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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버드, 블루버드
애티카 로크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월
평점 :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의 텍사스. 거기서 흑인 대런은 텍사스 레인저로 일하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란 쉽게 말하면 텍사스 주의 FBI라 할 만하다. 현재 그의 삶은 내딛는 곳마다 진창인 상황이다. 가정에 대해서라면 아내 리사와의 관계가 좋지 않고 일에 대해서라면 한 흑인이 자신의 주거를 침입했다는 이유로 백인을 쏘아 죽였는데 대런이 그 흑인을 비호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 정직을 당했다. 그러다 친구인 FBI 그렉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텍사스 주 라크에서 일어난 두 명의 살인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해 달라는 것이다. 한 명은 흑인 남성이고 다른 한 명은 백인 여성이다. 라크는 인구가 178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라, 갑자기 살인이 두 번이나 연이어 일어난 것이 아무래도 사건들 사이에 뭔가 연관 관계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대런은 텍사스는 자신의 고향이지만 여전히 여기서는 흑인 보다 백인의 살인 사건을 중시한다는 걸 알기에 자신이라도 나서서 흑인 살인 사건을 조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렉의 제안을 수락한다.
에드거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 CWA 스틸 대거 상과 앤서니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애티카 로크의 '블루버드, 블루버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제목의 블루버드는 미국의 블루스 가수인 존 리 후커가 발표한 노래에서 따온 것으로 한 편으론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대런을 상징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살해당한 흑인 마이크 라이트를 찾아 라크 마을에 온 아내 랜디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두 인물이 소설의 주역이 되는데, 그들은 함께 하면서 살인 사건들에 얽힌 진실과 그 와중에 받게 되는 아픔을 나눠 나간다. 작가가 이 둘을 하나의 관계로 묶는 것은 아마도 같이 부부 관계의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런도 아내 리사와 거의 결별 직전까지 가 있지만 랜디 역시 죽은 남편과 이혼의 위기까지 다다라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런은 아내가 떠날 것을 알면서도 텍사스 레인저를 그만둘 수 없고 랜디 또한 왜 남편이 여기까지 와서 살해당했는지 알기 전까진 라크를 떠날 수 없다. 이건 그대로 왜 대런 같은 흑인들이 얼마든지 텍사스를 떠나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인종차별이 심한 텍사스를 떠나지 않는 것인 지에 대한 이유와 그대로 이어진다. 거기에 대런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다.
'텍사스는 고향이니까요.'
내가 읽은 '블루버드, 블루버드'는 인종차별이 여전한 미국 현실에 대한 비판임과 동시에 쉽사리 끊을 수 없는 관계의 딜레마를 뭉근하게 보여주는 스릴러였다. 그건 라크에서 유일하게 흑인이 출입할 수 있는 선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제니퍼를 둘러싼 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니퍼에게 얽힌 과거, 갑자기 제니퍼와 시작된 사랑 때문에 헌신했던 음악 밴드를 떠나 그녀의 곁에 정착하고야 말았던 조, 그리고 죽기 직전에서야 밴드를 홀연이 떠나버렸던 그를 용서한 삼촌의 뜻에 따라 그의 기타를 돌려주기 위해 라크로 찾아온 죽은 마이크 라이트 하며. 이것은 떠난 자와 남은 자의 이야기 임과 동시에 떠날 수 없는 자들이 그것을 숙명의 하나로 받아들인다면 현재의 관계를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소설이 문제로 삼고 있는 인종차별 역시 후자와 관계가 있다. 그러니까 결국 미국이라는 곳을 백인과 흑인 둘 다 떠날 수 없다면 소설에 등장했던 허다한 죽음과 같은 커다란 비극을 양산하기 전에 전과 같은 차별과 적대의 시선은 거두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애티카 로크의 '블랙버드, 블랙버드'는 놀랍도록 세밀하고 생생한 등장인물들과 사회의 묘사를 통해 은근히 거기에 대한 사유로 이끈다. 그렇다고 재미 보다 깊이가 더 뛰어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 깊이 천착하게도 만들지만 전개될 수록 밝혀지는 사실들 때문에 확실히 후반으로 갈수록 읽는 속도가 붙는, 스릴러적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이렇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기 때문에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릴러적 재미도 살아 있고 현재 미국 남부 사회의 현실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소설을 아무래도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