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
카밀라 팡 지음, 김보은 옮김 / 푸른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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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우영우가 큰 인기를 몰고 난지 얼마 후 충격적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국 자폐인의 평균수명에 관한 기사였는데 놀랍게도 23.8세에 불과했다. 이는 자못 충격적인 수치였는데 한국의 다른 장애인과 비교해도 평균 수명이 과하게 짧았기 때문이다. 지적 장애도 낮긴 했으나 50대였으며 인지능력이 정상인 시청각 장애도 70대로 거의 천수를 누리고 있었다. 자폐인의 수명이 이렇게 과도하게 낮은 이유로는 학습 능력이 우수한 경우 외부 자극과 자신들에 대한 사회의 몰이해로 강한 스트레스를 받아 자살률이 높게 형성된다는 점, 그리고 학습 능력과 인지 능력이 낮은 경우는 판단 능력 부족으로 사고사가 잦다는 점이다. 또한 유일한 보호자인 부모가 나이 들어 사망하거나 경제적 능력을 잃는 경우 건강 관리가 안되 각종 질병에 취약하다는 점도 꼽힌다. 아파도 그런 표현을 하지 못하는 그들이다.

 물론 다른 선진국들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과 비슷한 경제적 수준을 자랑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해 높은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 수준을 보이는 다른 나라들은 자폐인의 경우도 평균 수명이 40-50대에 이른다. 이는 일반인에 비하면 30년 정도 낮은 수준이나 그래도 한국의 두 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것은 이번에 읽은 책과 관련이 있다. 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은 영국계 자폐인 과학자가 쓴 책이다. 물론 일반 자폐인에 비하면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다. 과학자가 될 만큼 인지 능력을 가졌고, 자신이 일반인들과 매우 달라 외딴 혹성에 떨어진 외계인 같다는 느낌을 가질 정도로 외부 인지와 타인에 대한 고려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도 저자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라 성장 과정에서 무척 큰 고통을 겪었고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저자는 자폐인으로서 자신의 특징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과학적 현상에 대한 비유로 재미나게 풀어냈다. 물론 자폐인이 쓴 책인지라 일반인인 나로서는 초반 분위기 잡는 게 쉽지 많은 않았다. 하지만 의도를 이해하고 나니 제법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다. 

 저자는 자신의 자폐스펙트럼 장애로 인해 깨어 있는 시간은 항상 강박 관념과 공포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불안감이 가장 절정에 달하는 시간은 밤이었다고 하는데 자폐인들의 상당수가 수면 장애를 앓는 것에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ADHD이기도 했는데 이 상태는 특정 상황에 걸맞는 뇌의 파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시공간 감각이 붕괴되어 전체적으로 기능이 엉망인 상태가 되고 만다. 오랜 시간 집중이 어렵고 매우 충동적이고 감정 변화가 심한 사람으로 만들어 한 순간에 매우 행복해하다가 곧 매우 우울하고 절망적이 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중 조울증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것과 관련한 것이다.

 저자의 여러 이야기 중 가장 재미나고 인상적인 이야기는 에르고딕 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는데 이는 특정 계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표본은 전체의 평균적인 특성을 갖는 다는 것이었다. 이는 이론적으로 특정한 미시 상태는 무엇이든 간에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쉽게 말하면 브라운 효과처럼 물에 담긴 꽃가루 하나하나의 움직임은 도무지 예측 불가하나 전체적인 움직임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즉, 아무리 독특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하나의 움직임이더라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체의 일부이며 그렇기에 어느 것이든 평균적인 표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무리 이상한 자신이더라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다양한 인간 군상의 평균적인 표본으로도 간주할 수 있다는 점에 인상을 받은 듯 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진 듯 하다. 책에 등장하는 다른 예처럼 물론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파장을 가진 사람을 가장 편안히 여기고 선호한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파장을 가진 피곤한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수용하는 것 역시 더불어 사는 인간의 입장에서 중요하다.

 하여튼 오랜 세월을 살아오고 남과 다른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다른 사람들(재밌는 일화가 많다. 저자는 자폐인이라 또래 압력을 거의 겪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또래 압력으로 인해 자신에게 맞지도 않는 복장이나 문신, 행동 등을 하는 것에 시달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하고 친숙해지기 위해 일부러 그런 행동을 따라하기도 했는데 하나같이 친구들로부터 거부당했다. 그리고 한 번인 집에 전화가 왔는데 상대의 통화내용은 저자의 어머니가 집에 있느냐 였다는 것이다. 쉽게 아무개야 엄마 집에 있니?라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그 내용을 듣고 네라고 호기롭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척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며)로 인해 많은 고충을 겪으며 내린 저자의 결론은 책 제목처럼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이었다. 그렇게 될 수 있게 끔 사회와 각 개인이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회의 폭력으로 지나치게 일찍 사망하는 자폐인들도 하나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주어진 천수를 누리며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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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5-16 0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폐인을 위한 사회의 도우미 역할이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끼게 합니다.ㅠㅠ

닷슈 2023-05-16 10: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장애인은 최저임금조차 보장이안되고 취업도 어렵더군요 자폐인은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