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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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 필립스의 '밤의 동물원'은 감히 올해의 발견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소설입니다. 작년에 뉴욕 타임스 북 리뷰가 최고의 범죄소설로 꼽았다는 얘길 듣긴 했었어도 생소한 작가라 그리 큰 기대는 없이 읽었는데 과연 그런 평가를 얻을만한 작품이더군요. 작가의 이름은 진 필립스. 찾아보니 미국 작가더군요. 2009년에 'The Well and The Mine'로 데뷔했고 '밤의 동물원'은 2017년에 다섯 번째로 발표한 소설입니다. 일단 필력이 대단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조금도 늦추지 않은 채 몰아가는 힘이 있고 등장인물의 심리 또한 아주 세심하게 묘사하는데다 문장도 정말 좋더군요. 뭐라고 할까요? 한 권의 소설을 읽을 때 기대하는 재미를 모조리 다 채워주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밤의 동물원'은 그런 소설입니다. 그러니 주저없이 올해의 발견으로 꼽을 수밖에요.


 '밤의 동물원'의 원제는 'Fierce Kingdom'입니다. 번역하자면 '치열한 왕국'이라고 할까요? 사실 동물원에 어울리는 제목은 아닙니다. 동물원은 야생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벗어난 동물들이 살아가는 곳이니까요. 그런데 왜 한국 제목은 '밤의 동물원'일까요? 그것은 소설의 무대가 정말로 밤의 동물원이기 때문입니다. 한데 왜 영어 제목에 'Fierce'가 들어갔을까요? 그건 세 명의 남자가 중화기로 무장하고 동물원에 있는 사람과 동물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동물원에서 일어났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소설은 학살이 벌어진 하룻밤 동안이 일을 그립니다. 링컨이라는 아주 어린 아들과 단 둘이 동물원에 놀러온 엄마 조앤을 주인공으로 해서 말이죠. 이야기는, 단순하게 말하자면, 조앤과 링컨이 동물원에서 마구잡이로 사람과 동물을 살상하는 세 명의 학살자에게서 살아남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오후 4시 55분부터 오후 8시 5분까지 시간 별로 진행되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단 한 순간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살자 눈에 조금이라도 들켰다간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마저 빼앗길테니까요. 소설은 그러한 위기적인 상황과 어떻게든 아들은 구하고픈 엄마의 절박한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야기에 몰입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이 소설은 정말 재밌습니다만 재미가 다가 아니라서 더욱 올해의 발견으로 꼽게 만듭니다. 뭐랄까요? 아이를 키운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그런 것에 대해 참으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그랬습니다만, 중간과 마지막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부분까지 있었습니다. 엄마의 입장에서 소설이 진행되기에 현재 아이를 키우시고 계시다면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 정말 많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한 이런 부분이 잠깐 잠깐 드러나는 조앤의 과거 회상을 통해(주로 조앤의 엄마가 자신에게 했던 것과 조앤이 링컨에게 했던 것과의 비교를 통해) 강조되고 있기도 하구요. 어쩌면 바로 그래서 제목이 'Fierce Kingdom'이 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한 여성이 엄마가 되어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이 험한 세상에 치열하게 살아남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의미로 말이죠. 우리는 얼른 과연 그럴까 생각하지만 작가는 잘 보여주죠. 우리가 세상을 그렇게 보고 있다면 그건 대낮의 동물원을 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이죠.


 대낮의 동물원은 우리 속의 동물들마저 한가로이 보일만큼 평화로워 보입니다. 우린 어쩌면 그런 평화를 잠시나마 맛보기 위해 동물원을 찾는지도 모르겠어요. 소설의 처음에서 링컨과 조앤이 함께 벌이는 히어로 놀이처럼. 소설은 그 세계를 명백하게 신화와 영웅의 세계로 설정합니다. 링컨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나 만드는 이야기 속에는 그런 의미가 깃들어 있지요. 신화와 영웅의 세계는 우리의 생각대로 흐르는 곳입니다. 거기서는 우리가 가진 믿음과 상식이 전혀 배반받을 일이 없지요. 악은 응징되고 정의는 실현되고 선함과 희생은 보답을 받습니다. 그러나 조앤과 링컨이 그 세계에서 벗어나 동물원의 출구 가까이 다가간 순간, 현실 세계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드러납니다. 정의나 선함의 보상 따위 전혀 존재하지 않는, 잔혹함과 살상이 넘치는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것이. 세상은 '밤의 동물원'이며 바로 그런 세계 속에서 사랑하는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 소설 곳곳에서 드러나는 학살된 우리 속의 동물은 바로 그러한, 조앤이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허상이 깨어진 것의 비유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선, 학살이 벌어지는 동물원은 조앤이 세상에 가지는 두려움이 반영된 공간으로도 보입니다. 아무래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세상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매일 벌어지는 범죄와 사고 소식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와 전쟁 그리고 점점 심화되는 신자유주의를 보다보면, 내가 과연 자식을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생기지 않을 수 없죠. 그 두려움과 근심이 조앤이 처한 동물원의 위기 상황으로 비유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은 조앤이 동물원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초반의, 그저 불안에 떨며 어떻게든 링컨만 살리고 보자는 이기적인 모습에서 후반엔 위협과 위기에 당당하게 맞서고 아들이 아닌 남을 위해 자신마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결국 자신이 보다 강하고 이타적인 존재가 되지 않으면 불안에서 헤어날 길은 없다는 것을 소설은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불안을 이기는 힘은 바로 자기 내부에 있다는 것을 말이죠. 이것은 특히나 초반에 조앤이 핸드폰을 통해 남편에게 의지했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녀는 성장하기 전, 계속 숨어 있으면서 핸드폰을 통해 남편이 어서 자신을 구해주기만을 바라는데요, 끝까지 남편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바깥이 자신을 구원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죠.


 아들이 이름이 하필이면 링컨인 것도 의미심장 합니다. 소설에도 흑인 노예 해방을 시켰던 대통령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밝히고 있더군요. 링컨이란 이름은 해방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에서 이 이름은 역설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초반에 보여주는 조앤과 링컨의 관계는, 링컨의 입장에서 해방 보다는 속박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자신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십대 흑인 소녀 케일린에 대해 조앤이 짜증내는 것(이 케일린은 링컨의 미래 모습으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함께 숨어 있었던, 교사였다가 은퇴한 파월과 로비(학살자 중 하나)의 관계로 암시됩니다. 조앤은 물론 자기 엄마의 경험도 있어서 링컨을 아낌없이 사랑합니다. 그러나 링컨을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늘 자신이 직접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에서 사실 조앤은 링컨을 속박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조앤이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진정으로 눈 뜨는 순간, 링컨 역시 엄마와 떨어져 홀로 공포와 맞서는 것으로 연출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밤의 동물원'은 이야기의 재미도 재미지만 후반의 감동과 함께 부모가 된다는 것과 사람을 믿는다는 것을 아주 깊이 있게 헤아려 보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뭔가 긴 여운이 남는 소설을 바란다면 참으로 더할 나위 없는 추천작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무더운 여름 밤, 밤의 무더위를 잊게 해 줄 뭔가를 찾으신다면 어떨까요? '밤의 동물원'을 한 번 방문해 보시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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