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심장 여행 - 생명의 엔진, 심장에 관한 놀라운 지식 프로젝트 매력적인 여행
요하네스 폰 보르스텔 지음, 배명자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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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좀 상식적이다. 심장에 좋은 것은 결국 규칙적 운동과 채식위주의 좋은 음식,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줄이기, 섹스다. 기관 설명도 좀 복잡한 편인데, 좀 더 그런 부분이 쉬우면서도 상식이상의 설명이 많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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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릿 GRIT -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
앤절라 더크워스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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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내에서 함께 일하는 원어민에게 그릿의 뜻을 물어보았다. 의외로 한참을 고민하더니 예상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무슨 남쪽지방에서 먹는 음식인데 채소같고, 감자 갈아놓은 것 같은 그런 설명이었다. 원어민이 검색해준 사진을 보니 감자갈아놓은 샐러드 같은 그림이 있었다. 가장 먼저 말하는걸 보니 아무래도 이게 제1번 뜻인 것 같았다. 그리고 두번째로 사람 성격인데 열정이나 뭔가를 장기적으로 노력하는 뭐 그런거라고 말했다. 이게 책 그릿이 말하는 것이다. 한참을 어렵게 설명하는 것을 보면 그릿이란 단어는 생각만큼 미국에서 잘 쓰이지 않는 것 같기도 했지만 반면 뜻을 말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저자가 만들어낸 이상한 단어는 아니란 것도 분명했다.

 하여튼 저자는 책에서 그릿이란 아주 오랫동안 상위 목표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미국의 아주 살벌한 장교양성코스를 연구하던 중, 사람들의 높은 탈락율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공통 특성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그것은 재능이나, 높은 SAT  점수, 강력한 신체적 능력, 학벌등이라고 생각하기 쉬웠지만 대답은 그릿이라는게 저자의 결론이었다.

 그릿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쉽게 눈에 띄는 것은 그릿의 결과물인데, 그래서 사람들은 높은 성과를 나타낸 사람들에게 아주 손쉽게 천재라고 칭하거나 타고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저자는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조장한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서 노력을 선천적 재능으로 파악해버림으로서 우리 모두가 경쟁에서 벗어나고 현실에 안주하며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의 경향이라고 이를 설명한다. 실제로 우리는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학생이나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인간같지 않은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고 쉽게 천재라고 칭한다.(자신의 끈기와 오랜 노력을 천재로 치부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며 과연 그릿을 가진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이런 그릿은 크게 4가지의 심리적 자산을 갖는다.

 첫번째는 관심으로 무언가에 관심을 갖는 것을 그것에 대한 그릿의 시작이다. 관심은 대개 아동기보다는 중학교 무렵에 오는 편이며 자기성찰보다는 외부세계와의 접촉에 의해 생긴다. 어릴적 다양한 체험학습이 교육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관심사의 발견 이후에는 오랜 시간 주도적으로 관심사를 더욱 발전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교사나 부모등 여러사람의 지지가 중요하다.

 두번째는 의식적인 연습이다. 이는 1만시간의 재발견에서도 강조한 것으로 의식적인 연습을 위해서는 명료하게 진술된 도덕적인 목표와 완벽한 집중과 노력, 연습에 대한 즉각적이고 유용한 피드백과 반성과 개선을 통한 꾸준한 반복이 필요하다. 

 세번째는 목적의 개념으로 여기서 말하는 것은 가장 최상위의 목표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 많은 만큼 여러개의 하위 목표를 피라미드구조로 갖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이 분명한 사람은 단 하나의 상위 철학을 갖으며 나머지 하위 목표들은 이를 위한 연결고리다. 하위목표는 언제든지 쉽게 바뀌고 없앨 수 있지만 상위목표만큼은 그럴수 없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그릿을 갖추기 위해선 이 상위목표가 나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중요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누군가의 상위목표가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릿을 위한 목표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아 다른 사람들과 세계가 평화롭고 하는것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희망으로 이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전진할수 있는 성장형 사고 방식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어려움이 닥쳐올시 포기하거나 정신적으로 붕괴하는 반면 그릿을 가진 성장형 사고 방식의 사람은 낙관적으로 해석하고 끈기 있게 새로운 도전을 추구해 나간다. 

 이처럼 그릿은 개인의 심리적 작용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여기엔 부모와 교사, 멘토등 외부 사람과의 상호작용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들은 지지와 냉담, 과업에 대한 요구와 비요구를 할 수 있는데 저자는 그릿을 키우기 위해선 지지와 요구가 같이 가는 현명한 양육방식이 적절하다고 조언한다.  

 또한 학교현장에서 수업과는 별개로 특별활동이 그릿을 키우는데 유용하다고 한다. 이 경우 특별활동에 1년이상 참여한 경우가 그릿을 키우는데 효과적인데, 특별활동을 자주 바꾸는 것은 그릿을 키우는데 유용하지 못하며 바꾸더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2-3년 이상 유지하는게 효과적이라고 한다. 물론 그릿이 높기에 특별활동에 잘 참여한 것일수 도 있지만 저자는 쌍방이 서로 상호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릿이 높은 사람들은 행복지수도 높다라는 결과까지 써붙이며 책을 마무리한다. 책 그릿은 전형적인 인간 능력에 대한 선천적 유전과 후전적 노력에 대한 책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그릿은 당연히 후자의 손을 든다. 물론 그릿같은 것역시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이냐고 물을수도 있다. 저자는 쌍둥이에 대한 조사 결과 그릿의 유전비율은 30%정도로 인간의 다른 특질의 유전정도와 유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후천적 환경과 노력에 의해 그릿을 충분히 키울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견해에 동의하는 편이다. 우선 모든게 유전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생물체의 생존에 너무 불리하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의 진화와 유전자는 상당부문 개체에게 주어지는 환경과 그 극복을 위한 노력에 대한 산물을 준비했을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것이 넘을 수 없는 한계란것도 유전적으로 분명하겠지만 생존하고 행복하고자 하는 개체를 위한 선물정도는 충분히 되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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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훔친 미술 -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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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과 시대는 서로의 모습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때론 시대의 변화를 미술이 추종하기도 하고, 어떨때는 미술이 사람과 시대를 앞서나가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살아생전에 그리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도 이때문이다. 그리고 때론  미술은 시대와 권력의 종 노릇을 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미술을 하는데는 돈이란게 결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술은 그 사회와 당대의 썩어빠진 폐부를 정말 잘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미술과 시대는 그렇게 서로를 그려나간다. 

 이 책 시대를 훔친 미술은 대충 르네상스시기부터 근현대까지 유럽 사회의 시대 변화와 미술의 변화를 정말이지 잘 뒤섞은 책이다. 예술은 나에겐 부채와도 같은 편인데 항상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좀처럼 손이 가질 않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결코 많진 않지만 여러 권이 그러한 마음의 부채를 메우 듯 책장에 쟁여져 있는데, 연휴로부터 용기를 얻어 열어본 이 책을 열어보았다. 결과는 기대이상이었다.

 책은 일단  르네상스시기로 향한다.  르네상스 이전 시기 유럽 미술의 주제는 단연 기독교였고, 이는 인간중심의 르네상스시기라고 다르지 않다. 하지만 표현 방법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큰 차이가 생긴다. 과거 역원근법에서 선원근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역원근법은 전지전능한 신이 당연히 여러곳을 볼수 있다는 점에서 신의 관점을 시각화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선원근법은 그림을 한 시점에서 보는 것으로 지금, 현존하는 주체의 존재를 시각화 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과 카톨릭으로 묶여 있던 철저히 예속된 공동체 상황에서는 존재할 수 없었던 근대적 개인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대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 상황으로 과거 민족개념이나 국가개념이 매우 미약한 상황에서 교황의 권위가 약해지고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였으며 신교의 등장으로 신앙 역시 다양해지고 있었다. 또한 서적의 보급으로 과거 낭독으로 이루어진 독서가 개인적인 독서인 묵독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러한 개인 탄생을 부채질하는 시대변화가 미술에 반영된 것이다. 

 신교의 등장으로 미술이 바뀌었다면 다음은 구교의 반격이었다. 카톨릭은 신교가 서적의 보급을 통한 언어 위주의 문자포교에 맞서 미술을 사용하였다. 이시기의 미술 유행인 바로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바로크 시대에서 미술은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조를 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당시 등장한 연극의 연출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강렬한 구성을 통한 종교적 고양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극적인 효과는 당시 종교전쟁 이후 등장한 절대왕정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종교적 열정과 예술의 영향으로 태동한 바로크가 세속화 하기도 한 것이다. 

 이 시기에 유럽의 북부 한 곳에서 독특한 나라가 탄생한다. 바로 네덜란드다. 나라가 독특하기에 그 나라의 미술 역시 독특했다. 다른 유럽 지역들과는 다르게 네덜란드는 시민 공동체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나라이기에 그들을 위한 미술작품이 다수 탄생한다. 마치 양반과 왕가에서 벗어나 백성을 위해 탄생한 우리의 민화같은 느낌이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이 귀족과 시민공동체를 기리기 위한 그림이 많아 탄생하여 주로 집단 초상화가 많았다. 또한 오랜 전쟁과 대항해시대의 도래로 남자들이 집안을 비우자 여성들이 가정의 가장과 직장인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자연히 여권의 신장으로 이어져 이 시기 네덜란드의 그림에서는 매우 독립적이고 남성과 대등해 보이는 여성이 드러나는 미술작품도 다수 등장한다.

 대항해시대의 도래는 당대 유럽인들의 사고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기 시작한다. 종교개혁과 지리상의 발견들로 기존의 세계관이 흔들리고 확장 분열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굳건했던 종교적 믿음이 흔들리고, 나홀로 신과 사제로의 의지 없이 새로운 세계 안에서 자기를 끊임없이 확증해야 하는 고독한 개인상이 등장하게 된다. 이는 누구보다 굴곡진 삶을 살았던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잘 드러난다.

 이와 같은 시기에 절대왕정의 궁전에서 세속화한 바로코는 급기야 로코코로 변화한다. 바로크가 다소 굵직하고 역동적인 남성적 취향의 예술이었다면 로코코는 섬세하고 변덕스러운 여성의 취향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정략결혼으로 정작 사랑의 자유를 갖지 못한 귀족과 왕족들의 로코코 취향은 목가적 사랑을 그리는 그림의 발전을 낳는다. 치열한 개인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시민세계에 비한다면 사뭇 유아적인 느낌마저 갖게하는 형국이다.

 절대왕정의 시기는 프랑스 혁명으로 그 끝을 점차 맞이 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기 예술은 바로크도 로코코도 아닌 신고전주의로 향한다. 신고전주의는 교훈적이고 영웅적인 행위를 묘사하는 역사화, 신화화, 초상화를 주로 많이 남겼다. 혁명기 이후 프랑스에서는 신고전주의가 쇠퇴하고 낭만주의가 시작되었는데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프랑스에 반감이 강했던 독일에서는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향으로 독일식 낭만주의가 시작된다. 이 낭만주의는 프랑스의 그것에 비해 시대적 요구에 의하여 민족적 색채가 강했으며 자유를 갈망하는 개인을 자연을 매개로 표현하는 형태가 많아 유독 풍경화가 많았다.

 유럽엔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한다. 산업혁명 시대는 뜻밖에도 산업화한 도시이외에도 미술에 있어 농촌을 재탄생시켰는데 이는 사람들이 산업화한 도시로 몰리면서 늘 있었던 농촌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엔 도시와 대비되는 농촌 풍경과 그 안의 인물들을 다룬 그림이 사실적인 형태로  그려졌다. 당시 그림엔 유독 농촌에서 일하는 여성이 많았는데 이는 남성을 도시와 문명, 이성으로 보고 여성을 농촌, 자연, 감성으로 여기는 계몽주의의 이분법적 철학
이 그림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기에는 상당히 오랜 기간 역설적이게도 도시의 노동자보다는 농촌이 주로 다루어졌다. 이는 초기 공장에서의 노동이 이렇다할 전문적인 노동의 형태를 띄지 못한 단순 노동이었기 때문이며 당시 공장의 노동형태가 마치 지옥처럼 극도로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산업혁명기에 인간은 여러가지를 발명하여 이른바 속도를 낳는다. 사람들은 늘 정적인 풍경만 보고 살았는데 증기기차등의 발명으로 빠르게 이동하여 마치 물결이나 띠처럼 느껴지는 풍경을 보게 된것이다. 이는 미술에 영향을 미쳐 자연의 한 순간이나 힐끗 본듯한 한 때의 인상을 남기는 인상주의가 시작된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한때의 인상을 위해 야외에서 즉석으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당시 교통수단의 발달과 튜브형 물감의 발명은 이를 가능케했다.

 산업혁명기 이런 인상주의의 등장은 르네상스이후 줄곧 계속되어 온 본질을 그리고자 한 열망의 폐기를 의미했다. 이제 더이상 그림은 있는 그대로를 다양한 형식으로 담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상주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늘 명랑했는데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간의 자신감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이 작품에 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유럽의 풍요는 어디까지나 제국주의를 통한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수탈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수탈을 가능케 한 제국주의는 세계대전과 경제공황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며 이는 곧 인상주의의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20세기 들어 새로운 세기에 대한 새로움과 성공에 대한 예술가들의 갈망이 겹치면서 예술적 아방가르드가 시작된다. 당시 예술은 대중과 호흡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과 고지를 선점하려는 예술가들의 실험적 경쟁이 본격화한 시기였다. 그리젤다 폴록은 이시기 예술의 파괴성을 과거 예술인 아버지에 대한 참조와 그것에 대한 경의,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지위를 전유하고 강탈하고자 한 문화적 친부살해로 표현했다.

 이 시기에는 야수파와 입체파, 미래주의, 절대주의, 추상미술등 매우 다양한 형태의 미술이 등장한다. 입체파는 시공간에 대한 기본 개념을 뒤흔든 아인슈타인의 등장에 영향을 받았으며 추상미술은 오히려 예술의 주변지였던 유럽 변방국가들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예술의 지향점을 눈에 보이는 현존세계가 아닌 내적 필연성의 세계에 두었고 현실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공통적으로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는 오브제를 제작한 마르셀 뒤샹에 의해 처음으로 극복된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모처럼 국적을 잊고 예술적 공동체 의식과 보편성을 갖고 있었으나 이는 1차대전을 통해 무참히 깨져나간다. 몇몇 예술가들은 전쟁을 통해 전사했고, 살아남은 몇몇은 더이상 낭만적이거나 즐거울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은 이성에 근거한 서구문화 전체를 부정하는 다다로 이어졌다.

 책은 이 시기에서 마무리 된다. 역사와 함께 다룬 미술이라 쉽게 읽히면서 그 미술과 역사가 서로를 그려나간 변화가 인상적이고 아프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역사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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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1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상미술의 시대가 열렸을 때 이탈리아와 러시아 미술도 주목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솔리니와 스탈린의 시대가 오는 바람에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었습니다. 시기적으로 타이밍이 좋지 못했습니다.

닷슈 2017-10-11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러시아 쪽은 철저히 이용하기도 했더군요.
 
관계의 비결 - 사기, 성공하는 관계를 말하다
박영규 지음 / Mid(엠아이디)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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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관계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인간이란 말자체가 사람의 정체성을 사람간의 사이로 묘사하는 만큼 사람에게 있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는 영원한 고민거리 일 수 밖에 없다. 일전에 읽었던 행복의 기원에서는 사람의 행복에 관한 가장 큰 요인으로 사람간의 관계를 꼽았었다. 관계가 행복의 근원임에도 인간의 성향을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양분할수 있는 것은 관계가 행복의 근원인 동시에 불행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책 관계의 비결은 사람간의 올바른 관계 맺기에 관한 책이다. 좀 독특한 점은 이를 심리학이나 다른 여타의 것이 아니라 고대 중국의 역사와 일화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주로 의존한 것은 사마천의 사기다. 사기는 기원전 3천년 중국 전설의 삼황오제시기부터 사마천의 시기인 한나라 무제까지를 다룬 역사책이다. 한나라 무제시기(고조선이 이 무제땜에 망했다.)도 상당히 오래전인데 그것이 가장 최근인 역사책이니 중국의 역사가 오래긴 하다.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수많은 일화중 관계 맺기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관심과 배려, 정의로움을 기준으로 이를 잘 드러내는 일화들을 소개하는 형태로 책을 구성했다. 그래서인지 책은 관계 맺기 책 같기도 하고 중국 역사 일화책인것 같기도 한 애매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 역시 중국의 고대 역사엔 삼국지이외엔 크게 관심이 없는지라 책에서 다른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그리고 진과 진한교체기의 인물들이 낯설기도 했다. 아마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여러 역사소설이나 초한지 정도를 독파한 분이라면 이 책에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클 것이라 생각된다. 

 재밌고 인상적인 부분은 앞 부분 유방과 항우에 대한 점이다. 저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양웅의 관계 맺기에서의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고 생각한다.

  유방의 경우 기본적으로 성격이 소탈하고 너그러우며 옳은 말이라면 즉각 자신의 태도를 고치는 성품을 지녔다. 또한 전 왕조인 진의 함양을 점령했을때 그 화려함에 욕심을 부리고도 부하의 참언에 이를 그대로 보존하여 이로 인해 전쟁내내 윤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선다.  물론 상당히 세속적이면서 자기가 살고자 자식까지 죽일 수 있는 비정함도 갖추고 있다.(유방은 전쟁에서 패해 마차가 추격당할때 속도를 내기 위해 동승하던 자신의 두 자녀를 마차밖으로 내버리려 했다.) 본인의 권력에  대한 강한 의지와 그로 인한 비정함에도 유방의 이런 관계맺기는 상대방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정의로움까지 모두 갖춘 셈이다.

 반면 항우는 훌륭한 집안과 세력등 유방에 비해 객관적 조건이 월등함에도 부하의 말을 듣지 않는 불같은 성격, 부하에 대한 신뢰의 부족(그래서 항우의 부하들은 위기시 모두 등을 돌린다),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판단력. 거기에 진의 함양을 유방의 점거이후 나중에 들어가 약탈함으로써 도덕적으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즉, 관계맺기의 배려와 정의로움, 관심이 모두 부족한 셈이다.

 유방의 통일 후 2인자들의 대조적인 후일담도 인상적이다. 장량과 소하, 하후영은 유방과 아주 초기시절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토사구팽이라고 전후 강력한 2인자 세력은 1인자에 의해 숙청되기 마련. 이들은 이런 관계의 변화를 잘 감지하고 끝까지 자신의 몸을 낮춤으로써 자신과 일가를 보존할 수 있었다. 반면 한신과 경포, 팽월(다 무인이다.)은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공적 및 유방과의 변화된 관계를 감지하지 못하면서 숙청되고 만다. 관계에서는 변화 역시 중요한 것이다.

 이처럼 책에서 사기의 일화를 통해 들려주는 관계 맺기의 핵심은 배려와 관심, 정의로움을 유지하면서도 결국은 여러 요인에 의한 관계의 변화와 사람을 바라보는 안목과 적절한 처신 그리고 거기에 운까지 겹쳐줘야 긍정적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전란중의 관계 맺기에 관련한 책이라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어 보일수 있긴 하지만 우리의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이 안보이는 물밑작업을 통한 관계의 싸움이지 않은가? 결국 결핍된 존재라 남을 필요로 하므로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린 아직 사적인 네트워크에 얽혀사는 유인원 집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고 이는 냉정한 현실이다. 중국역사와 더불어 관계 맺기에 대한 뭔가를 던져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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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청미래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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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불안과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그리고 단독 저술은 아니지만 사피엔스의 미래에서 접해보았다. 우리 인간은 당연히 뭔가 부족한 존재이기에 보통씨는 이 책에서 인기가 없고, 가난하고, 좌절했으며, 부적절하기까지 하고, 상심했고, 어려움에 처한 인간들의 고민에 과거 철학자들의 힘을 빌려 철학적 위로를 전하고 있다. 이게 이 책의 집필이유인듯하다. 책을 읽으면서 각 철학자들에 대한 보통씨의 해석과 나름 사안에 대한 철학적 위안을 느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위의 감정들은 살면서 누구나 여러번은 느낄만한 것들이다. 

 인기없는 자들에서는 소크라테스를 다룬다. 소크라테스야 말로 인기가 없어서 죽지 않았는가?  소크라테스는 3명의 사람이 고발하여 배심원재판끝에 그야말로 인기투표에서 져서 죽었다. 훗날의 인간들이 보기에 소크라테스는 옳았지만 사람들은 그의 곁에 있지 않았다. 당시 아테네는 이웃경쟁국가의와 전쟁에서 패하며 쇠락의 길로 진입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희생양이 소크라테스였다는게 보통씨의 설명이다. 살면서 진리와 소신을 가진 많은 이들이 어리석은 대중과 다른 사람에 의해 실패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살아간다. 수많은 예술가들과 혁명가들 정치인들이 그렇다. 우리 개인들 역시 일상생활과 회사 및 조직내에서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의 소신과 진리가 중요하다는게 소크라테스와 보통씨의 위로다.

 다음은 가난이다. 자본주의 사회인 현대와 가장 관련이 깊다고 볼수 있는데 여기선 에피쿠로스가 등장한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은 물질에 있지 않으며 행복을 위한 반드시 필요한 것들로 기본적인 의식주, 우정, 사색, 자유를 말한다. 실제로 현대사회의 많은 연구들은 기초적인 물질조건이 해결되면 그 이후의 행복은 그것에 의존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매슬로우의 욕구이론도 그러하며 얼마전 읽은 행복의 기원역시 행복의 근원을 인간관계에서 찾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에피쿠로스가 물질적 쾌락의 추구를 완전 부인한건 아니다. 그 한계를 알고 적절히 느낄 능력이 된다면 그래도 상관없다. 

 좌절에서는 로마의 세네카를 소환한다. 세네카는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 출신으로 결국 네로에 의해 모함받아 죽음을 당한다. 이 때보여준 세네카의 좌절과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배울만한 점이라고 보통씨는 생각한듯 하다. 살다보면 실제로 어쩔수 없는 일이 많다. 당장 아마게돈 영화처럼 소혹성이 떨어져도 지구를 탈출할수 없으며 아무리 발버둥쳐도 수명은 120을 못넘는다. 지금 당장은. 거기에 폴워커처럼 근육질의 완벽 건강체도 암덩어리에 의한 갑작스런 요절을 피하진 못했다. 이런 인간의 상황을 세네카는 인간이 어디로 나아갈지 모르는 짐마차게 약간의 여유가 있는 사슬에 묶인 개와 비슷하다고 한다. 숙명의 방향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짐마차가 정하며 우리 인간은 그 안에서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약간의 변화를 줄수 있을 뿐이다. 마땅히 내가 할수 있는 불의엔 저항하고 나아가야 겠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좌절은 숙명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로하는 사람은 몽테뉴다. 그는 대부분의 부적절이 상당수의 사람들이 숙고조차 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내면화한 관습에 의지함을 지적한다.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음식과 의복문화, 예절과 법등 많은 것들이 그렇하다. 그리고 사소한 유럽의 그런 것을 잣대로 아메리카 토착민들을 잔혹하게 도륙한 스페인 침략자들을 강도높게 비난한다. 이런 부적절함에서 벗어나고 또한 부적절함의 잘못을 잘 판단하기 위해 몽테뉴는 꾸준히 공부해야 함을 말한다.

 상심에 대한 위로철학자는 쇼펜하우어다. 쇼펜하우어는 사람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생의 의지로 생존에 대한 욕구와 자손 번식에 대한 욕구를 제시한다. 이는 철저한 무의식의 자리한 것으로 의식은 이것을 자각하지도 못하며 자신이 이걸 위해 움직이고 노력하고 괴로워함을 알지 못한다. 때문에 이런 생의 의지를 위한 자신의 상심은 부질없는 것이 된다. 이것은 합리적인 것도 아니고 결국 이룰수 있는 것도 아니며 설사 이룬다 해도 금방사라지는 그런 성격의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어려움에 처한자들의 상담자는 니체다. 초기의 니체는 쇼펜하우어에 크가 감화되 삶을 무의미한 것으로 보는 성향이 짙었다. 하지만 서서히 변화하여 오랜 고통을 동반한 노력끝에 산의 정상위에 올라 초인이 되는 철학을 제시했다. 그의 초인은 전체주의에 의해 이용되기도 했지만 그건 그의 탓이 아니었다. 이런 초인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니체는 적절한 위안이나 노력을 방해하는 종교나 술등의 배척한다. 니체에게 진정한 어려움의 극복은 적절하면서도 매우 어려운 고통을 이겨내고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의 고충에 대해 철학자들의 이론을 제시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붙인 것 책의 좋은 시도 같다. 개인적 어려움과 철학을 모두 즐길수 있지만 사실 이도저도 아닌 느낌도 적잖다. 오히려 이런 류의 책이라면 강신주의 책이 더 나은 것 같다. 또한 철학자 의견을 주로 제시하다 보니 보통씨의 생각이 별로 없는 부분이 책의 아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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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17-09-22 2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는 옳았지만 사람들은 그의 곁에 있지 않았다.

진리와 소신을 가진 많은이들이 어리석은 대중과 다른 사람에 의해 실패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살아간다.

매우 공감되는 글입니다.. 옳은 생각하고 옳은 말 하던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탄압을 받았지요.. 세상은 더 진보하고 평등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 한 이유가 정의는 고독하기 때문일겁니다..

닷슈 2017-09-22 22:10   좋아요 1 | URL
결국 그 탄압하고 곁에없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든생각이 바뀌든 인정을 해주어야 인간사회에서 의미있는 진리가된다는게 아이러니입니다

북프리쿠키 2017-09-22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신주님의 책을 여러권 사다놓고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는데,
닷슈님의 글을 읽으니 의욕이 솟는걸요. 조만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닷슈 2017-09-22 22:17   좋아요 1 | URL
강신주님 책 강추합니다 좀두껍지만 가독성좋고 울림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