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 70여 년 동안 이어진 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왜 끝나지 않는가
김재명 지음 / 미지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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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환상이 있다.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핍박을 받았으나,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드디어 신께서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했다!!' 소년 시절, 탈무드를 읽으며 이스라엘인들을 응원했다. "땅 없는 민족에게 주인 없는 땅을"이라는 테오도르 헤르츨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 땅에는 주인이 있었다. 성경을 보더라도 출애굽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 불렛셋이라는 팔레스타인 선주민이 있었다. 2천년 후, 유대인들이 다시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에도 그 땅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땅의 주인을 몰아내고 학살했다. 그러면서 성서에 기록된 약속의 땅이라는 점을 근거로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고 인종 청소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인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바라본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담은 책이다. 


1. 악마와 싸운 그들이 악마가 되었다!!

  니체는 '선악을 넘어서'라는 저서에서 "악마와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악마가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악마의 심연을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히틀러라는 악마와 싸운 유대인들은 히틀러와 싸우며 그의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히틀러도 유대인의 심연을 들여다 보았다. 결국, 유대인들은 히틀러를 닮아가지는 않았을까? 이 책에서 이 물움에 대답을 찾아보자.

  1948년 5월 14일 나크바라는 대재앙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이르군, 하가나 같은 이스라엘 민병대가 팔레스타인을 학살했다. 그들을 패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피난을 떠나야했다. 그들의 손에는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열쇠와 집문서가 들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중동전쟁에서 아랍국가들은 패배했고 이스라엘은 승리했다. 아랍국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길 수 없는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만들어 독립전쟁을 했다. 마치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만주와 연해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고 수시로 강을 건너 국내 진공 작전을 수행한 것과 비슷한 활동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도 전개했다. 

  그런데, 1982년 9월,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공격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믿고 철수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브라, 사틸라 난민촌을 에워싸고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할 수 있도록 아리엘 샤론의 명령에 따라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았다. 마치 청산리 대첩에서 패배한 일본군이 그 분풀이로 간도의 조선인 동포를 학살한 간도참변 처럼 말이다. 전시라 할지라도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며 전쟁 범죄이다. 그런데, 아리엘 사론은 "나를 괴물이나 학살자로 불러도 좋습니다. 이스라엘을 유대인 나치 국가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죽은 성자보다는 그게 낫습니다."(121쪽)라고 말했다. 그렇다. 아리엘 샤론의 말처럼 그들은 유대인 나치국가가되어 히틀러가 유대인에게 했었던 만행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하고 있었다. 악마와 싸우며 악마가 되어 약자를 지옥으로 내몰고 있는 그들의 섬뜩한 모습에 히틀러는 지옥에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이스라엘에 이스라엘군이 주둔하면서 식민지배를 한다. 이에 대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제1차 인티파다 시기에 그들이 가진 것은 돌밖에 없었다. 일제의 무단 통치에 대항해서 우리가 3.1 운동을 했듯이, 그들은 인티파다를 전개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에 아리엘 샤론은 2005년 가자지구에서 유대인 불법 정착촌을 철수시킨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필요시마다 가자지구를 F16 전투기로 폭격했다. 

  2009년 저자 김재명은 가지구를 방문했다. 그 때 팔레스타인 주민은 "우리가 하마스를 지지했다 하더라도 총을 들고 싸운 전투원이 아닌데, 왜 마구잡이로 폭격해 집을 부수고 사람 목숨을 빼앗아 가느냐?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76쪽)며 울분을 토했다. 탁트인 시야를 확보하겠다며 불도저로 올리브 농장을 밀어붙이고, 응급차의 마을 진입을 막고, 부모의 주검 옆에서 굶주리는 아이 4명을 나흘이나 내버려둔 이스라엘군에게 팔레스타인인들은 존재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는 인간이 아니라 제거해야할 블렛셋인들로 보였던 것인가?

  이스라엘군의 정신상태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이스라엘 군인이 단체로 티셔츠를 맞추었다. 그런데 그 티셔처에 인간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되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팔레스타인 임산부 배에 총으로 조준을 을 해 놓고는 "1 shot 2 kills"라 적어 놓은 것이다. 1발로 2명을 죽인다는 섬뜩한 글귀를 적은 티셔츠를 단체로 맞춰입고 sns에 자랑하며 올린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는지 묻고 싶다. 

  이러한 사실을 유엔도 알고 있다. 2009년 3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특사 라디카 쿠마라와미는 제10차 유엔 인권 이사회에서 "이스라엘군이 가지지구 침공 당시 11세의 팔레스타인 소년을 '인간방패'로 활용하는등 많은 인권 유린을 저질렀다."(101쪽)는 내용의 43쪽 보고서를 제출했다. 임산부와 배속의 태아에게도 총을 조준하며 "1 shot 2 kills"을 외쳤을 그들에게 팔레스타인 소년들은 인간 방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분노에도 거칠 것이 없다. "UN 마크가 뚜렷이 달려 있는데도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 소속 직원의 차량이 부서졌고, 난민촌은 파괴되고, 점령지역 민간인은 강제로 이동당했다. 이는 제네바 조약 규정 위반이며 명백한 전쟁범죄이다. 이스라엘이 전쟁 범죄를 저질러도 그들에게는 미국이 있다. UN에서 미국은 거부권이라는 무기로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눈감아 주었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외교정책'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국익보다 이스라엘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미국외교를 지적했다. 유대인은 유대인 로비단체를 이용해서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을 움직이고 있다. 어쩌면 반유대 정서를 확산시키는 일등 공신은 이스라엘일지도 모른다. 


2.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이슬람 지식인은 저자 김재명에게 "이스라엘은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내 민족만 잘났다고 타민족을 압살해선 안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배우기는 커녕, 나치의 악랄한 수법을 그대로 배워 중동땅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211쪽)고 토로했다. 히틀러의 수제자가 이스라엘이라는 그의 지적에 의문이 들었다. 과연 구약에 의해서 모든 것을 약속 받았으며, 고통이 끝나고 약속의 땅으로 그들이 귀환하여 이스라엘을 건국했다는 그들의 신화는 진실일까?

  저자 김재명은 아서 쾨스틀러의 '열세번째 지파'라는 책을 인용해서 이스라엘의 신화를 걷어낸다. 현대 유대인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아쉬케나짐 유대인은 740년 무렵 카자르 왕국의 불란왕이 유대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탄생했다. 아쉬케나짐 유대인은 독일 히틀러에 의해서 희생당했다. 아쉬케나짐 유대인은 로마에 의해서 나라를 잃고 2천년 동안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겪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고,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신화를 기억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팔레스타인인을 박해하고 학살하고 있다. 

  그뿐아니다. 유대인은 동유럽에 분포한 아슈케나짐, 스페인을 중심으로 분포한 세파르딤, 이슬람인들과 조화롭게 지낸 미즈라힘으로 나뉜다.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은 미즈라힘의 역사를 지워버렸다. 박노자 교수의 '하얀 가면의 제국'이라는 책에 의하면, 이스라엘인들은 로마에 의해서 디아스포라의 고통, 히틀러에 의한 홀로코스트의 고통을 거쳐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서 이슬람인들과 이웃하며 조화롭게 살았던 미즈라힘을 역사에서 지워버렸다고한다. 조화롭게 더불어 살았던 역사를 버리고 박해받았던 고통의 역사를 모든 유대인의 기억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피의 복수가 벌어질 수밖에.....

  이러한 이스라엘의 박해의 기억은 이스라엘을 제대로된 민주국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시민권을 갖은 21%는 아랍인이다. 그들은 병역을 면제 당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 어렵다. 취업해도 똑같은 일을 하는 유대인 입사 동기와 임금 및 승진에 차별을 받는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주류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고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또한 유대인 사회 내에서도 피부색에 따라서 차별이 존재한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1등 시민 유대인과, 2등 시민 아랍인, 그리고 죽여도 비난받지 않는 호모사케르보다 못한 팔레스타인인으로 구성된 비민주적인 국가이다.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의 의해서 강제 점령당하고 있다. 곳곳에 검문소가 있고, 서안지구 내에 분리장벽이 존재한다. 땅의 주인이 자신의 땅에서 죄수 취급을 당하고 있다. 불법 정착촌 사람들이 달리는 차에 돌을 던져 팔레스타인인을 위험을 빠뜨리고, 이스라엘군이 난민촌에 총을 쏘아 댄다. 팔레스타인인이 저항하면 그들을 테러리스트라며 감금한다. 랄프 쇤만은 '시오니즘의 숨은 역사'라는 책에서 일제 강점기 일본인 순사가 독립운동가에게 했던 '성폭행과 전기고문'을 비롯한 악랄한 고문을 소개했다.(169쪽) 열악한 감옥에 인권을 유린하면서 감금당하는 팔레스타인이들에게서 우리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국가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만행이 이스라엘에서는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저자 김재명은 이스라엘을 민주국가라기 보다는 "군사 파시스트에 가깝다."라고 단언한다. 그 근거로 "이스라엘은 21세기에 식민지를 두고 있는 유일한 국가"(331쪽)임을 지적한다.김재명의 날카로운 지적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스라엘은 아테나 보다는 스파르타에 가까운 나라이다. 스파르타도 그들 내에서는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그리고 소수의 스파르타인이 반자유민인 페리오코이와 예속농민인 헬일로타이를 지배했다. 그리고 반란의 기미가 있는 건장한 청년들을 주기적으로 살해했다. 이는 이스라엘을 '군사 파시스트에 가깝다'고 지적한 김재명의 지적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이후 지금까지 '국가 비상 사태'아래 있지 않은가!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2년 동안 팔레스타인 희생자는 최소 1만 2600명이고 이스라엘 희생자는 1700명 가량이다. 사망자 비율로 따지면 유대인(이스라엘) 1명당 아랍인(팔레스타인) 7.4명 꼴이다."(33쪽) 이러한 사상자 비율은 일제의 의병 학살에 맞먹는 교환비율이다. 이는 전쟁이 아닌 학살이라고 볼 수 있다. 2024년 현재에도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한 유엔 차량을 폭격하고 난민촌을 폭격하고 있다. 전기가 끊겨 인큐베이터에 있던 아이들이 침대에 눞혀져야만 했다. 2014년 프란시스코 교황이 세월호 가족을 만났을 때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15쪽)이라는 말을 했다. 저자 김재명은 기계적 중립을 거부한다. 악과 선 사이에서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중립이 정의가 될 수 없다. 일제에 대항한 우리의 의병투쟁과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가 오버랩되기에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우슈비츠의 피해자였기에 가해자가 되어 버린 그들은 용서 받는 것인가? 히틀러의 뒤에 서서 팔레스타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동을 이제는 그만두어야한다. 그들이 인간적 양심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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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
도브 왁스만 지음, 장정문 옮김 / 소우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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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브 왁스만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이라는 책제목은 너무도 매력적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쉽게 설명해줄 책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도브 왁스만이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죄를 저지른 영국 출신이라는 사실에 불안감이 들었다. 과연 도브 왁스만은 그의 조국 영국이 저지른 원죄에서 벗어나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실을 우리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도브 왁스만에 대한 불신은 한국어판 서문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과 친한 한국과 팔레스타인과 친한 북한의 구도를 설명하는 도브 왁스만의 글을 읽으며 그가 객관과 중립이라는 미명하에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거짓과 섞어서 우리에게 전하진 않을까? 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사람들은 갈등이 있을 때, 그 안에 숨겨진 복잡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어느 한쪽편을 드는 경향이 있다. 분쟁에 대해 단순하고 편향된 관점을 취할 뿐 아니라, 선과 악 사이의 일종의 도덕적 게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16쪽


  달리는 기차에서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중간은 기회주의자들의 선택일 뿐이다. 아일랜드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가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양비론, 양시론으로 양쪽의 비판을 피해가며 악이 승리하도록 방조하는 우를 도브 왁스만이 저지르지는 않을지 내심 불안했다. 특히 이스라엘의 소설가 아모스 오즈의 말을 저자가 인용할 때는 그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은 비극이며, 정의와 정의의 충돌이다. 따라서 흑백으로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불의와 불의의 충돌이기도하다."-19쪽


  전형적인 양비론, 양시론이다. 양쪽을 긍정하고 양쪽을 비판하는 전형적인 미꾸라지들의 행태이다. 논어에 자공이 마을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는 사람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다시 자공이 마을 사람이 모두 싫어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라고 다시 묻자 역시 좋지 않다고 말했다. 공자는 마을 사람중 착한 사람은 그를 좋아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그를 싫어해야한다고 말했다.(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중립을 지키는 책보다는 정의를 말할 용기가 있는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랬기에 이 책을 읽는 초반에 도브 왁스만의 글을 의심의 눈초리를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이 책은 생각보다 객관적으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었다. 1994년 헤브론의 이브라히미 모스크에서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이 기도하던 팔레스타인인 29명을 총으로 쏴죽인 사건을 도브 왁스만은 과감하게 소개했다. 팔레스타인의 가해는 대서특필하면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서방 언론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서술이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의 땅을 빼앗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민족은 없다.'라고 선전한다. 심지어 "땅없는 민족에게 민족없는 땅을"(94쪽)이라는 구호는 초기 시오니스트들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극명히 보여주며 팔레스타인이라는 민족이 실존하지 않다는 프로파간다를 갖게한다. 더욱이 서아시아 역사와 문화에 정통한 박현도 교수님도 팔레스타인 민족은 없다고 팟캐스트에서 지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도브 왁스만은 팔레스타인 민족을 인정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한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이지역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고 신뢰하는 박현도 교수님도 팔레스타인 민족은 없다고 말했는데, 영국 출신의 도브 왁스만이 이를 인정하다니! 이는 충격이었다. 

  보드 왁스만은 근대민족주의가 18세기 이후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민족주의가 근대의 산물이라면 1834년 대규모반란과 1948년 5월 15일 나크바 이후 팔레스타인 민족이 탄생했음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스스로를 팔레스타인 민족이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주인없는 땅에 옛주인이 다시 돌아왔다는 그들의 서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레토릭일 뿐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을 인정할 때만이 평화의 대화가 가능하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 동병상련의 아픔이 느껴졌다. 땅의 주인이면서도 땅을 빼앗기고 그땅에 죄인처럼 창살없는 거대한 감옥에 살아야했던 우리의 근대사와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오버랩되었다. 만약 우리가 독립을 성취하지 못했다면, 팔레스타인인 처럼 창살없는 감옥에 살거나 전세계에 흩어 뿌려져서 뿌리내리지 못한 민족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하신 선열들이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한편, 강경파 팔레스타인이들에 대한 아쉬움도 들었다. 팔래스타인 지역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UN에서 고민이 있었다. 이때 팔레스타인 아랍지도자들은 팔레타인 특별 위원회(UNSCOP)에 참여를 보이콧했기 때문에 특별 위원회는 시온주의자들의 발표만 들었다. 결국,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결정이 내려졌다. 팔레스타인 특별 위원회(UNSCOP)의 결정에 시온주의자들은 예루살렘 헤브론 등 유대의 역사적 종교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아랍 국가 영토에 포함되어 불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특별 위원회(UNSCOP)의 분할 계획을 수용한다.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에 반발하며 팔레스타인 특별 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과는 나크바(대재앙)으로 이어졌다. 

  이 부분은 5.10 총선에 참여하지 않은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행동과 오버랩된다. 결국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가 5.10 총선을 거부하자, 한민당과 이승만 계열은 선거에서 승리한다. 그후, 친일파에 의해서 독립운동가가 역청산되는 비극이 벌어진다. 현실을 무시한 선명성 경쟁이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지금 100%를 갖지 못한다해도 이를 받아들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금씩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 노력하는 영리함을 독립운동가와 팔레스타인인들은 갖지 못했다. 

  오슬로 협정에 대해서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에서는 이스라엘에 굴복한 굴욕적인 협정으로 서술되어있다. 그러나, 도브 왁스만은 오슬로 협정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오슬로 협정은 폭력에 대한 외교의 승리이자, 이스라엘 정부와 PLO 지도부가 만들어낸 정치적으로 대담한 이니셔티브의 상징이다."- 209쪽


  PLO가 패배한 협상을 정적으로 바라보는 도브 왁스만의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이협정에 도장을 찍은 아라파트도 결국은 암살당하지 않았던가? 팔레스타인 인들은 정부를 구성하지도 못했다.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서 인권을 침해당하며 생명까지도 잃는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인들의 모습을 도브 왁스만은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헤르츨은 '오래된 새로운 땅'이라는 글에서 "이루고자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목표는 더 이상 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대인의 의지가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재앙의 시작이 되었다. 도브 왁스만이 이 책에서 말했듯이,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유전자가 상당부분 겹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두 민족이 유전적으로 서로 관련이 있음을"(68쪽) 알려준다.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살았던 두 민족이 이제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며 불행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이 '평화'라는 목표를 같이 이루고자 노력하길 바란다. 그런다면 두민족은 더 이상 한민족의 의지가 타민족의 재앙의 시작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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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인논술 2024-06-30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타인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준은 그 역사를 통과한 사람들의 흔적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나루님의 걱정에 저 또한 더욱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세계사 브런치 -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2016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브런치 시리즈 2
정시몬 지음 / 부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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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을 곁들'이지 않은 세계사 브런치! 이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영어번역본을 곁들인 세계사 브런치'라는 제목이 정확한 제목일 것이다. 공자님의 정명사상을 굳이 들이대지 않더라도 명칭이 정확해야 독자가 올바로 책을 선택할 수 있음에 작가도 동의할 것이다. 이책은 영어원문을, 혹은 영어로 번역한 번역문을 곁들여 세계사의 고전을 소개한책이다. 그리스어나, 라틴어, 프랑스어 원문을 제시하지도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너무도 큰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는다면 실망감이 클 것이다. 

  그럼에도 책벌레라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역사 전공자의 무거움이 느껴지지 않기에 경쾌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물론,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아마츄어가 쓴 글이라 책에 오류가 있기도하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함무라비법전을 "인류최초의 법전"(44쪽)이라고 소개한 글을 읽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인류최초의 법전은 우르남무의 법전이다. 또한, 246쪽에는 "성군의 대명사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린 하나라가 있었다고 한다."라는 웃기 힘든 오류도 있다. 전설상의 임금인 요가 세운 나라는 당이고, 순이 세운 나라가 우이다. 우가 세운 나라가 하이다. 전설상의 임금인 요임금과 순임금을 우가 세운 하나라 임금이라고 소개한 것은 심각한 오류이다. 저자는 '서경'이라는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면 이러한 오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책을 좋아하는 책벌레들이라면 자신의 독서를 토대로해서 경쾌한 책들을 쓰고 싶은 욕망을 대리 충족해주는 책이라 웃음을 띄면서 책장을 넘길 수 있다. 그래, 나도 언젠가는 정시몬 처럼 책을 출판하고 나와 같은 책벌레들에게 지적질을 당하겠지.....

  탁월한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종횡무진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많은 사색을 했고 이를 책으로 엮었다. 한글 번역본을 보는 것보다 영어 원문을 보는 것이 이해가 더 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암튼, 한가지 언어를 더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한세계를 더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를 활용해서 자신만의 책을 썼다. 물론 영어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는 있지만....(물론 동양 서적들은 한문을 곁들이기도 했지만, 저자가 한문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세계사 브런치'를 읽으며 한가지 큰 수확이 있다. 네루의 '세계사 편력'을 내가 읽을 책 목록에 추가한 것이다. 저자는 세계사 편력의 일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산업화를 착수하기에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고 이미 말했다. (중략) 영국이 산업과 공장을 개발하기 위해 자금이 가장 필요했던 참에 인도로 부터 이런 거액을 가져왔던 것은 특별한 행운이었다."-518쪽


  네루는 인도의 독립을 꿈꾸고 이를 이뤄낸 혁명가이다.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이 독서를 하며 독립의 방향을 모색했듯이, 네루도 책을 읽으며 인도의 독립을 꿈꿨다. 그리고 영국 제국주의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네루의 '세계사 편력'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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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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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에서 어느 가장이 폐허가된 건물 잔해 속에서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다.(2024.06.06.) 힘없이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와 물끄러미 아버지를 응시하는 딸과 천진난만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아들의 모습이 애절해보인다.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죽었다. 그 중에는 여성과 어린아이들이 많이 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하기에 가장은 폐허속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잔인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은 우리가 반드시 바로 알아야할 역사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인 라시트 할리디의 책을 꺼내들었다. 그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을 '정착민 식민주의'라고 정의한다. 정착민 식민주의는 무엇이며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1948515일 나크바(대재앙)가 시작되었다. '대재앙'의 시작은 이스라엘의 건국에서 시작되었다. 홀로코스트를 피해서 약속의 땅에 도착은 그들은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정주민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이 약속한 땅이라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의 주인을 그 땅에서 몰아냈다. 사실 구약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인정하다 하더라도 팔레스타인에는 블렛셋이라 불리는 팔레스타인 선주민이 있었다.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의 첫주인이 아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무시하고 팔레스타인인을, 그 땅의 주인을 자신의 땅에서 몰아냈다. 히틀러가 저지른 만행의 피해자가 로마가 일으킨 디아스포라의 가해자가 되었다. 다비드 벤구리온은 "늙은이들은 죽고 젊은이들은 잊어버릴 것'이라며 이스라엘의 미래를 낙관했다. 자신들이 2천년 동안 유랑민으로 살았음에도 다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을 팔레스타인인들은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유대인의 디아스포라가 종식되는 날, 팔레스타인의 디아스포라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인에게 트라우마의 시작이며 멀고 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다시 땅을 되찾는데는 2천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정착민 식민주의 기획이 낳은 결과"!! 그렇다. 지금의 팔레스타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저자 라시드 할리디가 말한 '정착민 식민주의 기획이 낳은 결과'이다. 그렇다면 '정착민 식민주의'란 무엇일까? 저자는 정착민 식민주의의 사례로 미국과 호주를 든다. 총과 천연두균을 앞세운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의 주인인 내이티브 어메리칸들을 '인디언 보호구역'에 몰아 넣고 아메리카의 주인이 되었다. 호주로 간 유럽인들도 호주의 주인인 어보리진들의 땅을 빼앗고 학살을 자행했다. 심지어는 어보리진들의 아이들을 납치해서 백인 가정에서 기르게했다. 뿌리 뽑힌 어보리진과 내이티브 어메리칸들은 땅의 주인임에도 이방인이 되어 레디메이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땅의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창살없는 감옥에 갖혀 독립국가 건설의 꿈을 꾸며, 혹은 그 꿈도 없이 죽은 가족의 복수를 꿈꾸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며 일제 강점기 땅의 주인이면서도 일제에게 땅을 빼앗기고 만주로, 연해주로 유랑을 떠나야했던 우리의 역사가 떠오르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들에게 가장 좋은 팔레스타인인은 죽거나 사라진 팔레스타인인이지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1869년 미국의 필립 셰리든 장군이 '가장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다.(The only good Indian is a dead Indian.)'라고 한 말과 유사한 말이다. 유럽인이 내이티브 어메리칸인을 학살하며 땅을 빼앗앗듯이 유대인도 팔레스타인인을 죽이며 그들의 땅을 빼앗았다.

194849일 데이르 야신 마을에 이르군과 하가나의 공격 대원들이 들이 닥쳐서 주민 100명을 도살했다. 이중 67명이 여자와 어린이, 노인이었다. 유럽인들은 여자와 어린이를 학살하는 것을 야만인들이나하는 것으로 여기며 맹비난을 한다. 인도의 세포이 항쟁 시기 세포이들이 백인 여성과 아이들 학살한 것을 들먹이며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학살을 정당화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팔레스타인 인종청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역사는 강자의 기록인가보다.

저자 라시드 할리디는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폭격할 때 그곳에 있었다.라시드 할리디는 임신한 아내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딸을 폭격과 폭력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탈출 시키려 발버둥을 쳤다.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반쯤 완공된 8층짜리 아파트에 최소 100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아라파트가 이곳을 다녀간 직후 폭격이 있었고 아파트는 주저 앉았다. 더 끔찍한 일은 잠시 후, 그곳에서 차량폭탄이 터졌다. 모사드가 "잔해더미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찾으려 애쓰는 가족을 도와주는 구조대원을 죽이려 설치해둔 폭탄"(217)이 터진 것이다. 모사드 장교는 이를 "살인 자체를 위해 살인하는 무기"라 불렀다. 여성과 어린이가 있는 아파트를 폭격한 것에서 더해서 사랑하는 가족의 유해라도 찾으려 다가간 사람과 그들을 구조하려는 구조대원을 죽이려는 모사드의 잔혹한 만행은 분명히 테러이며 인종청소이다. 그럼에도 세계는 이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 다 19828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베이루트에서 철수한다. 그들은 미국을 통해서 베이루트에 남아있는 팔레스타인 가족의 안전을 보장 받았다.

 

"베이루트에 남아 있는 법을 준수하는 팔레스타인의 비전투원들과 철수한 사람들의 가족은 평화롭고 안전하게 거주하도록 승인을 받을 것이다." -227

 

레바논 외무장관이 전달한 미국 문서를 받아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대원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양심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종이 쪼가리는 그들의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 914일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서쪽을 장악한다. 이스라엘은 조명탄까지 쏘면서 '레바논 부대' 민병대가 민간인을 도살하도록 도와준다. 1,300명이 이들에 의해서 도살된다. 이러한 만행을 아우슈비츠의 만행을 겪은 피해자들이 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베긴은 그들의 인종청소를 다음과 같이 변명한다.

 

"용감한 군대가 무고한 민간인들 사이에서 히틀러와 그 심복들이 지하 깊숙한 벙커 속에 은신해 있는 베를린을 상대하고 있는 느낌"-216

 

묻고 싶다. 베긴이 히틀러와 닮았는가? 아니면 아라파트가 히틀러와 닮았는가?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그들을 보며 몸서리가 쳐진다. 이스라엘이 우리의 이웃이 아닌 것이 다행으로 여겨진다.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팔라스타인인에 대한 공격을 계속된다. 20147월 가자 시티 슈지이야 폭격에 대해서 "미국의 한 퇴역 장군은 이스라엘의 포격을 <균형이 전혀 맞지 않은 보복>"이라 규정했다."(320) 불행히도 균형이 맞지 않은 보복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과 평화로이 살기보다는 그들을 박멸하길 원한다. 유럽인들이 내이티브 어메리칸인들에게 했듯이 말이다.

어떤이는 말한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부정과 부패, 무능이 문제이다!! 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들은 부정 부패를 저지르고 무능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요인을 암살했다. 이라크 바트당의 아랍해방전선, 아부 알아바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전선 이들에 의해서도 팔레스타인해방전선의 핵심 인재들이 암살 당했다. 지도부가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내리는 원인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독재국가 지도자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요인을 암살했기 때문이다. 불쌍한 팔레스타인이여! 그대들에게 신은 너무도 멀리있고, 이스라엘은 너무도 가까이 있구나!

19727월 카나피니는 17살짜리 조카 라미스나즘과 함께 모사드의 차량 폭탄 공격으로 암살당했다. '하이파로 돌아가다'의 저자이자 산문 작가인 그를 모사드가 암살했지만, 17살짜리 소년과 함께 암살했지만 이스라엘은 테러국가로 지목받지 않는다. 강자의 폭력은 전쟁이고, 약자의 폭력은 테러라고 말한다. 그러나, 강자인 이스라엘은 강자의 폭력과 약자의 폭력을 가장 약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사용한다. 그들이 소년일지라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는 국제법 전문가도 없었으며, 탁월한 지도자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유랑생활을 했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요인들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은 오슬로 협정에 서명한다. 우리는 오슬로 협정을 탁월한 평화 협정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탁월한 협정이지만,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최악의 협정이었다.

이스라엘의 점령 상태는 무한정 유지되었고, 군사통치가 종식되지도 않았으며, 불법적인 유대인 불접 정착이 동결되지도 않았다. "이스라엘 군사 정권 아래 사는 불만에찬 팔레스타인인들을 단속하는데 팔레스타인인 자치국이 이스라엘을 돕는 <안보협력>"(289)이 체결된 것이다.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 낙관했으나 그도 이스라엘에 의해서 창살없는 감옥에 살다가 비참하게 죽어갔다.

 

책을 덮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100년 동안의 전쟁에 가슴이 아파왔다. 시집살이를 당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어서는 새며느리에게 더 가혹하게 시집살이를 하듯이, 히틀러의 박해를 받은 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 이상의 박해를 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평화의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미국의 양심있는 시민에게 호소해야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한 이유가 전쟁무기가 형편없어서가 아니다. 미국의 양심있는 시민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우리 모두가 바란다면, 양심있는 친구에게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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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 지식의 대통합 사이언스 클래식 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장대익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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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에드워드 윌슨은 consilience라는 말을 부활 시켰다. 그의 제자이자 이 책을 번역한 최재천은 책속에 잠들어있던 통섭이라는 단어를 시간의 먼지를 털어내고 consilience의 번역어로 사용했다. 두툼한 책장을 넘기며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화두는 '과연 통섭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이었다. 큰스님이 행자에게 던지는 화두와 같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어려운 책을 꾸역꾸역 읽었다. 


  이책은 생물학을 중심으로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통섭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문학을 전공한 나에게는 에드워드 윌슨의 이 주장이 자못 오만하게 들렸다. 


  "교양과목이 대학의 핵심 교과과정으로 자리잡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464쪽


  시대가 변하니 대학의 핵심과목도 변해야한다. 아니, 기존의 교양과목이 변해야한다. 유시민이 '문과공'이라는 책을 쓰고 나서 각종 유튜브에 나와서 인문학자가 과학을 공부하지 않기에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다는 내용의 지적을 했다. 유튜브에서 비춰진 유시민의 발언은 인문학보다 과학이 우선한다는 인문학 전공자의 항복선언이었다. 글쎄, 인문학자가 과학을 공부해야한다는 명제는 깊은 공감을 하면서도 그의 그러한 모습은 좋와보이지 않았다. 

  통섭의 당위성에는 공감하지만 전공하나도 제대로 알기 힘든 상황에서 어찌 과학까지 공부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천재일 수는 없지 않은가? 라는 질문이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문화를 알기 위해서 뇌과학과 신경과학 유전학을 먼저 설명하는 에드워드 윌슨의 글을 읽으며 그가 말하는 통섭이 만물박사가 되라는 것은 아님을 알았다. 사실 만물박사가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기에 유한한 시간속에서 배울 수 있는 학문의 양도 제한적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품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통섭을 필요하다.

  인문학 내에서도 같은 사건을 역사학과 정치학이 달리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연구 방법론이 다르다보니, 대화가 안되는 경우가 많다. 학문의 장벽을 넘나들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소통이 필요하다. 그 장벽을 넘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험난할 것이다. 그렇지만 올바른 진리를 찾기 위해서 인문학은 과학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류를 연구했듯이, 인문학자는 자신의 주장이 뜬구름이 아닌 대지에 뿌리박기 위해서 과학을 공부해야한다. 

  인문학만이 과학을 필요로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이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과학의 폭주를 막을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을 만들어냈다. 우리 과학자가 프랑켄슈타인의 얼굴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문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이라는 괴물이 폭주하지 않고 인간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인공지능 개발 윤리가 필요하다는 외침이 절실하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의지적인 진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우리 과학은 윤리적 선택에 직면해있다. 유전자 조작,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을 목도하며 과학자들이 윤리적 철학적 판단력이 절실하다. 과연 우리 과학자들은 윤리학과 철학을 통섭하며 현명한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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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4-05-26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괄적인 이론을 형성할 때 서로 다른 다양한 분야의 원리를 서로 연결하는 것>
혹은
<특히 과학과 인문학의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 간의 합의>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Consilience 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William Whewell 이었습니다.

과학과 역사에서 일관성(증거의 수렴 또는 증거의 일치), 서로 무관한 독립적인
출처의 증거가 강력한 결론에 ‘수렴‘할 수 있다는 원칙입니다.

이 Consilience 의 개념은 과학 철학자들(Philosophers of science) 에 의해 널리
논의되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생소한 용어였다가,1998년 저술가이자 생물학자인
E. O. 윌슨의 저서인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통섭: 지식의 통합> 에서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문화적 간극을 메우기 위한 시도로 사용되며 알려졌습니다.

윌슨은
˝the humanities, ranging from philosophy and history to moral reasoning,
comparative religion, and interpretation of the arts,
will draw closer to the sciences and partly fuse with them˝

“철학과 역사, 도덕적 추론, 비교 종교, 예술 해석에 이르는 인문학이 과학과
가까워지고 부분적으로 과학과 융합할 것”이며, 이러한 융합을 통해 과학과
과학적 방법이 물리적 현상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 지침을 제공하고
모든 진리의 궁극적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강나루 2024-05-26 14: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 네요

Jeremy 2024-05-26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창조>에서 <부활> 로 바로 본문 고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