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 대하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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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에 대하여'는 제목 그대로 '금색 공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도리스 레싱이 고양이에 대하여 쓴 책이다. 발표된 해는 2002년.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거쳐갔던 고양이들에 대해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아주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고양이 집사 7년 차로 동반자에 대한 예의랄까 호기심이랄까 아무튼 그런 이유로 고양이에 대한 책을 이것 저것 많이 읽어보았는데, 그런 내게 있어 이 책은 단언컨대 고양이에 대한 책 중에 최고다. 이토록 고양이에 대해 인격적으로 다루면서 또 어느 순간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감히 고양이 집사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닌가 한다. 정보의 차원이 아니라 고양이와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깨닫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련된 서사가 있는 건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 기록이다. 책의 대부분은 '금색 공책'을 세상에 막 발표했던 1962년. 런던에서 살 때 길렀던 두 마리의 암컷 고양이, 회색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에 할애되어 있다. 시작의 포문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에서 길렀던 고양이들이 연다. 이 부분엔 고양이 집사에게 참 충격적인 게 많다. 야생 고양이가 집 주위의 언덕을 차지할까봐 어린 도리스 레싱이 고양이만 보면 총을 쏘아대는 것이라든지, 집 안에 고양이가 너무 불어나 고양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에 아버지가 무려 40마리에 이르는 고양이를 살육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나온다. 여기서는 야생 고양이의 존재가 강조되고 그것을 통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에서 오는 공포가 은연 중 배여있는데 이것이 당시의 짐바브웨가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사실과 연결되면서 단순히 고양이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만든다. 문득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처음 알렸던 데뷔작 '풀잎은 노래한다'와 두 번째 작품인 '마사 퀘스트'가 떠오르는 것이다.


 문명과 야만(어디까지나 관습대로 편의상 구분한 것이다.)의 경계인 식민지에서 살았던 자전적 경험 때문에 도리스 레싱은 문명과 야만은 충돌하며 서로 도저히 융합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문명은 통제에 대한 강박으로 자주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도. 문명이 겉으로는 폭력을 배척하고 있지만 사실 그 폭력이야말로 유일하게 문명의 존립 수단이라는 것도. 이런 구도가 고양이와 인간 사이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그러니까 고양이란 문명의 타자, 야만 혹은 자연을 상징하는 존재인 것이다. 어린 시절의 도리스 레싱은 집이라는 문명의 안전을 위하여 야생 고양이가 나타나면 바로 22구경 엽총을 들고 쏘았다. 그건 레싱의 어머니가 집에 기어들면 닥치는 대로 잡았던 뱀이나 흰개미와 마찬가지였다. 수가 너무 불어나 안정이 위험해질 것 같으면 새끼 고양이라고 해도 가차없이 물에 빠뜨려 죽였다. 그녀 자신이 말한다. 그 때는 고양이가 들어설 자리가 전혀 없었다고.


 그녀가 고양이를 자기 곁에 거둘 수 있게 된 것은 작가가 되고 나서 였다. 자신이 어떻게 하여 작가가 되기로 하였는가에 대한 자전적인 경험이 물씬 배인 '마사 퀘스트'에 따르면 도리스 레싱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위선을 깨달은 후,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문명이 허용하지 않는 자신이 내부에 간직한 타자성을 문명의 폭력에 순응하여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긍정하여 양성시키기 위해 그녀는 작가가 되었던 것이다. 문명에 식민화된 자아가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영토인 자아를 지향하기 위하여.


 겨우 20여 페이지에 이르는 첫 단락을 설명하느라 말이 너무 길어졌는데 그건 단순하게 말한다면 이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고양이에 대하여'는 고양이에 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도리스 레싱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 여기에 담긴 고양이에 대한 얘기들은 자신이 지금껏 써온 작품들의 세계와 전혀 무관하지 않으며 그 세계를 보다 깊이 혹은 색다르게 헤아리는 하나의 통로가 되어주기도 한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첫 단락을 읽으면서 '풀잎은 노래한다'와 '마사 퀘스트'를 떠올렸듯이, 암컷 고양이에 대한 중성화 수술의 필요와 새끼를 낳지 않은 회색 고양이와 낳은 검은 고양이의 대비를 보면서 완전히 낯선 타자인 아이를 낳은 공포를 그린 '다섯째 아이'나 다섯 공책 속에서 서로 다르게 존재했던 안나 울프를 그린 '금색 공책'을 떠올릴지 모른다. 너무 나간 판단일지 모르지만 내게 자연이 부여한 모성과 회색 고양이보다 열등한 위치라는 한계 속에서 새끼를 키우고 가르치는 암컷 고양이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검은 고양이는 네 권의 공책 속 안나 울프로 보였고 도도하게 자신의 자유를 구가하며 주체성을 뽐내는 회색 고양이는 '금색 공책'의 안나 울프로 보였다.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설령 고양이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더라도 작가로서의 도리스 레싱이 궁금하다면 꼭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이라고. 물론 그 전에 그녀의 대표작들을 읽어보았다면 말이지만.


 '고양이에 대하여'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고양이는 좋아하지는 않지만 도리스 레싱에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놓칠 수 없는 책임엔 틀림없다. 30km나 되는 낯선 땅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오직 생존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갖가지 고난을 넘어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라든가 자신의 새끼들을 구하고자 작가의 집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찾아왔으며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몰살당할 위험에 처했으나 그래도 작가에게 간신히 목숨을 구한 고양이라든가 또 커다란 아픔을 겪은 뒤, 불편한 몸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째의 기회를 잡기 위해 새로이 세계에 편입되려 노력하는 루퍼스의 이야기처럼 때로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고 또 때로는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들이 스며들어 있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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