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한국 - 개정판
돈 오버도퍼 & 로버트 칼린 지음, 이종길 외 옮김 / 길산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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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두개의 한국'인가? '두개의 한국'이라는 개념은 무엇을 함의하고 있을까? '두개의 한국'이라는 제목을 이루는 흘려 넘겨서는 안된다. '두개의 한국'이라는 제목은 '하나의 한국'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만이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하는 것을 방해하는 외교전략을 구사하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두개의 한국'이라는 제목은 분단을 영구화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분단을 자연스러우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강대국의 시각을 이 제목에서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팟캐스트 '일당백'에서 정박이 이책을 소개했을 때 부터 이책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워싱턴포스트지기자로 25년을 근무한 돈 오버도퍼와 미CIA 동아시아 담당 국장이나 대북협상 수석 고문을 지낸 로버트 칼린이 썼다는 것 자체가 이책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무려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볼륨과 태극기와 인공기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놓은 표지 또한 강렬했다. 분단된 '두개의 한국'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각에서 남북한의 대립을 중심축에 놓고 분단현대사를 서술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은 피해국 한국을 '두개의 한국'으로 만드는데 일정한 책임이 있는 미국인의 시각에서 그려진 한국의 현대사는 어떠한지 살펴보자.

 

1. 외국인이라는 한계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외국인의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살피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우리가 당연시되는 것들에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미쳐 보지 못했던 진실을 그들의 눈을 통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인이라는 한계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이 책에서도 외국인이라는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미국 NBC 해설자 조슈아 쿠퍼 레이모가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해설을 하면서 일본이 입장하자 모든 한국인들은 식민지배에도 일본을 본받을 나라로 여긴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것은 외국인이 한국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예이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시각은, 과거 필리핀을 식민지배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호감이 갈 수도 있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 '돈 오버도퍼'는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그의 입장을 읽을 수 있는 문구는 없다. 그러나, 일본이 과거 한국에 했었던 식민지배를 반성하고 사과했으며, 8억 상당의 무상원조를 제공했다고 오류를 적고 있다. 우선, 액수부터 오류이다. 일본이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장기저리 정부차관 및 3억 달러 이상의 상업차관을 공여하기로 합의했다. 무상원조는 8억이 아니라, 3억달러에 불과하며, 3~4년의 식민지배를 받은 다른 식민피해국가들이 3~4억달러의 배상금을 받은 반면, 우리는 36년의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3억달러의 무상자금을 '독립축하금'의 명목으로 받았다. 일제는 식민지배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으며, 배상금이 아닌 '독립축하금'을 우리에게 전달했다. 지금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는 망발을 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서 돈 오버도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돈 오버도퍼의 잘못된 역사관은 한일관계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다. 우리 고대사에 대한 지식은 오류 그자체이다. 그는 한반도에 2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구석기 시대가 70만년전부서 시작되었음을 떠올린다면, 실소가 저절로 나온다. 그뿐이니다. BC4세기경 중국과 경계를 이루는 한반도 북부에서 처음으로 고대국가가 탄생했다고 적고 있는데, 고조선의 존재는 중국의 '관자'라는 책에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기원전 7세기경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성립을 AD300년 으로 적고 있으나, 신라가 BC57년, 고구려가 BC 37년, 백제가 BC18년에 건국되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오류들이다. 외국인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에 대한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역사를 공부하길 바란다.

  한국의 정치인들을 많이 인터뷰한 '돈 오버도퍼'의 인터뷰와 사람을 바라보는 탁월한 식견에 때로는 감탄하지만,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는 박정희를 청렴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물론, 박정희가 언론에 농민들과 모내기를 하고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을 보며 자라온 분들은 박정희를 서민적이며 청렴한 대통령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10.26사태가 발발하던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는 막걸리가 아닌, 양주를 연예인과 여대생을 들을 불러 놓고 마시다가 죽었다. 또한 청와대 박정희 집무실에서 발견되었다는 돈다발들과 '스위스 비밀계좌설'등을 토대로 볼 때, 과연 그를 청렴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재미있는 것은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군사적 경험이 부족하며, 정치경력도 짧고, 이전 대통령들에 비해서 수완이 부족하고, 적대적 언론과 대결하려는 모습을 근거로 들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고, 중진국으로서 '동북아 균형자'가 되려했던 그를 '로버트 칼린'은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인의 시각이 아닐까? 콘돌리자 라이스의 경우도 노무현 대통령을 이상주의자로 평가한 반면, 이명박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는가?

  육영수여사를 저격한 문세광은 북한의 사주를 받았을까? 돈 오버도퍼는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라는 다큐멘터리에는 북한의 사주로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저격했다는 설명은 없다. 한홍구 교수의 '유신'이라는 책에도 문세광은 북한의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재일동포가 벌인 사건으로 서술하고 있다. 단순히 남한의 커다란 일을 일방적으로 북한이 했다는 쉬운 도식으로 설명한 점은 한국사회를 깊이있게 살피지 못한 그의 한계일 것이다.  아울러, 판문점 무력시위 이후 치뤄진 15대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 것에 대해서, 항간에 떠도는 '북풍 조작설'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것도 못내 아쉽다.

  그러나 돈 오버도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의 조국인 미국을 변호하는데 많은 급급한 모습이다. 이책의 저자가 미국인이기에 미국을 변호하는 글들이 많다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남로당 중책을 맡은 박정희의 감형에 미 대통령 군사고문관 제임스 하우스만의 역할을 강조하여 서술한 것은 애교라고 볼 수 있다. 좀 심각한 예를 들어보자. 5.16쿠데타 당시 '미 대사관측은 한국의 민선 정부를 계속 지지하겠다는 발표를 통해 상황을 역전시켜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미CIA국장 덜레스가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우리가 아무일도 않앴다면 한국은 급진파가 장가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미국은 쿠데타가 일어날지도 몰랐고, 민선정부를 지지하려 노력했다는 변명이 무너진지가 오래되었는데, 돈오버도퍼는 이러한 학계의 연구성과를 알지 못하는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인가?

  미국의 입장을 옹호하는 돈 오버도퍼의 노력은 박정희 정권과 12.12사태의 전개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 태도를 설명하면서 극에 달한다. 미국은 좀더 민주적이고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정치체제 진입을 위해서 노력했다고 하나, 베트남 파병시기 미국은 국익을 앞세워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던가? 또한 12.12사태를 역전시킬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김대중 VS 김영삼'이라는 책에서는 미국이 전두환 제거 계획을 세웠으로 실패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5.18민주화 운동에 신군부가 군병력을 파병하고 유혈진압한 것에 대해서도 당시 군작전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유주의 국가의 맹주인 미국의 책임을 명확히 언급하지 않은 점도 못내 아쉽다. 한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과소 평가하고 미국의 절대선으로 한국을 인도하려했으나 한국인들이 미국의 뜻에 따라주지 않았다는 뉘앙스로 읽히는 것은 왜일까?

  이러한 의문은 7.4남북 공동성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극에 달했다. '김일성은 남한 정권을 미국과 일본으로 부터 떼어 놓고 미군 철수를 성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대화를 활용했다.'라는 서술은 충격적이었다. 보통의 한국의 역사교과서에서는 7.4 남북 공동성명이 통일의 3원칙을 천명한 중요한 일대 사건으로 서술하고 있다. 같은 사건을 서술하면서 어느 부분에 촛점을 맞추느냐는 대단히 중요하다. 과연 7.4 남북 공동성명을 우리민족은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통일로 다가가는 징검다리 하나를 놓은 사건일까? 아니면, 북한의 공세에 이용당한 사건일까? 이 대답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당신의 역사관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94년 박영수 대표의 서울 불바다론은 북한이 수세적 입장에서 한 말이라는 사실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다큐를 통해서도 밝혀졌다. 그런데, 돈 오버도퍼는 당시 언론에 발표된 표면적인 내용을 소개할 뿐, 새로 밝혀진 심도있는 내용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개정판을 내면서도 이부분에 대한 심도있는 취재를 통해서 보강하지 않은 점음 못내 아쉽다.

 

2. 외국인이기에 알 수 있었던 새로운 진실들.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로 25년을 일한 돈 오버도퍼와 미 CIA 분석관, 스탠포드 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한 로버트 칼린의 생생한 기록들은 이책의 가장 큰 강점이다. 저자들의 살아있는 기록들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생생한 장면으로 나를 인도했다.

  지난 2017년 7월  충북지역의 기록적인 물난리가 일어났다. 그때 자유한국당 소속 충북도의원으로 국외연수를 갔던 김학철 의원은 ‘국민이 레밍 같다’는 발언을 했다. 그럼, 당신은 '레밍'이 어떤 동물이며, 누가 대한민국 국민을 '레밍'에 비유한 최초의 인물인지 아는가? '레밍'(lemming)은 나그네쥐라고 불리기도 하는 설치류의 일종이다. 레밍은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면 집단으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는데, 특히 노르웨이 레밍의 경우 맹목적으로 선두를 따라가다가 레밍들이 바다에 빠져 죽기도 한다. 김학철 충북도의원의 '레밍' 발언의 기원이 전 주한미군사령관 위컴이었다는 사실도 이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국민에게 실망할 수는 있으나, 국민 모두를 모욕해서는 안된다. 또한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또다른 레밍이 아닌지를 반성해보아야 한다.

  독재자들의 호화생활에 대해서 당신은 얼마나 아는가? 북한은 주체사상이 지배하는 곳이다. 주체사상에 따르면 북한의 지도자는 두뇌에 해당하며 의사결정을 담당한다. 노동당은 신경계에 해당하고 균형과 중재를 담당한다. 인민은 두뇌가 내린 명령을 신경계를 통해서 전달받고 이를 이행하는 골격과 근육에 해단한다. 마치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연상케하는 이러한 이론이 20세기를 넘어 지금까지 한반도의 북쪽에서 믿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끼친다. 남북한을 통털어 가장 강력한 독재자는 김일성이다. 김일성, 그를 위한 전용도로가 있으며, 그를 위해서 키워진 채소를 먹었고, 1984년 소련을 방문했을 때에는 그의 이동 여정에 따라 모든 열차를 운행 중지시켰다. 같은해 동독을 방문했을 때는 특별 제작한 침대가 도착하기도 했다. 503호가 화장실을 새로 만들고 거울방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김일성은 침대를 가지고 다녔다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더욱 놀라운 일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이같은 조취를 취한 바 있다는 돈 오버도퍼의 짧막한 첨언이다. 지배층의 사치화 특권은 어느 사회나 있는 일반적인 일일까? 그렇다면, 서민행보를 하고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인 노무현과 문제인이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1972년 60회 생일을 기념해서 김일성은 20m의 동상을 제막한다. 김일성의 동상이 세워진 이곳은 놀랍게도 일본 천황을 경배하기 위해서 설치한 신사가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천황에게 참배해던 장소가 광복된 후에 김일성을 경배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속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괴물심연을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볼테니'라는 말을 했다. 일제가 일본 천황을 신적인 존재로 우상화했듯이, 김일성도 북한에서 우상화 되었다. 김일성은 일본 천황과 싸우며 천황과 닮아간 것일까?

  북한의 군사력을 두려워하는가? 그런데 미국의 정보 분석결과는 충격적이다. 71~72년에 북한은 7백개 대대병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10년전의 2배에 이르는 숫자이다. 인구가 배나 많은 남한보다 군병력이 많으며, 26명당 1명이 현역군인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군인의 숫자는 노동인력 부족으로 이어졌다. 김일성과 호네커 회담에서 김일성은 농부의80%, 경공업 노동자의 90%가 여성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남자는 군복무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경제가 힘들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허장성세라는 말이 이때 어울리는 말이다.  

  북한은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일까? 놀랍게도 북한은 지구상에서 미국을 가장 두려워하는 국가중에 하나이다. 특히 팀스피리트 훈련을 하면 북한은 '북한을 핵공격하기 위한 연습'이라고 비난하며, 지하 벙커로 대피한다. 92년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하자, 북한은 IAEA 핵사찰을 수용했다가, 93년 훈련을 재개하자, IAEA 사찰 거부를 경고한다. 1985년 남측의 장세동 박철언, 북한의 한시해 허담이 특사로 파견되며 남북 정상회담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86년 팀스피리트 훈련 문제로 좌초 되었음을 음미해본다면, 북한이 얼마나 팀스피리트 훈련을 더나가서 미국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강한 공격적 말투 속에는 엄청난 두려움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모두가 바라고 있을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망명전 황장엽, 북한 외교관들과 군장성들은 사석에서 미국인들에게 주한 미군은 계속 주둔해야 한다며 그 필요성을 말했다고 한다. 주한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함으로서 동아시아의 전쟁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북한의 모험주의자들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그들로서도 강력한 미군이 안전판으로 계속 주둔하기를 바랄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분단체제 속에서 반미주의를 통해서 북한 주민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도 있다.

  박정희가 핵개발에 몰두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데탕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뒤이어 주한미군을 철수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박정희로 하여금 핵개발에 몰두하게 했다. 그런데 박정희가 그토록 염려하던 주한미군 철수를 막은 사건은 놀랍게도 '코리아 게이트'사건 때문이다. 주한 미군 철수 댓가로 19억 달러상당의 군사지원을 한국에 제공하려 했으나, 코리아 게이트로 인해서 미하원에서 이 계획이 통과되지 않았다. 미국 정치인들도 돈으로 매수하려했던 박정희의 추악한 모습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막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엄한 선생님을 학생들 중에서 존경하는 학생이 많다. 스톡홀룸 증후군!! 인질범들에게 인질이 되고 나서 오히려 자신을 해치려했던 그들의 편이되어 인질범을 추종하는 현상을 흔히 본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노인분들에게서 보이는 이러한 모습이 박정희의 최측근에게서는 보였을까? 10. 26 이후 박정희를 오랫 동안 보필한 공직자에게서 진심어린 애도의 감정이 없다는 사실을 목도하고 돈 어버도퍼는 놀란다. 홀브룩도 '서울에서 슬픔에 젖은 눈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스톡홀룸 증후군이 그의 측근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박정희는 인간적으로 존경받을 수 없는 인물이었던 것을까? 최측근도 그를 보고 슬퍼하지 않다니...

  5.18 민주화 운동에 북한이 배후에 있다는 말의 원조는 누구인지 아는가? 일베들이 하는 이런 막말의 근원이 전두환에 있었다. '학생시위 배후에 평양이 있다.'라는 말을 했고, 정보담당 장교에게 북한 위협설을 조작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광주의 시민을 두번 죽이는 이같은 일을 전두환은 서슴치않고 자행했다. 정통성이 없는 전두환은 미국으로 부터 인정받고 싶었고, 김대중을 풀어주는 댓가로 백악관이 초청된다. '김대중 VS 김영삼'이라는 책에서는 밥도 우리돈으로 먹고와야할 정도로 레이건 행정부로부터 무시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레이건은 전두환을 환대했다고 한다. 더욱 올라운 사실은 1980년 11월 20일 정권 인계를 하는 과정에서 카터가 남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자, 레이건이 '대통령 각하, 저도 한국의 대통령들 처럼 시위 가담 학생들을 군대에 보낼 수 있는 그런 권한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레이건으로서는 전두환을 푸대접할 이유가 없었다.

  남북 정상회담이 전두환 시기부터 추진되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박정희가 김일성을 왜? 만나냐며 시큰둥한 태도를 보인반면에, 전두환은 88 올림픽을 평화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 북한과 밀사를 주고 받으며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였다. 서울 올림픽을 평화적으로 개최하려 전두환도 북측과 접촉했다. 그리고 지금의 평창 올림픽을 통해서 보듯이, 스포츠 경기가 평화의 전령이 되기도 한다. 정쟁에 휩싸여 평화의 무대인 평창 올림픽을 색깔론으로 흠집을 내려는 일부 정치인들은 깊이 반성해야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았으나, 노태우 정권의 북방외교로 이어진다. 1991년은 남북 정상회담이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었다. 노태우는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의 캐릭터이다. 편모슬하에서 자라 시와 음악을 좋아했으며, 집권시에는 북방외교를 추진할 정도로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는 12,12 쿠데타의 주역이기도 했다.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암튼, 남측에서는 서동권 안기부장이 평양을 방문했으며, 북측에서는 윤기복 조선노동당 서기가 서울에 방문했다. 만약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한편, 돈 어버도퍼는 88올림픽에서 미국과 소련의 경기가 펼쳐질 때, 한국인이 우방인 미국을 응원하지 않고, 소련을 응원한 것에 대단히 놀라고 있다. 88 올림픽 시기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도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으니 말이다. 왜? 한국인은 소련을 응원했을까? 83년 대한항공의 비행기가 소련에 의해서 격추되었고, 소련은 공산권국가의 맹주인데, 왜? 한국인은 소련을 응원했을까? 반공 교육에 대한 반발심때문일까? 그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어째든, 이때의 진심어린 응원은 소련이 한국에 대해서 우호적인 생각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진심이 상대의 마음을 연 것이다.

 

3. 외국인이 가장 관심있는 주제 - 북핵사태!!

  돈 오버도퍼와 로버트 칼린은 이책의 20개장(후기 포함) 중에서 절반정도를 할애 해서 북핵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만큼 그들의 시각에서는 북한 핵문제가 가장 관심이 가는 문제일 것이다. 북한 핵문제를 가장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에 이부분을 읽으면서 때로는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반도 핵문제가 언론에 발표되고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정권 말기부터이다. 91년 비핵과 공동선언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핵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대응책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장기적 전략부재라고 말할 수 있다. 5년마다 혹은 4년 마다 정권이 바뀌는 한국과 미국의 특성상, 들어서는 정권에 때라서 핵문제 풀이의 해법이 달랐고, 그에 따라서 효과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지 못했다. 그뿐아니다. 한국과 미국의 서로 다른 보수와 진보 정권이 서로에게 갈등을 일으키며 엇박자를 키웠다.

  김영삼 정권시기 한승주 장관이 북미회담을 미국에 제안했고, 클린턴행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북한과 직접대화를 했다. 여기에서부터 남한의 외교력 부재가 시작됐다. 북미대화를 촉구한것 자체가 한반도의 운전대를 미국에게 넘긴 중대한 일이다. 스스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않고 미국에 기대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하는 어리석음은 북한의 '통미봉남정책'의 빌미가 되었다. 최소한 북한과 미국의 협상에 한국의 대표가 배석하여, 회담을 남북교류의 지렛대로 삼지 못한 것은 매우 애석하다. 김영삼 정권의 외교 실책에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93년 북-미 공동성명이 발표되자 김영삼 정권은 이에 격분한다. 김영삼 정권에서 북-미 회담을 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비판에 김영삼을 자신의 정권에서 한 정책의 결과에 분노한다. 노태우 정권시기 북한을 고립 시키는 정책에서 북한이 자유세계와 교류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정책을 발표하며, 북방외교를 전개한 탁월한 외교적 감각을 김영삼정권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남북 대결을 조장하며 서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 지도자의 무능과 무지가 한반도를 얼마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김영삼에게도 기회는 왔다. 특사로 파견된 카터가 남북정삼회담을 제의했고, 김영삼과 김일성의 정상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 그리고 남북의 정상들을 엄청난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만약 이때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한반도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김일성은 무리를 하게 되고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김영삼 정권은 김일성 사후, 공안정국을 형성해 갔으며, 남북이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내팽겨쳤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시기 외교적인 유능함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뒤이어 들어선 보수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기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게 된다.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서 외교전략이 바뀌어 장기적인 정책 수립이 어려웠고 그에 따라서 외교적 성과를 지속적으로 낼 수 없는 구조를 남한은 가지고 있다. 서독이 정권이 뀌어도 '동방정책'이라는 외교적 기조가 바뀌지 않았다는 역사적 교훈을 대한민국 정치인들을 마음속에 새겨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떠했는가? 북핵사태를 비교적 유능하게 다뤘던 정권은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라 할 수 있다. 물론 클린턴 행정부도 94년 영변핵시설을 타격하는 무모한 정책을 검토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된다면 500만명이 죽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와 있는 미국인들과 주한미군 가족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기에 쉽게 선제타격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돈 오버도퍼는 미국이 쉽게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를 한가지 더 제시한다. 미국의 우방인 일본이 '평화'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미군을 돕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글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이 있다. 이후 벌어지는 일본의 우경화와 평화헌법 개정에 미국의 용인 내지 묵인이 있는 것을 아닐까?

  클린턴 행정부의 인내심있는 외교로 북핵사태는 해결 직전까지 간다. 북한은 미국이 합법국가로 북한을 승인하는 의미로 클린턴의 방문을 갈망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대통령 재임시절 북한을 방문하지 못하고, 퇴임 후에 미국인 기자를 석방하기 위해서 특사로 북한 땅을 밟는다. 만약 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민주당 정권이 백악관의 주인으로 계속 있었다면 북핵문제는 보다 수월하게 풀려나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뒤어어 들어선 부시정권은 한반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두리운다. 부시 행정부는 구체적인 정보 없이 북-미 대화를 파국으로 이끌었다. 당시 북한은 일본과 수교하고, 미국의 인정을 받고, 내부경제 개혁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려했다. 부시행정부는 그러한 북한의 손을 잡아줄 마음이 없었다. 2004년 존루이스 교수에게 영변 핵시설을 공개하고, 이후 6년간 여러차례 미국 대표단을 초청해서 현장을 방문시킨다. 핵을 무기로 미국에 부던히도 구애의 노력을 했지만,  미국은 이를 외면했다. 제네바 합의가 파국으로 치닫지만, 미국은 이를 대체할 외교적 노력도 없었고 전략도 없었다. 이러한 부시행정부의 전략은 오바마 행정부로 이어진다. 오바마는 이를 '전략적 인내'라고 말했다. '전략적 인내'는 북한의 핵개발을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무관심도, 전쟁도 아닌, 외교라는 교훈을 그들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배우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소련과 이라크를 대체할 악의 세력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럼 북한과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이 책을 통해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첫째 '회유'와 '체면 살려주기'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하면서 이를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한 비결이 바로, '회유'와 '체면 살려주기'이다. 북한은 '체면'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없는 사람일 수록 자존심이 쎈 법이다. 북한을 무시하기 보다는 적당한 '체면'을 살려주면서 실리를 얻는 방법은, 북한을 상대하면서 갖추어야할 필수품으로 보인다.

  둘째, '기미'를 알아차려라! '한비자'라는 책에서도 제왕은 '기미'를 알아차려 미리 일을 대비해야한다고 말한다. 이 교훈은 대북관계에서도 적용된다. '특별 사찰을 용납할 수 없다.'라는 북한의 말을 듣고 CIA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했으나, 로버트 칼린은 '기미'를 알아챘다. 북한의 '군'과 '외교부'간의 마찰이 표면화된 표현으로 해석했고, 결국 로버크 칼린의 판단은 적중했다. 북한에서 '군'과 외교부'의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기도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갈등표출은 때로는 북한을 설득하기 위한 좋은 힌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을 자유세계로 나오도록 손을 잡아주라고 말하고 싶다. 북한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유세계로 나와야한다. 그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대화와 교류의 손길을 끊임 없이 내밀어야한다. 북한을 궁지로 몰 수록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높아진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북한을 자유세계로 나오도록 우리가 손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

 

 

  900페이지라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책이지만, 탁월한 네러티브 구성으로 책의 내용은 이해하기 쉽다. 물론 흥미를 위해서 시간순으로 서술하기 보다는 플래쉬백 방식으로 서술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때로는 사건이 뒤죽박죽 되었다는 혼란을 주기도 했다.

  로버트 칼린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 대해서 '한반도와 주위 관련국들은 암묵적으로 이를 문제 없는 사태로 받아들였다. (중략) 적대적인 정권이 한반도 양국에 이어진다면 한반도 전체 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에도 비극이 될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두개의 한국'!! 한반도의 분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이 분단체제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강대국들과 남북한의 일부 세력들이 우리주변에 존재한다. 이러한 분단체제의 지속은 언제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의 상존을 뜻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닫기를 바란다. '두개의 한국'이 '하나의 한국'으로 바뀌기를 소망해본다.

 

ps.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담겨있어 이를 소개한다.

 

  공수부대원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포에 질린 군중과 함께 내달렸다. 나는 또 다른 평화봉사단원 한명을 포함한 약 15명의 사람들과 어느 작은 가계로 피신했다. 한 군인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곤봉으로 사람들의 머리를 내리쳤다. 마침내 그는 우리 평화봉사단원들 앞에 다가와 섰다. 그는 잠시 멈칫하고 주저하다가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중략) 한 학생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는데 이마가 깊이 패여서 피가 줄줄흐르고 있었다. 그는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는데 갑자기 공수부대원이 난입해 머리를 곤봉으로 세게 내려친 후 물러났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중략) 대다수는 각자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쳐들어온 공수부대원들로부터 무차별 구타를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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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2-24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NBC 해설자의 발언이 제국주의적 시각과 유사하게 느껴졌어요. 영미권 사람들은 제국주의 시대를 번영과 진보가 이루어진 시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강나루 2018-02-24 08:22   좋아요 1 | URL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정조 이산 어록
손인순 지음 / 포럼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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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 전서부터 다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다산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그가 어버이처럼 생각했던 군주! 정조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그의 생각이 묻어나는 책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일득록'!! 생소한 책이었다. 정조가 책일 읽고, 신하들과 대화한 것들을 모아서 기록한 책이 일득록이다. 매일 읽기를 썼고, 이것이 '존현각일기'와 '일성록'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정조는 '일득록'도 작성했다.정조 그의 엄청난 독서력과 기록 정신은 정말 신기! 그 자체이다. 애민군주, 정조의 생각을 읽어 보자.

 

1. 독서광 정조!!

  조선시대를 통털어 책읽기를 즐긴 왕을 꼽으라면, 조선전기는 세종이요, 조선후기는 정조를 꼽을 수 있다. 정조는 책을 어떠한 순서로 읽었을까? 그는 경전을 중심으로 하고, 역사책을 먼저 익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책과 경전을 같이 두루 읽어야 세상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정조의 생각은 지금의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 대학을 다닐때만 하더라도 역사책만 두루 읽으며 세상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단히 역사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역사의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심리학책과 철학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심리학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고, 철학서적을 통해서 인생의 지혜를 얻어갔다. 나의 독서는 자연스레, 역사와 심리학, 철학을 머릿속에서 엮어가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철학을 현실과 괴리된 학문으로 생각했던 내가, 철학을 통해서 역사와 세상을 꿰뚫어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역사와 철학, 심리학 책들은 우리가 항상 옆에 두고 읽어야할 보배이다.

  그럼, 정조는 역사책을 읽을 때, 가장 경계해야할 점이 무엇이라 했을까? 사사로운 생각을 조심하라 했다. 유명인이 말을 하면, 의심할 만한 것도 옳은 것으로 이해하고, 명성이 보잘 것 없는 자는 취할 만한 것도 싸잡아 나쁘게 평가하는 세태를 조심하라고, 정조는 말하고 있다. 문학의 거두가 성추행을 했는데도, 이를 쉬쉬하는 것은 그가 유명하기에 흠결이 있더라도 덮어 주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일 수록, 힘없는 사람의 말은 좋은 말이라도 귀담이 들으려하지 않는다. 문학계 뿐만 아니라, 학문세계의 권력도, 유명한 스승 밑에서 배운 자들은, 그가 스승이기에 그의 학설을 함부로 부정하려하지 않는다. 정조는 우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의 배경에 집중하여 그사람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조선후기는 성리학이 절대화되고 교조화된 시기였다. 윤휴가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 사실을 떠올린다면, 성리학 이외의 서적을 읽는다는 것은 자칫하면 이단을 공부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그런데, 조선후기의 군주, 정조는 장자를 인용했을 뿐만 아니라, 금강경 주를 인용하기도 했다. 성리학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장자와 금강경까지 섭렵하는 그의 넓은 시야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럼, 정조는 암기력도 좋아서 책을 많이 암기했다. 그럼 그는 몇번 이나 읽었을까? 10번이면 충분할까? 아니 너무 적다고? 그런데 정조는 '마음이 바르면 어찌 열번이나 일어야 외워진단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책을 10번 이상 읽어도 많이 잊어버리는 나로서는 정조의 물음이 황당하기까지하다. 정조대왕님! 대왕님의 총명함으로 타인을 재단하면 곤란합니다. 저와같은 우매한 백성은 어찌하란 말이십니까?

 

2. 정조와 혜경궁의 마음을 읽다.

  '느닷없이 화를 내는 병통이 많다.' 정조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탓닛한 스님이 우리는 화를 어린아이 다루듯이 하라했다. 어린아이가 울면, 혼부터 내기 보다는 왜? 우는지 물어야한다. 화를 내는 사람을 본다면 그 사람이 왜? 화를 내는지, 그의 무의식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한다. 12살의 어린나이에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갖혀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했던 정조! 그의 가슴에 울분이 얼마나 컸겠는가? 이를 억누르고 성군이 되어야했다. 그러나 무의식속으로 억누른 분노가 억누른다고 잠잠히 있겠는가? 그의 분노는 느닷없이 화를 내는 병통으로 표출된다. 정조의 위대성은 그러한 병통을 스스로 고치려 노력했고, 그 분노를 딛고 성군이 된 것에 있다.

  '일은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말은 다하려고 하지 말라' 이 글을 정조는 벽에 써 놓고 자신을 살폈다. 자객이 난입하는 밤을 지세워야했던 정조는 밤새도록 책을 읽었다. 그러하기에 누구보다 많은 독서를 했고, 학문은 신하들보다 한참은 위였다. 정조의 눈에는 신하의 일처리가 완벽해보일리 없다. 정조는 신하에게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말은 다해서는 않된다. 노론 벽파가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의 감정을 모두 쏟아낸다면 노론의 쿠데타를 초래하게 된다. 정조는 살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감정을 절제해야했다. 원수와 웃으며 궁궐에서 만나야했다. '평생에 하지 않은 것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 정조! 아버지의 원수를 아직 일망타진하지 않은 뒤에야 그 누구도 못한 조선왕조의 개혁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현실의 힘을 가진 노론 벽파를 일망타진하지 않고 있지만, 왕권을 강화시키는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여 언젠가는 천개의 강을 비추는 성군으로 우뚝서겠다는 포부를 정조는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릉을 참배하고 돌아가면서 비를 만나자, 비 때문에 행차가 더디어진 것을 오히려 기뻐한다.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사랑이 비가오는 현실도 기뻐하게 만들었다. 일생을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의 원수에 대한 분노를 안으며 살아야했던 인간 정조의 아픔이 느껴진다.

  혜경궁 홍씨는 역대 왕들의 제도 수십권을 언문으로 번역하고 손수베끼기 까지했다. 왜? 역대 왕들의 제도를 번역하고 손수베끼기 까지 했을까? 혹시 정조의 개혁정치에 참고자료로 제공할 의도에서 한 작업이 아닐까? 자신의 남편이 하지 못한 제왕의 모습을, 아들을 통해서 보고 싶었던 혜경궁의 바램이 역대 왕들의 제도 번역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3. 시대를 읽다.

  '지금 사람이 사리에 밝지 않은 것은 글을 읽지 않아서이다.' 정조대왕의 말이다. P를 위한 집회에 나오는 노인들을 보면서, 정조대왕의 말을 해주고 싶다. 우리나라 10대의 학습능력은 세계 최고를 달린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20대 초반에 꺾이기 시작한다. 30대 후반을 넘어서서는 세계 평균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여, 50대가 되면, 하위권으로 밀려난다. 10대에 열심히 공부를 시키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책을 읽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자신이 10대에 배운 지식과 신문으로 주입된 지식이 세상의 진실이라 믿는 노인들이 양산되는 비참한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한다. 저 불쌍한 노인들에게 무슨 대화와 설득이 가능하가?

  정조는 크게 간사한자(대간)은 용남해서는 안되며, 조그만 허물이 있는자(소과)는 용서해야한다고 말한다. 대간을 용서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이요. 소과를 용납하지 않으면 온전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정조는 우리가 적폐세력을 왜? 처단하지 않으면 안되는지를 명확히 말해주고 있다. 대간이 법원에 의해서 풀려나고, 소과는 법에 따라 엄벌에 처해지지는 않는지 생각해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던 지강원이 지금 이시대에는 없을까?

  그럼 정조는 소과를 저지른 신하를 어떻게 깨우쳤을까? 책을 베고 자는 규장각 각신에게 정조는 복숭아를 소반에 담아 선물하였다. 복숭아는 맛있게 먹고, 소반은 남겨서 경계토록한 정조!! 매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신하를 대했다. 보통의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약한자에게 호통을 치면서 쾌감을 얻으려한다. 정조는 '사람은 언어로 한대의 쾌감을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정조는 마부에게도 이놈 저놈이라 부르지 않았다. 강자가 약자의 소과는 불같이 호통치면서, 자신보다 강한자의 대간은 용서하는 현실!! 갑질하는자여! 정조의 말을 귀담아들어라!

 

4. 정조의 사생활과 잡설

  우리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도교의 양생법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를 조선의 왕도 했을까? 조선시대 양반들이 했던 양생법을 정조도 했다. 취침전에 두발바닥 가운데를 마주 문질러 비비기도 했으며, 담배를 피우더라도 침을 뱉지 않았고, 머리를 많이 빗었다.

  정조의 개혁정책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화성건설이다. 정조는 화성건설에 인중기와 치원거를 사용했다. 신하들이 문집에 이들 기구를 싣자고 주장했지만, 정조는 백성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실을 필요가 없다며 거절한다. 백성의 성쌓는 고통을 줄여준 기구가 백성을 위해서 왜? 필요하지 않겠는가? 정조를 존경하지만, 정조의 이번 의견을 동의할 수 없다.

  한편, 정조는 경기 산군에 장용영의 산군 2초를 두고 둔전을 설치한다. 이는 정전제와 뜻을 같이한다고 정조는 말한다. 장용영을 운영하면서 그 운영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정조는 다양한 토지개혁 방법을 모색한다. 우리는 실학자들의 토지개혁론과 정조의 개혁정치를 분리해서 배우고있다. 박제가를 비롯한 많은 실학자들이 정조시대 활약했다는 점에 유의하여 조선시대 실학자들의 개혁론과 정조의 개혁정치를 유기적으로 연구해야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한다.

  마직막으로 조선시대 잠채의 성행, 민영광산의 발달을 알 수 있는 생생한 글을 소개하겠다.

 

  경연 신하 가운데 어떤 사람이, 은점을 금하기 때문에 은값이 매우 올랐다고 우러러 아뢰니, "관점은 금하여 막는다 하더라도 사적인 채굴은 낭자할 것임을 알 수 있다. 해마다 사행의 역관이 포은 외에 몰래 들여오는 것이 몇만 냥이 되는지 알 수 없고 잠상이 왕래하며 들여오는 것 또한 몇만 냥이 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기명과 패식에 순은을 쓰는 것이 그 수효를 알 수 없을 정도인데 이것이 모두 어디에서 생산된 것이겠는가? 만약 사점이 아니라면 강남에서 얻어오겠는가, 일본에서 얻어오겠는가? 관청에서 채광을 허락하지 않아 나라에 은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 게다가 은을 캐는 놈들이 모두 무뢰하고 놀고먹는 무리들이니 지금 만약 은점을 설치하도록 허락한다면 그 폐단을 만드는 것을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일득록

 

  영정조시대 잠채의 성행을 예측할 수 있는 생생한 사료이다.

 

 

  누구나 다 알듯이 정조는 애민군주이다. 적임자를 지역에 보내지 못한다면 자신이 백성을 구덩이에 멀어 넣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정조! 이 책은 정조의 인간적인 매력에 마음껏 빠져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책의 아쉬운 점도 많다. 정조의 '일득록' 모두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이 첫번째 아쉽움이다. 두번째 아쉬움은 박지원이 규장각을 통해서 배출된 당대의 문장가라 설명한 부분이다. 정조가 반성문을 쓰라고 명했는데도 박지원은 이를 거부했다. 벼슬을 주겠다는 정조의 회유책도 거부한 박지원이 규장각을 통해서 배출되었다는 설명은 명백한 오류이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정조의 생각을 살펴보고 싶어하는 독자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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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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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년전 친구에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이 참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서점에서 신영복 선생의 '강의'라는 책을 보았다. 독서토론회에서 이 책을 주제로 발제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책을 샀다. 그러나 당시 동양고전에 대한 배경지식이 일천한 나로서는 동양고전들의 핵심을 강의한 이책이 읽기 힘들었다. 결국 '강의'는 책장속에서 10여년을 잠들었다. 그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신영복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한걸음 다가갔다. 팟캐스트에서 낭독해주는 신영복 선생의 책들은 나를 감동시키기 충분했다. 결국 다시 한번 '강의'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강의'를 10여년 동안 나도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거울로 삼아보겠다.

 

1. 감옥에서 시작된 깊은 사색의 결과

  신영복 선생의 글을 속독하기에는 부적합한 책이다. 깊이 있는 사색의 결과로 한글자 한글자 씌여진 책을, 한번에 휙 읽기에는 책에 담긴 생각의 깊이가 너무도 깊다. 낭독 팟캐스트를 통해서 신영복 선생의 글을 듣고, 같은 부분을 눈으로 읽으며 다시 한번 사색하며 읽었다. 그래서 보통의 책들보다 읽는 속도가 무척 느렸다. 사색하며 읽을 수록 책의 맛은 더욱 깊어졌다.

  신영복 선생이 감옥에 갖혀 20여년을 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형을 언도 받고 나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주역' 계사전의 이말이 그에게 많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即變 變即通 通即久),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라는 이 말은 곧 사형수 신영복의 궁한 것이 변하여 결국은 통하고 오래간다는 희망을 가게하지 않았을까? 대응! 변화! 응전! 의 과정을 통해서 가장 나락으로 떨어진 삶도 다시 변하여 새로운 희망의 싹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주역은 말하고 있다. 가장 좋은 지천태괘에서도 하락의 시작이 잉태되어 있고, 가장 비천한 천지비괘에서도 희망의 싹을 암시하고 있다.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고, 행운이 불행이 될 수도 있다. 요행히 얻은 복권당첨이라는 행운이 재앙이 되어, 당첨금을 탕진하고 비참한 종말을 고하는 예를 풍문으로 자주 듣는다. 주역에서는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보다는 행운을 추구하며 오늘을 허비하고 있다.

  항용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이 있다. 건위천괘의 상구 효사에 있는 구절이다. 하늘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후회한다는 경계가 담긴 효사이다. 행운이 불행이 되기도하며, 불행한 곳에서 희망이 싹튼다는 주역의 교훈은 우리의 정치현실에도 적용된다.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기고만장했는가! 자신의 정권이 영원히 계속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뉴스를 통해서 전해지는 것 처럼 엄청난 적폐를 저질렀다. 하늘 끝까지 권력을 손에 쥐고 날아오른 그들이 자신의 힘을 남용한 결과 커다란 후회를 하는 현실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가장 좋은 지천태괴에서 이미 불행을 싹틔우고 있었다. 반면에 폐족이라 스스로를 불렀던 노무현의 사람들은 가장 비천한 천지비괘에서 희망을 싹틔우며 재기했다. 영원불멸한 것은 없다. 권력을 가진자들은 하늘 끝까지 날아 오른 용은 후회한다는 항용유회(亢龍有悔)라는 효사를 반드시 가슴에 새겨두어야할 것이다.  

  감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신영복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20여년 동안의 길고 긴 감옥생활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해야하지 않았을까? 법가를 대표하는 고전이 '한비자'이다. 신영복은 한비자를 강독하며 우리의 현실을 꼬집는다. 우리의 범죄관은 범죄 행위와 불법 행위로 양분하여 범죄를 바라본다. 범죄행위에는 절도와 강도 등의 범죄가 속하고, 불법 행위에는 선거사범, 경제사범, 조세사범이 이에 속한다. 이중에서 범죄행위는 가혹하게도 인간 전체를 범죄행위로 매도하며 그와 접촉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한다. 반면에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하다. 사람과 행위를 분리하고 행위의 불법성만을 인정한다. 수많은 불법행위자가 있고 그중에서는 전과 14범인 정치인도 있다. 불법행위자들 중에는 대통령까지 된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다. 우리 현실에 녹아있는 범죄관을 신영복의 날카로운 지적에 감탄을 한다. 감옥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분석한 신영복이기에 볼 수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신영복은 귀족도 예외없이 엄형에 처했던 법가를 바로 볼 필요가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강자에게 관대하고 약자에게 강한 우리의 법집행을 법가들이 바라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신영복은 감옥에서 만나는 선배들로 부터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지혜를 얻는다. 굴원의 시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씩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라는 말이 있다. 생각은 좌경으로 하고, 행동은 우경으로 한다는 말이다. 생각은 비타협적 원칙주의로 하고, 행동은 현실주의와 대중노선을 지키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이를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따뜻하게 살아라'라고 풀이했다. 차가운 이성으로 사고하다보면 비관적 현실에 좌절할 수 있다. 암울한 이명박근혜 시기를 살면서 너무도 비관적이었다. 늘어나는 노인인구! 줄어드는 젊은 인구! 그 속에서 진보세력이 권력을 잡기는 요원해보였다. 그럴때마다 나 자신에게 말했다. 어둠속에서 빛을 보는 것이 희망이다. '비관적 현실을 긍정적으로 살자!' 좌와우 양극단을 경계하고 비관적인 현실을 긍정적으로 살아갈 때만이 희망이라는 불빛을 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촛불혁명이 바로 이를 증명해준다.

 

2. 고전 전문가보다 탁월한 고전 해설

  신영복은 그가 말하듯이, 고전 전공자가 아니다. 단지 어려서 할아버지에게 고전을 배웠고, 20여년의 길고긴 세월을 고전을 읽으며 살았다. 그리고 사색하며 자신만의 고전독법을 터득했다. 이러한 고전 독법을 읽으며 무릎을 탁치는 때가 많았다.

  신영복! 그가 가장 중시했던 고전의 글귀는 무엇일까? 나는 석과불식 (碩果不食)이 신영복이 가장 사랑하는 글귀일 것으로 생각한다. 큰 과실은 먹지않고 남겨둔다는 이 말을 읽으며, 농촌에서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 놓는 푸근한 인심이 생각나다. 큰 과실을 까치밥으로 남겨두어 자연과 그 과실을 나누고, 그 까치밥이 까치를 통해서 새로운 곳에 싹을 틔워 새로운 감나무를 자라게하는 재생산의 자연의 질서가 느껴지는 글귀이다. 한때 대기업이 골목상권까지 침범하며 자영업자의 생존을 위협했을 때가 있었다. 승자독식의 냉혹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석과불식의 삶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승자독식의 시대에서 석과불식의 사회로 전환되어야 우리 세상이 더 따뜻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신영복의 깊고 깊은 사색의 결과로 잉태된 주옥같은 해설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에 대한 해설을 꼽겠다. 아는자는 좋아하는자만 못하고, 좋아하는자는 즐기는자만 못하다라는 '논어'의 글귀를, 어느 동양철학자는 좋아한다는 '호'와 즐긴다는 '락'은 별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때는 좀처럼 동의하고 싶지 않았지만, 명확히 '호'와 '락'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다. 반면 신영복은 '지'는 대상에 대한 인식이며, '호'는 대상과 주체간의 관계에 관한 이해이고, '락'은 주체와 대상이 원융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같은 춤을 추더라도 단순히 춤을 추는자와 춤과 자신이 혼연일체가 되어 무아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분명히 차원이다르다. 신영복의 독법을 통해서 '논어'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즉,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복하지 못한다.라는 이 글귀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해했다. 그런데 신영복은 이를 화목과 부화뇌동의 관점에서 벗어나 사회를 바라보는데 적용한다. 즉,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라고 해석했다. 더 나아가 '화동'의 논리로 다양성을 인정하며 지배하려하지 않았던(간접지배하려했던) 중국이 중화패권주의에 휩싸여 지배하려하며 공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신영복의 해설은 나로하여금, 하나의 미물을 통해서 우주를 조망하는 경지라는 생각을 하게했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신영복이 깊은 사색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탁월한 경지에 올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신영복만의 고전 독법은 무엇일까? ‘득어망전(得魚忘筌)’, 즉, 물고기를 얻으면 통발을 잊어버린다는 말이있다. 신영복은 이 말을 비틀어, 망어득망(忘魚得網)'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고기(현상)는 잊어도 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물(거대한 관계망)을 잊어서는 안된다. 물고기(현상)을 잊어버린다하여도 거대한 그물 즉 거대한 관계망으로 새로운 물고기를 얻을 수 있으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그물'인 것이다. 고전에 매몰되기 보다는 고전을 현대에 맞도록, 나에게 맞도로 새롭게 독법하는 자신만의 눈을 가질 것을 신영복은 강조하고 있다. 그 새로운 눈(그물)을 갖는 것이 고전 독법의 핵심일 것이다.

  고전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신영복은 정나라의 차치리라는 사람 이야기를 한다. 차치리는 신발을 사기 위해서 자신의 발을 본뜬 탁을 만들었으나, 신발가게에 와서는 탁을 놓고 온 것을 알고는 다시 집으로가서 탁을 가져온다. 그러나 장은 이미 파하고 신발을 살 수 없었다. 이 때, 사람들이 "어째서 발로 신어보지 않소?"라고 말하자 차치리의 답변이 걸작이다. "탁은 믿을 수 있지만 내 발은 믿을 수 없지요." 신영복은 우리는 차치리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리포트를 쓰기위애해서 책(탁)을 찾는 우리의 모습에서 차치리를 발견한다. 우리의 현실(발)을 보다는 책(탁)을 믿는 우리를 우리는 경계해야한다. 현실과 함께하라 갖가지 통계지표를 통해서 경제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우리 생활에서 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과연 경제가 좋아진 것일까? 고전의 좋은 이야기도 우리 현실과 괴리된다면 그것은 고전으로서 가치가 있을까? 고전독법이 공리공담으로 흐르는 것은 신영복은 경계하고 있다.

  신영복은 관계론적 사고로 동양고전을 읽는다. '주역'을 읽을  때도 효와 괘를 관계론 적으로 읽는다. 관계를 중시하는 학파라하면, 유학을 첫번째로 꼽을 수 있다. 이  책에서도 '논어'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서술하고 있다. 논어의 위상을 인정하고, 논어를  오늘의 현실에 적용해서 지혜를 얻고자하는 저자의 의도가 읽힌다. 

 

3. 신영복 그가 말하는 고전읽기의 필요성

  그렇다면 고전은 왜? 읽어야할까? 신영복은 대학에서 왜? 자신의 전공도 아닌 고전을 강의했던 것일까? 그 답을 얻기 위해서 고전이 만들어진 배경을 살펴보자. 농경민족은 유한 공간에서 반복적 경험을 쌓아 문화를 만든다. 그래서 '서경'이 탄생했다. 이러한 축적의 문화속에서 '마오어록'도 탄생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생각되지만, 중국적 전통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한한 공간에서 무한한 시간적 경험을 하고 이를 통해서 고전이 탄생한다. 반복적 경험 속에서 삶의 지혜를 담는 고전이 탄생하기에 고전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고 읽을만한 이유가 있다.

  고전을 읽을때 유의할 점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고전이 고전이 아닌 경우가 있다. 무슨 말인가? '시경'에는 저항시와 노동요가 많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속에는 음풍영월이 시의 본령인 것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시경에도 음풍영월하는 내용이 많으리라는 착각은 지배층의 편향적 여과장치 때문에 생긴 정신세계의 왜곡이다. 꼰대들이 고전을 읽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들만 뽑아서 현실을 왜곡하고, 젊은이들을 억누른다. 이는 '논어'를 읽었을 때에도 느낀일이다. 논어 헌문편에(14-46) 原壤夷俟 子曰 幼而不孫弟 長而無述焉 老而不死 是爲賊 以杖叩其脛이라는 말이 있다. 원양이 걸터앉아 있자 공자가 어려서는 공손하지 않았고, 커서는 기억될 만한 을을 하지도 않았으며, 늙어서는 죽지도 않으니, 자네야말로 도둑일세.라며 지팡이로 정강이를 치셨다.라는 내용의 글을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하는 이유는 꼰대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국부론'에 독점자본가에 대한 경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독점자본가는 '보이지 않는 손'만을 강조하며 자신에게 더 많은 자유를 달라고 한다. 현명해져라, 실시구시하라, 그러지 않는다면 착취의 지식에 세뇌당할 수 있다!!

  묵자에 '君子不鏡於水, 而鏡於人(군자경어수, 이경어인)'이라는 있다.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는 말이있다. 굴뚝 청소한 쌍둥이가 물에 자신을 비추기 보다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는 단지 숫검뎅이가 묻었는가를 살피기위함이 아니라,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안색을 살피고 길흉을 살피기 위함이 아닐까? 묵자의 감동적인 말을 가슴에 새기며, 내 주변의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아야겠다. 내 이웃의 얼굴을 살필 눈을 틔우기 위해서 고전을 읽어야하는지도 모른다.

 

4. 고전에서 발견하는 놀라움.

  마가복음6장에는 "선지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와 비슷한 말이 '묵자'에 있다.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묵자가 저지했다. 묵자가 돌아가던 중에 비를 만나서 송나라 사람집에 들어가 비를 피하려했으나, 송나라 사람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드러내지 않고 공을 세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요란하게 공명을 휘날리며 다투는 자를 더 알아주고 있다. 이러한 일은 왕의 병을 미리알고 고칠 것을 간언했으나, 왕이 병이 없는 자신을 속인다고 편작을 멀리했다가, 왕이 죽은 이야기부터, 자신의 공을 빼앗길 뻔한 롬멜이 선전전에 중요성을 깨닫고 수많은 기록을 남긴 이야기, 황우석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가 추락한 이야기 등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내몸 같이 하라 라는 말은 누구의 말인가? 놀랍게도 묵자의 말이다. 애인약애기신(愛人若愛其身)은 '묵자' 겸애편에 나와 있는 말이다. 물론 마가보금 12장에 나와있는 말이기도 하다. 묵자의 내용 중에서 성경에 있는 내용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내용이 많다. 그래서 중국에서 동방박사들이 묵가학파일 것이라 주장하는지도 모른다.

  '순'임금의 아버지 고수가 살인을 했다. 순임금은 어찌해야하는가? 당신이 순임금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이질문에 어찌 대답하는가에 따라서 당신의 성향이 법가, 법가에 가까운지, 유가에 가까운지 알 수있다. 맹자는 법에 따라 체포하고 사형에 처해야한다고 말한다. 단, 순임금은 자리를 버리고 부친을 몰래 업고 도망가서 부친을 봉양하며 행복하게 살라고 당부한다.

  그럼, 묵가에서는 법가처럼 원칙을 중시한다. 진혜왕이 묵자의 다음 거자 복돈의 아들이 살인을 하자, 사면을 해준다. 그러나 복돈은 사면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사형에 처한다. 만약 당신이라면 묵가나 법가의 입장을 택했겠는가? 유가의 입장을 택했겠는가?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이라는 말을 아는가? 물론 알 것이다. 그럼 그다음 구절, 명가명 상명(名可名 非常名)은 아는가? 그래 알것이다. 도를 도라할 수있으면 항상 그러한 도가아니요, 가히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라니, 무슨 말인가? 신영복은 개미를 들어 설명한다. 개미에게 물어보면 '개미'는 자기 이름이 아니다. 개념이란 그릇은 작은 것이다. 그릇으로 바닷물을 뜨면 그것은 이미 바다가 안니다. 이 얼마나 탁월한 해설인가? 우리가 개미를 개미라 부르지만, 어느 누구도 개미가 자신을 개미라고 생각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가? 다양한 관점에서 사람을 관계론적으로 파악하는 것!! 그것이 고전독법에 엄청난 파괴력을 갖을 줄은 몰랐다.

 

 경제학 전공자인 신영복은 소비를 미덕으로 생각하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다. '묵자'를 읽으며 거리를 가득채운 음식점이 불황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외식을 해야하는가를 걱정한다. 신자유주의 자본질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모습에서 신영복은 경제학자라기 보다는 인문학자로 보아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사실이란 조각그림이라고 말한다. 사실의 조합에 의해서 비로소 진실이 창조되는 것이다.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다. 1+1은 시너지를 발휘하여 2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진실을 보려면 한조각의 사실 그이상을 보아야한다. 한조각 사실로 진실과 진리를 바라보려면 자신만의 고전 독법을 가져야한다. 신영복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 강의'는 자신만의 고전독법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명저이다. 그의 마지막 강의 '담론'도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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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3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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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논어 한글역주를 읽기 시작한 것이 약 3년전일이다. 일년에 1권씩 읽어서 3년만 동안 읽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문장씩 읽었다. 그러던 것이 3권을 읽으면서 부터는 1일 1문장을 읽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모르는 한자를 찾고, 논어문장을 쓰고 읽고, 해석하면서 부단히 공부했다. 때로는 무릎을 탁치면서 감탄을 하고, 때로는 춘추 전국시대라는 시대적 한계를 넘지 못해서, 지금은 의미 없는 문장들도 있었다. 도올 논어 한글역주3권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도가없는 세상을 살아가기.

   한친구가 있었다. 이명박근혜시절 공무원을하면서 그 정권에서 시키는 일들을 하는 친구였다. 이명박근혜 시기라는 시대적 암운 속에서 그는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시키는 정책들을 추진해야만 했다. 이제는 친구가 아닌, 그를 태백편을 읽으며, 떠올렸다. 태백편에 천하에도가 있으면 드러내도 좋으나 천하에 도가 없으면 숨어 버려라,나라에 도가 있을 때 가난하고 비천하게 사는 것은 치욕이다. 나라에 도가 없을 때 부유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은 치욕이다 라고 했다.(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무도한 세상에 저항할 수 없다면, 최소한 그들의 앞잡이는 되지 말아야했다. 그들이 시키는 일들을 거절하지 못한다면, 또 한명의 아이히만이 될 뿐이다. 총통이 시켰기에 열심히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에 보낸, 그와 영혼없이 일을하는 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그래, 그는 자신은 거대한 기계의 조금만 나사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가 사표를 던졌다고 해서 정권에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용기있는 행동을 했다면 자신에게는 떳떳했을 것이다.

  요즘, 연일 국정농단 세력들이 구속되고 있다.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부도덕한 지시를 수행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이 자신에게 경제적인 이득은 물론, 출세에도 커다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적폐 10여년 동안 많은 아이히만들이 한국사회를 움직였다. 한국의 아이히만에게 공자는 '비루한 녀석들 어찌 더불어 임금을 섬길 수 있겠는가? 자리를 얻기 전에는 자리를 얻는 것만을 걱정하고, 자리를 얻고 나면 자리를 잃을 것만 걱정한다. 만약 잃을 것만을 걱정하면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子曰, “鄙夫可與事君也與哉? 其未得之也, 患得之. 旣得之, 患失之. 苟患失之, 無所不至矣.) 공자님의 말처럼 그들은 자리를 얻기 위해서 고심했고, 자리를 얻고 나서는 그 자리를 잃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부당한 지시도 거절하지 않고 했다. 그들에게는 정의도, 국민도, 양심도 없었다. 용기없는자,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자, 잘못된 지시를 거절할 수 없는자는 우리 국민은 물론이고, 그 자신도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공자는 말하고 있다.

  공자는 우리들에게 충고를 잊지 않고 한다. 어릴 적에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경계함이 색에 있고, 커서는 혈기가 한창 강건하니 경계함이 싸움에 있고,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미하니 경계함이 이익에 있다.(孔子曰 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라 戒之在得) 도올 선생은 도식적인 이 말을 공자가 했을리가 없다고 단언한다. 도식적인 설명임에는 분명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야동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 혈기가 왕성해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서 주먹을 쓰는 젊은이들, 노욕이 지나쳐서 P집회에 나와서 눈물흘리는 노인들의 모습!! 이런 모습이 우리의 전체모습은 아니지만, 우리의 일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한세월을 살아온 연륜 있는 노인들이 P집회에 나와서 차마듣기 힘든 말들을 쏟아내는 모습은 우리를 너무도 서글프게 만든다. 흥선 대원군이 민씨일파에 의해서 권력에서 쫒겨나고 나서 부단히 재기하려 몸부림치다가 추잡한 모습을 보였듯이, 이시대의 노인들은 곱게 늙어갈 기회를 스스로 내팽겨치고 있다. 떠날때를 알고 떠나시는 님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유를 이시대의 노인들은 언제쯤 알게 될까?

  땅에 넘어진자! 땅을 딛고 일어서야한다는 지눌국사의 말처럼, 혼탁해진 한국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혼탁한 한국사회를 딛고 일어서야한다. 논어에서는 자로의 입을 빌어 '내 몸 하나를 정결히 지키고자 하다가 사회의 대륜을 어지럽힐 수도 있는 것이니, 군자가 벼슬을 꾀함은 오직 그 의를 행하려함이로소이다.(欲絜其身, 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라고 했다. 정치를 떠나 은둔하며 고고히 살아간다면 자신의 몸은 깨끗이 보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현실은 변하지 않게 된다. 정치를 하려면 자신의 손에 더러운 구정물을 묻히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않된다는 말이 있다. 용기있게 세상의 구정물을 묻히며, 적폐를 청산하려 혈투를 벌이는 정치인들을 응원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 공자는 어찌 생각했을까?

  공자님, 한쪽 뺨을 맞으셨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공자가 어찌 대답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예수님 처럼 다른쪽 뺨을 내밀었을까? 아니면, 덕으로 갚으라했을까? 공자는 곧음으로 갚으라했다. 원한을 덕으로서 갚는다면 덕을 무엇으로 갚겠는가? 원한은 곧음으로 갚고, 덕은 덕으로 갚는 것이 정당하다고 공자는 생각했다.(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과는 달리, 공자님은 그들이 잘못한 것은 곧음으로 갚아 정의를 바로세우라는 날카로운 말씀을 하신 것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자들을 사면했다. 그리고 그 적폐세력은 사관학교 사열을 받았으며, 회고록에서 자신이 희생자라고 말하고 있다. 원수를 덕으로 갚은 결과이다. 개과천선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자들을 사랑으로 감싸안으면 그들은 자신에게 다시 힘이 생긴다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한다. 현재! 적폐세력을 제대로 척결하지 않는다면 그 세력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다시 우리의 미래를 짓밟을 것이다.

  공자님, 소인이 모시던 주군이 죽었습니다. 따라 죽어야할까요? 아니면 소인의 주군을 죽인 그분에게 의탁해서 능력을 펼칠까요? 이 질문에 공자는 어찌 대답할까?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려라! 너는 죽지만 나의 의기는 많은 이의 가슴에 길이 빛날 것이다. 라는 말을 공자가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공자는 주군과 같이 죽지 않고 주군을 죽인 환공밑에서 재상을 한 관중을 높이 평가한다. 관중이 없었으면, 그는 오랑캐의 풍속을 따르며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보통사람들이 조그마한 신의를 위해 자신의 결백을 입증코자 작은 도랑가에서 스스로 목매달아 죽어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아니한다며 관중을 높이 평가한다.(子貢曰, 管仲非仁者與? 桓公殺公子糾, 不能死, 又相之.” 子曰, “管仲相桓公, 霸諸侯, 一匡天下, 民到于今受其賜. 微管仲, 吾其被髮左衽矣. 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 무조건 절개만을 강조하는 조선의 교조적인 유학자들의 생각과는 다른 공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연합군에 항복하기 보다는 옥같이 부서지겠다며 반자이를 외치며 돌격을 하는 일본군과도 비교된다. 공자는 결코 목숨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진정! 용기있는 사람은 목숨을 중히여긴다. 한신처럼 대의를 위해서 지금의 치욕을 참을 수 있는자! 그가 바로 참다운 군자인 것이다.

  공자님. 선불교의 참선법을 아시나요? 고요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수행법입니다. 공자님, 참선을 통해서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가 보시지요? 라는 질문에 공자는 어떻게 대답할까? 공자는 참선보다는 공부를 더 좋아했다. 하루종일 밥도 먹지않고 잠도자지 않고 생각만 해보았더니 별로 유익하지 못했다. 역시 배우는 것만 같지 못하다.(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고했다. 만약 공자가 불교를 접했다면 선종보다는 교종에 호감을 갖았을 것이다.

 

3. 도올! 송유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다.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이글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사지를 움직여 부지런히 일하지도 않고, 오곡도 분별치 못하면서 (당신은) 누구를 가리켜 스승이라하는냐'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반면 도올은 '팔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지도 않고 오곡도 제대로 분간 못하는 그 자를, 누가 선생이라고 일컫는가?'라고 번역한다. 무슨 차이일까? 노인이 비난하는 자를 자로로 볼 것인가? 공자로 볼것인가? 라는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송나라 유학자들은 공자를 높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자로를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도올은 이러한 전통적 해석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것이 도올 해석의 강점이다. 공자마져도 동시대의 사람으로 여기며 그를 냉정하게 대하는 그의 해석이 빛나는 부분이다.

  도올은 자공이 스승 공자를 지나치게 숭배하는 것도 경계한다. 공자가 나라를 다스린다면 살아계실 때 그 나라의 백성들이 영예롭게 생각하고, 돌아가시면 그 나라의 백성들이 애통해 할 것이니, 누가 어떻게 부자의 경지에 미칠 수 있단 말이냐(其生也榮, 其死也哀, 如之何其可及也)라는 자공의 말에 '우리는 공자를 과도하게 정치화시키는 해석을 가할 필요는 없다.'고 일침을 가한다. 공자를 사랑하지만, 공자 옆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그를 냉정히 볼 수 있는 눈을 도올은 가지고 있다. 이러한 냉정함을 가질 때만이 우리는 공자를 뛰어 넘을 수 있다. '아직도 나의 제자로 남아있는 자보다 더 나뿐 제자는 없다.'라고 말한 니체의 호통소리를 조선의 유학자들과 지금 공자를 사랑하는 자들은 되새겨야할 것이다. 

 

4. 도올! 해석에 이의있습니다.!!

  도올의 해석이 매양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올의 해석에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공자가 '가장 뛰어난 현자는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을 피해버리고, 그다음으로 현명한 사람은 나라를 피하고, 그 다음으로 현명한 사람은 색을 피하고, 그 다음으로 현명한 사람은 말을 피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도올은 "별로 중요한 말이 아니다."라며 공자의 이 말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고 있다. 도올은 공자는 은일지사가 아니라 현실 개혁적인 사람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그러니 가장 뛰어난 현자는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을 피한다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도올이 지적했듯이 공자는 째즈 아티스트이다. 공자는 어떠한 절대적인 원칙에 얽매이지 않는다. 째즈 아티스트 처럼!! 아마도, 이 말을 하던 공자의 상황은, 가장 더러운 세상을 만났을 때 군자의 처세방법을 말했을 것이다.  

  "上好禮 則民易使也 "라는 문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도올은 '윗 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예에 의하여 교화된 백성은 부리기가 쉽다.'라고 해석했다. 유가의 리더십의 원칙은 솔선수범이라고 지적하고, 현대민주정에도 항상 들어맞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라는 것은 수직적 질서이다. 신분과 존귀, 서열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예'이다. '예'는 불평등을 전제로한 통치 이데올로기일 뿐인데, 윗사람이 예를 강조한다는 것은 자신이 군림하기 위한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말이된다. 이것이 어찌 현대민주정치에도 항상 들어맞을 수 있단 말인가?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는데 소도에 이착함이 장애가 될까 두렵다. 그러므로 군자는 소도에는 집착하지 않는다(子夏曰 雖小道 必有可觀者焉致遠恐泥. 是以君子不爲也).라는 자하의 말에 동의하는가? 날카로운 비판을 하던 도올이 이 문장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아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여기서 소도는 '농사, 원예, 의술, 점복'과 같은 지엽적 기술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엽적 기술도 대학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조그만 미물에게서 대우주의 진리를 보는 것은 보는자의 눈에 달려있다. 그만한 그릇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진리를 보아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논어!!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아버지의 신하와 정치방식을 바꾸지 않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을 비롯해서 21세기에 공감이 되지 않는 내용도 많이있다. 그 뿐아니라, 도올의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인터넷'논어정석풀이'를 참조하기도했다. 상론에서는 '주희 집주'를 상세히 풀이해주어서 이해를 쉽게 해주었으나, 하론에서는 이를 생략하여, 한자실력이 일천한 나로서는 무척이나 읽기 불편했다. 그럼에도 3년의 시간 동안 논어를 놓지 않으며 깨달음을 얻고자 했다. 이러한 부단한 과정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도올 논어 한글역주'를 탈고하면서 도올은 "공부하고 싶다. 정말 공부하고 싶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라고 절규하고 있다. 학문적 성취를 많이한 도올이 다시 공부하고 싶다고 부르짖는 모습을 떠올리며 진정한 학자의 못습은 과연 어떠해야하는지를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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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05: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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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05: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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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06: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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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06: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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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06: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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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06: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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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1-31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긴 서평 매우 잘 읽었습니다. 사실 제가 지식과 공부가 짧고 아직 20대라 논어나 제자백가 사상을 낡은 것으로만 생각하던 인식이 알게모르게 존재했었는데 이 서평을 읽고나니 관점이 달라지네요. 무엇보다 현재의 상황에 맞춰 설명한 점은 매우 놀랍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왜 논어나 제자백가 사상을 자주 얘기하는지 나름 이해가 됩니다. 무튼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강나루 2018-01-31 17:22   좋아요 1 | URL
고전은 오늘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어야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님의 따뜻한말 감사합니다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교양 교양인 시리즈 4
박석무 지음 / 한길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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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은 높은 산과 같고, 박지원은 깊은 물과 같다.' 어느 학자의 말이다.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영정조 시대를 살아간 두 인물!! 그러나 서로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서로 정치적 입지가 달랐지만, 우리에게 영정조 시대의 커다란 빛으로 기억되고 있다. 찬란한 두 빛중에서 나는 다산에게 끌린다. 해학이 넘치는 박지원의 글보다는, 시대의 아픔을 고뇌하며 언젠가 정조와 같은 현군이 나타나면 개혁의 자료로 쓸 수 있는 책을 저술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다산의 모습이 나의 가슴이 더 다가온다. 다산을 알면 알 수록 다산을 다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 다산을 알았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이덕일의 책과 정민 교수의 책도에서 무척이나 감동을 받았지만, 다산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졌다. 그래서 다산학의 대가로 불리는 박석무님의 책을 빼들었다.

 

1. 다시는 아들 낳았다 기뻐하지 않겠네요.

  농경사회에서 아들은 커다란 재산이다. 커다란 노동력을 얻었으며,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노후대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배가는 길목에서 다산은 부모에게 시를 짓는다. 그 시에, '다시는 아들 낳았다 기뻐하지 않겠네요.'라는 글귀가 있다. 10달을 배속에서 키워 장성 시켰는데, 그 아들들이 줄줄이 유배를 가고, 혹은 천주교를 믿는다는 죄목으로 죽음의 길에 들어선다. 낳은 기쁨보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이 더 크기에, 다시는 아들 낳았다고 기뻐하지 않고 이제는 슬퍼할 것이라는 말이다. 노론 벽파의 정치적 보복과 공서파의 공격으로 수많은 남인 신서파가 죽음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다산은 천주교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노론과 공서파는 다산을 죽이려했다. 황사영 백서 사건이 일어나자,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다산을 다시 한번 불러들여 국문한다. 특히 정승 서용보는 다죽여도 다산을 죽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며 다산을 죽이려한다. 다산의 암행어사 시절, 서용보의 비행을 왕에게 보고한 것을 그는 잊지 않고 처절히 보복한다. 피의 정치보복 앞에서 다산의 가문은 풍비박산 된다.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죽어서도 편히 누워있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산은 천주교를 믿은 것이 자신을 죽음의 문턱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다산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버이와 같은 정조가 살아 있을 때, 반성문을 쓴다. 이른바 '자명소'이다. 자신이 한때 새로운 학문을 배우려는 호기심에서 천주교를 믿었으나, 제사를 배척하는 천주교의 교리를 알고 나서는 이를 멀리했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담은 상소문이다. 노론의 영수 심환지 조차도 글이 아름답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그가 공개 반성문을 써야할 정도로 다산은 삶의 끈을 놓치 않으려 처절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도 아마 신유박해의 '기미'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조라는 어버이 군주가 사라진다면, 죽음의 먹구름이 맹렬히 그에게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2. 나는 저술로 평가받으련다.

  유배지에서 그는 몰락한 가문을 걱정하고, 흑산도로 유배된 형을 그리워했다. 불행은 혼자오지 않았다. 6남 3녀를 낳았지만, 2남 1여만 살아남았다. 유배지에서 두 아이를 잃은 다산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유배지에서 자식을 잃은 다산은 자신의 상실감보다 아내의 건강을 더 걱정했다. 자신의 아들에게 어머니에게 효도할 것을 당부하는 편지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기 전에, 어수선한 꿈을 꾼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을 듣고 나서는 너무도 괴로워한다. 두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산의 심정도 이순신 장군과 같지 않았을까?

  연이은 불행 속에서도 다산은 불굴의 의지를 불태운다. 유배지 장기에서 '촌병혹치', '이야슬', '기해방례변'을 저술하는 무서운 집중력을 보인다. 강진에서는 해남윤씨 처가의 도움으로 책을 빌려 볼 수 있었으나, 장기에서는 참고서적조차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이러한 책들을 저술한 그의 집중력에 감탄을 한다. 그후, 유배지에서 500여권이라는 놀라운 저술 활동을 한다. 다산은 왜? 이리도 저술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을까?

  그 해답은 다산의 편지에서 찾을 수 있다. '후세 사람들이 단지 사헌부의 계문과 옥안만 믿고 나를 평가할 것 아니냐' 라는 글귀에서, 다산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며, 왜? 그가 그토록 저술활동에 매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유럽인들이 신을 두려워 한다면, 동양인들은 역사를 무서워한다. 다산은 역사에 자신이 죄인으로 기록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자신을 죽이려는 벽파와 공서파의 기록만 보고, 자신을 못난 죄인으로 후세인들이 평가하는 것을 그는 두려워했다. 그는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참고, '사기'를 저술했듯이, 500여권의 저술활동을 통해서 당당히 시대의 참다운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싶었던 것이다. 아홉마리 소의 한가닥 털이기 보다는, 당당한 한마리의 소로, 닭들 속의 학으로 평가 받고 싶었던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서, 다산은 폐족이기에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산은 그의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과거 공부만 하지 않고 참다운 학문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하면서, 학문에 정진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 탓을 한다. 나의 환경이 이렇기에, 부모를 잘못 만나서 자신은 이럴 수밖에 없다고.... 그러나 다산은 유배지에서 500여권의 저술을 남겼으며, 신영복 선생은 감옥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초고에 해당되는 글들을 썼다. 그리고 이책의 저자 박석무는 감옥에서 다산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문재인은 친구 노무현의 죽음과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패하고 나서 더욱성숙했다. 시련이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인간이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지만, 강한 인간의 신념이 냉혹한 현실을 자신을 벼리는 숫돌로 만든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머루르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그곳이 참다운 진리의 세계가 된다!!

 

3. 조선시다운 조선시를 짓겠다.

  이 책은 다른 다산 관련 서적과는 달리, 다산의 시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탁월한 시인이로서의 다산의 모습을 이책을 통해서 마음껏 보았다. 또한 다산이 그린 그림도 수록되어있어, 다산을 조선의 다빈치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다산의 시는 다른 한시와는 달리, 아가, 납하 등의 우리의 토속어를 시어로 참음해서 사용하고 있다. 중국의 고사를 즐겨 사용해야 지식인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는 조선의 선비들에 비해서 그는, 우리 조선의 산천과 사람들, 그리고 말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그들의 말을 차음해서 시를 지었다. 문학면에서도 엄청난 시도였다.

  한편, 아쉬움도 남는다. 첫째는 장기현 마현리에 다산과 관련된 일화가 제대로 전승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산은 마현리 사람들의 말과 생활을 시로 읊조리며 그들을 잊지 않았는데, 그 지역 사람들은 노론의 거두 송시열의 일화는 전승하면서도 다산의 일화는 전승하고 있지 않다. 정확한 다산의 유배집터 조차도 모르는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둘째는 다산이 한글시조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산의 외가 6대조인 고산 윤선도는 한글시조를 다수 남겼다. 그러나 나산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가 민중의 삶과 애환을 한글시조로 노래했다면, 다산이라는 산은 더욱 높이 솟았을 것이다. 못내 아쉬움이 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 고산 윤선도는 한글시조를 남겼는데, 다산은 남기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정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산천에 은거해 사는 사람과, 사회 개혁의 의지를 버리지 않고 언젠가는 정조와 같은 군주를 만나 민초들을 구제하겠다는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계에 다시 진출하기 위해서라도 양반의 글자인 한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은 것은 아닐까? 나의 상상일 뿐이다.

 

4. 아쉬운 점, 그리고 잡다한 생각

  논개는 기생일까? 다산은 논개를 '의기' 즉, 의로운 기녀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학자들의 연구결과 논개는 기녀가 아니다. 평민 여성일뿐이다. 다산을 비롯한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논개를 기녀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의기'로 묘사했다. 이것은 시대의 한계이고 다산의 한계이다. 이러한 한계를 저자가 지적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책을 읽는 내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라는  책과 비교가 되었다. 정민 교수는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라는 책에서 전염병이 번지는 모습을 보고 중국황제의 죽음을 예측한 다산의 '기미' 관찰법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단 5줄로 서술을 마무리지었다. 서술 목적에 따라서, 보는 관점에 따라서 같은 주제의 책도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보이는데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다산에 대한 연구는 남한보다는 북한에서 먼저 활발히 시작됐다는 사실을 아는가? 다산의 매력을 북이 먼저 알았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다산이 저술한 500여권의 책은 이 시대에도 많은 지혜를 주고 있다. 다산에 대한 연구가 남북한 모두에게서 활발히 진행되고, 더 나아가서 남북한이 함께 다산연구를 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위인전을 제외하면, 다산과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은 이번에 3번째이다. 매번 책을 읽을 때, 다산은 나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하고, 많은 깨우침을 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다산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 많은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다산에 대한 더 좋은 연구서가 나온다면 다시한번 다산에 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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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1-30 0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외네요. 남한보다 북한에서 먼저 다산을 연구했을 줄이야. 무튼 남북공동연구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강나루 2018-01-30 05:34   좋아요 0 | URL
여전론 처럼 다산의 혁신적인 개혁론의 매력 때문에 연구를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