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변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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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으로 글을 시작해 보고 싶다. 나라는 정체성은 정말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이들을 보면 뇌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 같다. 지인도 잊고, 가족도 잊고, 끝내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리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뇌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한다면, 이식된 그 사람 또한 뇌로 인해 뇌가 가진 정체성을 가져버리게 되는 것일까? 모든 장기 이식이 가능해진 이 시대에 뇌 또한 언젠가 이식되지 말란 법은 없기에 이런 호기심을 품어보는 것도 그리 몽상만은 아니리라. 그렇지 않아도 예전 어떤 책에서 심장을 이식 당한 이가 그 심장을 기증한 이의 부모에게 마치 자기 부모를 만나는 것만 같은 특별한 감정을 품게 되었다는 걸 읽은 적이 있다. 기억과 사유가 불가능한 심장마저 그러하다면 뇌가 이식되었을 경우 정체성의 혼란 혹은 변화는 아무래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갑작스레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최근 이런 소재를 다루고 있는 소설 하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소한 변화'다.원래는 91년에 발표된 '변신'이라고 한다. 그것을 완전히 새롭게 번역하고 저자와 협의를 거쳐 '사소한 변화'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발간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주인공 나루세 준이치가 부동산 중개사 사무실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범인에게서 창문으로 도망치는 소녀를 구하려다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나루세는 죽지 않았다. 도겐 박사가 세계 최초로 성인 뇌이식 수술을 성공하여 다른 이의 뇌를 이식한 채, 멀쩡하게 살아난다. 이대로 기적처럼 두번 째로 주어진 새로운 삶을 사랑하는 메구미와 함께 살아가나 했는데 살다보니 차츰 자신에게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나루세는 원래 그림을 좋아하고 메구미의 초상화를 즐겨 그렸었는데, 어느새 그림에게 관심이 없어지고 예전만큼 그림도 잘 그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 아주 즐기며 보았던 영화들조차 이젠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 없고 눈물을 흘리며 보았던 영화조차 따분하게 생각될 뿐이다. 변한 건, 취향과 능력만이 아니다. 성격까지 변해서 주위 사람과 별 트러블 없이 잘 지내던 그가 곧잘 타인들을 비난하고 폭력까지 휘두르게 된다. 자꾸만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자신에게 혼란을 느끼면서도 죽을 뻔했던 사건의 후유증이라 여기며 넘겼지만 더이상 그럴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메구미에 대한 마음이 변하여 이제 더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옆 방에 살고 있는 대학생이 하도 한심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 분노가 치밀어오른 커다란 살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칼까지 거머쥐고 들어가서 죽여버릴까 문 앞에서 서성일 정도로.


 제목처럼 더이상 사소한 변화로 치부할 수 없게 된 나루세는 이렇게 된 이유가 뇌 이식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이식된 뇌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도겐 박사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것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한 도겐 박사의 반응에 더욱 의혹을 가지게 된 나루세는 혼자 힘으로 뇌를 기증한 자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아주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루세 준이치는 뇌를 통째로 이식당한 것은 아니다. 그저 회생시킬 수 없는 일부를 이식받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이치는 변화를 느낀다. 점점 더 기증자의 취향과 성격이 되고 기증차럼 행동하고 생각하게 된다. 육체는 온전히 준이치의 것이지만, 그는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뇌는 그냥 뇌일 뿐이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도 10만 분의 1이라는 기적의 확률로 다시 얻게 된 삶이니만큼 그냥 삶의 새로운 출발이라고 받아들이면 안되겠느냐고 말하는 도겐 박사에게 준이치가 이렇게 절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신은 몰라. 뇌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지껄이는 당신은 말이야. 뇌는 특별한 거야. 당신이 상상이나 할 수 있어?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내가 달라. 내일 눈을 뜨면 거기 있는 건 오늘의 내가 아니지. 먼 과거의 추억은 전혀 다른 사람 것이 되고 말지. 그렇게밖에 느껴지지 않아. 오랜 시간을 들여 남겨온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려. 그게 어떤 건지 아나? 가르쳐줄까? 그건... (...) 그건 죽음이야. 살아 있다는 건 그저 숨이나 쉬고 심장이 뛰는 게 아니야. 뇌파가 나온다고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산다는 건 발자국을 남기는 거지. 뒤에 남은 발자국을 보며 저건 분명 내가 낸 거라고 알 수 있어야 살아 있는 거야. 하지만 지금 나는 예전에 남긴 발자국을 봐도 내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이십 년 이상 살아온 나루세 준이치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고."(p. 270)


 자신은 사라져버릴 것이라며 준이치가 예견한 그대로 준이치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 원래 제목 그대로 '변신'하는 것이다. 파리 하나 죽이지 못했던 그가 단지 시끄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개의 목을 자르고 끝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운명은 가혹하게도 10만 분의 1의 확률로 일어난 기적을 그대로 저주로 바꿔버린 것이다. 도대체 누구의 뇌이기에 준이치를 차가운 살인마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과연 준이치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는 가운데 이제 준이치의 살의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인 히무라 메구미에게로 향한다.


 일본에서 100쇄나 찍고 무려 125만 부나 팔린 작품답게 꽤 흥미롭고 재밌는 작품이다. 뇌 이식이라는, 다소 공상과학적인 설정이지만 탄탄한 리얼리티로 독자를 무리없이 그 세계에 안착하도록 하고 있으며 타인의 뇌 이식과 관련된 정체성 혼란의 문제도 나루세 준이치를 둘러싼 일상의 변화와 심리의 세세한 묘사를 통해 독자 피부에 와 닿도록 만들고 있다. 때문에 후반에 가서 이뤄지는 나루세 준이치의 청천벽력 같은 변화도 그리 허황되게 여겨지지 않는다. 뇌 이식과 완전히 달라지는 정체성 때문에 여러모로 조던 필의 영화 '겟 아웃'이 연상되는데, '사소한 변화' 또한 그 영화만큼 흥미로운 텍스트이니 그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이 소설 또한 만나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도겐 박사의 이름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혹시 이 소설을 오마쥬 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양서류 인간'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SF 작가인 알렉산더 벨라예프의 '도웰교수의 머리'라는 소설이다. 


 우리나라엔 70년대에 아동용 SF로 이렇게 소개된 적이 있다.

그 때의 홍보 문구가 '죽었어야 할 도웰 박사가 머리만 살아 있다니!'였다.


 벨라예프의 데뷔작으로 러시아에서 영화까지 만들어진 바 있다. 거기서 죽은 인간을 되살리기 위해 뇌를 연구하는 학자가 바로 도웰 교수다. 뇌를 통해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점에서 둘이 하고 있는 일도 유사하므로 '도겐'이란 이름은 이 '도웰'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그런데 비슷한 건 이 하나만은 아니다. 그 소설에서 권총에 맞아 숨져 나중에 머리만 다시 살아있게 되는 카페의 댄서, 빌케는 나루세가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과정과 비슷하고 또한 그 빌케는 나중에 다른 어떤 여성의 신체와 접합하여 온전한 육체를 소유하게 되는데 그 원래 신체의 주인은 화가였고 빌케는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도 '사소한 변화'의 설정과 닮아 보인다. 이 정도라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작품을 쓰면서 벨라예프 작품에 영감을 받았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말길 바란다. 그저 '사소한 변화'를 좀 더 재밌게 즐기기 위한 조미료 같은 거라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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