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성역 1 - 노아즈 아크, Novel Engine POP
카지오 신지 지음, toi8 그림, 구자용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일본의 문학상 중엔 '성운상'이라는 게 있다. 한 해 동안 발표된 SF 소설 중에 가장 좋은 작품에다 주는 상이 바로 성운상이다. 1970년에 시작된 것으로 역사도 제법 오래되었다.

이 상을 수상한 작품 중에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으로는  고마츠 사쿄의 '일본 침몰'이나 칸바야시 쵸헤이의  '전투 요정 유키카게',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 아리카와 히로의 '도서관 전쟁'등이 있다. 수상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꽤 권위있는 상이라 할 만하다. 갑작스럽게 성운상 얘기를 하게 된 것은 또 하나의 성운상 수상작이 우리나라에 최근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카지오 신지의 '원수성역'이다. 수상한 해는 2016년.




 카지오 신지는 1947년 생으로, 1971년에 SF 단편으로 데뷔했으니 경력이 꽤나 오래된 작가다. 91년에 '셀러맨더 섬멸'로 일본 SF 대상까지 수상한 바 있어 꽤 명망 있는 SF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2005년 부터 시작하여 10년 넘게 써왔던 소설이 바로 '원수 성역'이다. 모두 3권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그 중 첫 권인 '노아즈 아크'가 이번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다.


 여기서 '노아즈 아크'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뜻한다. 이런 제목이 나오게 된 연유가 있다. 소설에 나오는 지구 역시 성경에서 그랬던 것처럼 종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홍수는 아니다. 원흉은 태양이다. 태양의 불꽃이 점점 커져 그 화염 속에 지구가 삼켜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라면 지구 전체에 일대 혼란이 일어나야 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미리 안 사회지도자 계층이 철저하게 숨겼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지구를 탈출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말이다.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일상을 영위하는 동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재력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노아즈 아크'란 우주선을 만들어 170만 광년 거리에 있는, 지구와 똑같은 환경을 가진 '에덴'이란 별로 달아날 준비를 착착 진행한다. 자신의 죽음마저 위장할 정도로 아주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했기에 많은 지구인들은 그들이 우주로 떠난 뒤에야 종말의 시계가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믿었던 이들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도. 하지만 절망하기는 이르다. 대통령의 딸을 사랑했던 공학도 이안에 의해 우주선 없이도 '에덴'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영화  '스타트렉'에서 흔히 보았던 순간 이동 기술. 소설에선 '점프'라 부르는 그 기술은 사람을 그대로 순간 이동시켜 170만 광년 거리에 있는 별로 보낼 수 있다. 어떻게 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선 자세히 따지지 말자. 이 소설은 닐 스티븐슨의 '세븐 이브스' 같은 하드 SF가 아니니까.


 그러나 이 '점프'라는 기술은 그리 안전하지 않다. 보내긴 보내지만 어디로 떨어질 지 미리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하늘에 떨어져 추락사할 수 도 있고 바다에 떨어져 익사할 수도 있으며 아예 별에 도착하지 못하고 우주 공간에 내던져질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무사히 별에 도착할 확률은 1700분의 1. 그래도 몇몇은 살아남아 '에덴'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소설 처음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사히로 역시 그 중 하나. 그는 가족 모두와 함께 점프했으나 오직 자신만이 살아서 별에 도착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슬퍼할 겨를이 없다. 여기저기 사람을 잡아먹는 기묘한 생물이 많이 사는 그 별에서 생존을 해야 하니까.


 그렇게 계획 없이 점프한 이들에 의해 '에덴' 여기저기에 부락이 만들어진다. 오직 생존만이 지상 목표였기에, 그 생존을 위해 부락민 전부의 힘을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었고 그로 인해 부락을 제외한 모든 바깥 영역을 위험과 적대의 곳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어 때로 점프한 이들이 만든 부락 서로도 상대방을 식인 괴물로 여기는 일도 존재한다. 이처럼 다 다르게 살아가는 그들이었지만 하나만은 같았는데, 그건 바로 자신을 버리고 몰래 우주로 달아나버린 '노아즈 아크'에 대한 분노다. 부락민들의 일치단결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벌어지는 종교 행사에서 그들은 한결같이 노아즈 아크에 대해 저주를 내린다. 그 원한을 꼭 갚아야 한다면서.


 이제 제목이 왜 '원수 성역'인지 아셨을 것 같다. 그렇게 노아즈 아크를 원수로 알고 분노와 적대를 표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드디어 노아즈 아크가 착륙한다. 그들은 그들대로 장기간 우주 항행에서 주로 가족 없이 홀로 탄 이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을 막기 위해서 인위적인 이데올로기를 유포시켰다. 그건 바로 지구가 이미 종말을 고했으며 전 우주에 인류는 자기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류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헛되이 목숨을 끊지말고 힘을 뭉치자고 말이다. 당연히 그런 믿음으로 에덴에 상륙한 '노아즈 아크'에게 에덴의 거주민들이 자기와 같은 인간으로 보일 리 없다. 결국 점프한 이들과 노아즈 아크는 제목처럼 보기만 하면 이빨부터 드러내는 사이가 된다. 과연 그 싸움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그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 권이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소개한 줄거리로 '원수 성역'이 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이 뭔지 어쩌면 알아차렸을 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데올로기라는 걸 말이다. 점프민들은 척박한 대지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유포하고 '노아즈 아크' 역시 고급 인력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내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적대 관계는 얼른 1950년대에 존재했던 냉전 시대를 떠올리게 만든다. 어쩌면 정말로 바로 그것을 SF적 상상력에 인류학을 가미하여 풀어내고 있는 게 '원수 성역'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류학 운운 한 것은 소설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단선적으로 전개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독자는 하나의 시야로 작품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노아즈 아크'와 '에덴'과 관련된 사건을 다양한 시야로 보게 된다. 이런 까닭에 이데올로기 같은 문제도 눈에 들어오지만 종말이 예정된 삶도 끝까지 지속할 의미가 있을까 같은 다소 형이상학적 질문도 문득 생겨난다. 하여, 얼른 생각나는 것은 카멜레온인데 이렇게 다채로운 색깔을 지녔기에 재미도 재미지만 성운상을 탄 게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여하튼 좋은 SF란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얼른 2권을 만나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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