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을 때 혹시 이런 생각 해 보신 적 없으셨던가요? 소설도 영화처럼 음악이 흐르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죠. 영화는 음악이 많은 역할을 합니다. 이야기와 거기에 흐르는 감정을 훨씬 실감나게 만들어주죠. 로맨스나 스릴러 혹은 공포 영화에 음악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많이 심심해질까요? 분명 그토록 애절하게 느껴지지도 않을 거고 긴장감이 넘치거나 무섭지도 않을 겁니다. 소설에도 어울리는 음악이 흐른다면 영화와 똑같이 이야기와 감정이 훨신 더 잘 살아나지 않을까요? 그런 음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한 번 찾아봤습니다. 소설에 어울리는 음악이 있는지.


그런데 소설에 영감 받은 음악들이 정말 많더군요. 그 모든 음악들은 노래를 만든 아티스트 나름의 독후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읽은 것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니까요. 그런 음악들을 영감을 준 소설을 읽을 때 듣는다면 그것 역시 영화의 OST(original sound track)처럼 소설을 위한 음악으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무모할 지도 모를 이런 가정에 기대어 소설과 음악을 모두 좋아하는 당신에게 감히 몇 곡 추천하고자 합니다.


1. 조니 미첼 , 'Both Sides, Now'와 솔 벨로의 '비의 왕, 헨더슨'





 최근에 공포 영화 '유전'을 봤는데 영화가 끝날 때 이 노래가 흐르더군요. 물론 영화에 나오는 버전은 조니 미첼의 것이 아니라 주디 콜린스의 것이었지만요. 캐나다의 유명한 싱어 송 라이터인 조니 미첼이 68년에 발표한 이 노래는 지금은 미첼의 대표곡일 뿐만 아니라 유명 락음악 잡지인 롤링스톤즈가 지금까지 나온 모든 대중 음악의 순위를 500위까지 매긴 적이 있는데 거기서 171위를 차지한 바 있는 뛰어난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미국 작가 솔 벨로가 59년에 발표한 '비의 왕, 헨더슨'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노래를 만들게 된 경위는 이러합니다. 67년, 미첼은 비행기에서 이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미첼이 탄 비행기가 이륙할 때, 소설에서 아프리카로 가기 위해 헨더슨이 탄 비행기 역시 이륙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일치가 미첼이 비행기의 창 아래로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고 있을 때 이런 상상을 하도록 했습니다. 헨더슨 역시 자신과 똑같이 비행기에서 하늘에 떠 있는 저 구름을 보고 있겠지 하는 상상을 말이죠. 그러자 갑자기 노래에 대한 영감이 생겨났고 바로 노래를 써나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Both Sides, Now'는 태어났습니다. 비행기에서 말이죠. 이 노래를 쓸 때만 해도 이렇게 유명해지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휴가철이 다가옵니다. 이번에도 많은 분들이 낯선 타국을 찾아 비행기에 오르시겠죠.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 때, 조니 미첼의 이 노래와 솔 벨로의 소설을 들고 가는 것은 또 어떨까요? 비행기에서 구름을 바라보며 미첼의 노래와 벨로의 소설을 읽는다면 노래에 나오는 이 가사를 쓸 때의 미첼의 마음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난 구름의 양면을 모두 보았어요.

하늘의 위에서, 땅 위에서

그래도 여전히 내가 떠올리는 구름은 환상에 지나지 않아요.

난 구름이 뭔지 전혀 모르겠어요.

(...)

나는 삶도 양면에서 보아왔어요.

승자의 눈으로도, 패자의 눈으로도

내가 떠올리는 삶 또한 환상이에요.

나는 삶이 뭔지 전혀 모르겠어요.




2. 데이빗 보위, '1984' / 조지 오웰 '1984'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영국의 팝스타 데이빗 보위는 70년대에 조지 오웰의 '1984'를 락 뮤지컬로 만들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웰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단체가 허락하지 않은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죠.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허락하여 데이빗 보위가 '1984'를 락 뮤지컬로 만들었다면 우리는 소설 '1984'의 훌륭한 OST를 가질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실망하긴 이릅니다. 비록 뮤지컬 기획은 쓰러졌지만 거기에 쓰려고 했던 곡이 살아남아 그가 74년에 발표한 앨범에 수록되었으니까요. 그것이 바로 보위의 최고 음반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하는 'Diamond Dogs'이란 앨범입니다. 보위가 상반신만 빼고 개의 모습이 되어버린 커버로 유명한 음반이기도 하죠. 살아남은 곡은 이 곡 '1984'를 비롯하여 'Big Brother','We are the dead'으로 세 곡입니다. 분명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점점 되살아나는 보수 우익의 분위기를 경계하고자 보위는 오웰의 '1984'를 뮤지컬로 만들려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1984'를 읽을 때 보위의 이 노래들을 들어보면 어떨까요? 소설이 좀 더 새롭게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3. 엘튼 존, 'Goodbye Yellow Brick Road' / 라이먼 프랭크 바움, '위대한 마법사 오즈'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이 노래는 제목에서 바로 드러나듯이 '위대한 마법사 오즈'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1935년에 만든 영화가 직접적인 영향을 줬지만 말이죠. 엘튼 존은 그 영화에서 도로시 역할을 했던 주디 갈란드의 심정을 헤아리며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이 때, 엘튼 존은 자신이 이룩한 화려한 성공 속에서 음악을 시작할 때 가졌던 초심을 잃은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예술 보다는 상업성에 치중하여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죠. 그렇게 엘튼 존은 도로시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찾아 노란 벽돌길을 걸었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원래 음악을 할 때 가졌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노란 벽돌길이 있었으면 한 것입니다. 그런 자신의 뿌리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이 노래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엘튼 존은 삶이라는 게 그런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압니다. 아니, 이렇게 불안하고 고민하며 걸어가는 게 실은 진정한 삶이라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정답을 쉽게 찾고 걸어갈 수 있는 단순한 삶이란 그저 애완 동물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말이죠. 그런 마음이 이 노래엔 담겨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도로시와 그의 세 친구들이 자신이 오래도록 바랐던 것을 찾기 위해 오즈를 찾아가지만 그것이 정말 삶의 정답인지 아니면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는지 몰랐던 것처럼, 우리 역시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줄 지 모릅니다. 하지만 엘튼 존이 말하듯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도달하는 장소가 아니라 지금 걸어가고 있는 과정 자체인 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며 이 노래와 오즈를 벗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네요.




4. 롤링스톤스, 'Sympathy for the Devil' / 미하일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





 롤링스톤스가 68년에 발표한 앨범, 'Beggars Banquet'의 첫번째 트랙으로 실린 이 노래, 'Sympathy for the Devil'는 러시아 작가 미하일 불가코프가 쓴 고전인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원래 이 소설은 믹 재거의 여자 친구인 페이스풀이 믹 재거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준 것이라고 해요. 하층 계급 출신이었던 페이스풀은 믹 재거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상들을 많이 접하게 해줬는데요, 미하일 불가코프의 소설도 그 중 하나였죠. 믹 재거는 이 소설을 읽고 감명을 받은 나머지 '거장과 마르가리타'에 나오는 악마를 주인공 삼아 노래까지 만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믹 재거에 따르면, 이 노래는 악마 찬양 노래가 아니라 실은 인간이 가진 어두운 면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얼굴의 표정이 천변만화하는 것처럼 어느 것 하나로 고정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을 노래한 것이라고 말이죠. 생각해 보면, 불가코프의 소설에 나오는 거장과 마르가리타도 그러했죠. 본래 아주 평범한 박물관 직원에 지나지 않았던 거장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 마르가리타와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그 결실로 본디오 빌라도에 관한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되었다가 끝내 비밀 경찰에 체포 되다가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맙니다. 이토록 삶의 굴곡을 다양하게 겪은 것이죠. 그건 마르가리타도 다르지 않습니다. 본래 저명한 과학자의 아내로 상류층이었던 그녀는 거장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거장이 정신병원에 들어간 뒤로는 악마와의 계약에 따라 악마가 주최하는 대 무도회의 여왕이 되었다가 계약에 따라 다시 거장과 만난 후로는 반지하의 아파트에서 살아갑니다. 결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는 참으로 다변하는 삶인 것이죠. 이 소설에 나오는 악마 또한 그러합니다. 사실 이들은 정해진 것을 허물고 단면만이 허락되는 세상에 이면을 들춰내는 존재들이죠. 의도적인 카오스의 창출자이자, 단일한 진리를 산포시켜 그 족쇄에 매인 자들을 해방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성은 결국 광기가 되고 광기가 끝내 합리가 되는 진리를 역설하는 자인 것입니다. 노래는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단일한 의미로 규정되지 않는 삶의 복잡한 면모들을 직시하라는 의미로 말이죠. 아마도 그렇기에 프랑스 영화 감독 장 뤽 고다르는 이 노래에 영향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고 잡지 '롤링스톤스'가 뽑은 지금까지의 대중 음악 순위 500위 중 32위를 차지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게 된다면 이 노래를 꼭 한 번 들어보세요. 소설이 전혀 다른 새로운 얼굴을 지니고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소설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노래를 한 번 소개해 봤습니다. 물론 이것만은 아니고 이 밖에도 정말 많은 노래들이 있지만 분량 때문에 이것밖에 소개하지 못하는 게 좀 유감이네요. 어쨌든 여기에 소개한 소설을 읽을 때 노래도 한 번 찾아 들어보세요. 혹시 아나요? 그 노래 때문에 책에 대한 기억을 쉽게 소환할 수 있게 될 지. 여러가지 이유로 책 읽기에 지치게 되면 그 책에 영감 받은 음악을 들으면서 독서의 기운을 충전하는 것도 좋겠지요. 책을 벗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책을 벗하는 것도 좋은 독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서를 향한 여러분의 분투를 응원하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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