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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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노래 중에 엄정화가 부른 '하늘만이 허락한 사랑'이란 노래가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용납하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이의 입장에서 부르는 노래로, 그래도 우리 사랑은 하늘만은 허락하리라는 애절함이 담겨 있다. 일본 작가 나가라 유의 '유량의 달'을 읽으며 이 노래가 언뜻 떠올랐다. 왜냐하면 소설 속 사랑도 하늘만이 허락할 사랑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가나이 사라사. 여성이다. 그녀는 어릴 적 완벽한 가정에서 살았다. 부유해서가 아니다.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사라사가 저녁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해도 야단치지 않고, 말리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해주는 집. 반대와 간섭은 없고, 존중과 배려만이 존재하는 집.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봐주며 설사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개성이라도 해도 그것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응원해 주는 집. 그녀는 그런 곳에 있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때이른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 집은 산산조각 나버리고 주인공은 이모 집에 얹혀 살게 된다. 그 때부터 사라사 삶엔 짙은 그늘이 드리운다. 이모네 집은 자기 집과 정반대의 곳이었기 때문이다. 개성을 훈육으로 몰개성으로 만들어비리는 집. 자유는 없었다. 답답함만이 가득했던 그 곳에서 사라사를 죽고 싶을만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건 이종 사촌 오빠가 밤마다 나쁜 짓을 하러 자신의 방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때가 아홉살이었다. 그녀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았다. 그러다 늘 놀이터에 나와서 어린 소녀들을 얌전히 훔쳐보던 후미란 대학생과 알게 되었다. 후미의 집에 놀러간 사라사는 후미가 예전 부모님처럼 자신의 개성을 온전히 존중해주자 마치 다시 예전의 그 집을 찾은 것만 같아서 그 곳에 살고싶어진다. 그렇게 두 달 동안 후미 집에서 살았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이모네 가족은 실종신고를 냈고 나중에 후미는 소아성애자에다 유괴범이 되어 경찰에 체포된다. 사라사는 사회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알리고 싶지만 아이의 말에 귀기울여 주는 어른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후미 없이 산 지 15년 뒤, 예전의 개성을 소진하고 사람들 생각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던 사라사 앞에 우연히 후미가 다시 나타난다. 그녀는 어린 시절의 집이 없어진 이후로 늘 그 어디에도머물지 못하고 소설의 제목처럼 유랑하며 살아왔다. 후미를 다시 본 순간, 사라사는 깨닫게 된다. 자신이 유량을 끝내고 진정으로 정박할 수 있는 곳은 바로 후미라는 걸. 그러나 세상의 눈이 무섭다. 사회는 아직도 사라사의 유괴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진실을 모르는 그들의 시선에서 자신들의 사랑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사는 후미에게로 이끌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다. 과연 이 사랑은 어떻게 될까? 하늘만이 허락할 이 사랑은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


 소아성애자와의 사랑이라는 꽤나 충격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는 '유랑의 달'은 소재의 불편함만 넘길 수 있다면 꽤 읽어볼만한 소설이다. 사라사의 심리 표현이 너무나 섬세하게 잘 되어있어 독자의 공감을 잘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해선 안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가 없어 표류하는 이가 간신히 자신의 거주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그런 유랑의 심리라면 우리 역시 살면서 종종 가지기 때문이다. 나가라 유는 처음 만나게 된 작가인데 문장이 좋았다. 그 때문에 더욱 이 소설이 파격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어 마침내 2020년 서점 대상 1위라는 영예까지 차지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서점 대상은 대중성이 담보된 상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소재가 가지는 한계를 세심한 심리 묘사와 이야기 전개로 제대로 돌파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작가의 능력이 상당한 것 같다. 그의 다른 작품도 만나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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