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원숭이 모중석 스릴러 클럽 49
J. D. 바커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작년 내가 읽은 최고의 스릴러는 A.J 핀의 '우먼 인 윈도'였다.

 이 작품은 정말 내게 명불허전을 실감하도록 만들었다. 재밌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게 조금도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난 정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이 소설을 단번에 흡입해 버렸다. 무려 619페이지에 이르는 두터운 이 작품을 서울에서 부산으로 오가는 열차 안에서 다 읽어버렸을 정도로. 이 책을 출간한 비채는 제대로 홈런을 날려버렸다. 그런데 지금 또 비채가 홈런을 날렸다. 다시 말해 '우먼 인 윈도'에 버금가는 흡인력을 자랑하는 작품이 또 다시 비채에서 발간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J. D. 바커 '네 번째 원숭이'다.





 형사 샘(원래는 새뮤얼) 포터는 동료 내쉬 형사의 연락을 받고 사건 현장을 찾아간다. 누가 갑자기 달리는 버스 앞으로 뛰어들어 치여 사망했다는 것이다. 누가봐도 자살이 명백한 사건에 왜 자신을 불렀는지 영문을 모를 무렵, 내쉬가 포터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게 만드는 말을 한다. 그가 검은 리본이 묶인 작고 하얀 상자를 가지고 있었다고.


 당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미국의 시카고는 흔히 '네 머리 원숭이 킬러'라 불리는 연쇄살인마 때문에 공포에 떨고 있었다.


 에머리 역시 네 마리 원숭이 킬러에 대해 잘 알았다. 시카고에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전 세계에서도 그럴 것이다. 그가 연쇄살인범이라서가 아니라, 희생자를 죽이기 전에 고문한 다음 신체의 일부를 가족에게 우편으로 보내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귀, 다음에는... (p. 109)


 샘 포터는 지난 5년 동안 네 마리 원숭이 킬러(줄여서 '4MK'라고 부르기도 한다.)가 놓아 둔 상자를 21개나 보았다. 희생자 한 명 당, 처음에는 귀 다음에는 눈 그리고 마지막으로 혀가 담긴 상자를 보내니까 총 7명이 킬러에게 살해된 것이다. 그만한 인원이 죽었는데도 범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오직 상자만 남길 뿐, 그 외 증거는 완벽하게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상자를 가진 채, 버스로 뛰어 든 남자가 그 킬러였을까? 상자에 담긴 귀는 그가 자신의 죽음까지 감행하면서 초대한 마지막 살인 게임이었을까? 그렇다면 이 귀는 누구의 것인가? 샘 포터의 내면에서 이런 의문이 일어나는 가운데 죽은 남자의 소지품에서 한 권의 노트가 발견된다. 네 마리 원숭이 킬러가 자신이 살아 온 내력을 적은 기록을. 소설은 그 노트의 발견과 동시에 두 개의 내용으로 병행하며 전개된다. 하나는 4MK를 디뒤쫓는 수사반들의 이야기로, 다른 하나는 노트에 나와 있는 4MK의 고백으로.


 한 편, 귀의 주인공은 곧 밝혀진다. 상자에 수신인 주소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차기 시카고 시장으로 유력한 사회 지도층 인사 아서 탤벗. 샘 포터 일행은 그와 가족을 찾아갔다가 그의 딸 에머리가 범인에 의해 납치되었음을 알게 된다. 상자 속 귀는 그 에머리의 귀였던 것이다. 죽은 자가 진범일까? 정말 진범이라면 귀만 자르고 자살을 결행한 까닭이 무엇일까? 그런데 만일 다른 자가 범인이라면 에머리의 눈과 혀가 배달되기 전에 구해야만 한다. 샘 포터가 지휘하는 수사반은 죽은 남자의 진실을 밝히는 것과 동시에 에머리를 찾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한 편, 노트 속 4MK의 고백은 자신의 가족과 관련된 무시무시한 사실을 털어놓고 있었는데...



 이런 소개로 책을 읽으며 설정에 대해 내가 느낀 것이 얼마나 전해질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적어도 내게는 정말 흥미롭지 않을 수 없는 설정이었다. 4MK의 범죄 방식은 물론 노트 속 그 가족의 과거 또한 날 완전히 사로잡았다. 혹시나 궁금하실 분이 계실까 싶어서 하는 말인데, '네 마리 원숭이'는 일본 닛코의 도쇼구 신사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그 신사의 입구에는 원숭이 상 세 개가 있는데 첫 번째 원숭이는 귀를 가리고 있고 두 번째 원숭이는 눈을 가리고 있으며 세 번째 원숭이는 입을 가리고 있다고 한다. 각각 악은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며 말하지도 말라는 뜻이라고.



 실제 도쇼구 신사의 원숭이는 이 셋 밖에 없지만 미국엔 네 번째 원숭이가 있으며 그건 악을 행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알려진 바 있는데, 소설은 그걸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킬러가 스스로 네 마리 원숭이라고 한 것은 그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악행을 저지하는 것이라 그러한데, 5년 전 그의 첫 살인이 그랬듯이 4MK는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간 범죄자를 찾아내 처단한다. 그런데 범죄자 자신을 처단하는 게 아니라 그의 가족을 납치하여 귀와 눈 그리고 혀를 자른 다음 살해한다. 그가 타인의 소중한 존재에게 커다란 아픔을 입혔으니, 그 역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야 한다는 논리다. 역시나 아서 탤벗 또한 무고한 사람은 아니다. 그가 행한 죄의 대가로 숨겨둔 자식인 에머리가 납치된 것이다. 그는 과연 어떤 죄악을 저질렀는가? 그건 4MK가 쓴 노트에서 밝혀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샘 포터가 주역이 되는 수사 이야기와 4MK가 기록한 노트 이야기는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읽으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 어떤 이야기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블랙홀에 붙잡힌 빛처럼 이야기가 뿜어내는 중력에 마냥 끌려갈 뿐이다. 특히 4MK가 쓴 노트의 기록은 압도적이다. 선정적인 설정과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반전 속에서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동안 허다한 스릴러를 만났지만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 식상함만 느꼈다면 '네 번째 원숭이'를 꼭 한 번 만나보셨으면 좋겠다. 잃어버렸던 스릴러의 재미를 여기서 찾아낼 지도 모른다.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만큼 소설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지만 그렇게 하면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도 밝힐 것 같고 여러 모로 처음 만나 읽어보면서 느끼게 되는 재미를 망칠 것 같아서 그만두련다. 그냥 이 소설의 존재를 모르실 분들을 위하여 '여기 정말 재밌는 소설이 나왔으니 꼭 한 번 만나보시라!'는 의미 정도의 리뷰로 여겨주었으면 좋겠다. 에필로그를 보니, 아무래도 속편이 나올 모양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걸 하루빨리 보게 되기만 바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