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나무 아래 - 시체가 묻혀 있다
가지이 모토지로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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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평탄하지 않다. 그건 눈을 따갑게 만드는 먼지들이 풀풀 날리며 자꾸만 발에 채이는 자갈돌도 많은 거친 길이다. 이마를 환하게 만드는 눈부신 빛보다 차마 마주하고 싶은 어둠이 더욱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삶은 그렇다. 바랐던 꿈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 저 멀리로 홀연히 사라지고 원치 않는 옷을 입고 있고 싶지 않은 자리에 식물처럼 붙박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만 곱씹다가 물러갈 때가 되면 후회 속에 사라진다. 삶이란 정말로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는 것과 같다. 잠깐 누리는 화려함은 오랜 번민과 절망 그리고 고통을 거름삼아 피어나는 것이다. 7년간 지하 속에 날다가 고작 7일만 바깥 세상에 나와 울다가 최후를 맞는 매미와 같이.


 가지이 모토지로의 글은 봄에 읽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비 오는 처연한 봄밤이라면 어울릴 것 같다. 찬바람 씽씽 부는 늦가을이나 겨울밤에 읽기엔 더욱 제격이다. 그의 글들을 모은 책이 나왔다. 제목은 일본 소설을 즐겨 읽었다면 아주 낯익을 문장이기도 할, '벚꽃나무 아래 시체가 묻혀 있다'이다. 



 낮 보다는 밤을, 밝음 보다는 어둠을, 희망 보다는 절망을 찬양했던 작가.

 

이런 모든 것이 햇빛이 비추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곳에는 감정의 이완, 신경의 둔화, 이성의 기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햇빛이 상징하는 행복의 내용이다. 아직도 이 세상이 생각하는 행복이 이것들을 조건으로 생각하는 것처럼...('겨울 파리' p.121)


생명력 넘치는 여름만을 원하는 이들에게 실은 더 중요한 게 살을 에이며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겨울이라고 알려주는 작가. 


  이 골짜기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휘파람새와 박새도 하얀 햇빛을 새파랗게 물들이는 나무의 새싹도 단지 그것만으로는 몽롱한 이미지에 불과하지. 나에게는 슬프고도 잔인한 사건이 필요해. 그런 균형이 있어야 내 이미지가 명확해지거든. 내 마음은 악귀처럼 우울하게 메말라 있어. 내 마음속 우울함이 완성될 때만 내 마음은 온화해지지.('벚꽃나무 아래'중에서 p. 200)


그가 바로 가지이 모토지로다. 기형도 시인은 자신의 시 속에 이런 구절을 남긴 바 있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 볼 것인가'


 가지이 모토지로의 글도 그렇다. 다른 이라면 한창 다가 올 인생에 대한 이런 저런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을 스무 살에 폐결핵에 걸려 늘 그 병을 그림자처럼 짊어지고 살았던 작가. 나이가 들수록 요양을 위해 이 여관 저 여관을 전전해야 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나 다다미에 놓은 이불 속에서 누워 보내야 했던 작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건 폐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 뿐이고 그렇게 자기도 언젠가 가리라는 것을 늘 절감하며 살아야했던 작가. 그런 작가가 새로 돋는 새싹 보다 곧 쓰러질 고목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우울을 옷으로 삼고 비애를 자신의 거처로 삼았더라도 삶을 쉽게 포기하려 했던 건 아니다. '겨울 파리'라는 단편이 잘 보여주듯, 그럴지라도 삶이 허락하는 모든 순간을 가장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그걸 자기 스스로 실천했다. 그는 증명하고자했다. 모든 이들이 기피하는 고통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릴 더 높은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의미있는 경험임을. 그것이 바로 시체 위에서 태어나 더없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벚꽃나무란 이미지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겪고 있는 아픔과 좌절을 위로하고 새롭게 보도록 이끌어주는 작가. 그러므로 가지이 모토지로의 글은 벗할 가치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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