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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 -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 ㅣ 문익환 평전
김형수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평점 :
내게 문익환이라는 이름은 낯익은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삶에 대해선 그만큼 친숙하지 못하다. 아는 건 이름과 목사라는 그의 직업 그리고 단편적으로 접했던 그가 했던 일 정도. 가장 큰 기억은 역시 단신으로 북으로 가 김일성을 만난 일이다. 때는 1989년. 87년의 6월 항쟁으로 6.29 선언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국가보안법의 서슬이 퍼렀던 시절이다. 국가의 허락 없이 북으로 넘어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를 감행하게 만든 것일까? 그 일을 들으면서 난 그게 가장 먼저 궁금했다. 그의 발길을 이끈 것. 마치 자력처럼 거기로 가야만 한다고 끌어 당긴 것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다.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북미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리고 이제 평화 시대로 가는 길목에 서 있으니 더욱 궁금해진다. 마침 올해가 고 문익환 목사가 태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그 100년에 남북관계에 이토록 커다란 성과가 주어졌으니 어쩌면 지금은 하늘에 있는 그의 가호가 함께 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시인 김형수가 쓴 '문익환 평전'이 특별판의 모습으로 새로이 나왔다. 맞다. 첫 출간이 아니다. 14년 전에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바 있다. 나는 그 때 만나지 못했다가 특별판으로 비로소 만났다. 이제야 그 궁금증을 풀어 볼 기회를 간신히 가지게 된 셈이다.
읽어 보니 평전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것이더라. 어쩌면 이 책에만 해당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토록 한 사람이 걸어 온 삶의 길을 낱낱이 파헤치다니! 마치 그가 돌길을 걸었다면 그가 밟은 돌 하나하나를 전부 뒤집어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문익환 목사의 삶이 온전히 그리고 생생하게 복원되어 있다. 그의 삶의 결을 세부에 이르기까지 알고 싶은 이에겐 정말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전기가 아니고 평전이다. 대상이 되는 인물에 대한 저자의 평가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보니 그냥 전기를 쓰는 것보다 평전을 쓰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 전기는 있는 사실을 잘 정리해 쓰면 되지만 평전은 저자의 평가까지 들어가니까 말이다. 그런데 너무 주관적으로 쓰면 독자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좋은 전기란 언제나 독자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감동까지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공감과 감동은 특히나 저자의 평가의 경우 독자들이 따져봐도 객관적으로 올바를 때, 적어도 납득될 때 가능하다. 결코 자기 기분이나 주관에 좌우되어선 안되며 사실을 바탕으로 냉철하게 분석하면서 독자들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깊은 뜻마저 설득력있게 짚어줄 수 있어야 한다. '문익환 평전'은, 감히 말하건대, 그렇게 한다. 그런 책이다. 김형수는 문익환 목사의 일대기를 일화나 업적 소개에 그치지 않는다. 문익환 목사가 삶을 걸으며 어떤 선택을 할 때, 단순히 한 개인의 삶 차원에서 그것을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문익환 목사의 선택을 김형수는 언제나 사회나 민족 그리고 시대 전체의 맥락 안에다 두고 의미를 살피고 가치를 평가한다. 그러므로 여기엔 문익환 목사의 삶만 있지 않다. 그와 함께 연동하면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사회와 민족, 시대의 초상까지 같이 어우러져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공감하고 문익환 목사의 삶에 감명 받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개인의 삶은 개인의 삶으로 그치지 않는다. 수면 위에 생겨난 작은 동심원도 스쳐가는 바람을 만나 수면 전체를 변화시키는 파문이 될 수 있듯이 아무리 작은 개인의 삶도 결국엔 전체의 삶과 결부되어 상호 영향을 주고 받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런 개인의 삶에 의해 역사 전체가 새로운 물줄기로 흐르는 것도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이 보아왔는가? 김형수의 '문익환 평전'은 단순히 문익환 목사의 삶을 잘 알려준다는 것을 넘어 개인과 시대가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지 잘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시대가 없이 개인이 있을 수 없듯이, 시대 역시 개인이 없으면 있을 수 없는 것이란 걸 말이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문익환 목사의 삶을 방관자에서 참여자로, 상아탑에서 민중이 고통 받는 현장으로, 기독교라는 종교의 세계에서 세속의 세계로, 지켜보는 자에서 막중한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 자로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런 것을 보여준다. 변하기 전 그도 한낱 필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 필부가 시대의 거인이 된 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실수와 후회에서 배우고 과오를 올바른 각성 속에서 반복하지 않으며 앞으로 나서고 기꺼이 넘어질 수 있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것이 바로 뒤늦게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여 스스로 늦봄이라 자신을 칭했던 문익환 목사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