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신실재론은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생겨난 철학의 새로운 사조이다. 

사실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로 철학의 영토에 있어서 주목할만한 신선한 흐름은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6년, 퀑탱 메이야수가 '유한성 이후'란 책을 발표했고 그걸 시작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인해 더욱 부각된 실재와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에 대해 반발하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걸 사람들은 '사변적 실재론'이라 불렀다. 이후, 퀑탱 메이야수가 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마우리치오 페라리스와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실재론적 복권의 시도가 있었으니 그걸 두고 '신실재론'이라 이름하였다. 신실재론은 실상과 가상, 진리와 허구의 구별이 점차 사라지고 그동안 옳고 그름의 문제는 오직 해석의 영역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팽배했던 시대에 반기를 들고 옳고 그름은 엄연히 존재하며 반드시 가를 수 있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특히나 이러한 신실재론은 인터넷의 발달한 지금 시대에 강한 문제를 제기한다. 인터넷은 언뜻 보면 민주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방대한 정보들은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유포된다. 현재 우리나라 포털 메인에 올라오는 뉴스들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매일 수많은 뉴스가 생산되지만 포털의 메인엔 언제나 포털이 선정한 것만 노출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털 메인의 뉴스만 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여론은 포털의 입맛에 따라 형성된다. 한 마디로 포털이 여론 몰이할 수 있는 의제를 게이트키핑하며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신실재론은 이러한 흐름에 제동을 걸려고 한다. 인터넷이 은폐하고 있는 비민주적인 면모를 교정하여 미디어를 민주적인 디바이스로 새롭게 창출하는 것이다. 그런 고로 신실재론은 현재의 상황과 긴밀하게 연동하는 현재진행형 철학이라고 하겠다. 이런 신실재론의 대표적 학자 한 사람이 앞서 말한 마르쿠스 가브리엘이다. 1980년생인 그는 젊은 나이에 신실재론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지금은 독일 본 대학 석좌교수로 있다. 사상 최연소라고 한다.


이번에 나온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는 신실재론 입장에서 지금의 사회를 비판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현 시대를 단적으로 세계사의 시간이 거꾸로 있다고 정의하는데, 그건 지금 세계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19세기로 돌아가려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9세기는 국민국가가 가장 달콤한 떡고물을 무던히 먹었던 시기다. 그는 총 다섯 가지 분야에서 이러한 퇴행이 감지된다고 하는데, 그건 차례로 가치, 민주주의, 자본주의, 테크놀로지 그리고 표상이다. 220 페이지 남짓 되는 이 작은 책은 그걸 한 챕터씩 할애하여 설명한다. 복잡하거나 난해하게 말하지 않고 철학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별 어려움이 없도록 쉽게 설명하고 있다. 신실재론의 기본적인 철학 태도나 그러한 시야로 바라본 현대의 모습이 궁금하였다면 볼만한 책이다. 신실재론은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진리, 선이 존재한다고 믿으므로 이러한 시각으로 곳곳에서 다양성과 상대주의가 넘쳐나 때로는 정말 그른 것으로 생각되는 것에도 제대로 비난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질 때, 그걸 어떻게 분명하게 판단하고 옳고 그른 것을 가려낼 수 있는지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신실재론은 다양성과 상대주의가 희석시키고 있는 윤리적 차원을 다시금 보다 명징하게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자본주의의 위기 진단에서 그가 한 주장이 주목을 끈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윤리를 쉽게 무시하는데 가브리엘은 공면역주의를 주장한다. 기업을 포함한 사회의 목표를 수입의 증가가 아닌 도덕의 진보, 즉 인간성의 향상에 맞추는 것이다. 그것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 내용은 아직 부재하지만, 빈익빈부익부가 날로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본 소유의 고저에 따라 비인간화가 많이 발생하는 요즘을 보면 꽤 귀기울일만한 주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 표상은 신실재론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인데, 지금까지 철학은 표상을 어디까지나 인간과 상호 연결된 것으로 생각해왔다. 

이건 쇼펜하우어의 말이 대표적인데,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이렇게 표상이 홀로 객관적이지 않고 칸트가 말했듯 인간의 주관과 연결되어 형성되다보니, 어느덧 표상을 매개하는 미디어가 더 커다란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 매체의 과도한 권력에서 과학의 역할 역시 과장되게 된 것이다. 신실재론은 이러한 과학중심주의, 즉 과학만이 실재를 표상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자연주의'라 부르며 비판한다. 신실재론은 과학만이 실재를 표상할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그들이 보는 건 많은 현실로 이뤄진 의미장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말한다. 가브리엘은 하나의 사물에 수많은 현실이 존재할 수 있고 보고 있는 인간과 완전히 독립된 현실, 즉 실재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물리적인 것만 아니라 우리의 감정이나 상상력 또한 모두 현실이라 말한다. 그 모든 현실이 모여 의미장이 되는 것이며 그렇다고 하나의 현실이 되는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신실재론이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건 이래서다. 의미장을 구성하는 수많은 현실은 그 어디에도 권력에 의한 위계질서가 없다. 이것은 다만 대등한 배열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의 순서를 부여하는 특수한 콘셉트의 '의도'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3개의 정육면체가 눈앞에 있다고 한다면 보통 사람에게 그것이 몇 개냐고 물으면 3개라고 대답하겠지만 양자역학을 하는 하이젠베르크는 원자의 수를 세어 엄청나게 많은 수를 말할 것이다. 이 둘 중에 누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두 자신만의 특별한 콘셉트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콘셉트가 '몇 개'라는 의미를 생산했다. 그러므로 가브리엘은 의미란 의도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실은 그 의도에 의미장이 응답한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은 인터넷 표상을 독점하고 유일무이한 현실을 양산하여 소비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독재를 용납하는데, 그건 우리가 그들이 생산한 정보를 공짜로 누리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오히려 우리가 GAFA를 위해 무상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고. 쉬운 예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 있기 전에 우리는 사진을 그렇게 열심히 찍지 않았다. 맛있는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카메라부터 들이대지 않았다. 여행에서도 풍경을 음미하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사진이 먼저고 감각과 생각은 나중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혹은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서. 그렇게 우리는 그들의 광고 수익을 증대하기 위한 노동을 자발적으로 무상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를 가브리엘은 '디지털 프롤레타리아'라고 부른다. 그는 이제 GAFA를 위한 우리의 노동에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GAFA에게 그 노동의 대가에 따른 세금을 매겨 그걸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는 것이다. 가브리엘은 기본소득이 윤리적으로 도래에야 하는 제도로 본다. 이런 식으로 가브리엘은 자꾸만 거꾸로 가고 있는 세계사의 시간을 어떻게 하면 되돌릴 수 있는지 설명한다. 어떤 부분은 물론 설명이 빈약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프롤레타리아'처럼 뇌를 신선하게 자극하는 새로운 관점들은 확실히 이 책의 독서를 흥미롭게 만든다. 부담없이 벗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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