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더 포스 1~2 세트 - 전2권
돈 윈슬로 지음, 박산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뉴욕 시민들이 절대 감옥에 가지 않을 사람으로 시장, 미국 대통령, 교황에 이어 마지막으로 꼽을 만한 사람이 바로 뉴욕 형사 데니스 존 멀론이다.

 영웅 경찰.

 영웅 경찰의 아들.

 뉴욕시 경찰청 최고 엘리트팀 소속 베테랑 경사.

 맨해튼 북부 특별수사대.

 무엇보다 숨겨진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사나이이자 그 중 절반을 직접 처리한 장본인. (p. 9)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데니 멀론은 맨해튼 북부의 왕이었다. 그는 권력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특별 수사대 '더 포스'의 리더이니까 말이다. 그는 상부의 명령 없이 자의적으로 수사와 작전을 벌일 수 있었고 체포와 신문 과정에서 불법을 자행에도 간단히 넘길 수 있었다. 마피아도 그를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그들과 온갖 거래를 하거나 심부름을 하며 뒷돈을 챙기고 있었지만 대니 멀론을 비롯한 '더 포스'의 형사들은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커다란 정의를 실현하려면 그런 작은 악행들은 필요불가결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합법적 절차를 준수하며 윤리적으로 형사 일을 해도 뉴욕의 범죄를 근절시킬 수 있다는 이상주의를 경멸했고 그런 면에서 철저한 마키아벨리스트였다. 그런 그들에겐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데니 멀론은 하나의 사소한 성급한 판단으로 몰락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멀론은 그동안 선과 악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위기를 잘 헤쳐나왔다. 그러나 이번에 닥쳐온 덫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살면서 성취한 모든 것,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은 물론 형제나 다름없는 동료들 그리고 자신은 좋은 경찰이라는 자부심. 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과연 다시 한 번 더 데니 멀론에게 운이 따라줄까? 멀론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분명 스타워즈의 대사를 패러디한, '다 포스'의 은총이 그와 함께 하게 될까?


 '개의 힘'으로 이제 우리에게도 제법 이름을 알린 작가, 돈 윈슬로가 새로운 작품을 들고 찾아왔다. 2017년에 출간되어 그 해,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최고의 소설에도 뽑힌 '더 포스'가 바로 그것이다. 뉴욕타임즈만 올해의 책으로 뽑은 건 아니다.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도, 반스 앤 노블스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와 데일리 메일도 올해의 책으로 뽑았다. 비록 언론의 감식안이라는 게 그리 믿을 게 못된다고 해도 이 정도로 많은 이들이 올해의 책으로 꼽는다면야 작품이 확실히 좋긴 좋은 모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도 있지만 이 소설만큼은 그게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실제로 읽어봤더니 나 또한 올해의 책으로 꼽고 싶을만큼 뛰어났던 것이다.




 돈 윈슬로의 '더 포스'는 진정 뛰어난 작품이다. 400여 페이지 가까운 분량으로 두 권이지만 그런 길이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을만큼 페이지터너인데다 인종 갈등을 비롯한 온갖 구조적 모순으로 점철된 미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해부에 서린 압도적인 깊이하며 생생하게 묘사된 등장인물의 삶이 가져다 주는 묵직한 정서적인 울림 또한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이 소설을 읽고 마리오 푸조의 '대부'가 생각난다고 했는데,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킹이 또 과장한 것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정말 나도 대부가 떠오를만큼 그만한 울림이 있었다. 저번에 '개의 힘'을 읽었을 때 이미 그의 역량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이번 '더 포스'는 그보다 더 성숙한 느낌이다. '더 포스' 이전에 나온, '개의 힘' 속편인 '더 카르텔(2015)'도 정말 뛰어난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는 점점 성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순간 나의 바람은 '더 카르텔'을 빨리 만나고 싶을 뿐이다.


 커다란 정의 실현을 위해 사소한 비리와 불법을 거침없이 행하는 형사나 경찰 조직에 대해선 익히 보아왔다. 대표적으로는 미국 드라마인 '더 와이어'가 있을 것이다. 이는 모든 합법과 윤리를 지켜서는 범죄를 제대로 근절할 수 없는 현실의 반영이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내겐 그 모든 게 드라마적 과장으로 보였다. 설마 가장 견제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고 자부하거나 평가받는 미국의 경찰 조직이, 지금이 엘 카포네가 설쳐대는 대공황 시대도 아니고 저토록 비리에 물들어 있을리 있겠어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더 포스'를 읽어보니 그건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뉴욕 경찰 역시 뿌리 깊이 어둠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더 포스'는 그걸 아주 적나라하고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시드니 루멧의 영화인 '형사 서피고'(소설에서 데니 멀론은 비리에 물든 경찰 조직을 홀로 고발했던 서피코(프랭크 서피코)를 배신자라고 욕하지만.)에 영향 받아 무려 5년 동안 수십명의 경찰들을 인터뷰 하면서 이 소설을 준비했다고 하던데, 소설에서 갓 잡은 송어처럼 펄떡 펄떡 뛰고 있는 리얼리티를 보면 빈말은 전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뉴욕 경찰을 비롯한 미국 사회가 개인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썪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멀론에겐 동생이 있었다. 그는 소방관으로 2001년 9.11 사태가 벌어졌을 때 진화 작업을 하다 숨졌다. 멀론에겐 동생의 죽음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 때문에 그는 곁에 있는 가족과 동료를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그러한 무리의 형성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기 마련이다. 무리에 절대 끼어들 수 없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생기니까 말이다.


 '9.11' 이후, 미국은 대체로 그런 길을 걸어왔다. 테러를 빌미로 나와 피아를 구별지었고 피아에겐 차별로 대했다. 그렇게 9.11 이후 더욱 거세어진 미국 보수주의의 흐름을 '더 포스'는 여전히 짙게 남아 있는 인종 갈등을 가져와 매섭게 비판하고 있다. 


 당신이 겪은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동료 경찰들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 나도 이해해. 당신네 경찰들은 모두 프레디 그레이나 마이클 베넷(둘 다 경찰의 발포로 죽은 흑인 소년, 청년들) 죽였다고 비난받는 것이 괴롭고 억울하겠지. 하지만 자신이 프레디 그레이이거나 마이클 베넷이라서 비난을 받는 건 어떤 느낌인지 당신은 절대 몰라. 당신은 당신 직업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을 증오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나라서 사람들이 나를 중오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 당신은 그 파란 경찰 재킷을 벗을 수 있지만, 난 이 피부 속에서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을 이렇게 살고 있어.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신이 백인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건, 이 나라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의... 무게야... 그 어마어마하게 진이 빠지는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눈을 피곤하게 해서 가끔은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고 아파.(p. 239)


 이것은 멀론의 연인이자 흑인인 클로데트가 하는 말로 이 소설에서 내가 꼽고 싶은 최고의 문장이기도 하다. 어떤 정체성의 강조는 그 정체성이 될 수 없는 자의 아픔과 희생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인종 갈등은 그 대표적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은 9. 11 이후 자기만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9.11 이후 미국은 '애국자법'을 제정하고 국토안보부를 창설하였다. 애국자법은 모든 분야에 대해 사법집행기관의 감시를 강화하는 것으로 개인의 사생활과 통신의 자유를 비롯한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감시에 있어 국토안보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 이쯤 되면 왜 돈 윈슬로가 멀론의 동생을 9.11에서 죽게 하고 그 트라우마에 의해 '더 포스'를 창설하는 식으로 설정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이 그대로 미국이 국토안보부를 창설하는 과정과 닮아 있기에 그런 것이다. 즉, '더 포스'는 '국토안보부'의 문학적인 비유다. 국토안보부는 실제 인권 침해를 하면서도 테러 방지라는 더 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걸 용인했다.(오바마 역시 이와 비슷한 이유로 '애국자법을 연장하는데 서명했다.) 이건 멀론의 '더 포스'가 마피아들과 더러운 뒷거래를 정당화할 때 하는 것 그대로이다. 소설 '더 포스'는 그렇게 걸어온 미국이 어떤 결과를 낳았나 보여준다. 그것이 어떤 오늘의 현실을 빚어놓았는지를 말이다. 그들은 보다 더 단단한 내부의 결속을 위하여 외부를 도려내고 버렸지만 그렇다고 내부의 연대가 단단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부의 고인 물이 썪어간데다 내부와 외부의 대립과 갈등은 더 들끓어 아주 작은 것도 방아쇠가 되어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었다. 그만큼 약하고 아슬아슬한 상태가 바로 미국이었던 것이다. 소설 후반은 그걸 극명하게 재현하고 있다


 물론 '더 포스'엔 이러한 사회 비판적인 주제만 있지 않다. 이 소설은 장대한 인간 드라마이기도 하다. 선과 악, 개인과 제도 사이에서 회오리 바람 속의 연처럼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함,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아이러니한 삶의 순간들, 가난과 고난 그리고 그것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 용기라든가,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사소한 악행을 거듭하다 되돌아 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치닫는 인생들하며... 그런 드라마가 유유히 펄쳐진다. 사회적인 주제에 맞춰 읽든, 인간드라마에 맞춰 읽든, 그 어느 쪽으로 읽어도 '더 포스'는 포만감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물론 그냥 재밌는 스릴러로 읽겠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경험하고 최근 양승태의 사법 농단과 국민 여론을 깡그리 무시하고 영장 기각을 남발하면서 사법 농단 세력을 비호하기에 여념이 없는 사법부를 비롯하여 날이 갈수록 자신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자들에게 혐오와 적개가 깊어지는 걸 보고 있는 우리들에겐 이 소설이 특히 더 피부에 와 닿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감히 올해 내가 읽은 소설 중 최고의 한 편으로 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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