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의 신념으로 이 대륙에 새로운 나라를세웠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대규모 내전을 치르며 이 나라나 그만큼의 신념을 갖고헌신한 다른 나라가 얼마나 오래 견뎌낼 수 있는지 시험하는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터의 일부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목숨을 희생한 이들의 마지막 휴식 장소로 만들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게티스버그 링컨 연설 - P140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이곳을 신성화할 수 없습니다. 죽기를무릅쓰고 여기서 싸웠던 용사들이 이미 우리의 미약한 힘으로는 더하거나 뺄 수 없을 정도로 이곳을 신성화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하는 말을 그리 오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들이 이곳에서 한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너무도 고귀하게 이루려다 못다 한 일에 전념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살아있는 우리들입니다.
여기서 우리 앞에 남겨진 위대한 과제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 과제란그들의 명예로운 죽음을 통해 그들이 마지막 힘을 다한 명분에 더 크게 헌신하고, 그들의 희생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의하고, 하나님의 가호 아래 이 나라가 새로운 자유를 잉태하게 하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게티스버그 연설2
- P1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풍당당한 대원 제국은 탐관오리가 권력을 장악했구나, 황하가 범람하고 화폐를 대량으로 찍어내어 재앙의 근원이 되었고 천만 홍건군의 반란이 일어났다네. 관청의 법규는 넘치고 형법은 잔혹하니 백성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돈으로 돈을 사는 세상인데,
언제 이런 일이 있었을까? 도적은 관리 노릇을 하며 관리는 도적 노릇을하고 현명한 사람과 우매한 사람이 뒤섞여 구분이 안 되는구나. 아! 참으로 슬프고 가련하구나."

‘취태명소령‘ 가사의 내용
- P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더는 하루에 백 번 싸운다 - 정답이 없는 혼돈의 시대를 돌파하기 위한 한비자의 내공 수업
조우성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조우성의 인생내공'이라는 팟캐스트를 처음 들었을 때, 감탄이 절로 나왔다. 돈과 법에만 밝을 것 같은 변호사가 고전을 말한다. 고전을 현실과 접목시켜 현대인들에게 인생의 내공을 쌓게해준다. 조우성 변호사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인생의 내공을 쌓아갔다. 그런데, 그 내용을 책으로 묶어 냈다. '리더는 하루에 백번 싸운다.'라는 책이 바로 그 책이다. 책속의 내용들은 팟캐스트에서 대부분 조우성 변호사의 욱성으로 들었던 내용이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면 조우성 변호사의 욱성이 다시 내 귓가를 맴돈다. 

 책을 읽으며 여러 인간 군상들을 떠올렸다. 첫번째로 떠오른 사람은 고종이다. 고종은 을미사변으로 자신의 부인이 일본 낭인들에 의해서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만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신의 신변을 지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퇴역한 외국인 용병을 상하이에서 모아서 자신의 신변을 지키려했다. 한나라의 황제가 자신의 병사를 믿지 못해서 퇴역한 외국인 용병에게 자신의 안위를 맡기려하는 못난 모습을 보였다. 한비자는 '나라 밖에서만 인재를 구하려하면 나라가 망한다.'라고 했다. 자국의 군대를 강병으로 만들어 자신의 신변을 지키려하지 않고, 퇴역한 외국 용병을 고용하려하는 못난 모습의 고종을 떠올리면서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한비자의 눈으로 고종을 바라본다면, 그에게 패망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두번째로 전두환과 이명박이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두사람은 보수를 대표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전두환에게는 장세동이 있었다. 장세동은 전두환을 주군을 모시듯이 충성을 다해 모셨다. 그러나 이명박에게는 장세동과 같은 충신이 없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했을까? 한비자는 은혜를 베푸는 것도 통치술이라했다. 이 책에 '크게 베풀면 직원은 충성으로 보답한다.'라고 적혀있다. 이명박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어느 정치인이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돈을 신처럼 모신다고 지적했던 기억이 난다. 이명박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을 돈을 대하듯이하지 않았나보다.

  마지막으로 굥 통이 생각났다. 철저히 자신의 어리석은 치부를 여과없이 방영하는 언론을 탄압하고 국민을 호도한다. 자신의 밑에 있는 참모들은 예쓰맨들로만 가득채웠다. 한비자는 '간신은 반대의견을 없애다.'라고 말했다. 국민을 섬겨야할자가 간신이되어 간신들로 나라를 채우고 있다. '반대 의견을 듣지 못하는 군주는 그 절반을 잃는 것이다.'라는 한비자의 고언을 굥은 귀담아 들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읽으라말한다. 그러나, 고전을 고전만으로 기억할 뿐 이를 현실에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리더는 하루에 백번 싸운다'라는 책은 '한비자'라는 고전을 현대 리더들을 위해서 현실에 접목시켰다. 고전을 통해 현실의 지혜를 얻고자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강렬한 시에서 부터 시작된다.

 

"생각해보라 이것이 인간인지.

진흙탕 속에서 고되게 노동하며

평화를 알지 못하고

빵 반쪽을 위해 싸우고

, 아니오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죽어가는 이가."

 

인권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철저히 짖밟히고, 동물적 식욕과 생존 욕구만이 남아 있는 인간! 프리모 레비는 질문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이냐고.... 프리모 레비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려면 기본적인 인권과 생존권이 보장되어야한다고 믿고 있다. 인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 인권과 생존권은 보장되어야한다. 그러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위해서 필요한 인권과 생존권이 철저히 무시된다.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허락되지 않는 그 속에서는 동물적 욕구만이 존재한다. 같은 유대인이면서도 생존을 위해서 나치에 협력하는 카포는 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의 시체를 처리하며 그들의 입속에 있는 금니를 뽑아낸다. 구타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생존을 위해서라도 유대인 포로들은 카포에게 잘 보여야만 했다.

이탈리아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작가는 이송도중 독일군 호위병에게 이유없이 구타를 당한다.

 

"그들이 우리를 버스에 태워 카르피 역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기차와 호위병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최초의 구타를 당했다. 너무나 생소하고 망연자실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만을 느꼈을 뿐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17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리는 그들을 보면서 프리모 레비는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을 느낀다. 섬세한 프리모 레비의 감수성에 감탄이 절로나온다. 우리는 폭력에 익숙해져있다. 나의 어린시절, 학교에서도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책상위에 삼국지를 올려 놓았다고 담임 선생은 나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산수문제를 못푸는 학생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고 칠판에 강하게 부딪쳤다. 폭력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었다. 교사가 휘두르는 폭력을 학생들도 그대로 배웠다. 학교에서도 학생들 사이에 폭력은 종종 벌어졌다. 단지 담임 교사가 무관심해서 몰랐을 뿐이다. 학교의 폭력은 군대에서도 이어졌다. 훈련을 앞두고 군기잡는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일명 '차기'인 상병이 이등병과 일병을 구타했다. 상병이 제대로 구타하지 못하면 병장이 상병을 몰레 구타하며 '군기 제대로 잡아라'며 훈계했다. 우리 사회는 폭력이 일상화되었다.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일상화된 폭력 속에서 우리는 폭력에 무감각해졌다.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리는 경우를 우리는 흔하게 보았다. 재미로 사람을 때리고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사람을 나는 많이 보았다. 프리모 레비에게는 우리가 익숙한 폭력의 일상화가 무척 생소했다. 이러한 감수성이 그가 아우슈비츠의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자양분이었을 것이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는 유럽 각지의 유대인들이 몰려들었다. 의사, 제봉사, 약사, 화학자 등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끌려왔다. 그런데, 때로는 강제로 끌려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법을 따르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온 유대인이 있었다. 순간 나의 눈을 의심했다. 죽음의 수용소에 '법을 따르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온 유대인이 있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프리모 레비는 '터무니없게도'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나로서는 믿겨지지 않았다. 자신의 숨통을 옥죄는 악법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노예'가 현실에는 존재한다. 법이 존재하는 정당한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악법도 법이라고 믿는 그들은 스스로를 죽음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한나 아랜트의 '악의 평범성'의 사례는 가해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었다. 생각하지 않는 '노예'들은 악법으로 인간을 괴롭히고 사법살인을 하는 '법비(法匪)'의 좋은 먹이감일 뿐이다. 이런 노예들은 우리 주변에 많지 않은가? 나라를 도둑질할 놈을 그가 특정 지역 후보이기 때문에 무조건 찍어주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우리주변에 흔하게 있지않은가?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떠올랐다. 빅터 프랭클의 글에 묘사된 죽음의 수용소에는 음울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에 반해서 프리모 레비의 책에는 음울함이 짙게 묻어난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배고픔이 떠나지 않았으며 그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 본능을 레비는 탁월하게 묘사했다.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며 장기적인 목표를 갖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표현들이 곳곳에 있다.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음울함이 그가 1987년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그도 삶의 의미를 말하기도 했다. 독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참아낸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한다는 의지가 생존에 도움을 주엇을 것이다."-307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신이 겪은 진실을 증언해야한다는 그의 삶의 의무, 혹은 의미는 그가 1987년까지 살아 남는데 기여했다. 수용소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공통으로 꾸는 꿈이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따뜻한 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차리고 가족에게 자신이 겪었던 수용소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진실을 알리려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고통속에서 꿈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증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그의 삶의 목표이자 의미가 되었다. '이것이 인간인가'의 일본어판 제목이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이다. 작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한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1987년 자살한 이유도 전후 세대들이 아우슈비츠의 진실에 대해서 관심이 사그러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그의 삶의 의미를 사라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이 팔래스타인 난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우슈비츠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 프리모 레비는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것에 대해서

 

"아무리 전쟁중이라하더라도 베긴과 그 동료들이 보여주었던 잔인한 오만함을 정당화할 수 없다."-319

 

라고 일갈했다. 시집살이를 혹독하게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어서는 더욱 악독한 시어머니가 되는 어리석음을 프리모 레비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아우슈비츠가 그에게 또다른 대학이었기에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나의 과거는 나를 더욱 풍요롭고 자신감 넘치게 해주었다. 새파랗게 젊은 시절 라벤스 부르크 여자 수용소에 끌려갔던 내 친구는 수용소가 자신의 대학이었다고 말한다."-307

 

감옥, 수용소를 인생과 세상을 배우는 대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고 신영복 선생부터, 빅터 프랭클, 프리모 레비 ..... 어느 곳에선들 배우고 알려한다면 인간은 성장한다. 똑같은 고난 속에서도 그가 무엇을 배우려하는가에 따라서 고통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진흙탕에서도 연꽃이 피듯이......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잊지 않고 성장하는 인간이 진정 인간적인 인간이 아닐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3-01-06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강나루 2023-01-10 03:4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요즘 바빠서 댓글을 지금 다네요.
새해에 웃음짓는 일 많이 생기길 거에요^^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신주라는 철학자는 다양한 방면에 자신의 철학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철학이라는 무기를 이용해서 영화와 문학을 자유자재로 분석했다. 그리고 시도 해체한다. 보통의 철학자들이 한명의 철학자의 사상에 빠져서 자신의 온 역량을 소비하는데 비해서, 강신주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철학적 사유를 한다. 그리고 그 철학적 사유는 시와 영화, 소설 작품을 분석하고 해체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의 철학적 놀이에 독자는 빠져들 수밖에 없다. 꾀 오래된 책이지만, 읽고 싶었으나 서가에 꼽아 놓고 읽지 않았던 책을 꺼내들었다.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이라는 책이다. 


  사실 현대의 많은 시들이 읽기는 쉬우나 이해하기는 어렵다. 시를 읽으면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강신주가 소개하는 철학자들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하고 시를 읽으면 시가 이해된다. 놀라운 경험이다. 시인은 이러한 철학을 몸으로 채득하고 본능적으로 시를 쓰는 것일까? 아니면, 철학적 사유 없이 글을 썼는데, 강신주가 적당한 철학을 가져다 붙여준 것일까? 강신주가 소개한 어느 독자의 글 을 읽으며 무릎을 탁! 쳤다.


 "시인은 그것이 무슨 씨인지도 모른 채 씨를 뿌리고 지나갑니다. 시간이 흘러 그 씨앗들이 다양한 꽃을 피우겠지요. 그러면 철학자가 뒤따라가면서 시인이 뿌린 씨가 어떤 꽃의 씨인지를 하나하나 알려줍니다."(22쪽)


 시가 시인의 손을 떠난 이상,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 그 시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자의 것이다. 우리는 강신주의 도움을 받아서 시인의 손에서 시를 뺏앗아 올 수 있었다. 

  많은 시를 강신주의 철학적 분석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만해 한용운 시인이 그토록 불렀던 '님'은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색다른 결론이 무척 흥미로웠다. 중학교 1학년 국어시간에 '님'은 조국일 수도있으며, 부처일수도 있고, 사랑하는 님일 수도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독립운동가 한용운을 강렬하게 기억했기에 그의 '님'은 조국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강신주는 '서여연화'라는 여인이라고 단정한다. 어려서 결혼하고 55ㅔ에 유씨 또다시 결혼한 만해 한용운이 서여연화라는 여인을 또 사랑했다니... 정말 충격적이다. 쉽게 그의 님이 '조국'일 것이라 단정한 것은 역사를 사랑하는 나의 바램이었던 것일까? 인간 한용운에 대한 고민 없이 너무도 쉽게 내가 믿고 싶은 한용운을 상상하며 '님'은 조국이어야 한다고 단정한 것이다. 

  강신주의 철학 강의에서 빠지지 않는 화두는 '사랑'이다. 대중 강연에서 강신주는 사랑을 강조했다. 이 책에서도 사랑에 대해서 한마디를 던졌다. 


  "사랑은 히드테리와 강박증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을 때에만 가능한 겁니다."-41쪽


  타자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의 균형을 추구해야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리이타의 경지와 비슷한 것이 건전한 사랑의 경지가 아닐까? 나의 욕망만을 추구하면 이는 스토킹 범죄가 되고, 타자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데만 골몰한다면 이는 가스라이팅이 될 것이다. 참된 사랑은 이렇게 힘들다. 결혼을 한 부부 사이라할지라도 때로는 나만의 욕망을 추구하며 상대방에게 불만을 품을 때가 있다. 지나고보면 나의 옹졸한 생각임을 깨닫지만, 그때는 그 욕망에 매몰되어 진정한 사랑을 보지 못한다. 


  "남자가 모여서 지배를 낳고

 지배가 모여서 전쟁을 낳고 전쟁이 모여서 억압세상 낳았지


 여자가 뭉치면 무엇이 되나?

  여자가 뭉치면 사랑을 낳는다네" -89쪽


고정희 시인의 시 '여자가 뭉치면 새 세상 된다네'라는 시는 사랑의 관점에서 본다면 낙제점이다. 진정한 사랑은 강신주가 말했듯이 자신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보듬어야한다. 그런데, 고정희 시인의 시에는 여성적인 것은 우월하고 남성적인 것은 열등하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녹아있다. 여성이 남성의 이데올로기를 극복 못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띄는 경우가 있다. 남성의 것은 폭력적이기에 열등하고 여성은 사랑을 낳기에 우월하다는 생각도 또다른 폭력적 모습이다. 서로의 다름을 우월함과 열등함으로 치환해버린다면 남성과 여성의 대립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조화시켜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남성의 욕망과 여성의 욕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첩경이 아닐까?


  시가 어려워 평론가나 철학자의 도움을 받아야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시적 감수성을 키우지 못한 나의 게으름도 시를 어렵게 느끼는데 한몫했다. 철학자 강신주의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은 난해한 시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징검다리가 되어준다. 체력이 많이 약해진 강신주가 체력을 회복하여 많은 저서를 남겨주길 기대해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12-15 11: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2022년 알라딘 서재의 달인 추카합니다
여기로 가셔서
https://blog.aladin.co.kr/zigi/14178206
주소 입력하시고
알라딘이 보내주는 선물 꼬옥 받으세요

강나루 2022-12-19 01:50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scott님, 연말 행복하게 보내시고, 새해에 복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 2022-12-15 17: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알라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강나루 2022-12-19 01:50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새해에는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