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훔친 미술 -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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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과 시대는 서로의 모습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때론 시대의 변화를 미술이 추종하기도 하고, 어떨때는 미술이 사람과 시대를 앞서나가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살아생전에 그리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도 이때문이다. 그리고 때론  미술은 시대와 권력의 종 노릇을 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미술을 하는데는 돈이란게 결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술은 그 사회와 당대의 썩어빠진 폐부를 정말 잘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미술과 시대는 그렇게 서로를 그려나간다. 

 이 책 시대를 훔친 미술은 대충 르네상스시기부터 근현대까지 유럽 사회의 시대 변화와 미술의 변화를 정말이지 잘 뒤섞은 책이다. 예술은 나에겐 부채와도 같은 편인데 항상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좀처럼 손이 가질 않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결코 많진 않지만 여러 권이 그러한 마음의 부채를 메우 듯 책장에 쟁여져 있는데, 연휴로부터 용기를 얻어 열어본 이 책을 열어보았다. 결과는 기대이상이었다.

 책은 일단  르네상스시기로 향한다.  르네상스 이전 시기 유럽 미술의 주제는 단연 기독교였고, 이는 인간중심의 르네상스시기라고 다르지 않다. 하지만 표현 방법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큰 차이가 생긴다. 과거 역원근법에서 선원근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역원근법은 전지전능한 신이 당연히 여러곳을 볼수 있다는 점에서 신의 관점을 시각화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선원근법은 그림을 한 시점에서 보는 것으로 지금, 현존하는 주체의 존재를 시각화 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과 카톨릭으로 묶여 있던 철저히 예속된 공동체 상황에서는 존재할 수 없었던 근대적 개인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대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 상황으로 과거 민족개념이나 국가개념이 매우 미약한 상황에서 교황의 권위가 약해지고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였으며 신교의 등장으로 신앙 역시 다양해지고 있었다. 또한 서적의 보급으로 과거 낭독으로 이루어진 독서가 개인적인 독서인 묵독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러한 개인 탄생을 부채질하는 시대변화가 미술에 반영된 것이다. 

 신교의 등장으로 미술이 바뀌었다면 다음은 구교의 반격이었다. 카톨릭은 신교가 서적의 보급을 통한 언어 위주의 문자포교에 맞서 미술을 사용하였다. 이시기의 미술 유행인 바로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바로크 시대에서 미술은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조를 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당시 등장한 연극의 연출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강렬한 구성을 통한 종교적 고양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극적인 효과는 당시 종교전쟁 이후 등장한 절대왕정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종교적 열정과 예술의 영향으로 태동한 바로크가 세속화 하기도 한 것이다. 

 이 시기에 유럽의 북부 한 곳에서 독특한 나라가 탄생한다. 바로 네덜란드다. 나라가 독특하기에 그 나라의 미술 역시 독특했다. 다른 유럽 지역들과는 다르게 네덜란드는 시민 공동체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나라이기에 그들을 위한 미술작품이 다수 탄생한다. 마치 양반과 왕가에서 벗어나 백성을 위해 탄생한 우리의 민화같은 느낌이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이 귀족과 시민공동체를 기리기 위한 그림이 많아 탄생하여 주로 집단 초상화가 많았다. 또한 오랜 전쟁과 대항해시대의 도래로 남자들이 집안을 비우자 여성들이 가정의 가장과 직장인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자연히 여권의 신장으로 이어져 이 시기 네덜란드의 그림에서는 매우 독립적이고 남성과 대등해 보이는 여성이 드러나는 미술작품도 다수 등장한다.

 대항해시대의 도래는 당대 유럽인들의 사고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기 시작한다. 종교개혁과 지리상의 발견들로 기존의 세계관이 흔들리고 확장 분열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굳건했던 종교적 믿음이 흔들리고, 나홀로 신과 사제로의 의지 없이 새로운 세계 안에서 자기를 끊임없이 확증해야 하는 고독한 개인상이 등장하게 된다. 이는 누구보다 굴곡진 삶을 살았던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잘 드러난다.

 이와 같은 시기에 절대왕정의 궁전에서 세속화한 바로코는 급기야 로코코로 변화한다. 바로크가 다소 굵직하고 역동적인 남성적 취향의 예술이었다면 로코코는 섬세하고 변덕스러운 여성의 취향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정략결혼으로 정작 사랑의 자유를 갖지 못한 귀족과 왕족들의 로코코 취향은 목가적 사랑을 그리는 그림의 발전을 낳는다. 치열한 개인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시민세계에 비한다면 사뭇 유아적인 느낌마저 갖게하는 형국이다.

 절대왕정의 시기는 프랑스 혁명으로 그 끝을 점차 맞이 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기 예술은 바로크도 로코코도 아닌 신고전주의로 향한다. 신고전주의는 교훈적이고 영웅적인 행위를 묘사하는 역사화, 신화화, 초상화를 주로 많이 남겼다. 혁명기 이후 프랑스에서는 신고전주의가 쇠퇴하고 낭만주의가 시작되었는데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프랑스에 반감이 강했던 독일에서는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향으로 독일식 낭만주의가 시작된다. 이 낭만주의는 프랑스의 그것에 비해 시대적 요구에 의하여 민족적 색채가 강했으며 자유를 갈망하는 개인을 자연을 매개로 표현하는 형태가 많아 유독 풍경화가 많았다.

 유럽엔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한다. 산업혁명 시대는 뜻밖에도 산업화한 도시이외에도 미술에 있어 농촌을 재탄생시켰는데 이는 사람들이 산업화한 도시로 몰리면서 늘 있었던 농촌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엔 도시와 대비되는 농촌 풍경과 그 안의 인물들을 다룬 그림이 사실적인 형태로  그려졌다. 당시 그림엔 유독 농촌에서 일하는 여성이 많았는데 이는 남성을 도시와 문명, 이성으로 보고 여성을 농촌, 자연, 감성으로 여기는 계몽주의의 이분법적 철학
이 그림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기에는 상당히 오랜 기간 역설적이게도 도시의 노동자보다는 농촌이 주로 다루어졌다. 이는 초기 공장에서의 노동이 이렇다할 전문적인 노동의 형태를 띄지 못한 단순 노동이었기 때문이며 당시 공장의 노동형태가 마치 지옥처럼 극도로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산업혁명기에 인간은 여러가지를 발명하여 이른바 속도를 낳는다. 사람들은 늘 정적인 풍경만 보고 살았는데 증기기차등의 발명으로 빠르게 이동하여 마치 물결이나 띠처럼 느껴지는 풍경을 보게 된것이다. 이는 미술에 영향을 미쳐 자연의 한 순간이나 힐끗 본듯한 한 때의 인상을 남기는 인상주의가 시작된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한때의 인상을 위해 야외에서 즉석으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당시 교통수단의 발달과 튜브형 물감의 발명은 이를 가능케했다.

 산업혁명기 이런 인상주의의 등장은 르네상스이후 줄곧 계속되어 온 본질을 그리고자 한 열망의 폐기를 의미했다. 이제 더이상 그림은 있는 그대로를 다양한 형식으로 담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상주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늘 명랑했는데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간의 자신감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이 작품에 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유럽의 풍요는 어디까지나 제국주의를 통한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수탈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수탈을 가능케 한 제국주의는 세계대전과 경제공황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며 이는 곧 인상주의의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20세기 들어 새로운 세기에 대한 새로움과 성공에 대한 예술가들의 갈망이 겹치면서 예술적 아방가르드가 시작된다. 당시 예술은 대중과 호흡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과 고지를 선점하려는 예술가들의 실험적 경쟁이 본격화한 시기였다. 그리젤다 폴록은 이시기 예술의 파괴성을 과거 예술인 아버지에 대한 참조와 그것에 대한 경의,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지위를 전유하고 강탈하고자 한 문화적 친부살해로 표현했다.

 이 시기에는 야수파와 입체파, 미래주의, 절대주의, 추상미술등 매우 다양한 형태의 미술이 등장한다. 입체파는 시공간에 대한 기본 개념을 뒤흔든 아인슈타인의 등장에 영향을 받았으며 추상미술은 오히려 예술의 주변지였던 유럽 변방국가들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예술의 지향점을 눈에 보이는 현존세계가 아닌 내적 필연성의 세계에 두었고 현실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공통적으로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는 오브제를 제작한 마르셀 뒤샹에 의해 처음으로 극복된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모처럼 국적을 잊고 예술적 공동체 의식과 보편성을 갖고 있었으나 이는 1차대전을 통해 무참히 깨져나간다. 몇몇 예술가들은 전쟁을 통해 전사했고, 살아남은 몇몇은 더이상 낭만적이거나 즐거울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은 이성에 근거한 서구문화 전체를 부정하는 다다로 이어졌다.

 책은 이 시기에서 마무리 된다. 역사와 함께 다룬 미술이라 쉽게 읽히면서 그 미술과 역사가 서로를 그려나간 변화가 인상적이고 아프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역사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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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1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상미술의 시대가 열렸을 때 이탈리아와 러시아 미술도 주목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솔리니와 스탈린의 시대가 오는 바람에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었습니다. 시기적으로 타이밍이 좋지 못했습니다.

닷슈 2017-10-11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러시아 쪽은 철저히 이용하기도 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