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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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아미타빌, 일본의 주온. 모두 특정한 공간이 가득한 공포를 자아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예로부터 공간은 다 동일하지 않았다. 어떤 공간은 신성한 힘이 있다고 여겨졌고 또 어떤 공간은 아주 사악한 힘이 깃들어져 있다고 믿어졌다.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현재 도시에 떠도는 괴담들 역시 어떤 공간을 무대로 한 것이 많으니까 말이다. 인간의 악의를 제한없이 재현하여 독자로 하여금 불쾌감을 유발시키는, 이른바 '이야미스' 장르에 있어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일본의 여성 작가 마리 유키코. 그녀가 이번에는 모처럼 이야미스 장르를 떠나 아미타빌이나 주온처럼 공간을 무대로 한 호러 연작집을 들고 나왔다. 제목은 '이사'. 일본에선 2013년에 발표된 책이다.




  모두 여섯 편이 단편이 실려 있는데 제목이 '이사'인 것은 그 내용이 다들 이사와 관련있기 때문이다. 

 첫 단편, '문'에선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살인마가 살던 곳이라는 걸 알게된 여성이 이사를 위해 어떤 집을 방문하여 살펴보다가 숨겨진 문을 찾아내는 이야기가 나오고 두 번째 '수납장'은 남편 없이 홀로 외동딸을 키우는 여성 일러스트레이터가 한창 이사 준비를 하다 수납장에서 딸 아이가 그린 그림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이며 세 번째 '책상'은 이사짐 센터 업체에서 전화 접수 업무를 갓 맡은 주부가 자기가 쓰는 책상에서 전에 일하던 여성이 써 놓은 편지를 찾아내는 이야기이며 네 번째 '상자'는 직장에서 사무실 이사를 했는데 유독 자기 짐만 잃어버려 커다란 곤란을 겪는 한 정규직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다섯 번째 '벽'은 어린 시절의 가정 폭력으로 불우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자기 동료 또한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벽을 통해 옆집의 심각한 가정폭력을 알게되었는 걸 듣게 되는 이야기이며 마지막 '끈'은 이야기의 무대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제 막 새집으로 이사 온, 이사를 참 좋아하는 여인이 다시 한 번 첫 번째 단편에 나왔던 '문'을 발견하는 이야기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 책의 제목으로 '이사'만큼 어울리는 것도 또 없을 듯하다.


  마리 유키코로서는 처음 도전하는 호러장르일텐데, 결과는 첫 시도 치고는 꽤 괜찮게 나왔다.

'이야미스' 장르를 쓸 때, 마리 유키코는 주로 묘사를 건조하게 했는데 이건 '이사'에서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잔혹하거나 충격적인 장면 묘사를 통하여 무서움을 전달하지 않고 별다른 자극없이 무덤덤한 기술로 독자를 슬쩍 호러의 장소로 데려간다는 뜻이다. 여기 실린 소설의 공포 대부분은 반전을 통해서 온다. 평범한 공간이 삽시간에 죽음의 공간이 되고 여기가 무서움의 장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는 게 별안간 독자 앞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사'는 소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독자의 정신마저 '이사'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전환, 전복이 꽤 깔끔하고 앞서 세세한 단서를 두어 설득력있게 이뤄지기 때문에 나는 '이사'를 호러 소설로도 꽤 괜찮다고 한 것이다. 거기다 '상자' 같은 단편에선 마리 유키코만의 장기인 '이야미스'또한 가득 맛볼 수 있었기에 더욱 만족했다.


  한 가지 이 책의 매력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작품 해설'이다.

  보통 작품 해설은 해설이기 때문에 독자는 그것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간단히 말해 허구가 아니라고 말이다. 소설의 작품 해설은 바로 그러한 독자의 사고 습관을 멋지게 이용하고 있다. 해설에서 소설 속 이야기가 모두 실화인 것처럼 설명하여 독자로 하여금 픽션인줄로만 알았던 소설 속 이야기가 진실일 수도 있다는 오리무중에 빠뜨리는 것이다. 거기다 해설하는 사람의 이름까지, 분명 이 소설을 읽었다면 눈치채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소설에 꼭 등장하는 이름인 '아오시마'로 하여 마지막 문장에서 살짝 소름마저 일으키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난 작품 해설이 정말 해설인지 의심스럽다. 어쩌면 이 작품 해설까지 마리 유키코가 쓰지 않았을까 싶고, 그래서 여기에 실린 단편은 여섯이 아니라 실은 일곱으로 봐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여하튼 이처럼 독특한 작품 해설까지 포함하여 '이사'에 실린 모든 단편들은 마리 유키코의 책이 늘 그랬듯이 벗할만한 매력이 있다. 가볍게 괴담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싶으시다면 얼른 손에 한 번 들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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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30 0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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