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펼치는 회복적 생활교육
황진희 지음 / 교육과실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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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세월 동안 학교의 첫 번째 역할을 지식전달이었다. 최근 이는 많이 흔들리고 있지만 아직 그 위상은 공고하다. 때문에 교사는 교과 지도에 중점을 두었으며 생활 지도는 부수적이었다. 한국 사회와 학교에서는 대개 응보적 처벌이나 생활 지도가 중점을 차지한다. 응보적 생활지도는 가해자의 처벌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이는 부작용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피해자가 잊혀진다는 것이다. 언론이나 사회에서는 가해자의 악함과 그 처벌의 무게만을 떠들게 되어 있으며 가해자 역시 무거운 처벌을 피하기 위해 사과는 고사하고 거짓 언론 플레이나 재판에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응보적 생활지도는 교실내에선 관계를 단절하고 힘의 피라미드를 강화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회복적 생활 교육이다. 회복적 생활 교육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바라보는 것이다. 누가 어떤 피해를 입었고 어떻게 하면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다. 학급에서는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간의 서로 존중하는 공동체성이 생성되며 학생에게 정당한 힘을 발휘할 권리를 돌려주고 공동체가 함께 약속을 정하고 동의하는 과정에서 자발적인 책임을 부여한다. 

 회복적 생활 교육에선 하부구조가 핵심이다. 여기서 하부구조는 평화로운 관계를 맺는데 성공하여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정착된 공동체를 말하며 그렇기에 강한 평화적 또래 압력이 존재한다. 그래서 회복적 생활 교육에선 다양한 활동을 통해 평화로운 하부구조를 만드는데 집중하게 된다. 

 학생들이 자율성과 주체성, 책임감을 지닌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하려면 먼저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 필요한 규칙을 제안하고 토의하도록 교실의 주도권을 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스스로 만든 규칙이 존중의 약속이다. 일방적 규칙과 스스로 정한 약속은 차이가 크다. 규칙은 선생님이나 관리자, 권위로부터 비롯하며 대개 근원을 알수 없다. 또한 지키도록 강제되며 어기며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약속은 학생과 구성원이 지정하며 약속이 필요하다 느낄때 제정하고 자발적으로 준수된다. 또한 어길경우 처벌보단 사과나 해명, 대화를 통해 해결하므로 자발적 합의와 책무가 따른다. 

 책에는 장마다 그림 책이 매번 등장하며 그 그림책과 관련한 일화와 더불어 학생들이 관계를 맺고 평화로운 하부구조를 생성하기 위한 매우 다양한 활동이 등장한다. 이를 일년 간 학생들과 함께 해나간다면 올바른 관계맺기가 가능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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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 일상에서 쓰는 평화의 언어 삶의 언어, 개정증보판
마셜 로젠버그 지음, 캐서린 한 옮김 / 한국NVC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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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몹시 타인의 마음을 잘 알고 협력도가 높은 동물이지만 그래도 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하여 배우자 및 아이를 키우며 함께 살게 되고, 그리고 그 외에도 타인을 여러 집단에서 꾸준히 만나야 하기에 다른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 맺음은 한 사람의 인생에 질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런 타인과의 관계맺음 교육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능력주의로 줄 세우기 위해 교과 지식만을 가르칠 뿐이며 그 안에서 서로 지지고 볶으며 알아서 서로 협력이란걸 배우겠지 하고 막연히 기대하는 수준이다. 물론 당연히 그 결과는 실패다. 생각해보면 한국만큼 교육현장에서 이렇다할 인성교육이나 다른 사람과의 협력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곳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책 비폭력대화는 글자 그대로 다른 사람과 폭력적인 대화를 하지 않는 방법을 설명한다. 2005년 정도에 나온 책인데 아직도 위력이 막강하며 좋은 책이다. 교육현장의 교사는 물론, 학부모, 그리고 가족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도 꼭 읽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인간은 대부분 자신을 비폭력적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론 거의 모든 사람이 폭력적이다. 이는 폭력에 대한 오해 때문인데 우린 폭력이란 살인, 강간, 강도, 전쟁, 폭행, 욕설처럼 직접적이고 무력적인 부분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폭력은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 사랑과 존중, 이해와 감사, 배려가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늘상 거의 타인에게 폭력적인 편이다. 

 저자는 비폭력적 대화를 익혀야만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이에 도달하는 4가지 단계를 제시한다. 우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관찰할 때는 평가와 관찰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린 대개 상대방을 평가하려 들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관찰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 이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데 우리는 자신의 내적 동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기준에 따르도록 어릴적 부터 강요받고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이런 우리 느낌을 일으키는 욕구, 가치관, 원하는 바를 찾는 것이다. 마지막은 이를 바탕으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부탁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나 상대방의 행동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한 느낌을 파악한 후, 왜 그런 느낌을 갖게 되었는지 고찰해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부탁을 상대방에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서로를 삶에서 소외시키는 폭력적 대화를 한다. 폭력적 대화의 양태는 이렇다. 첫째로 도덕적 판단이다.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상대방의 언행을 나쁘거나 틀렸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둘째는 비교하기로 비교 역시 타인을 마음대로 판단하는 형태의 하나다. 셋째는 책임 부정하기다. 이는 사람이라면, 연장자라면, 선생님이라면, 민주 시민이라면 등등의 형태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솔직하게 다가가는 것을 부정하게 한다. 마지막은 자신이 원하는 것의 강조다. 

 사람은 좀처럼 공감을 잘 하지 못한다. 공감이란 사실 다른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공감하는 대신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조언을 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거나 우리의 견해나 느낌을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진정한 공감은 이와는 달리 상대방이 하는 일에 우리의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공감의 장애물은 주로 조언이나 한술 더 뜨기, 가르치려 들기, 위로하기, 다른 이야기 꺼내기, 말을 끊기, 동정하기, 심문하기, 설명하기, 바로 잡기 등이다. 

 또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의 욕구를 잘 파악하지 못한다. 저자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로써 욕구가 충족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또 그 결과가 축하할 일인지 아니면 후회할 일인지와 관계없이 그 순간 자신의 욕구와 가치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한다. 우리 행동 뒤에는 진정한 욕구를 가리는 다양한 에너지들이 있는데 이를 테면 돈을 위한 노력, 인정을 받기 위한 노력, 처벌을 회피하려는 노력, 수치심을 회피하려는 노력, 죄책감을 회피하려는 노력, 의무감에서 비롯되는 것 등이다. 

 비폭력적 대화를 하기 어려운 것은 사람이 쉽게 분노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화가나는 것은 결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자극일 뿐이지 궁극적 원인은 아니다. 때문에 분노를 표현하는 첫 단계는 다름 사람들을 우리 분노에 대한 책임에서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노의 원인은 비난하고 판단하는 우리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이며 바로 우리의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는 우리가 마음속에서 충족하지 못한 자신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머리로 올라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분석하는 행위다. 

 따라서 분노는 4가지 단계로 표현해야 비폭력적 대화가 달성된다. 첫 번째는 우선 멈추고 숨을 크게 쉬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비판적인 생각을 인식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것을 자신의 욕구와 연결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자신의 느낌과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연결하는 것이다. 

 비폭력적대화에선 갈등해결 단계가 있다. 우선 우리 자신의 욕구를 표현한다. 다음은 상대가 자신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그들의 진정한 욕구를 찾는 것이다. 세 번째는 우리가 상대의 욕구를 정확하게 찾아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그렇지 않다면 계속해서 그들이 하는 말에서 그들의 욕구를 다시 찾아내는 것이다. 네 번째는 쌍방이 서로의 욕구를 정확하게 듣기 위해 필요한 만큼 충분히 공감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그 상황에서 양쪽의 욕구가 분명해지면 우리는 그것을 긍정적인 행동언어로 정리해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다.

 비폭력적 대화에선 감사를 표시하는 세 가지 방법도 제안한다. 우선 우리의 행복에 기여한 그 사람의 행동을 분명히 말해주는 것이다. 다음은 그 행동으로 인해 나의 욕구가 어떻게 충족되었는지를 말하고 마지막은 그 욕구들이 충족되어 생기는 즐거운 느낌을 말해주는 것이다. 

 책에 나온 비폭력적 대화는 여러 면에서 쓸모가 많아 보인다. 우린 일상생활에서 가족에게 학교에서 학생과 선생님에게, 직장에서 동료와 상사, 후배에게 사회에선 처음 보는 일반 다른 사람에게, 정치적으로나 웹상에선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 마구 폭력적 대화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책에 나온 예는 무척 놀랍다. 저자는 유대인인데 차별을 많이 받은 민족인만큼 택시를 탔을 때 그가 유대인인지 모르는 택시기사가 유대인에 대한 차별적 언사를 펼친다. 엄청난 분노가 끌어 올랐으나 저자가 한 행동은 잠시 숨을 고르가 그가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 욕구를 알아내기 위해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 와중에 그와 공감하며 이해가 되기 시작해 자신의 분노가 풀어졌고 그 후에 자신이 유대인임을 밝히고 그의 언어 때문에 불편했음을 밝히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며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비폭력적 대화로 마무리되는 장면이었다. 

 한국 사회는 능력주의로 인한 승자독식의 사회로 무척이나 갈등이 심하다. 정치권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일반인들이 서로 비폭력적 대화를 사용해나간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어 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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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 인 러시아 - 경제연구소의 인문학자가 들려주는 러시아의 역사.문화.경제 이야기 줌 인 러시아 1
이대식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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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줌인 러시아는 16년에 나온 책으로 그 때 구매하고 오래도록 묵혀두었다. 아마 이번에 본 러시아 지정학 아틀라스로 러시아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더 들지 않았다면 더 묵혔을지도 모르겠다. 책은 러시아에 대한 이렇다할 지식이 없던 나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러시아에 대해 사회, 문화, 역사, 예술 등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어 백과사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찾아보니 후속작이 나왔던데 이 정도 쓰고도 더 쓸게 남았던 셈인지라 저자의 내공이 대단하단 생각이다.

 러시아는 글자도 어렵고 이름도 어렵다. 글자가 여타 유럽 국가와 매우 다른 것은 그리스 정교회를 수입하면서 글자도 같이 가져와 버렸기 때문이다. 로마가 아닌 그리스 알파벳에 기반하다보니 영어에 친숙한 우리가 보기엔 유독 이질적이다. 러시아인의 이름은 무척 길고도 어렵다. 이는 부칭의 흔적 때문인데 부칭은 성이 정착하기 이전 누구의 아들 누구라는 식으로 부르던 것이었다. 헌데 러시아는 성씨가 정착화했어도 여전히 부칭도 같이 사용한다. 아들은 경우 아버지 이름에 오비치를 딸인 경우 아버지 이름에 오브나를 붙인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대문호 토스토예프스키의 정식 이름은 표도로 미하일로비치 토스토예프스키다. 여기서 그의 이름은 표도르이고 미하일로는 그의 아버지도 그리고 성인 토스토예프스키는 가족들이 대대로 살던 영지의 이름이다. 즉, 토스토예프스키의 이름뜻은 토스토예프 지방이 본관인 미하일로의 아들 표도르인 셈이다.

 러시아에서는 보통 성은 빼고 이름과 부칭만을 부르는데 푸틴을 예로들면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르비치만을 부르는게 정석이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은 대개 정교회 성인의 이름을 따른다. 그들은 영아세례에서 성자의 이름으로 세례명을 받고 이것을 평생 사용하는데 그래서 그들은 생일과 더불어 명명일도 같이 챙긴다. 

 러시아는 매우 종교적 국가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종교를 탄압하여 정교회 교회 5만 5천개 중 5만 4147개가 상실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70%정도의 국민이 정교회 신자다. 988년러시아 지도자 블라디미르 대공은 기존의 다신교보다는 제국의 통치에 유일신 종교가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서유럽 카톨릭과 유대교, 정교회, 이슬람교를 판단하기 위해 각각 사신을 보낸다. 서유럽은 러시아가 나무 조각 따위를 숭배한다고 비웃어 바로 패싱했고, 유대교는 그 민족의 처지가 보잘것 없음에 실망한다. 이슬람은 일부 다처제가 있어 제법 구미에 맞았는데 돼지고기와 술의 금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성의 할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남은 것은 정교회 뿐으로 이것을 받아들인다. 여기에 정교회의 비잔틴은 인근 제국중 가장 강력한 나라로 러시아 입장에선 무척 중요한 국가였다.

 러시아 정교는 서유럽 카톨릭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정교는 신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불완전한 인간 이성으로 직접 접근할 수 없기에 신이 아닌 것을 먼저 드러내어 신의 본질에 접근하자는 부정신학을 갖는다. 서유럽은 반대로 긍정신학이다. 그래서 러시아 성가는 무반주 아카펠라인데 불완전한 인간의 노래에 불완전한 인간의 악기 소리마저 더하는게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요소에 대한 부정은 삼위일체론에도 나타난다. 서유럽 카톨릭은 성부와 성자 모두에게서 성령이 나온다고 보는 반면 정교회는 성자는 인간적 요소가 있어 불완전하기에 성령은 나오지 못하고 성부와 성령의 매개 역할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로마카톨릭은 교황의 무오류설을 주장하며 그의 권위를 절대화하나 정교회는 총대주교가 상당한 영향력은 있으나 역시 인간으로 오류가 가능하다고 파악하여 절대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건물은 매우 아름답다. 바로 모스크 때문인데 이는 러시아의 독특한 건축양식과 문화의 결합이다. 고대 그리스는 넓은 지붕을 지탱하기 위해 많은 기둥이 있는 건물을 지었고 이로 인해 파르테논신전의 경우처럼 실내 공간이 비좁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의 판테온이 등장한다. 아래서부터 원형으로 비스듬히 벽돌을 쌓아올려 돔형건물을 만들어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내부가 원형이기에 다신교의 만신전엔 적합하나 한 대상에 집중하는 유일신교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유럽은 장방형의 바실리카형 건물로 변모한다. 하지만 동로마는 돔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장방형의 건물 위해 돔을 얻는 펜텀티브 돔을 짓는다. 러시아는 여기서 더 나아가 건물 하단 본체에서 빠져나온 기동 위에 반구 대신 양파형 돔을 얻었다. 이는 러시아에서 숭상하는 촛불을 상징한다. 

 러시아는 원형구조를 중시한다. 추운 지역이다 보니 오래전부터 태양신을 섬겼는데 이집트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태양신이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인데 반해 러시아에서 태양신은 몸을 녹이기 위해 바라보고 향해야 하는 존재다. 러시아는 그래서 태양이라는 중심과 그곳을 바라보는 주변이라는 일종의 원형구조 세계관이 전통적이다. 회화, 건축, 마을의 구조에 이 원형구조가 나타난다. 특이한 점은 이 원형이 구심력이라는 점이다. 태양이 나로 향해 오기보다는 내가 태양을 향해 가는 구조이며 그래서 나보다는 태양을 중시한다. 그래서 독특한 명명법이 등장하는데 예로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 역과 대로가 없으며 오히려 레닌그라드 역과 대로가 있다. 이는 모스크바에서 레닌그라드를 향하기 때문으로 오히려 향하는 쪽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지도자는 국민입장에서 향해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쉽게 절대화되고 민주화가 어려운 부분은 이런 점에서 기인할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한 대표적인 바보짓 중 하나로 알래스카 미국 매각이 꼽힌다. 알래스카는 한반도의 8배 크기에 러시아 영토의 1/10이며 미국에서도 가장 넓은 주다. 여기에 그동안 채굴한 금이 1000톤이상이고 세계의 10%정도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다. 여기에 매년 광업으로 125억 달라, 농어업 2억 8900만 달러, 제조업 1200만달러, 관광 20억달러를 벌어들이고 미국의 대 러시아 전진기지 역할도 하는 곳이 알래스카다. 이런 금싸라기 땅을 러시아는 고작 금화 720만 달러에 판매한다. 이는 당시 러시아 재정의 2.9%수준에 불과하다.  

 당시 러시아는 머나먼 알래스카를 관리하기 위해 준국영기업인 러시아 아메리카 기업을 설립한다. 알래스카 모피를 중국에 독점 판매하고 중국의 차를 독점 수입하는 수익구조를 편성했는데 미국에서 중국으로 물개가죽이 들어오과, 러시아가 크림전쟁에서 패하며 재정이 악화하자 알래스카의 경기도 크게 악화한다. 러시아는 대규모 전쟁배상금과 인프라 구축 비용이 필요했고 알래스카는 적자기업에 관리가 힘들었다. 게다가 당시 영국은 캐나다를 바탕으로 알래스카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에 러시아는 수익과 국방을 위해 알래스카를 미국에 판매한다. 더불어 미국과의 관계 개선도 도모했음을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무척 손해가 난 거래였으나 당대의 상황으로 보면 일면 타당한 면도 있는 거래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오랜 기간 하나의 공동체였다. 키이우는 러시아 최초 왕조인 류리크 왕조의 수도였다. 하지만 12세기 들어 류리크 가문의 갈등이 심화하고 소공국들로 분열한다. 13세기 몽골의 침입 후 서로가 서로를 항몽반란으로 고발하여 골육상쟁을 벌이는데 이 과정에서 모스크바 공국이 부상하고 중심지가 이동한다. 왕위도 기존 형제 계승에서 장자계승으로 바뀌며 14세기 부터 키이우 지역은 변방으로 취급된다. 우크라이나란 말 자체가 러시아어로 변방에 위치했다는 뜻이다. 

 14세기 후반부터 리투아니아, 폴란드의 공세에 시달리던 우크라이나는 1654년 형제국 러시아에 도움을 청한다. 러시아는 적극적이지 않으 동부인 드네프르 지역만 탈환하느데 이 것이 오랜 우크라이나 동서 분열의 시작이다. 우크라이나는 이윽고 서폴란드령과 동러시아령으로 분열하고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잠시 통합되었다가 1922년 다시 분열한다. 2차 대전 중 여러 민족에 시달리던 우크라이나 인들은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오인하여 환영했다고 피의 학살을 당하고 이후 스탈린에 의해 변절에 대한 대가로 역시 학살과 차별을 겪는다. 구소련은 서부는 농업지대로 동부는 공업지대로 육성하였는데 그 결과 지금까지 동서간의 경제력 차이가 크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동부는 오랜 기간 러시아의 영향을 받고 실제 러시아인도 다수 거주하다보니 우크라니아 서부와 다른 정체성을 갖고 분열의 조짐을 계속 보인다. 2014년 크름반도 합병과 2022년 전쟁에서 동부가 쉽게 넘어간 이유다. 

 러시아의 발레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세계 5대 발레단 중 2개가 러시아며 나머지들도 러시아인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발레는 1400년대 이탈리아 귀족들이 영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 앞에서 춤을 추며 시작되었다. 1549년 피렌테의 공주가 프랑스로 시집가서 전파되었으며 이후 프랑스가 발레의 중심지가 된다. 표트르 대제의 아버지 알렉세이는 발레를 보고 매료된다. 러시아는 이후 황실이 직접 발레를 육성한다. 무도회를 개최하고 귀족과 여식의 동참의 의무화했으며 심지어 육상의 정규과목에 발레를 편성할 정도였다. 

 1783년 러시아 왕실 발레 학교가 개교한다. 궁정하인의 자제 12명을 남여 동수로 선발하여 육성했고 이처럼 발레리노를 유지한 것이 러시아 발레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다. 러시아는 최고 수준만을 고집하여 유럽 각국의 최고 전문가를 초빙했고 높은 개런티를 주어 인재를 빨아들였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드디어 최고 수준의 무용가, 안무가, 음악가, 화가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오랜 노력의 결실이었다. 반면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발레는 오페라의 인기로 사장위기였다. 1909년 러시아 발레단이 파리에서 공연하자 유럽 관객들은 잊혀진 발레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러시아는 발레를 크게 발전시켰는데 우선 군무다. 발레에서 원래 군무는 부차적인 것이었지만 러시아는 군무를 중요한 요소로 승격시킨다. 튜닉이나 타이즈등 몸매를 아름답게 드러내면서도 춤추기에 편한 복장도 군무에 큰 도움이 되었다. 러시아는 발레에 막과 장을 도입하여 이야기의 전개를 알기쉽게 하였는데 이는 차이코프스키가 교향곡의 4막 구조를 과감히 발레에 도입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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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05-22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러시아 책, 특히 미술사 책 단지 몇 권 읽고 러시아가 넘 좋아져 이번 전쟁 나기 바로 전에 러시아 다녀왔습니다. ^^
참, 동양도 서양도 아니며, 자본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상당히 낯설고 이상하고 재미있는 나라였습니다.
쓰신 글 읽고 그때 방문이 새롭게 기억나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닷슈 2023-05-22 19:52   좋아요 1 | URL
다녀오셨다니 부럽네요. 전쟁과 세계의 새로운 양극화로 러시아가 다시금 아주 머나먼 나라가 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러시아 지정학 아틀라스
델핀 파팽 지음, 권지현 옮김 / 서해문집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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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한국 대통령의 우회적 방법을 통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대량 학살의 조건을 내세우며 전쟁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발언으로 인해 러시아는 한국에 상당한 경계심과 경고성 발언을 드러냈다. 한국은 지정학상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4개의 강국에 둘러 싸여있지만 분단으로 러시아와는 직접 국경을 맞닿지 않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교류가 다른 3국에 비해 약해서 인지 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이해는 많이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향후 러시아가 한국에 중요해질 가능성은 많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국경을 직접 맞닿게 되어 관리해야 하는 이웃 국가가 되며 이렇게 되면 교통로도 연결할 수 있게 되어 그들로부터 상당량의 지하 자원 수업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지구온난화로 북극 항로에 대한 이용, 그리고 농경의 가능함으로 인한 시베리아 토지의 이용 가능성도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가 될 것이다. 

 일단 그냥 보기에도 러시아는 상당한 비정상 국가다. 20세기를 넘어 21세기가 되어서도 공산주의가 무너졌음에도 민주 국가를 세우지 못했으며 정치는 폭압적이고 독재적이다. 외교적으로도 그러해 체첸분쟁과 조지아 침공, 시리아 내전 개입, 크름 반도 강제 병합, 우크라니아 침공까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라면 온갖 제재와 도덕성, 국제적 비난을 무릅 쓰고서도 힘에 의한 개입을 자행한다. 이런 러시아의 행태에 대한 지정학적 분석과 역사적, 정치적, 사회 문화적 분석이 담긴 책이 러시아 지정학 아틀라스다. 

 책은 러시아의 주요 특징과 사건들에 대한 도표와 지도로 가득해서 나처럼 지도와 도표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척 반길만한 책이다. 책은 150쪽 정도로 짧지만 지도가 많이 들어가서인지 면이 좌우로 길어 분량이 적게 느껴지진 않는다.

 구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는 소련이라는 거대 제국의 후계자가 된다. 물론 상당한 인구와 영토, 주요 지점을 상실했으며, 위상도 급추락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로 소련의 찬가를 유지했고, 수도도 모스크바를 계승했다. 또한 유엔 상임이사국의 지위도 유지했으며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등지에 퍼져있던 핵무기도 회수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그다지 성장하지 못했으며, 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며 그나마 평균수명도 여타 유럽국가에 비해 짧다. 또한 첨단 무기나 제품을 개발하나 양산하는 기술과 시설을 갖추고 있지 못하며, 뛰어난 과학자들도 더 이상 배출되지 못하고 인력은 유출되기만 한다. 국가의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고 정치는 독재적이며 경제는 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막대한 자원이 있기에 지금의 경제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군사력을 강화하고 각종 분쟁에 개입하며 전쟁마저 치루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 국민들은 이런 자국정부를 적극 지지한다. 이는 푸틴 독재정권이 시민사회를 말살하고 언론을 탄압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모조리 숙청한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러시아의 행위가 자국을 지키는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모순되게도 기본적으로 러시아는 겁이 많은 나라다. 사방이 탁트여 이렇다할 자연 방어물이 없고 그로 인해 지정학적으로 막강한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침입을 쉽게 받고 오랜 기간 그들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국가의 형성이나 사회의 발전 등 모든 것이 느려졌다.  때문에 이들은 방어를 위한 팽창에 집착하고, 외부 침입과 위압에 무척이나 민감한 역사성을 갖는다. 그렇기에 다른 세계인이 보기엔 강자에 의한 일방적 침공행위로 보이는 러시아의 무력 개입이 자국민들에겐 방어적 행동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러시아는 냉전 이후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상당한 고행을 겪었고 사실상 실패했다. 또한 그나마 막강했던 군대마저 후진화한다. 푸틴을 포함한 러시아는 냉전 이후 초기엔 서방에 협력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행동에 배신감을 느끼고 이들을 적대하기 시작한다. 

 우선 서방사회의 위선이다. 카다피가 축출되고, 코소보 사태가 일어났다. 나토는 동쪽으로 러시아 아 국경까지 확대했고 우크라이나에서는 오렌지 혁명이, 키르키스스탄에선 재스민 혁명이 일어났다. 이는 러시아를 군사적 정치적으로 위협했으며 러시아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의 배후에 미국의 입김이 자리한다고 판단했다. 둘째는 미국의 내부 분열과 서아시아 군사 개입으로 그들의 세력이 약화한 것이다. 이는 러시아가 행동하기에 좋은 빈틈이었다. 셋째는 반동적 대담함, 강한 군사력, 넓은 영토가 경제 제재, 부담스러운 군사비, 국제 사회의 비난보다 결과적으로 국익에 더 큰 우위를 준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그러한 것을 얻어왔으며 자급자족할수 있는 경제이기에 국제제재도 효과가 크지 않았다. 또한 러시아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전가지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군사적 행동에 대해 비난만 했을 뿐 이렇다할 행동을 보이지 않았었기에 러시아는 더욱 대담할 수 있었다.

 푸틴은 이런 생각하에 집권 이후 총 7차례의 전쟁 분쟁을 일으킨다. 우선 체첸전쟁이다. 푸틴은 체첸 분리주의자들이 러시아에 테러를 일으켰다고 하며 지역을 다시 폭격한다. 다음은 2008년 조지아로 남오세티야의 압하지야의 분리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조지아 정부가 군대를 움직인 것을 빌미로 침공하여 조지아 영토 20%를 빼앗았다. 2014년은 우크라이나로 그는 흑해 크름반도를 합병해버린다. 2015년은 시리아로 푸틴은 시리아 정권을 도와 폭격기로 반군을 폭격해 시리아 정부가 주요 지역을 장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다섯 번째는 리비아로 카다피 몰락후 내전이 발생한 리비아에 개입하여 이전의 장악력을 회복하려 시도중이다. 여섯 번째는 나고르노카라바흐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분쟁에 중재자로 개입해 자신의 군대를 주둔시켜 캅카스 지역에서의 군사적 입지를 강화한다. 마지막은 현재진행형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전면적으로 침공했으나 크름합병때와 달리 우크라이나 자체가 극렬저항중이고 서방의 적극적인 군사지원으로 크게 고전하고 있으며 손실도 크다. 이에 푸틴은 항상 써오던 분쟁 같은 애매한 단어 대신 이 전쟁에 대해 드디어 '전쟁'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갈등의 기저에는 종교도 자리한다. 현재 동방정교회는 3가지로 갈라진다. 가장 정통성 있는 것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회로 역사적 전통이 있지만 비잔틴 제국의 붕괴하며 유명무실해졌고, 이후 튀르키예 공화국이 설립되며 그리스인들이 대거 이주하며 더욱 힘을 잃었다. 하지만 이들은 정통성에 바탕한 힘이 있는데 1686년 우크라이나가 제정 러시아에 통합되며 이 지역을 모스카바 총대주교청 관할에 속하게 칙령을 내린다.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은 사회주의 소련에 의해 크게 탄압받았음에도 살아남았고 사실상 동방정교회의 중심 세력이다. 이들은 과거 정치권과의 갈등으로 인해서인지 현재는 러시아 현실 정권에 매우 타협적이며 정권을 강하게 지지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를 상실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신자들은 크름반도 합병과 침공을 지지한 모스크바 총대주교회에 등을 돌렸고 설상가상으로 2018년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청이 1686년의 교회령을 철회하여 키이우 총대주교청이 세를 키우는 계기가 된다. 모스크바 대주교청은 이로 인해 3500만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신자와 정교회 소속 및 공동체 자산의 1/3정도를 상실하게 된다.

 책에는 이이에도 칼리닌 그라드, 터키와 러시아의 밀월관계, 북항로, 지구 온난화, 중앙아시아를 사이에 둔 러시아와 중국의 경쟁,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과 입김, 구소련 소속이었던 독립국가연합 출신 국가들의 과거와 현재, 러시아와의 관계 등을 다루어 러시아의 지정학적 상황과 국제 위상과 정책, 외교관계 등에 대해 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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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카밀라 팡 지음, 김보은 옮김 / 푸른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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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드라마 우영우가 큰 인기를 몰고 난지 얼마 후 충격적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국 자폐인의 평균수명에 관한 기사였는데 놀랍게도 23.8세에 불과했다. 이는 자못 충격적인 수치였는데 한국의 다른 장애인과 비교해도 평균 수명이 과하게 짧았기 때문이다. 지적 장애도 낮긴 했으나 50대였으며 인지능력이 정상인 시청각 장애도 70대로 거의 천수를 누리고 있었다. 자폐인의 수명이 이렇게 과도하게 낮은 이유로는 학습 능력이 우수한 경우 외부 자극과 자신들에 대한 사회의 몰이해로 강한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률이 높게 형성된다는 점, 그리고 학습 능력과 인지 능력이 낮은 경우는 판단 능력 부족으로 사고사가 잦다는 점이다. 또한 유일한 보호자인 부모가 나이 들어 사망하거나 경제적 능력을 잃는 경우 건강 관리가 안되 각종 질병에 취약하다는 점도 꼽힌다. 아파도 그런 표현을 하지 못하는 그들이다.

 물론 다른 선진국들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과 비슷한 경제적 수준을 자랑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해 높은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 수준을 보이는 다른 나라들은 자폐인의 경우도 평균 수명이 40-50대에 이른다. 이는 일반인에 비하면 30년 정도 낮은 수준이나 그래도 한국의 두 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것은 이번에 읽은 책과 관련이 있다. 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은 영국계 자폐인 과학자가 쓴 책이다. 물론 일반 자폐인에 비하면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다. 과학자가 될 만큼 인지 능력을 가졌고, 자신이 일반인들과 매우 달라 외딴 혹성에 떨어진 외계인 같다는 느낌을 가질 정도로 외부 인지와 타인에 대한 고려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도 저자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라 성장 과정에서 무척 큰 고통을 겪었고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는 자폐인으로서 자신의 특징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과학적 현상에 대한 비유로 재미나게 풀어냈다. 물론 자폐인이 쓴 책인지라 일반인인 나로서는 초반 분위기 잡는 게 쉽지 많은 않았다. 하지만 의도를 이해하고 나니 제법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다. 

 저자는 자신의 자폐스펙트럼 장애로 인해 깨어 있는 시간은 항상 강박 관념과 공포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불안감이 가장 절정에 달하는 시간은 밤이었다고 하는데 자폐인들의 상당수가 수면 장애를 앓는 것에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ADHD이기도 했는데 이 상태는 특정 상황에 걸맞는 뇌의 파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시공간 감각이 붕괴되어 전체적으로 기능이 엉망인 상태가 되고 만다. 오랜 시간 집중이 어렵고 매우 충동적이고 감정 변화가 심한 사람으로 만들어 한 순간에 매우 행복해하다가 곧 매우 우울하고 절망적이 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중 조울증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것과 관련한 것이다.

 저자의 여러 이야기 중 가장 재미나고 인상적인 이야기는 에르고딕 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는데 이는 특정 계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표본은 전체의 평균적인 특성을 갖는 다는 것이었다. 이는 이론적으로 특정한 미시 상태는 무엇이든 간에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쉽게 말하면 브라운 효과처럼 물에 담긴 꽃가루 하나하나의 움직임은 도무지 예측 불가하나 전체적인 움직임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즉, 아무리 독특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하나의 움직임이더라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체의 일부이며 그렇기에 어느 것이든 평균적인 표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무리 이상한 자신이더라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다양한 인간 군상의 평균적인 표본으로도 간주할 수 있다는 점에 인상을 받은 듯 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진 듯 하다. 책에 등장하는 다른 예처럼 물론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파장을 가진 사람을 가장 편안히 여기고 선호한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파장을 가진 피곤한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수용하는 것 역시 더불어 사는 인간의 입장에서 중요하다.

 하여튼 오랜 세월을 살아오고 남과 다른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다른 사람들(재밌는 일화가 많다. 저자는 자폐인이라 또래 압력을 거의 겪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또래 압력으로 인해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복장이나 문신, 행동 등을 하는 것에 시달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하고 친숙해지기 위해 일부러 그런 행동을 따라하기도 했는데 하나같이 친구들로부터 거부당했다. 그리고 한 번인 집에 전화가 왔는데 상대의 통화내용은 저자의 어머니가 집에 있느냐 였다는 것이다. 쉽게 아무개야 엄마 집에 있니?라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그 내용을 듣고 네라고 호기롭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척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며)로 인해 많은 고충을 겪으며 내린 저자의 결론은 책 제목처럼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이었다. 그렇게 될 수 있게 끔 사회와 각 개인이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회의 폭력으로 지나치게 일찍 사망하는 자폐인들도 하나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주어진 천수를 누리며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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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5-16 0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폐인을 위한 사회의 도우미 역할이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끼게 합니다.ㅠㅠ

닷슈 2023-05-16 10: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장애인은 최저임금조차 보장이안되고 취업도 어렵더군요 자폐인은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