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 기시미 이치로의 사랑과 망설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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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책이  기다려지는 작가가 있다기시미 이치로도   하나다.

 그의 '미움받을 용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에 소심하고 서투른 나를 더이상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게 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는 가운데 보다 용기를 갖고 타인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 주었다. 그런 그 내게 무엇보다 시선을 바꾸는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살면서 내가 느낀 피로와 가지게 된 염려와 공포가 사실은 내가 엉뚱한 곳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하여 정말로 바라보아야 할 곳을 주시하도록 해주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의 신작을 늘 기대하게 된다. 이번엔 또 어떤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줄까 하고.


  그러던 차에이번에 나온 그의 책인,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만났다.

 이번엔 내가 가장 많이 고민하기도 했던 사랑에 대한 것이라 더욱 반가웠는데 책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 또한 한결 같아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많이 해서 이젠 너무나  안다고 여기고만 있었던 사랑에 대해 내가 사실은 많은 것을 오해하고 있었으며 잘못된 안경을 쓰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정말 깊이 느끼도록 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내게 사랑은 정말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 적지 않은  사랑의 역사에서 사랑이 쉬웠던 적은   번도 없었다때로는 내가 준만큼 주지 않는 상대를 보며 그걸 느꼈고 때로는 도저히 이해할  없는 이유로 결별을 선언하는 상대를 보면서도 그걸 느꼈아무리 많은 노력을 하고 세심하게 살펴도 싸움은 있었고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다행복하기 위해서 사랑했는데 정작 가장 커다란 불행을 사랑이 가져다  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사랑은  질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사랑 자체에 대해 생각해  적은 없었다. 사랑이라는 개념은 내게 당연한 것이었고 오직 사랑이 가져다주지 못하는 행복에 대해서만 의혹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솔직히 말해  책의 제목인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질문은  또한 뇌리에 자주 떠올린 것이었다그러나 무수한 질문만 쌓일 뇌리를 눈부신 빛으로 채우고 마음을 시원하게 만드는 대답은 찾지 못했다더러 사랑에 관한 책도 찾아봤지만 어떤   문제와 전혀 무관한 뜬구름만 잡고 있는  같았고  어떤 건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있는 잔재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시미 이치로의 책은 과연 달랐다.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가늠하게 했고 어떤 사랑을 해야 내가 그토록 바랐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도 깨닫게 했다. 다 읽고 난 뒤의 내 마음은 그야말로 오랜 가뭄 끝에 쏟아지는 장대비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현학적이거나 복잡한 설명 덕분이 아니다. 나는 그리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현명하지도 않으므로 만일 그랬다면 내 마음은 더 복잡하기만 했을 것이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문장과 차분한 어조로 나 또한 사랑을 하면서 많이 했던 친숙한 질문들을 통해 그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저 손만 잡아 끄는 인도는 아니었다. 그건 주로 사랑의 풍경에서 어디를 봐야할지 가리키고 짚어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대부분은 사랑을 하면서도, 잃어버린 사랑의 아픔과 미련을 곱씹으면서도 미처 응시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는 먼저 사랑이 힘들었던 내게 힘든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나는 사랑이 쉽지 않은 것이 내가 너무 부족한데다 사랑에 서툴러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는 내가 특별히 못나서도 아니고 한 개인의 문제도 아니라고 말한다. 연애든, 결혼이든, 쉽지 않은 것은 모두 마찬가지인데 그건 우리가 거기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걸 아들러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전한다.


 우리는 혼자서 달성할 수 있는 과제와 여럿이 함께 달성해야 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교육을 받아왔지만, 둘이서 수행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배워오지 않았습니다.(p. 26)


 여기서 '둘이서 수행한다는 말'과 '배운다'는 말이 중요하다. 이 책이 사랑에 대해 보여줄 가장 중요한 것들이 이 두 가지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사랑할 때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랑할 때, 남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은 자신만 생각할 때가 많다. 


 이 말을 시작으로 저자는 그간 우리가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많은 고정관념들을 바꾸도록 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 넌지시 암시하듯이, 사랑은 어디까지나 내가 잘하고 못하고에 달린 지극히 혼자만의 문제라 흔히 생각하지만 실은 둘이 대등하게 참여하여 함께 만들어 가는 작업이며 많은 이들이 결혼을 연애의 골인 지점이라 여기듯이 사랑을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행위이며 어떤 지점에 이르면 완결되는 존재라 치부하고 있지만 그와 다르게 진실로 사랑엔 종착지 같은 것은 없으며 과정 속에서 늘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비로소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랑은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감정의 영역으로 특별히 배울 필요도 없고 의지를 들여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웬걸, 사랑 역시도 그것을 안정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선 늘 의지를 들여야 하며 보다 나은 사랑을 원한다면 계속해서 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미처 보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했던 사랑의 의미와 면모들을 바로 내가 했었던 고민과 주위에서 쉽게 보게 되는 일들을 경유해 친절하게 짚어주니 사랑에 대해 그동안 내가 참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1부의 연애와 2부의 결혼에 뒤이어 본격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3부가 참 많이 와닿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부분 역시 그간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오해와 착각을 많이 불식시켰는데, 무엇보다 사랑을 생각할 때 '사랑받는다'는 수동적인 측면말고 '사랑한다'는 능동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게 그랬다. 우리는 워낙에 자기 중심적이라 타인을 위한다는 사랑을 하면서도 내가 사랑하는 것보다는 내가 사랑받는 것에 더 많이 천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사랑함의 모자람보다 내 사랑받음의 모자람에 서운함이 들 때가 많은 것이다. 기시미 이치로는 무엇보다 이러한 자기 중심적인 사랑에서 이탈할 것을 권한다.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직시하고 이런저런 핑계나 구실을 대지말며 사랑이 가진 이상(理想)적인 정의대로 행하라고. 


 중요한 것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분히 고찰해가겠습니다.(...) 또한 설사 이상적인 사랑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사랑은 이래야 한다는 그 이상을 알고 품고 있으면, 현실의 사랑에 대한 태도 역시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도저히 그런 식으로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상이야말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준입니다.(p. 125)


 그리하여 그는 세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정신과 의사인 가미야 미에코의 말을 빌려와 사랑의 대상을 한정하지 않는 '비인칭적인 사랑'이고, 


 비인칭적인 사랑이 개인적인 사랑의 기초가 되어야만 합니다. 개인적인 사랑이란 비인칭적인 사랑을 알고난 뒤에 비로소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내가 유일무이한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싫지만 당신은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당신은 유일무이한 당신은 아닙니다. 만약 마음이 바뀌면 금세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사람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p. 128)


 다른 하나는 마르틴 부버의 개념을 빌려와 사랑하는 상대를 소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바라볼 것을 말하는 '해후(邂逅)'이며, 마지막으로 그 관계 속에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에네르게이아(energeia)' 개념을 빌려서 말하는 '지금-여기'에 대한 중시이다.


 살아있다는 것을 에네르게이아로 파악하면 인생의 어디쯤에 있는지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인생은 항상 완성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경험도 에네르게이아입니다. 다시 말해 처음과 끝이라는 식의 뭔가가 있는 게 아니고 사랑의 어떤 단계나 완전한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무시간성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경험에 있어서는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되느냐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p. 147)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입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가지 일이나 앞으로 생길 일을 생각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지금 여기'를 둘이서 열심히 살 수 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져 갈 것입니다.(p. 229)


 이러한 사랑의 보편성과 과정의 중시는 지금까지 내가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불안의 진실된 모습을 보게 하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사랑을 하면서 그토록 불안하고 근심했던 것은 대부분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는 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과 사랑의 완성된 형태를 가정하고 어서 빨리 거기에 이르고자 하는 조급함에서 기인하고 있었다. 그만큼 난 상대를 '가지냐 못 가지냐?'라는 식의 소유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었고 함께 한 대부분의 순간들을 도구적인 의미로만 간주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사랑하는 나 자신보다 사랑받는 나 자신을 더 중히 여긴 결과였으며 사랑이 실패로 끝났을 때 나는 언제나 날 버린 상대를 탓했지만 정작 책임을 묻고 제대로 따져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것 또한 절실히 깨달았다. 불안과 근심이 상대에게서 온다고 생각했지만 진실은 모두 나 스스로 일으킨 먼지구름이었던 것이다.


 알고보니 난 용기가 없었다.

 기시미 이치로의 '용기'란 다름아닌 관계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p. 33)다. 나만 바라보고 나만 위하는, 자기 중심적인 관계가 아니라 나와 남을 모두 대등한 인격으로 존중하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매 순간의 경험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런 관계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다. 이건 다시 말해 타인을 위해 나를 내려놓는 용기이며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용기이다. 저자에 따르면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랑을 확고한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파트너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안락하게 만드는 것임을 배워야 한다.( p. 173)


 맞다. 나는 사랑을 할 때 파트너보다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안락하게 만드는 것을 더 많이 생각했다. 상대가 그렇게 되어야 사랑이 안정되는 것인데 내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더 많이 생각했으니 사랑이 늘 불안과 근심의 존재가 된 것도 당연했다. 이런 식으로 기시미 이치로는 여러 번 사랑을 하면서도 한 번도 보지 않았고 묻지 않았던 사랑의 의미와 진정한 사랑의 태도를 응시하게 하면서 내 모습 또한 직시하게 했다.


 이 책 초반에서 그가 말했던 그대로 내 '라이프스타일'을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아들러는 사랑을 '라이프스타일'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p. 49)고 말했단다. 상대가 바뀌어도 똑같은 실패를 거듭하는 것은 연애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제 이 말은 내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가 되었다. 사랑의 실패에 대한 내 반응은 언제나 분노와 원망일 뿐, 나를 법정에 새워놓고 찬찬히 살피는 자성(自省)의 단계로는 단 한 번도 나아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 지축(地軸)을 옮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자기 중심에서 타자 중심으로. 기시미 이치로의 말마따나 나를 온전히 내던지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이렇게 하다 실패하면 나만 진짜 바보되는 것 아냐?' 하면서 계산하지도 말고


 라이프스타일은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고 '바꾸고 싶지 않다'는 것이 본심입니다.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으로 대처하면 다음 한 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물론 그건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일입니다. 이를 두려워하여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싶지 않다, 바꾸고 싶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이 당신의 연애를 불행하게 한다면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용기를 내야만 합니다.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p. 52)


 사랑과 관련하여 내 라이프스타일을 돌이켜보건대, 난 저자의 표현 그대로 '응석받이'였다. 아마도 첫째로 태어나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 원하는 걸 쉽게 얻었던 내 '최초의 기억(p. 53)'이 날 그렇게 형성했을 것이다. 


 사랑엔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사랑엔 이해타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 여부로 사랑을 선택하는 일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람은 내게 있어서 유용한 사람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응석받이로 자란 사람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p.117)


 이런 '응석받이'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기시미 이치로는 거기에 대한 설명 역시 빠뜨리지 않는다. 3부까지가 사랑과 그 방법에 관한 총론적인 부분이라면 4부인 '행복해지기 위해 알아야 할 사랑의 기술'은 각론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불행한 러브스토리를 피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초래하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여기에 나와 있는 것이다. 먼저 이 부분을 보고 제목만 읽는다면 사랑에 대해 말하는 책에서 흔히 들었던 말로 여기기 싶겠지만 나처럼 3부까지 전개된 기시미 이치로의 인도로 사랑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 이라면 여기에 있는 그 어느 말도 쉽사리 흘려 듣지 못할 것이라 믿는다. 예를 들어 상대에 대한 관심만 봐도 그렇다. 자주 우리는 내가 관심 받는 것만큼 상대에게 관심을 주면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기시미 이치로는 사랑은 절대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설령 원하는만큼 관심 받지 못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상대방에게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아들러가 말하는 '공동체 감각(p. 186)'이며 무엇보다 바로 그런 관심이 응석받이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킬 것이라면서 말이다.


 이해 역시 그러하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이해하기 보다는 더 많이 이해받길 원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구구절절 변명부터 나오며 남탓부터 먼저 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모두 나는 상대를 잘 이해하고 있는데 정작 상대는 나만큼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하지만 저자는 상대를 이해한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라고 말한다. 상대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일단 잘 알 수 없다는 걸 전제하고 더 잘 알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라는 의미로 말이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타자를 내 쪽으로 끌어들이지 말고 먼저 타자 곁으로 가서 있어주기를 권한다. 힘겨루기를 멈추고 이해보다는 찬성부터 해주라는 등, 그 방법을 세세하게 알려주면서...


 물론 앞서도 언급했듯, 이 말들은 그리 새롭지 않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 하더라도 의미를 제대로 새기고 나면 전혀 다르게 들린다. 말이 마음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할 정도로 깃털처럼 가벼워진 것은 그 의미를 헤아리지 않고 상투어처럼 남발한 탓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가 허다하게 듣고 보았던 사랑의 조언 또한 그렇지 않을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된 가르침 없이 암기하듯 무작정 들었고 또한 그 중심이 상대가 아니라 오롯이 내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 나아가 방법이 지니는 의미의 비중을 소홀이 했던 것이다. 달리 보면 같은 말도 얼마든지 다르게 보인다. 4부에 나와 있는 말들이 정녕 그러하다. 제대로 되새기고 조금씩이나마 항상 실천하다보면 그 모든 것이 진정한 사랑에 걸맞는 라이프스타일로 변화시키는 초석이 되어 줄 것이다.


 이만하면 왜 내가 이 책에서 진정 해갈되는 기분을 느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까?

 여하튼,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사랑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해 본 것 같다.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주인공 존 쿠삭처럼 과거의 사랑을 계속 떠올리면서 가장 근원적인 차원에서 그 사랑이 어쩌다 실패에 이르게 되었는지 돌이켜보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가장 근원적인 차원이라 말하는 것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고 그 시야 속에서 단 한 번도 소환하지 않았던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심판대에 올려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표현한만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음을. 내 사랑은 그저 나만 위하고 더 많이 가지려 애쓰는 제국에 지나지 않았음을. 그러므로 내 사랑 역시 타자를 식민지로 삼은 제국이 예외없이 멸망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었음을.


 그러나 이런 진실을 확인했지만 예전처럼 앞으로의 사랑이 더이상 두렵지는 않다. 오히려 더 기대되고 가급적 얼른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당연히 제대로 된 사랑의 의미와 방식을 소상하게 알려준 기시미 이치로 덕분이다. 얻은 게 많아서 아무래도 단 한 번의 독서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줄기차게 이 책을 벗하게 될 듯하다.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란 질문에 대해 당당하게 '행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내 사랑을 위한 든든한 지원군 삼아서. 

 나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서 부디 세상에 행복한 사랑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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