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퍼슨
크리스틴 루페니언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크리스틴 루페니언의 ‘캣퍼슨 단편집이다

 표제작인 ‘캣퍼슨 포함하여 모두 12편의 단편이 여기에 실려 있다무엇보다 표지가 눈길을 끈다한창 키스를 나누고 있는 남녀의 입을 클로즈업한 일러스트다



 독자는  표지에서 무엇을 짐작할  있을까

 E.L 제임스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처럼 야한 소설틀린  아니다. ‘캣퍼슨 문득 2000년에 HBO에서 방영한 드라마 ‘섹스   시티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 혹은 놀라움을 생각나게 했으니까그러나  소설은 그걸 추구하고 있지 않다 보다는 관심과 사랑에 어리고 있는 폭력을  많이 다룬다표지의 키스 또한 마찬가지다사실 이건  번째에 실린 ‘  유어 게임에서 주인공인 열두  소녀 제시카에게  어른 노숙자가 갑자기 달려들어  키스를 표현한 것이니까 말이다.(이게 정말 그런 것인지 확인한 것은 아니다다만  생각으로  번째 단편에서      키스가 내내 주인공을   들게  정도로 두려움을 남기기 때문이다.)  마디로 야한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의 이면에 깃든 폭력성에 초점을 맞춘 어두운 사랑 이야기다.


  날개에 실린 작가에 대한 소개글을 보니 그녀는 자신을 ‘스티븐 킹을 읽으며 자란 아이라고 밝혔다고 한다그래서 그런지 스티븐 킹의 흔적이 보인다. ‘  유어 게임 그렇고(후반에 충격적인 내용이 있다.) ‘정어리 그렇고( 역시 마찬가지!) ‘성냥갑 증후군 그렇다.( 또한 마지막이 섬뜩하다.) 스티븐 킹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캣퍼슨’ 역시 마음에  것이라 생각한다.


 ‘캣퍼슨 등장하는 주인공 여성들은 연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에게 닥쳐온 난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캣퍼슨에선 처음엔 동경했으나 만나면 만날수록 실망만 안기는 자기보다 한참 연상인 남자와 헤어지고 싶은데도 그러지 못해 고민하는 여성이 주인공이다결국 그녀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는 친구가 무작정 주인공인 척하고 보낸 결별의 문자 덕분에  남자와 헤어지게 된다 번째 단편의 주인공 제시카 역시 어른인데다 찰스 맨슨을 신봉하는 위험한 남자라는  알면서도 자정에  둘이 만나자는  남자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풀장의 소년에선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정립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등장하며 ‘성냥갑 증후군에서도 자신의 진짜 고통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지 직접 헤아리지 못하고 오직 남성의 권위에 기대어 규정하는 여성이 출연한다아마도 이토록 자주 보이는 여성들의 수동성은 현재 사회의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한 반영으로 보인다그렇게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제한한 영역 안에서 관심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폭력을 그리는 것이 바로 단편집 ‘캣퍼슨 것이다그녀의 소설이 발표 당시 미국에서 미투 운동과 관련하여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그것도 이런 폭력성을 두드러지게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어떤 분들에겐 주인공 여성들의 행태가 답답하고 자주 스티븐  식의 판타지적인 해결법을 제시하는  불만으로 다가올  같다그러나 내게는 그만큼 지금 여성을 가두고 있는 현실적인 한계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의 방증으로 보인다.





  해결의 어려움은 어디서 연유하는가?

 나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단편들이 ‘나쁜 아이 ‘좋은 남자라고 생각한다. ‘나쁜 아이에선 최근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우연히 자신의 집에 동거하게  남자에 대해 처음엔  뜻이 없었다가 그를 관객으로  자신들의 연기에 심취한 나머지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꾸만  남자에 대한 지배욕을 키워만 가는 남녀 커플이 등장한다. ‘좋은 남자에선 자신을 여성들에게 ‘좋은 남자라고 여기는그러나 여성들이 그다지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외모를 지닌 남성이 주인공이다.


   단편에서 두드러지는  ‘연기(performance)’

 ‘나쁜 아이 커플도, ‘좋은 남자 주인공도 모두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끊임없이 신경쓰면서 자기 검열을 한다커플은 처음부터 그러고 싶어서 그런  아니었다하다보니 거기에 중독된 것일 뿐이다. ‘좋은 남자 주인공 또한 나중에 스스로 고백하는 것처럼 본성이 그랬던  아니다부족한 외모를 가진 그가 원하는 연애를 하기 위해선 그런 남자인   필요가 있었기에 스스로 속일 정도로 충실하게 연기했을 뿐이다.


  아무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그는 그녀들에게 그렇게 말하려 애쓴다그저 나를 봐주고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길 바란 것뿐이야문제는 모두  착각이었다는 거지나는 좋은 사람인  가장했고 이후에는 멈출 수가 없었어.(p. 274)


 그들은 연기했고  연기에 중독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었는가

  연기가 바로 자기 인정의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쁜 아이 커플도, ‘좋은 남자 주인공도 털어놓는다자신들의 연기를 통해 점점  커지는 자신의 존재감이 중독이라는 궤도에서 이탈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가없는 과시와 그것을 통한 자기 긍정의 욕구가 있었을 뿐이다연극의 연기는 관객을 중심에 두지만  연기에선 정반대다그들은 연기를 통해 자신들이 참여자를 끌어들인 관객인 상대방을 오직 자기 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으니까 말이다이런 타자에 대한 태도가 현재 여성들을 두려움에 젖게 만들고 연약하게 몰아가는 남성 중심 사회의 근본에 있지 않은가 묻고 있는 것이다.


 ‘성냥갑 증후군에서 드러나는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남성들의 여성들이 가진 고통의 규정이나 ‘무는 여자(Biter)’에서 어릴 때부터 자주 물었던 여성을 그걸 부끄러운 병으로 규정하고 치료하려 했던 세상의 모습에 비추어   그러하다이는 여성의 히스테리를 정신병의 일종으로 치부했던 초기 정신 의학의 행태와 유사한데 물론 이런 남성 중심 사회의 처방은 아무 효력이 없는 것으로 입증된다. ‘성냥갑 증후군 여성이 가진 고통의 근본은 실재할 뿐만 아니라 남성에 의해 전혀 근절되지 않으며 ‘무는 여자’ 역시도 고의적인 남성의 폭력에 어릴 때부터 독립적인 자기 정체성의 주장이기도 했던 ‘무는  폭발하듯 발현되니까 말이다결국 나를 위해 타인을 도구로 쉽게 전락시키는 사회 혹은 문화의 근본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역설하는 것이다.


 이렇게 ‘캣퍼슨 여성에게 폭력적인 현실을 스케치하면서  폭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또한 짚어가는 작품이다그러니 표지로 지레짐작해선 곤란하며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로 심리 묘사도 뛰어나 가볍게 읽으면서 오늘 우리 사회의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한 좋은 작품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덧붙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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