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죽인 형사 형사 벡스트룀 시리즈
레이프 페르손 지음, 홍지로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스웨덴은 최근 주목할 많나 여러 건의 문화 수출을 했다. 여기에는 전 세계의 공항 서점을 북유럽 누아르물로 점령한 것도 포함된다. 대표적으로 3500만 부를 판매한 헨닝 만켈과 6000만 부를 판매한 스티그 라르손이 있다.

 (마이클 부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

 

 부스의 이 말처럼 명실상부한 노르딕 누아르의 대표 주자 격인 스웨덴에서 또 한 명의 걸출한 작가가 등장했다. 그것이 바로 세 권까지 나오고 미국에서 TV 드라마로도 제작 중인 벡스트룀 시리즈의 작가, 레이프 페르손이다. 그는 헨닝 만켈과 스티그 라르손, 요 네스뵈아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그리고 카린 포슘 또한 수상하여 마치 노르딕 누아르의 대표 주자가 되기 위한 통과 의례와도 같았던 스칸디나비아 범죄 소설 작가 협회가 주는 유리 열쇠 상까지 2011년에 스탠드 얼론인 'THE DYING DETECTIVE'로 수상함으로써 자신이 계승자임을 증명했다.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벡스트룀' 시리즈는 일단 벡스트룀이란 캐릭터 자체가 매우 인상적이다.

  노르딕 누아르에서 지금까지 보아왔던 주인공 형사들과 무척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단 벡스트룀은 이런 장르의 형사들에게 의례 따랐던 우울과 비관이 없다. 자신에 대해 불신하거나 회의하기는 커녕 자기를 제외한 사람들을 모두 발 아래로 보는 오만방자로 가득하다. 거기다 정의 구현 같은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수사 명령을 받으면 거기서 떨어지는 떡고물부터 신경쓰는 형사다. 가장 놀라운 것은 벡스트룀은 인종 차별주의자에다 여성 차별주의자라는 것이다. 이는 노르딕 누아르의 특징과 같았던 타자에 대한 존중과 이해와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다. 벡스트룀은 가족을 만드는 것을 거부하며 어린이들은 혐오한다. 한 마디로 그는 오직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벡스트룀이란 존재는 뇌리에 단단히 새겨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이런 캐릭터로 어떻게 독자의 관심을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끝까지 이끌어 갈 것인가? 바야흐로 작가의 능력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나온 '용을 죽인 형사'는 벡스트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린다 살인 사건의 린다'에 뒤이은 작품인 것이다. 소설은 2008년에 발표되었다. 나는 이 소설로 벡스트룀을 비로소 만났다. 읽는 동안 첫 권을 읽지 않았다는 게 자못 아쉽게 느껴졌다. 이 시리즈가 가진 독특함은 벡스트룀 캐릭터에만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점이 그동안 읽은 노르딕 누아르와 선명한 차이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작가의 카메라가 주인공에만 맞춰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벡스트룀 못지 않게 그가 지휘하는 수사팀원은 물론 그를 하루라도 빨리 제거하고 싶어하는, 벡스트룀의 정적이 되는 경찰 내부의 인물을 비롯하여 피해자나 목격자를 포함한 조연들까지 재현의 시선이 골고루 할애되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이 소설은 인류학적인 느낌마저 갖게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연유가 있었다. 작가가 스웨덴 범죄소설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 할만한, '웃는 경관'이 대표작인 마이셰발과 페르발뵈 부부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걸 오마쥬하고 있었던 것이다. 범죄소설사에서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가지는 의미는 아주 크다. 일례로 범죄소설 전문 학자인 울리히 브로이히에 따르면 초창기 탐정 소설이 가진, 수수께끼에 빠진 살인 사건과 추적 그리고 해결이라는 단순한 도식에 혼자 일하는 탐정이 아니라 집단으로 일하는 경찰을 가져와 심리학적 깊이를 더하고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을 추구하려고 시도한 작품 가운데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경감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벡스트룀 시리즈'가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면 여기엔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어쩌면 그래서 소설의 카메라는 되도록 많은 인물을 골고루 담으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알콜 중독자가 많기로도 유명한 스웨덴에서, 벡스트룀 스스로 말하는 바와 같이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사건인 술고래였던 전직 회계사가 후라이팬으로 가격 당해 죽은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더 많이 보여주는 것은 이민자를 가장 많이 받아들여 가장 개방적인 나라로 세계에서 손꼽히며 또한 양성 평등에 있어서도 가장 성공적인 나라로 인정받는 스웨덴이 실은 그 두 가지 면 모두에 있어 여전히 아주 차별적이라는 모습이니까 말이다. 마치 작정하고 그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웨덴이란 나라의 인상을 곡괭이로 깨부수려는 것만 같다.


 공간적인 배경은 솔나다. 마이클 부스에 따르면 차별이 횡행하는 스웨덴의 어두운 이면은, 흔히 스웨덴 제3의 도시라 일컫는 말뫼에서 드러난다고 하는데, 이 작은 도시 솔나 또한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아무튼 사건은 거기서 일어나며 전작에서 스톡홀롬에 있던 벡스트룀은 여기에 발령을 받아 온 상태다. 소말리아 난민으로 지금은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 청년, 셉티무스 아코펠리의 신고로 사건 현장에 온 벡스트룀은 당연하게도 사건엔 별 관심이 없다. 최근 의사로부터 주당인 자신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 없는 술을 멀리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말을 들은 탓이다. 오직 살기 위해 어떻게 하면 금욕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만 생각하는 벡스트룀은 인종차별주의자답게 신고를 한 아코펠리를 덮어놓고 의심한다. 그런데 살해당한 다니엘손이 알려진 것과 다르게 꽤 많은 현금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살해 당하기 바로 전날  찾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것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는 의혹이 짙어지고 거기다 그가 수상쩍은 거래에 많이 관여했다는 게 그가 쓴 수첩으로 드러나면서 이 살인이 솔나에서 가장 잔혹하기로 이름난 범죄자인 이브라힘 형제와 연관이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작가 레이프 페르손은 슬쩍 세 명의 용의자를 독자에게 제시한다. 하나는 벡스트룀이 의심한, 셉티무스 아코펠리. 다른 하나는 수사팀원인 알름이 의심하는 다니엘손 옆집에 사는, 20대로 말은 어눌하지만 수학 계산 능력만은 탁월한 세포 라우렌. 마지막으로 벡스트룀을 호시탐탐 경찰에서 추방하려는, 최대 라이벌이기도 한 토이보넨이 의심하는 이브라힘 형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세 용의자 모두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소말리아 난민, 다른 하나는 사회 부적응자 그리고 마지막은 무슬림으로 따지고 보면 모두 사회 주류가 아닌 주변인적 존재인 것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스웨덴이란 나라의 낯선 타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용의자가 된 것엔 정황 증거만 있을 뿐, 유력한 증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가지게 된 의심을 쉽사리 거두지 않는다. 흡사 오직 타자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받는 것만 같다. 앞서 말했던 대로 벡스트룀 시리즈가 마르틴 베크의 영향 아래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짙다면 그건 바로 여기서 대표적으로 표출된다. 이러한 용의자 선정과 추적 과정에서 스웨덴의 저변에 깔려 있는 불관용과 배척이 세밀하게 도려지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벡스트룀 시리즈'를 세상에 내보인 스웨덴의 두터운 화장 아래 숨겨져 있는 민낯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벡스트룀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마다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도대체 스웨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소설은 바로 그 의문에 답을 주려는 것 같다. 제목에 빗대어 말하자면, 벡스트룀은 스웨덴을 위협하는 용을 죽이는 경찰이지만, 사실 진짜 용은 스웨덴일 지도 모른다는 것을.




 미국의 폭스 TV가 2015년에 드라마로 만든 벡스트룀 시리즈의 이미지.

 벡스트룀이 타인을 대하는 기본적 태도인 'TOTAL DICK'이 전면에 나와 있다^^



 셉티무스 아코펠리를 하필이면 소말리아인으로 설정한 건 아마도 이를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이름에 속으면 안 되는 '스웨덴민주당'은 스웨덴의 대표적인 우익 정당이다. 그 정당은 반이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그들의 슬로건이 바로 '소말리아 피자'다. 한 명의 소말리아인의 망명을 받아주면 피자 가게를 운영하여 소말리아에 있는 많은 친척을 데려와 피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많은 스웨덴 사람들에게 소말리아는 분명 그 소말리아 피자를 연상시킬 것이다. 따라서 소말리아를 가져왔다는 것 자체가 보이는 것과는 다른 스웨덴 속내에 존재하는 이중적 태도를 꼬집고 있으며 이 소설이 어떤 존재를 용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암시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이처럼 소설은 스웨덴을 향한 날선 비판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재미를 놓치진 않는다.

 범죄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하나의 사건에서 여러 줄기로 뻗어 나가 독자의 흥미를 계속 지속시키며 앞서도 말했듯 다수의 용의자를 제시하여 그 속에서 진짜 범인을 찾아나가는 고전 미스터리의 형식 또한 지니고 있는데다 최근 범죄 소설의 공식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반전까지 준비되어 있기에 범죄 소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매력을 잘 지니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역시 이 소설의 가장 커다란 매력은 범죄 소설 보다는 인간 드라마적인 성격이다. 등장인물들을 잘 묘사해 어느 것 하나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 없음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저마다의 욕망과 믿음에 따라 서로 얽히고 풀어지는 걸 보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다. 벡스트룀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그의 오만하며 인종과 여성 차별주의자라는 허들을 넘을 수 있어야겠지만 어쨌든 이 캐릭터에 한 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다니엘손의 비밀 금고에 바보같이 혼자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장면처럼 웃겨주는 데가 많다. 이러면 왜 이 소설을 가지고 블랙 코미디 드라마로 만들었는지도 슬슬 이해가기 시작한다.


 이제야 처음으로 만났는데, 진짜 스웨덴의 모습을 가리고 있는 위장막을 블랙팬서처럼 발톱으로 날카롭게 할퀴는 것이나 벡스트룀을 비롯하여 저마다의 개성으로 무장한 인물들이 함께 추는 군무와 같은 드라마도 마음에 들어 시작은 과연 어떠했는지 궁금해진다. 앞서도 말했듯 벡스트룀 시리즈는 지금까지 세 권이 나와 있는데, 다음 권도 얼른 번역되어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벡스트룀 시리즈의 미국 번역판 커버 이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