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걸 비포
JP 덜레이니 지음,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 여름은 진짜 무덥다. 살다 살다 이런 더위는 또 처음인 것 같다. 습한 더위에 휩싸이게 되면 만사가 다 귀찮아진다. 아무리 그래도 책만큼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지라, 이런 더위 속에서도 즐길 수 있는 책을 찾게 되는데, 이럴 때는 역시 장르 소설이 안성맞춤이다. 정말 한동안 더위를 잊게 만들었던 소설을 하나 만났다. 바로 '더 걸 비포'다.


 작가는 JP 덜레이니. 미국 작가다. 필명으로, 과거엔 다른 이름으로 베스트 소설을 발표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JP 덜레이니란 필명으로 낸 소설은 '더 걸 비포'가 처음인 것이다. 지금 나는 이 작가의 과거 이름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하다. '더 걸 비포'가 썩 괜찮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도, 여성의 불안한 심리에 대한 표현도, 반전도 좋았기 때문에 그의 소설을 더 찾아 읽어보고 싶은 것이다.책을 즐겨 벗하는 이에겐 뛰어난 기량의 작가를 새로이 아는 것만큼 커다란 선물도 없다. '더 걸 비포'는 그런 선물을 내게 주었다.


 그래서 '더 걸 비포'는 어떤 이야기일까?

 갑자기 비극을 마주하게 된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에마고 다른 하나는 제인이다. 에마는 자신의 집에서 강도를 당했다. 제인은 소중한 아이를 사산했다. 에마는 너무 무서워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집을 찾아 나선다. 제인은 상실의 고통이 눅진하게 배여 있는 현재의 공간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두 사람 모두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집이 마침내 나타난다. 그 집은 바로 원 폴 게이트 스트리트.



 이 말을 듣고 '응? 뭐야, 두 사람이 같은 집을 마음에 들어한다고? 그럼 같은 집을 두고 자신이 차지하려고 두 여자가 서로 싸우는 스릴러인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니다. 여기서 제목이 왜 '더 걸 비포'인가가 드러난다. 에마와 제인은 같은 시간의 사람들이 아니다. 에마는 과거고, 제인은 현재다. 에마는 제인 이전에 그 집에 살았었다. 제목의 '더 걸 비포'는 바로 에마를 가리킨다. 소설은 에마가 주연인 과거의 시점과 제인이 주연인 현재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그렇게 같은 집에 살게 된 그들. 하지만 그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그것 하나만이 아니다. 용모와 성격이 비슷할뿐만 아니라 똑같이 원 폴 게이트 스트리트의 주인이자 그 집을 설게한 건축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독자는 그 사랑이 혹시 위험한 사랑은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왜냐하면 건축가 에드워드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조짐은 에마와 제인이 그 집에 살게 될 때부터 나타났다. 그곳은 세입자의 자유를 빼앗는 곳이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지켜야 할 규율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기면 곧 추방된다. 세입자의 의지는 하나도 개입할 수 없고, 오직 주인의 의지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 거기가 바로 원 폴 게이트 스트리트다. 싼 값에 황홀할 정도로 멋진 공간을 누리는 대신 자신의 자유와 개성을 아낌없이 바쳐야 하는 것이다. 에드워드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이 주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 남이 반항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 주위엔 의혹의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역시나 에드워드의 주변엔 원 폴 게이트 스트리트를 자기 뜻대로 만들고자 아내와 자식까지 사고로 위장하여 살해했다는 의혹이 감돌고 있다. 게다가 에마 역시 그 집에서 사고로 죽었다. 에마와 똑같이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지게 된 제인은 에마에게 일어났던 일과 에드워드의 진실을 알게 위해 열심히 추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건의 진실을 찾아내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함이 아니다. 자신이 위험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이를테면 자신의 사랑을 구원하고자 하는 여정이다. 과연 제인은 자신의 사랑을 구할 수 있을까?


 같은 집을 공유하며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영화 '시월애'가 떠올랐다. 그리고 군림하는 남자와 종속 당하는 여자의 구도에선 최근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처럼 이 소설은 읽는 이의 시야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을 읽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여기서 결국 사랑이란 불신과 의혹 속에서 위태롭게 걸어가는 줄타기라는 걸 찾아낼 수 있을 것이며 또 어떤 이는 독립적인 여성이 어떻게 남성 권력에 포획되는가로 읽히기도 할 것이다. 이야기 자체도 재밌지만 이런 면이 있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소설이다. 부담없이 한동안 흠뻑 빠져 읽을 수 있으면서도 읽고나면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을 원했다면 당신의 식탁 위로 한 번 초대해 보시길...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8-16 0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