기들이
나란히 등장하게 되는데 다케시는 바로 뒤이어 보스의 말을 통해 이 둘이 어떤 관계임을
바로 보여줍니다. 보스는 이렇게 말하죠. "아무리 의형제라도 조직을 위해선 용납할 수 없다."고 바로 여기서 이 둘의 관계가 상호 대치적인 관계, 그러니까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배제시키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게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기타노 다케시는 조직과 인간의 이러한 상호 대치적인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구조적으로 장면들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한 장면 한 장면 무심하게 지나가는 듯 하면서도 은밀하게 배여든 계산은 바로 이 조직과 인간의 대립 관계가 이 영화의 핵심적 테마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는 이렇게 통제하려는 조직과 어떻게든 그 조직을 뚫고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인간의 대립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너무도 익히 보아왔던 장르적컨벤션에 불과합니다. 진부한 이야기의 지루한 동어 반복에 불과한 이야기에 이토록 기타노 다케시가 공을 들였단 말인가 하고 의아해질 무렵 바로 여기서 다케시의 장르적 비틈이 일어납니다.

종종 익숙한 장르적 컨벤션에서 배신은 의형제라는 보다 더 고귀한 도덕적 가치로 인해 관객에게 정당화되곤 했었죠. 하지만 아웃레이지에서는 다릅니다. 다케시는 의형제를 순진하게 믿었던 관객들을 비웃습니다. 그렇게 의형제라는 게 사실은  그 중간 보스가 이익을 모두 가로채기 위해 상대편을 이용하기 위한 가장에 지나지 않았고 앞서 나왔던 조직의 안위를 염려했던 보스 역시도 사실은 그 중간보스의 수입을 가로채려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줌으로서 말이죠.

여기에서 우리는 다케시의 냉소를 봅니다.

그리고 그 냉소와 더불어 이렇게 말합니다.
'조직이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기 위해 내세우는 '조직의 논리'라는 것이 사실은 '그 조직의 최고 위치에 있는 자' 개인의 이익 추구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종종 타인의 협력을 구하거나 이용하기 위해 내세우는 일종의 휴머니즘적 논리도 사실은 자신의 주머니를 보다 배불리기 위한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언급해야 할 것은,
기타노 다케시의 냉소가 이제는 세상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가 다케시의 새로운 한걸음을 위한 전환점이진 않을까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사실 보다보면 '소나티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고 보스가 중간 보스의 영업권을 차지하기 위해 죽음으로 내몬다는 내용은 바로 소나티네와 똑같죠. 그 밖에도 많은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는 소나티네의 변주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유희'의 장면은 완전히 배제되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이미 '키쿠지로의 여름'에서 변주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곁가지로 말합니다만, 소나티네는 그 이후의 모든 작품, 그러니까 '브라더'까지 이어지는 모든 작품의 일종의 원형이 되는 작품으로 저에겐 여겨집니다. (물론 소나티네는 3X4-10월 에서 나왔습니다만...)

그런데 이 영화(아웃레이지) 이전의 작품들은 모두 개인의 내면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뭐랄까 '도대체 이 삶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 할까요.
영화가 자주 선택의 기로에 선 다케시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이유도 아마 그런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 '아웃레이지'에서는 그 질문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정말 얼마나 막되먹은 세상인가!'하는 새삼스러운 회한이 있습니다. 다케시가 영화에서 자주 장르적 컨벤션을 비틀어 보여주는 것도 그만큼 달라진 세상에 대해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의형제가 사실은 협잡이고 조직의 안위를 걱정하는 보스는 사실 자기 배 채울 일 밖에 생각하지 않고 손가락을 갖다 바치는 사죄는 조롱에 지나지 않고 윗분들 모르게 커미션을 떼먹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렇게 말이죠...


빙 돌아왔습니다만, 다시 본 얘기로 돌아가서...
이 영화의 핵심은 조직과 인간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애초부터 조직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단지 개인의 이익 추구를 가리기 위한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한 아프리카 국가의 '대사관'이 '비밀 카지노'로 운영되는 이야기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죠. 사실 대사관 에피소드는 영화에 그렇게 필요불가결한 부분이 아닙니다. 아마도 분명히 다케시는 영화의 주제를 위해 일부러 대사관을 넣었을 것입니다. 대사관으로 상징되는 국가라는 외피속에 있는 것이 바로 '카지노'라는 지극히 개인의 이익 추구의 장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아프리카의 대사가 개인적인 이익 추구에만 전념했던 중간 보스를 삽으로 파묻는 장면은
아마도 다케시가 '조직의 이익' 운운하는 자들에게 보내는 가장 뼈있는 냉소일 것입니다.
다케시의 진언대로 조직 자체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합니다.
있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이익 추구 뿐이지요.
 
하지만 순진하게 '조직의 이익'이라는 거짓말에 속는 어리석은 이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무라'와 그 부하들, 그리고 '다케시'와 그 부하들 입니다. 그들이 모두 죽는 것은 바로 이 거짓말에 속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무라는 살아남습니다만,) 그들이 처벌받은 것이 오로지 조직의 이념 같은 것을 순진하게 믿고 따랐기 때문이란 건 변함이 없습니다.

여기서 '조직의 이념'이란 '것은 보스에 대한 충성', '의리' 같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사실은 보스의 이익 추구에 자발적으로 헌신토록 만드려는 도구 같은 것이죠.
'기무라와 그 부하들'과 '다케시와 그 부하들'의 유사성은 기무라 부하 하나가 달아나다 기차안에서 죽는 장면이 다케시의 부하 '미즈노'의 죽는 장면으로 반복된다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모두 죽기전에 내연의 여자를 찾았고, 가는 도중에 살해되죠. 다케시는 이걸 일부러 반복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걸 반복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그 둘이 사실은 동일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죠. 이 때문에 결말 부분 다케시는 바로 기무라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결국 순진하게 믿었던 이들은 모두 죽고 오로지 약삭빠른 놈만 살아남습니다.
조직의 이익이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은 모조리 버리고 오로지 개인적 이익 추구에만 전념했던 사람들만 말이죠. 세상은 이제 그런 사람들만 살아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그런 그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것으로 끝이나죠.

'아웃레이지'는 세상으로 향한 다케시의 첫 시선으로 보여집니다.
그 시선 속에서 그는 차가운 웃음을 짓습니다. 허탈한 체념이 짙게 배인 그런 웃음을 말이죠.
그는 이 영화에 그 시선 속에 들어온 세상의 참모습을 담고자 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꾸며도 가득한 것은 오로지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 뿐이라는 그런 진실을 말이죠...

듣기에 2부가 또 나온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세상의 현상태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이 영화로도 충분합니다. 그럼 그 뒤의 얘기는 무엇일까요? 혹시 그런 세상을 모조리 깨부수는 어떤 상상적 복수는 아닐까 감히 추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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