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N. K. 제미신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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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세대 SF 작가들 중 가장 신뢰하고 기대하고 있는 작가인 N. K 제미신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

 놀랍게도 이번엔 단편집이다.

 제목은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이 단편집은 현재 그녀의 유일한 단편집으로 서른 살에 이르러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녀가 거의 초기 시절이라고 할만한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여러 매체에 발표한 22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한 마디로 그녀가 작가로 첫 발자국을 떼고나서 오늘에 이르는 전 여정이 한 권의 책에 집약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장편에 있어서 그녀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가 하는 것은 이전에 나온 <부서진 대지 3부작> 중 두 편을 통해서 충분히 경험한 바이기에(그녀는 이 3부작으로 한 편도 받기 힘들다는 SF계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상인 휴고 상을 3년 연속 수상했다.) 단편도 과연 잘 쓸까 궁금했던 터이기에 특별히 더 반가웠던 단편집이었다. 더구나 그녀는 책머리에서 이 단편집에 특별한 의미까지 부여하고 있었다. '작가로서 그리고 운동가로서 성장한 과정을 기록한 연대기'라고 말이다. 말하자면 이 단편집은 작가인 그녀에게 있어 성장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는 나무의 나이테와도 같은 존재라는 것이니 N. K 제미신을 좋아하는 이로써 어떻게 부푼 기대를 안고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난 당장 저마다 독특한 색채로 빛나고 있는 22개 단편들의 성운 속으로 뛰어들었다.




 시작을 여는 것은 2018년에 발표한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이다. 

 이 단편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제미신이 이 단편집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단편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단편은 여성 SF 작가로 너무나 유명한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작가 자신의 '모방이자 반응(p.12)'인 작품인데 여기엔 두 세계를 굳건하게 가르고 있는 장벽을 허물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한 남자와 그의 딸이 등장한다. 남자를 처형한 이들은 사회복지사로 불리는데, 그들은 그렇게 장벽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자기 세계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죽은 남자의 딸은 그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사회복지사들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내가 복수할 거야.(...) 당신들이 아빠를 죽인 것처럼, 내가 당신들을 죽일 거야. (...) 감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감히 어떻게."(p. 29)


 특별히 이 부분을 인용하는 것은 이러한 설정, 즉 한 쪽엔 보호 혹은 진보란 이름으로 나누고 가두는 이들이 있고 다른 한 쪽엔 그들이 설정한 벽을 뛰어넘어 어떻게든 가로지르고 서로 연결하려는 이들이라는 양분된 구도가 여기에 실린 거의 모든 단편에 걸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단편집,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는 구획과 횡단의 투쟁 연대기다.


 어느 도시에서나 그러하듯이 적은 자연에 없어서는 안 될 본질이다. 우리가 겪는 변화의 과정을 막을 수 없듯, 적도 완전히 종식시킬 수 없다. 나는 적의 아주 작은 일부만 다치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부분을 망가진 채 돌려보냈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좋다. 최후의 결전 때가 온다면 놈은 다시 내게 달려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볼 것이다.

내게. 우리에게. 그렇다.(p. 59)


 그렇다고 해서 이 투쟁이 승패를 가르고자 함은 아니다.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배하는가 하는 건 작가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작가에게 있어 적은 변화를 통해 성장하기 위한 계기의 제공자일 뿐, 근절의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로 고정된 정체성에 머무르지 않고 부단히 변화하는 가운데 성장하는 것이다. 식물처럼 하나의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 것, 늘 구획된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탈주하는 것이야 말로 작가가 이 단편집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정체성이다. 


 이것을 위해 작가는 두 가지 모티브를 특별히 많이 사용한다. 

 하나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조리하는 것이다.

 꿈은 두 번재 단편인 '위대한 도시의 탄생'을 비롯하여 '수면 마법사'까지 자주 등장한다.(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트로이 소녀(세계관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작가가 장편으로도 만들어주길 바랐지만 책머리에서 작가는 단편으로 끝내겠다고 해놓아서 참 아쉬웠다.)'는 이러한 꿈의 테마가 가장 한껏 재현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단편은 가상 현실 같은 곳에서 오직 생각이란 형태로 존재하는 프로그램들의 추격전을 그리고 있는데, 이들은 흔히 말하는 전뇌 공간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 인간에게 다운로드 되어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오로지 자신을 지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이 프로그램들은 한 어린 소녀 프로그램을 통하여 변화야말로 자신을 지키는 궁극의 길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 단편집에서 꿈은 한 마디로 대지와 정반대에 있는 영토이다. 현실과 비현실, 중력과 무중력으로 대비되는 장소인 것이다. 그렇기에 꿈은 무엇이든 하나로 고정시키려는 지상이 허락하지 않은 정체성의 추구를 가능하게 한다. 자신이 정말 되고 싶은 정체성을 찾거나 현실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타자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기도 한다. 끌어당기는 중력도, 고정시키는 영토도 없어서 오로지 물 흐르듯 부유하거나 유영할 수밖에 없는 꿈은 바로 그런 차원에서 오직 변화만이 존재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꿈을 통해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구현해 나간다는 점에서 작가는 변화 속에 주어지는 다양한 경험 속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조리(요리)의 의미는 무엇인가? 꿈이 내적인 차원의 것이라면 조리는 외적인 차원의 것이다. 왜냐하면 조리는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금술사'는 조리사의 이야기다. 그는 처음에 기이한 고객의 레시피 대로 음식을 만들지만 후반에 가선 자기만의 레시피를 개발하여 음식을 만든다. 이러한 주제는 나중에 '퀴진 드 메므아'라는 단편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남이 만든 레시피가 아니라 자기가 만든 레시피 대로 음식을 만든다는 것을 그대로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이야기이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작가가 왜 하필 조리라는 소재를 가지고 왔는가 하는데 있다. 바로 거기서 난 이 조리가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외적인 차원에 속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리란 각각 개별적인 재료들을 훌륭한 맛을 위해 서로 공존하는 가운데 가장 조화를 이루도록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그 어느 하나도 쉽게 배척되지 않는다. 또한 재료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가장 작은 재료 하나에도 나를 헤아리는 것만큼의 깊은 헤아림이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조리사의 자세가 작가는 타자를 대하는 나의 기본적인 태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건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SF 소설계에서 쉽게 지워졌었던 자전적 경험의 반영이기도 하다. 작가에 따르면 자신이 소설을 쓸 때조차 암묵적으로 백인 남성 주인공을 상정하고 쓰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쉽게 무시된다는 건 우리 역시 익히 보아왔던 바다. 그것이 최근 미국에서 'BLACK LIVES MATTER' 시위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작가는 여러 단편을 통하여 강조하는 것이다. 조리를 할 때와 같이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재료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마음과 세심하게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이처럼 구획과 횡단의 투쟁기는 종반엔 변화와 공존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제미신의 역량은 단편에서도 여전했다. 어떤 단편들은 장편보다 자신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바가 더 농밀하게 구현되어 있기도 했다. 그녀가 차례대로 세워 놓은 22개의 표지판을 통과하면서 왜 이 단편집을 그녀가 성장의 연대기로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었고 '부서진 대지 3부작'의 성공 역시 그냥 나무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덕분에 나는 앞으로도 한동안 제미신의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듯하다. 그러고 보니 부서진 대지 3부작도 이제 '석조 하늘' 하나만 남은 상황. 얼른 그 작품과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한편, 과연 이 다음의 성장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부디 빨리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참 제목인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는 이 단편집에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이 제목은 단편이 아니라 2013년에 발표한 에세이의 것이라고 한다. 검은 미래의 달은 흑인이자 여성인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검은 미래가 하얀 미래와 동등하고 달이 태양과 대등하게 되는 공존과 조화의 시대에 다다르는 것이 부디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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