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원은 원래 85학번이다.
전남의대 1학년에 다니던 그는 갑자기 재수를 결심, 그로부터 2년 뒤 서울의대에 입학한다.
미생물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졸업 후 미생물학교실에 들어갔고,
군대에 있으면서 말라리아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연구에 있어서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오래지 않아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의 말라리아 연구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가 되고,
WHO(세계보건기구)에도 그 이름을 알려 자문단에 들어간다.
2011년 7월, WHO 사업을 위해 라오스를 방문했던 그는
자문회의가 끝난 후 물놀이를 갔다가 급류에 휩쓸리고 만다
철인3종경기를 즐겼고, 암벽등반의 대가였으며,
전국체전 스키 동메달리스트라는 드문 경력을 지닌 그였지만,
결국 급류를 이겨내지 못한 채 불귀의 객이 된다.

사진은 경향에서 무단복제....봐주세요!
그와 내가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해도,
난 그에게 커다란 빚이 있다.
S대에서 일어난 연구결과보고서 조작사건-교수가 모든 일을 저질렀지만 조교에게 뒤집어 씌워 조교만 해임하고 끝났던 사건-을 문화방송에 제보한 건
말라리아 전문가인 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회의 주류로부터 찍히는 걸 감수한 채 그는 나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서서 증언을 했다.
미생물학 출신으로 학회 내에서 어차피 비주류였던 그는
그 일로 인해 학회에 발을 끊은 채 잠적해야 했는데,
그 일을 하자고 선동했던 게 나였으니 미안할 수밖에.
방송에 알리자는 내 말에 그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왕 하는 거, 끝까지 가자. 중간에 그만둘거면 아예 시작하지 말던지.”
연구에 대한 의욕이 지나쳐 적을 여럿 만들기도 했고,
자기가 옳다는 확신 때문에 다른 이들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은 점은 비판받을 수 있지만,
그는 매년 받던 억대의 연구비를 오로지 연구에만 썼던 보기 드문 교수였고,
WHO 활동을 위해 해외를 다니는 와중에도
해마다 10편 가까운 논문을 해외 학술지에 실었던 능력 있는 교수였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7180036405&code=100402
어제 경향신문에는 그의 죽음에 관한 기사가 1면에 실렸다.
그가 생전에 한 일들이 인정받은 결과겠지만,
앞으로 그가 이루었을 수많은 업적들을 생각하면 45세란 그의 나이가 너무도 안타깝다.
지난 4월, “언제 술이나 한잔 하자”는 전화를 걸었는데
그는 해외에 간다면서 돌아오면 마시자고 말했었다.
그 뒤 내 게으름 때문에 연락이 잘 안됐는데,
그때 마시지 못한 술을 영원히 마시지 못할 줄은 미처 몰랐다.
오늘밤 그의 영정을 앞에 놓고 못다 마신 술을 마셔야 한다니, 섭섭함이 밀려온다.
잘 가라,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