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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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미국을 뜨겁게 달궜던 'Black Lives Matter'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여전히 활발한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 사람들이 알도록 하였다. 특히 그 시위는 과거의 사건을 다시금 기억하게 만들었는데, 그건 1992년에 6일 동안 벌어졌던 'LA 폭동'이다. 흑인 로드니 킹을 경찰 여럿이 집단 구타한 것에서 촉발된 그 폭동은 LA 전역을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이것은 그대로 인종차별이 미국 사회를 쉽게 붕괴시킬 수 있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걸 너무나 잘 보여주었지만 적어도 지금의 미국 사회 모습을 보자면 아직도 그들은 그 사건에서 아무런 교휸을 배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LA 폭동'을 충분히 되새겨보지 못했기에 그런 것일수도 있다.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무엇을 남겼고 또 그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선 무슨 일을 해야할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성찰하지 않아서 말이다. 그렇다면 소설을 통해 과거의 그 때로 다시 한 번 돌아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침 그런 기회를 가져다 준 작품을 하나 만났다. 제목은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제목부터 뭔가 오싹한 기운이 풍겨오는 이 소설은 놀랍게도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스릴러 소설이다. 작가의 이름은 스테프 차.




 현재 LA에 거주하고 있는 이 작가는 그곳을 배경으로 한국계 미국인 사립탐정 주니퍼 송이 활약하는 작품으로 2013년에 데뷔했으며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2015년까지 주니퍼 송 시리즈 3부작을 완료한 그녀가 2019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LA 폭동이 일어나기 1년 전에 같은 도시에서 발생한 '라타샤 할린스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무려 29년이 지난 뒤 다시 한 번 서로 얽혀드는  상황을 통해 증오와 용서의 상관 관계를 그려나간다. 라타샤 할린스 사건은 일명 두순자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건 15세의 라타샤 할린스를 총으로 쏘아 죽인 사람이 바로 한인 두순자였기 때문이다. 라타샤는 두순자가 운영하는 가게에 우유를 사러 왔다가 절도를 의심한 두순자에 붙잡혔고 억울하게 도둑 누명을 쓴 것에 격분하여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두순자를 네 차례 가격했다. 그리고 쓰러진 두순자를 내버려두고 가게를 나가려다 뒤에서 두순자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이것은 그렇지 않아도 평소 자신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한인에게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흑인들(이것은 스파이크 리가 89년에 발표한 영화 '똑바로 살아라'에도 묘사되고 있다.)에게 대대적인 분노의 불길을 일으켰고 결국 LA 폭동 때 한인 가게들이 대거 약탈당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스테프 차는 그 고통스런 기억을 다시 불러온다. 두 인물을 매개로 하여. 하나는 흑인 숀이고 다른 하나는 한인 그레이스다. 숀에겐 빛과도 같았던 누나가 있었다. 이름은 에이바. 피아노를 너무나 잘 치고 활달하며 자주적인 그녀는 소극적인 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런 누나는 사촌 레이 대신 우유를 사러 한인 가게에 들렀다가 한인 여자가 쏜 총에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맞다. 에이바가 바로 라타샤인 것이다. 소설은 29년 뒤의 시간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2019년의 LA도 91년의 LA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을 보여주듯 에이바와 비슷한 나이의 평범한 고등학생 흑인 알폰소 쿠리얼이 그것도 자기 집 뒷마당에서 경찰에게 총을 맞아 숨진 것이다. 그저 현관문 열쇠가 없어 뒷문으로 들어가려던 것 뿐인데 범죄자로 오인 받아 사살당한 것이다. 에이바가 살해당한 상황과 똑같이.


 그렇지 않아도 알폰소 쿠리얼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경찰에게 책임을 묻는 시위에 나온 사람들은 91년에 죽은 에이바의 이름을 외친다. 그들은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그 후로도 계속 그녀와 똑같은 억울한 죽음들이 이어져 왔으므로. 그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일까? 그 시위 현장에 같이 동참했었던 한인 그레이스의 엄마 이본이 장을 보러 나왔다가 그레이스가 보는 앞에서 한 괴한에게 총격을 당한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생명은 여전히 위험한 상황. 이 사건으로 그레이스는 엄마 과거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건 바로 에이바를 쏴 죽인 한인 여자가 자기 엄마라는 사실. 경찰은 29년 전 사건의 보복이라고 생각하고 용의자를 찾아 나선다.



 [스테프 차의 모습과 미국 원서 표지]



 에이바의 죽음으로 한 때 많이 방황하며 갱의 일원이 되어 범죄에 손을 대기도 했던 숀.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생겨 지금은 정신차리고 간신히 얻은 가정을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평범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의 일상이 이본에 대한 저격으로 위협받게 되었다. 경찰이 의심의 눈초리를 자신과 가족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얼마 전 감옥에서 출소한 사촌 레이가 문제였다. 자신과 달리 레이는 여전히 마음을 잡지 못하고 범법과 합법 사이에서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겐 아내와 아들 대릴, 딸 다샤도 있었지만 감옥에 있는 동안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것으로 인한 위축된 자존감 때문에 불안하게 흔들린다. 숀은 이본이 에이바를 죽인 바로 그 여자이며 최근 총에 맞았다는 걸 듣자마자 혹시 레이가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피해자는 어느덧 가해자가 되었고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었다. 이런 자리바꿈은 흥미롭긴 해도 사실 좀 위험한 설정이긴 하다. 제대로 묘사하지 않으면 독자에게 꽤 작위적이란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설득력 있는 전개로 그런 위험에서 벗어났다.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고 납득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제 역할도 잊지 않는다. 과연 이본을 쏜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은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반전도 마련되어 있다. 거기다 그 반전은 작가가 소설을 통해 주려 하는 메세지와 상승 작용을 일으키도록 연출되어 있다. 아무래도 실제 사건을 모델로 했기 때문인지 작가가 공을 들인 게 역력해 보인다. LA 특유의 분위기는 물론 주요 캐릭터의 묘사도 좋고 이야기 흐름도 유려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러는 가운데 작가는 차별은 어느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라는 걸 슬쩍 내세운다. 차별은 어떤 인종이든, 계급이든, 국적이든 행해질 수 있다고. 타인을 불신하게 만드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면 말이다. 그레이스가 한 유투버 기자가 쳐 놓은 함정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흑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드러내버렸던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지 않아도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어떤 행위를 선택할 때 이성적 판단 보다 자기 내부에  알게 모르게 형성된 편견이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 바 있다. 무관심과 무책임한 증오 속에 축적된 편견이 언젠가는 우리 모두를 불살라버릴 성냥개비가 되는 것이다. 그런 것에서 벗어나 상대방이 가진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보려고 하는 것. 파멸의 화염을 막는 소방수의 물줄기는 거기에서 분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레이스가 대릴의 손을 맞잡고 자신의 엄마에 대해 알려주는 장면처럼. 이러한 노력들이 현재도 여전히 인종차별의 형태로 횡행하고 있는 적개심의 바다를 가르는 기적이라는 것을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몰입감 넘치는 이야기로 선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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