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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0년 1월
평점 :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이 있다. 내 생각엔 몸에 대해서도 꽤 해당되는 말인 듯하다. 공기가 없어져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것처럼 우리의 몸 역시 아픔이라는 위기가 닥쳐오고 나서야 비로소 신경을 쓰고 관심을 쏟게 되니까 말이다. 다음엔 더 안정적이고 좋은 몸이 될 수 있도록.
여전히 진행중이며 언제 끝날지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코로나 19 사태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건강의 소중함과 더불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몸에 대해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거듭 상기시켜 준, 그런 면에서 고마운 기회였다. 거기에 마침 좋은 안내자가 출현하기도 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지루해 보이기만 했던 일상이란 세계의 모든 구석 구석이 저마다 깊은 내막이 서려 있음을 알려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눈으로 나를 둘러싼 세계를 보게 만들었던 작가, 빌 브라이슨이 자신의 저력을 십분 발휘하여 몸에 대해 쓴 책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바디 : 우리 몸 안내서'란 책이다.
하얀 색의 담백한 표지로 된 이 책은 내게 이제 곧 몸 속 여행을 떠나는 잠수정으로 보였다.
작가에 대한 신뢰가 차고도 넘쳤기에 나는 당장 하얀 잠수정의 승선 티켓을 끊었다. 푸짐한 몸집에 어울리는 푸근한 미소로 날 맞이하는 작가는 오늘의 가이드를 맡았다는 설명과 함께 악수를 정중히 청하더니 날 전망이 가장 좋은 일등석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기대하라는 뜻으로 살짝 윙크를 보낸 다음 운전석에 앉아서 시동을 걸고 천천히 잠수정을 우리의 몸 안으로 이동시켰다. 이윽고 그가 설명을 하려고 운전석 옆의 마이크 스위치를 켜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내 두 눈 앞으로 사람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이 영화 '스타워즈'에서 한 솔로의 팰콘이 워프를 할 때 그러하듯 무수한 빛 알갱이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나는 집중을 위해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그가 설명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눈과 귀를 한껏 열었다.
그렇게 나는 주석과 참조 문헌 목록 그리고 역자 후기를 빼면 장장 517 페이지에 이르는 인체 탐험 여행을 시작했다. 사람을 만드는 방법을 시작으로 '피부와 털'을 지나 '결말(여기서 결말이란 책의 결론 같은 것이 아니라 죽음, 노화, 폐경 등 우리 몸이 만날 수 있는 종말적인 상황에 대한 것을 이른다.)'에 이르기까지 도합 23 곳을 거치는 일정이었다. 아무래도 의학적인 건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몸에 대한 것 역시 그 분야에 속하는 지라 머리 깨나 아픈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정말 문자 그대로 기우였다. 어려운 건 하나도 없었고 어찌나 설명을 잘 하는지 뭐든 다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던 것이다. 여전히 그는 박학다식했고 뇌, 머리, 입, 목, 심장, 신경, 소화기관 등등 그 어디에서건 그것에 대한 정보들을 이걸 어찌 다 알고 있을까 하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쏟아내었다.
당신은 뼈가 호르몬을 생산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가? 우리는 뼈가 단순히 몸을 지탱하는 정도의 일만 하고 있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았다. 뼈는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혈구를 생산하는 것은 물론 화학물질을 저장도 하고 소리 또한 전달했다. 당신이 듣는 자기 목소리는 실은 모두 귀가 아니라 자신의 머리뼈가 울리면서 나는 소리인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뼈는 오스테오칼신 호르몬까지 생산하는데 이것은 기억과 활력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남성의 생식력 증진에 기분 조절까지 하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시 서 있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던 뼈는 알고보니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일꾼이었던 것이다. 또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은 뒤로 오래도록 품었던 의문도 이 책 덕분에 풀리게 되었다. 그 의문은 바로 마들렌 과자에 관한 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 마르셀이 우연히 맡은 마들렌 과자 냄새 때문에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유년 시절의 일을 갑자기 기억해내는 장면이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랑스 판 표지.
바로 후각이 기억을 불러 일으킨 것인데 나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무척 궁금했다. 그걸 책을 통해 마침내 알게 된 것이다. 신기하게도 후각은 오감 중 유일하게 시상하부를 거치지 않는다고 한다. 후각을 통해 취득한 정보는 곧장 후각 겉질로 가게 되는데, 그 후각 겉질은 기억 생성을 담당하는 해마 바로 가까이에 있다. 따라서 특별한 냄새는 과거에 그것을 맡았던 때의 기억을 홀연히 소환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말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나 또한 자주 혼동해서 썼던 심근경색과 심장정지의 차이점을 이 책을 통해 분명히 확인한 것과 같이 기존의 알았던 것도 새롭게 제대로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추운 날이면 어김없이 줄줄 흐르는 콧물처럼 아주 일상적인 몸의 반응 또한 허파에서 나오는 따뜻한 공기와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가 만나 응축되는 바람에 나오는 것이란 걸 체득하게 되었다. 사람이 달릴 때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머리가 흔들리지 않는 건 우리 머리 뒤쪽에 인간에게만 있는 목덜미 인대 덕분이라는 것도.
이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두 가지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몸에 대해서 아는 건 불과 1%도 안된다는 것과 몸이라는 것이 이토록 많은 정보가 알알이 깃들어 있을 정도로 거의 우주에 맞먹을만큼 참으로 경이로는 장소라는 걸. 그는 다시 한 번 해내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세계를 보는 내 눈을 일신(一新)했던 것처럼 '바디 : 우리 몸 안내서'를 통해 내 몸을 바라보는 내 눈을 일신(一新)한 것이다.
덕분에 이제 내 눈엔 내 몸이 더이상 단순한 유기체로 보이지 않는다.
빌 브라이슨이 어떤 하나의 조직을 설명할 때, 그 조직만 말하지 않고 그와 관련된 건 뭐든, 질병과 그것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이나 그 업적까지 통합하여 설명하듯(이 점은 과학자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간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비슷하다.) 내 몸 또한 그렇게 해야 그 전모가 제대로 밝혀질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조직이 내 몸은 모든 조직이 긴밀한 상호 작용 속에서 유기적으로 잘 통합된 총체(總體)였으니까. 마치 직립보행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머리와 목을 비롯한 많은 부위가 다른 영장류와 달라졌으며 두뇌를 활용하느라 몸에 더 많은 열이 발현하기에 다른 포유류와 달리 인간만이 피부에 털이 없게 되었듯이 말이다. 내 몸의 그 어떤 부분도 고립된 채로 남아 있는 게 없었고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이유없이 존재하는 것도 없었다. 다 진화 과정 속에서 필요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다. 왜 있는지 모를 속눈썹조차 실은 인류가 광범위한 상호 협력을 위한 방향으로 진화한 탓에 서로의 감정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정말 처음 알았다.
달리 보면, 달리 이해하게 된다.
똑같이 빌 브라이슨도 몸을 달리 보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일어나는 갖가지 양상들을 달리 헤아리도록 이끌었다. 통증이나 열 같은 부정적인 현상 또한 어떤 조직의 파손이라기 보다는 보존을 위해 뭔가 하고 있거나 해야 한다는 신호로 더 받아들여야 옳았다. 그 시야가 비단 몸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와 다른 타자 또한 달리 가늠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몸을 가지고 사람들을 이리저리 나누는 게 부질없어 보이는 까닭이다.
특히 피부가 그렇다. 피부는 인종 차별을 낳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우리의 피부색이란 자연적으로 결정된 게 아니라 농경 사회가 됨에 따라 임의적으로 가지게 된 것에 불과하다. 사람은 몸에 여러가지 좋은 일을 하는 비타민 D를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했는데 농경 생활을 하게 됨에따라 그 전에 채취나 수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비타민 D의 양이 자연히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농경 사회를 했던 인류들은 밝은 피부색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햇빛과 만나 더 많은 비타민 D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부색은 내가 사는 곳에 따라 가지게 된 것에 불과했다. 이런 걸 가지고 인종차별을 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다시는 '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를 외치게 만든 사건들이 일어나선 안 될 것이다.
[인류는 어떤 몸을 가졌던 다 같은 몸을 가진 동등한 하나라는 뜻으로 찍어 본 사진]
이처럼 몸에 대해 산더미와 같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이 가진 수수께끼가 완전히 다 풀린 것은 아니다. 아직도 밝히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우리 몸엔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누구든 언젠가 근심거리가 되는 나이가 들수록 털이 점점 더 많이 빠지는 이유는 물론이고 주걱턱이 고민인 사람이라면 분명 한 번은 의문을 품어봄 직한, 왜 인간만이 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것조차 규명되지 않았다. 우리 몸엔 인간이 탐침이 닿지 못하는 심연이 즐비하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알게 된 게 어디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빌 브라이슨의 말에 따르면 인류가 자신의 몸 안에 무엇이 있는지 해부를 통해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가 지나고 나서라니까 말이다. 미국 드라마 제목 때문에 우리에게도 꽤 낯익을, 오래도록 의학의 기본 교재로 자리잡았던 '그레이의 해부학'이 출간 된 것도 겨우 1861년이다(그레이 혼자 쓴 것이 아니라 카터와 같이 썼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레이가 째째한 인사라 카터에게 수익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을 거라는 소개가 재밌었다. 의학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이뤘지만 인성이 좋지 못해 그걸 망치는 학자들도 많았다. 지성이 인성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브라이슨의 책에 저장된 방대한 양의 지식들 대부분은 인류가 기껏해야 200년 남짓한 시간에 다 밝혀낸 것이란 의미다. 그러니 낙관하게 된다. 그 심연도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고. 그것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그렇게 되면 우린 더욱 더 내 몸과 타인들을 달리 보고 헤아리게 되리라.
가득 심취해서 들었더니 어느새 종착역에 와 있었다. 이만한 분량의 책을 어쩌면 이렇게도 빨리 읽어버릴 수 있었을까? 내가 한 일인데도 믿기지 않아 난 멀뚱한 눈으로 빌 브라이슨이 조용이 미소짓고 있는 얼굴만 쳐다 보았다. 오른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리며 어떻게 여행은 만족하셨는지 몯는 브라이슨에게 난 오른 손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좋았다고 연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배를 둥그렇게 쓰다듬었다. 지적 포만감으로 그득하다는 의미로. 부디 브라이슨이 자기 배를 놀리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경험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지적 쾌감만큼 사람을 중독시키는 것도 또 없다는 걸. 한 번 그걸 제대로 맛보게 되면 끝없이 갈구하게 마련이다. 계속해서 충족되기를. 여기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 어디 또 나를 놀라게 할 새로운 지식 없나 하면서 부릅 뜬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지독한 허기만 존재할 뿐. 물론 거기에도 간조(干潮)의 시간은 어김없이 닥쳐온다. 책이 그 충족을 채워주지 못해 지적 쾌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리는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디 : 우리 몸의 안내서'는 그렇지 않다. 오직 만조(滿潮)의 시간만 있을 뿐이다. 혹시 당신도 나처럼 지적 쾌감을 추구하고 있었다면 기꺼이 이 책을 추천한다. 페이지마다 가득 밀려와 나의 내부를 채우는 몸에 대한 새로운 지식들 속에서 당신도 분명 나와 똑같은 걸 경험하게 되리라. 그걸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말한 것을 살짝 바꿔 이렇게도 말해보련다.
'그런즉 누구든지 '바디 : 우리 몸의 안내서'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내가 빌 브라이슨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그가 내 배를 쓰다듬는 걸 오해하여 불쾌하였다면 제발 이것으로 용서해주기를.
당신의 다음 가이드도 받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