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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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인기 있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 삼순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삶엔 정말 그런 바람이 생겨나는 순간들이 참 많다. 하도 많이 넘어지고 상처받는 게 우리네 삶이라 그런가 보다.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작가의 또 다른 책, '그녀 이름은'은 그러한 신신한 삶들을 엽편의 길이로 줄줄이 엮어낸 소설집이다. 그야말로 특별하지도 별나지 않는 여성들의 삶이 더 많이 드러나고 기록되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이 충실하게 반영된 책인 것이다. 가장 앞부분에 있는 소진의 삶부터 가장 마지막에 있는 초등학생 최은서의 삶까지, 여기에는 여성이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연령도 직업도 처지도 다른 이들의 삶이 스펙트럼처럼 죽 나열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집을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회'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모든 여성들이 심장이 딱딱해져버렸으면 하는 상황을 만난다. 소진은 직속 상사에게서 성추행을 당하고 계약서 한 장 없이 업무 내용도 시간도 페이도 아무 것도 모른 채 일을 시작하여 퇴근도 제대로 못하고 회사에서 칼잠을 자야할만큼 온갖 궂은 일은 도맡아 하는 막내 방송 작가도 있다. 어릴 때 엄마에게 버림 받은 기억 때문에 갑작스런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만남조차 허락받지 못한 딸이 있는가 하면 양승태 대법원장이 재판 거래하여 대법원에서 어이없는 판결이 나는 바람에 갑자기 날아온 배상금 상환 명령 때문에 어마어마한 액수를 감당할 수 없어 자살한 동료를 보아야 하는 전 KTX 여승무원도 있다. 이처럼 소설엔 성별로 차별받는 이만 나오지 않는 것이다. 흙수저라서, 사회적 약자라서 차별을 당해야 했던 삶도 허다한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그들의 목소리를 소설집에 모아 독자에게 들려주려 했던 것 같다.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별 거 아니라는 이유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삶이라는 이유로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었고 용기를 내어 말해도 잘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던 목소리들을. 기껏 반응을 받아도 그저  '너만 왜 그래?' 혹은 '괜히 과민 반응 하는 거 아니야?' 또는 '거 참 예민하게 구네.' 같은 것만 있었던 목소리들을. 그런 목소리를 채집하여 되도록 온전히 복원, 이 소설집에서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의 삶은 당신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분명 어느 순간 당신의 발길이 머물고 한참을 응시하게 되는 삶의 초상화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땐 그랬지' 하면서 잊혀졌던 추억을 소환하거나, 그 때 참 아팠던 당신을 위로하는 느낌도 받게 되리라. 그리고 대답하리라. 당신의 눈길이 머문 초상화의 그녀 이름은 바로 자신의 이름이었다고.


 '82년생 김지영'이 그랬듯, '그녀 이름은'도 발굴에 중점을 둔다. 몰라서 내버려두기도 했고 알긴 하지만 누구나 다 겪는 흔한 것이기에 시류에 편승하여 바로 잡을 생각도 없이 무심히 흘려 보냈던 것들을 다시금 찬찬히 들여다 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당신을 단순한 감상자를 넘어 고고학자로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의 삶일 수도 있고 혹은 부모나 자식의 삶일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이웃의 삶일 수도 있는 것들을 보며, 아무렇지 행한 말과 일 속에 상처 입히는 가시는 없었는지,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남들도 다 이러고 사는 거라고 합리화 하면서 더 많은 상처들을 더 심하게 곪게 만들진 않았는지 따져보게 되니까 말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은 복수하려는 유지태에게 그에게 상처를 준 것은 고의가 아니었고 아주 사소한 잘못에 불과했다고 항변한다. 그런 최민식에게 유지태는 이렇게 답한다.

 '모래든 자갈이든 가라앉는 건 똑같아.'


 사소하다는 것, 별거 아니라는 것은 그저 상처를 준 자에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당하는 입장에선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온갖 갑질들, 비리들은 늘 이런 변명을 해댄다. 한 집의 귀한 자식을 무릎 꿇리고 억 대의 돈을 특별 활동비로 많아 사적인 일에 마음껏 유용하면서도 그리 큰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 관례였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알고 보면 우리 사회의 적폐들은 거악에 의해 쌓인 게 아니라 이러한 사소한 범행들의 누적이다. 그 사람의 신분에 비해 저지른 잘못이 별 거 아니라는 이유로 재판부가 쉽게 눈 감아 준 덕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사회는 사소하고 별 거 아닌 것도 사람을 가린다고 봐야 한다. 돈 많고 위세 등등한 이들에겐 일반인이 저지르면 엄청난 죄도 별 거 아니게 되고, 뒷배도 없고 돈도 없는 일반인은 아주 별 거 아닌 잘못도 크게 처벌 받으니까 말이다. 오늘도 편의점에서 겨우 담배 두 갑 훔쳤고 그걸 돌려줬는데도 판사가 징역 1년을 선고하고 구속시켰다는 보도가 있었다. 같은 날 법원은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수백 억에 달하는 세금을 탈루했음에도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 담배 두 갑에는 보장되는 않는 피의자의 방어권이 어찌하여 수백 억 탈루에는 보장되는 것인지. 대기업 회장 쯤 되면 그 정돈 별 거 아닌 잘못이라 그런 건가? 사소한 잘못도 별 거 아니라고 해서 자꾸 눈 감게 되면 이처럼 사소한 잘못의 범위가 점점 늘어난다. 이재용 재판처럼 우리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말이다. 사소하다고 해서 방치하면 안 되는 이유다.


 '그녀 이름은'은 그런 사소함의 중요성을 차분히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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