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특별판)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모리미 도미히코. 참 독특한 작풍을 보여주는 소설가죠. 현실과 환상, 일상과 비일상을 자연스럽게 뒤섞는 그의 재능 때문인지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참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지금 나온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비롯하여 뒤이어 나온 '유정천 가족' 그리고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와 '펭귄 하이웨이'까지 무려 네 작품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거든요.('펭귄 하이웨이'는 개봉 예정입니다만.) 분명 독자의 상상력을 한없이 자극하는 그의 이야기가 영감의 텃밭을 만들어준 까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라 한 번 들으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그러한 작가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인 것 같습니다.


 한 남자(이름은 나오지 않고 내내 '선배'로만 불립니다.)가 대학 동아리 선배 결혼식 뒷풀이 자리에서 거기에 참석한 '검은 머리 아가씨'(소설은 여주인공인데 남자처럼 역시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를 우연히 보고는 첫 눈에 반해 그녀를 뒤쫓아 교토(작가가 쓴 모든 소설에 배경이 되는 도시입니다.)를 밤새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렇게 '선배'는 '검은 머리 아가씨'로 인해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계와 전혀 다른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생각해 보면 사랑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게 그와 비슷하죠. 한 편, '검은 머리 아가씨' 또한 이제껏 알았던 세상과 전혀 다른 것을 만나게 됩니다. 럼주에 빠져 있는 그녀는 좋은 술을 찾아 밤의 거리로 나섰다가 세상의 과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와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야말로 '환상 속 세계'를.




 밤이라는 것이 몽환의 시간이기에, 거기다 그 몽환을 더욱 부추기는 술이 있기 때문에 '검은 머리 아가씨'와 '선배'가 히구치와 하누키(이 두 인물은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에도 등장합니다.)를 만나고 '가짜 전기 부랑'이라는 환상의 술을 찾아 '이백'(당나라 시인인 그 이백일까요? 술 하면 떠오르는 시인이긴 한데.)이 모는 3층 전차에서 '술 마시기 시합'을 벌이기까지의 이야기는 사전 설명 같은 게 하나도 없더라도 전혀 이상하거나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개연성이나 현실성을 많이 따지는 독자들은 이러한 작가의 전개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달테지만 작가는 시침을 뚝 때며 '이 세상 어딘가에는 진짜 이런 장소와 존재들이 있을지도 모르잖느냐'라고 말하듯 잘도 현실과 환상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갑니다. 일본은 사면이 바다인 섬 문화의 성격 상 애미니즘적인 전통이 우리나라보다 강하고 '교토'라는 도시 또한 다른 데보다 전통적인 게 많이 살아있는 장소이기에(작가가 이 소설에서 일부러 옛날 투의 문장을 쓰는 것도 이 '교토'라는 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게 아닐지) 작가가 소설에 이백을 비롯하여 '헌책 신'이라든지 하는 기이한 존재를 마구 등장시켜도 독자들이 별 위화감을 느끼지 않으리라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런 식으로 소설엔 5월에서 12월까지, 사계절에 얽힌 네 개의 에피소드가 있으며 구성은 '선배'와 '검은 머리 아가씨'가 차례를 번갈아가며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누군가를 뒤쫓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접어든다는 점에서 '검은 머리 아가씨'를 뒤쫓는 '선배'의 모습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이백'이 모는 커다란 3층 전차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떠오르게 하는군요. '하울'이 2004년에 나왔고 이 소설이 2006년에 나왔으니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배가 '아가씨'를 뒤쫓는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하진 않았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들었던, 곤도 요시후미의 '귀를 기울이면'과도 비슷한 설정이군요.


 이제야 왜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이 애니메이션으로 자주 만들어지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인물과 이야기가 그야말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에 딱이거든요. 소설이 그 어떤 고정틀도 없이 자유분방하게 표현하고  전개되는데 알고 보면 애니메이션이야말로 그러한 비현실적인 환상성을 한껏 표현 가능한 미디어이니까요. 그만큼 이 소설엔 '식상함'이란 단어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상식과 현실이 가진 중력은 모조리 휘발되고 마치 소설에 나왔던 회오리 바람에 휘말린 잉어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보여준 선배의 활공처럼 상상력이 달아준 날개로 모든 구획과 경계를 뛰어넘어버리니까요.


 모리미 도미히코가 능청맞을 수 있는 것은 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를 구속하는 현실과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 환상은 주먹을 쥘 때 엄지 손가락을 밖으로 빼느냐, 안으로 넣느냐의 별거 아닌 차이일 뿐이라는 믿음 말이죠. 아마도 그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소설 처음부터 '친구 펀치'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성인 군자는 그야말로 한 줌, 남은 건 썩은 못된 놈이든가 멍청이든가, 아니면 썩은 못된 놈이면서 멍청이야. 그러니까 때로는 그러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철권을 휘두르게 되지. 그럴 때는 내가 가르쳐 준 친구 펀치를 써. 굳게 쥔 주먹에는 사랑이 없지만 친구 펀치에는 사랑이 있어. 사랑이 가득 찬 친구 펀치를 구사하며 우아하게 살아갈 때 아름답고 조화로운 인생이 열린단다.(p. 9)


 저는 이 '조화'라는 말에 주목하게 되네요. '삶은 현실이라는 하나에만 주목해선 행복하게 살 수 없다. 그 이면에 있는, 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환상도 껴안을 수 있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며 작가가 방점을 찍는 것 같아서. 그런 믿음이랄까, 마음이랄까 그런 것이 향신료처럼 듬뿍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미각까지 높여주지요.


 사실 전 이 작가를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애니메이션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2010년에 '노이타미나'로 편성되어 방영한 애니메이션인데 높은 작품성을 인정바다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대상까지 수상한 바 있습니다.(그 애니메이션의 감독이 이번에 개봉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감독했습니다.워낙 작품이 좋다보니 당연히 원작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만나게 된 것이죠. 이번에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읽어보니 이 소설이 그의 작품 세계의 원점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집니다. 밤이 가진 몽환의 동경, 환상의 포용으로 더욱 풍요롭게 되는 현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들이 굳건히 배인 그의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소설 속 주인공과는 다르게 거의 회색빛에 가까운 제 대학 생활이 절로 후회되면서 왠지 앞으로의 시간만은 절대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까지 하게 되네요.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고 또 내일도 그대로일 것 같아서 심드렁과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한다면 어떨까요? 환상의 향과 맛으로 가득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한 잔을 살짝 음미해 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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