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회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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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로 유명한 일본 작가 이케이도 준. 그의 새로운 소설이 최근 출간되었다. 제목은 '일곱개의 회의'.

내가 이케이도 준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한자와 나오키>란 일본 드라마 때문이었다. 일본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드라마라고 하길래 호기심으로 시청했다가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드라마의 원작이 되는 소설까지 읽어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 소설을 쓴 작가가 바로 이케이도 준이었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한자와 나오키'에는 살인처럼 독자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범죄나 거대한 음모 같은 게 나오지 않는다. 전개 되는 건 회사란 조직 사회 내부의 치열한 암투다. 권력을 손에 쥐고 불공정한 일을 획책하는 상사가 있고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거기에 맞서 자신만의 정의를 관철시키는 부하 직원이 있다. 그 대결이 작품을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간다. 연쇄 살인이나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음모가 진행되는 작품에 비해 다소 심심하게 여겨지는 소재지만 그런데도 <한자와 나오키>는 그런 소설 이상으로 재밌다. 한 번 손에 들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쉽사리 놓을 수 없게 된다. '왜 그런 몰입력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그건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마주하는 상황들이 현재 자본주의 속 회사라는 조직 내에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크거나 작거나 하는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리 다를 것 없는.


 이번에 나온 '일곱개의 회의'도 그러하다. 

 오로지 성과를 얼마나 낼 수 있느냐가 전부인 회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했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가 여기서 펼쳐지는 것이다. 먼저 그 드라마가 어떤 것인지 대략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무대는 당연히 회사다. 대기업인 '소닉'의 자회사 중 하나로 주로 주택 설비와 관련된 물품들을 제조, 판매한다. 규모는 중견 급. 그런데 이 회사애서 직원들에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누구보다 높은 성과를 내어서 회사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영업1과 과장 사카도가 회사에서 가장 한량으로 성과도 없고 언제 짤려도 이상할 것 없는 잠귀신 핫카구에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 당했는데, 당연히 일도 안 하고 늘 자기 바쁜 핫카구가 짤릴 것이라 다들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사카도가 징계를 넘어 해고까지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직원들에겐 그야말로 경천동지할만한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내막에 대해선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사카도와 입사동기로 늘 그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하라시마는 최근 사카도의 뒤를 이어 그의 자리로 부임하게 되면서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된다. 그것도 잠귀신 핫카구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이유를 듣는 건 간단해. 하지만 그렇게 하면 넌 한 가지 중요한 권리를 포기하게 되는데, 그래도 상관없어?'(p. 48)





 '일곱개의 회의'는 이처럼 직장 내 괴롭힘 고발 사건으로 촉발된 미스터리를 주된 축으로 하여 진행된다. 이케이도 준은 2화에서 그 사건의 전모를 하나씩 차츰 밝혀나가는데, 장차 그 사건은 회사의 존립마저 좌지우지 하는 커다란 규모로 확장한다. 파급 효과는 회사의 도산과 직원의 전원 실업이라는 엄청난 것이었지만 그것을 가져온 방아쇠는 실로 사소했다. 성과를 내기 위해 한 번 눈 감고 불법의 유혹에 넘어 간 것이 자신 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를 헤어나올 수 없는 위기에 빠뜨린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악마의 유혹은 소설 내에서 단 한 사람만 받는 게 아니다. 그 사건이 수면으로 부상할 때마다 진실을 바깥에 밝혀야 할 책임을 지게 되는 이들 모두가 동등하게 받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연쇄 과정 중, 누군가가 성과 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했다면, 자신 보다 타인을 먼저 돌볼 줄 알았다면 해악의 규모가 그 정도로 증가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진실을 알게 된 자 대부분이 그러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 올 위험과 불이익만 생각했기에 회사에 속한 모두의 삶을 휘청거리게 만드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일곱개의 회의'는 8화에 걸쳐 이러한 과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것도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현실감 넘치는 묘사로 말이다. 덕분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케이도 준은 단순히 사건의 경과만 나열하지 않는다. 소설 속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의 과거를 통해 그가 어떤 인생 경로를 걸어왔는지 밝혀 그 인물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순전히 욕심이 많거나 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약함을 너무 크게 부풀렸고 그것이 안겨준 두려움에 굴복한 것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런에 이런 인물상은 그저 소설 속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회사 속에서 살아가는 이라면 어쩌면 자기 곁에서 혹은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에서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인 것이다. 우리 역시 언젠가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또는 회사에서 인정받고자 높은 성과를 낼수만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적이 있지 않았던가? 더러는 이것이 불공정한 처사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하면 하청 업체가 아주 힘들게 될 거라는 걸 아는데도 모른 척 눈 감고 밀고나가 버린 적이 있지 않았던가? 잠귀신 핫카구의 일갈대로 회사의 영혼을 판 사람이지 않았던가?


 그런 우리에게 이 소설은 핫카구의 말을 빌려 이렇게 힐난한다.


 "영혼을 판 남자의 말로가 고작 이거냐."(p. 325)


 '일곱개의 회의'는 이런 일갈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재밌지만 읽다보면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자문하도록 만든다. 나 또한 영혼을 판 사람은 아니었는지, 나는 얼마나 내 영혼을 잘 지키고 있는지 하는 것들을.


 그런데 그 일갈은 우리 개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개인을 넘어 일본 사회 전체에 보내는 지탄이라고 본다. 최근 코로나 사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 양상은 더욱 일본이라는 나라가 정상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감염의 확산을 막아야 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정부와는 달리, 스스로 나서서 책임을 지려하기 보다는 사태의 진실을 감추거나 그 책임을 남에게 떠맡기는 듯한 처사를 점점 더 많이 목도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일본에서 코로나가 얼마나 커다란 규모로 확산될 것인지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일곱개의 회의'에서 주축이 되었던 사건의 전개 양상과 너무나 흡사하다. 소설 속 책임 있는 자들이 은폐와 방관으로 일관하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못 막아 파멸이라는 철퇴를 맞았듯이 지금의 일본의 관료들 또한 그러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 속 비극은 나사라는 아주 작은 부품이 가져온 것이었다. 조직에서 개인은 종종 나사에 비유된다. 나사가 맡은 자리에서 제 역할을 잘 해야만 기계 전체가 제 모습을 잘 유지하고 돌아가듯 조직 내 개인 또한 그러하다는 뜻이리라. 이는 소설이 잘 보여준 것처럼 거대한 조직의 운명도 나라는 아주 작은 나사에 달려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설 속 사건도, 현재 일본의 모습도 나사가 자기가 짊어져야 했던 책임을 제대로 했더라면 보다 긍정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물론 그 책임이란 조직이 원하는 성과가 아니라 보다 고귀한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는 결단을 뜻한다. 그것이 바로 핫카구가 강조하는 영혼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영혼을 지킬 때, 그 영혼의 목소리에 따르는 결단을 내리고 실천할 때 나사는 더이상 단순한 하나의 부품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한 거대한 조직의 운명마저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이처럼 보다 고귀한 윤리적 가치를 따르는 건 자신의 품격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회사의 평가는 최하였지만 유일하게 자신의 영혼을 팔지 않았던 잠귀신 핫카구가 그 누구보다 거대한 존재감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리라.


 '일곱개의 회의'는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여 책임을 지는 행위가 어떻게 자신 또한 구원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제목처럼 회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바로 나 자신과의 회의를. 영혼을 단단히 지킬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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