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사도들 - 최재천이 만난 다윈주의자들 드디어 다윈 6
최재천 지음, 다윈 포럼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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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심상치 않다. '다윈의 사도들(Darwin's 12 Apostles)'은 다윈을 절대 틀리지 않는 교주로 모시며 일생을 바쳐 다윈의 말이 진리임을 과학적인 근거로 증명한다. 원래는 13명의 사도를 다룰 계획이었으나 하버드 대학교 에드워드 윌슨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이 인터뷰 후에 무자비하게 난도질 당하는 바람에 이 책에 싣지 못했다. 다윈주의자 최재천이 만난 12명의 사도들에게 다윈은 어떠한 매력이 있기에 그들은 기꺼이 다윈의 사도가 되었을까?

 

최재천이 만난 사도들 중에서 나의 흥미를 끈 첫번째 사도는 헬레나 크로닌이다. 그녀는 페미니스트들과 논쟁도 불사하는 전투적 여성이다. 한국에 미투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차기 대권그룹에 있었던 정치인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사태를 겪으며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에게 부정적 발언을 하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사회적 매장을 각오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반박할 수 없었다. 성적 피해를 당했다는 증거를 요구하는 말조차 2차 가해로 뭇매를 당했다. 석연치 않은 의심을 지울 수 없지만 나 또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성인 그녀가 페미니스트와 설전도 불사하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페미니즘을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세상을 더 공평한 곳으로 만들고, 여성에 대한 부당한 처사를 바로 잡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성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구축할 수 있겠습니까? 애초부터 과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한 고려를 배제한다면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습니까? (중략) 이것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거행된 것들이라면, 저는 정치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은 타당성을 잃었다고 말하겠습니다."-86

 

과학문명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과학에 근거한 판단을 해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과학적 진실보다는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을 만들려고 과학이라는 지식을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경우가 많다.

1정 연수 때의 일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설명하는 강사가 여성이 남성보다 수학이나 과학을 못한다는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 강사는 강의 중에 남성이 여성보다 수학과 과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서 질문을 했다. "남성이 여성보다 수학과 과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인다면 이를 인정하고 그에 맞도록 수업을 해야하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수학과 과학을 못한다는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된다라는 말은 모순이 아닌가요? 남성이 여성보다 수학을 잘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올바른 교육이 되지 않나요?" 나의 질문에 그 강사는 짜증나는 목소리로 "그건 알아서 잘 이해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때 페미니스트는 감정적일뿐 이성적 사고는 상당히 박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성적 두뇌로 이해되지 않으면 그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 페미니스트 강사는 여권신장이라는 목표에 눈이 멀어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그 강사는 헬레나 크로닌의 책을 읽었어야했다. 헬레나 크로닌이 나의 질문에 답한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멍청이도 많지만 노벨상 수상자도 많네"라고 단순 명쾌하게 말했을 것이다. 경쟁이 많은 남성에게 변이가 많다. 그렇기에 노벨상을 타는 사람 중에 남자가 많지만, 멍청한 사람들 중에도 남자가 많다. 그에 비해서 여성 집단은 서로 비슷하다. 중간층이 두텁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과학과 수학 점수의 상위권자들 중에는 남성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상위권 학생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다수의 남성은 무시된다.

헬레나 크로닌의 설명은 오랜 동안 해결되지 않고 나의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을 깔끔히 정리해주었다. 우리 학교에 남학생들의 학업 성취가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설명해주었다. 우리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과학적 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럴 때만이 하위권의 남학생을 중위권으로 끌어올리고 중위권의 여학생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교수학습 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헬레나 크로닌이 소개한 남녀의 차이를 더 살펴보자. 신생아 중에서 남아는 경쟁적이며, 모빌을 더 선호한다. 그에 비해서 여아는 협력적이며 인간 얼굴을 더 선호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현실을 부정하며 부모의 양육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예외적인 사례를 말한다. 남아인데도 협력적이며 인간 얼굴을 더 선호하는 아이가 있으며, 여아인데도 경쟁적이고 모빌을 선호하는 아이가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남녀의 차이를 규정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매도한다. 헬레나 크로닌은 이에 대한 반론도 제시했다. 가끔 남녀의 차이가 반대로 나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자궁에 있는 동안 남성 호르몬에 노출된 여아는 전형적으로 말괄량이 같고 여성 평균 공간 지각 능력을 초월한다. 남아도 정반대가 성립한다.

나는 역사를 배우면서 ~주의, ~이즘(ism)의 위험성을 많이 보아왔다. 주의와 주장에 매몰되면 진실을 보지 못한다.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근거는 무시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근거들만 본다. 이른바 확증편향이 형성된다.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이러한 확증편향이 보인다. 과학적 진실을 직시하고 이에 바탕을 둔 활동을 할 때만이 페미니스트들은 확증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떤 페미니스트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정설이 변했듯이, 과학적 진실도 바뀔 수 있지 않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 과학적 진실도 변화할 수 있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세계의 진실을 모두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진실을 직시하고 그 범위 내에서 올바른 판단과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결정이 잘못된 결정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고 신중히 판단하고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우리는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나의 흥미를 끈 두번째 사도는 리처드 도킨스, 대니얼 데닛, 마이클 셔머를 비롯한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도들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리처드 도킨스가 진화론의 신봉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 제목 때문에 그의 책을 읽기를 꺼려했다. 인간을 선악설에 근거해서 바라보는 삐딱한 학자로만 생각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까지 쓰면서 종교에 선전포고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윈의 사도들 중에서 한국에 많은 기독교 신자가 있으며 해외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사실을 거론하며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했다. 나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크리스트교는 서양 사상의 기둥이다. 과학문명이 지배하는 시대라 할지라도 크리스트교를 드러내 놓고 비판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선입견이었다. 더욱이 서양에서는 말이다.

 

"무조건적인 찬양 또는 숭배가 그렇습니다. 믿음의 대가로 무언가를 가져가는 것을 숭배하고 찬양하게 만드는 것이나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찬양하기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종교의 부적절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주 강력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런 것들을 빼 버린다면 더 이상 무엇이 남겠습니까?" -205

 

대니얼 데닛의 이 말은 종교에 대해서 평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역사를 전공한 나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수많은 신화와 설화를 그대로 믿지 않고 그 안에서 역사적 의미와 사실을 끄집어 내려 노력한다. 그런데, 대학에서 한국 사상사 수업을 듣던 중에 교수님이 갑자기 기독교 이야기를 했다. 기독교 신자인 한국사 교수에게 나는 질문했다. "종교 위에 우리의 현실이 있어야합니까? 종교 밑에 우리의 현실이 있어야합니까?" 그런데, 교수님은 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었다. "시대가 변하면 종교의 교리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합니까? 시대가 변해도 종교의 교리는 변하면 안됩니까?" 교수님은 "그것은 함부로 말할 수 없네, 부활 처럼 영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나는 교수님께 다시 질문했다. "신비한 종교의 이야기는 해당 종교를 포교하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 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교수님은 "그렇다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거짓을 오랫 동안 믿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럴 수가 있나요."라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 교수님은 단군신화를 신화로 가르치면서도 서구 종교의 신화는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고 있었다. 근대 과학문명의 세례를 받은 학자가 종교에서 벌어지는 신이한 기적들을 그대로 믿는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대다수의 다윈의 사도들은 종교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상당히 논리적이며 나의 관점과도 일맥상통했다. 그런데, 종교와 과학은 조화를 이룰 수는 없는 것인가? 아무리 과학적 진실이 진화론이 옳음을 말해도 많은 인간들이 창조론을 믿고 있다. 심지어 인도에서는 11, 12학년 이외의 학년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기로 했다. 진실을 직시하기 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그것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믿으려하는 사람을 과학의 진실 앞으로 끌고 올수는 없다. 강제로 과학의 진실 앞으로 끌고 오려할 때 과학은 또 다른 종교로 변질 될 수 있다. 골턴에 의해서 정립된 우생학이 열등한 사람으로 지목된 사람에게 단종수술을 행하고 열등한 민족을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로 보냈던 죄악을 다시 저지를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지구상에서 바이러스를 박멸시킬 수 없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절대자에게 나약한 자신의 정신을 의탁하고 싶어한다. 그런 의미해서 칸트가 말했듯이 신은 요청되어진 존재이다. 스티븐 핑커는 "왜 이 지구에 보내졌는가?"라는 질문에 "아무런 이유도 없다."라고 대답했다. 스티븐 핑커의 대답이 과학적 관점에서는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나약한 인간은 조약돌에서도 우주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사피엔스는 자신들의 존재가 "아무런 이유도 없다."라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을 고통스러워한다. 결국, 나약한 사피엔스는 종교를 버릴 수 없다. 그렇다면, 나약한 사피엔스를 위해서 과학과 종교의 건전한 공존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만들어진 신'을 나의 독서 리스트에 올려 놓은 것도 이 책을 읽으며 얻은 수확이다. 좋은 책은 다음에 읽을 책을 연쇄적으로 읽도록 한다고 말한다. '다윈의 사도들'이라는 책은 내가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에 입문하도록 나를 인도했다.

책장을 덮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다윈이 이렇게도 중요한 인물인지 새삼스럽게 알았다. 다윈의 두번째 사도 헬레나 크로닌의 말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다윈의 핵심적인 이론은 영원히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생물학은 영원히 다윈주의적일 것이라는 말입니다."-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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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평화론 - 하나의 철학적 기획, 개정판
임마누엘 칸트 지음, 이한구 옮김 / 서광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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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월한 철학자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임마누엘 칸트이다. 그는 영원한 평화를 꿈꾸었다. 그래서 '영구 평화론'을 집필했다. '하나의 철학적 기획'이라는 부제가 말하듯이, 전쟁이 많았던 시대를 살았던 그는 영원히 전쟁을 떠나보내기 위해서 철학적 기획을 했다. 임마누엘 칸트라는 탁월한 철학자가 우리 인류에게 던져준 축복의 메시지이다. 그가 인류에게 던져준 축복의 메시지를 읽어보자.

  칸트는 국가 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서 예비조항6개와 확정 조항 3개를 제시했다. 

  우선 국가 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예비 조항 6개를 살펴보자. 


 1. 장차 전쟁의 화근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암암리에 유보한 채로 맺은 어떠한 평화 조약도 결코 평화 조약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2. 어떠한 독립 국가도 (크고 작고에 관계없이) 상속, 교환, 매매 혹은 증여에 의해 다른 국가의 소유로 전락될 수 없다. 

 3. 상비군은 조만간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 

 4. 국가 간의 대외적 분쟁과 관련하여 어떠한 국채도 발행되어서는 안된다. 

 5. 어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의 체제와 통치에 폭력으로 간섭해서는 안된다. 

 6. 어떠한 국가도 다른 나라와의 전쟁 동안에 장래의 평화 시기에는 상호 신뢰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 틀림없는 다음과 같은 적대 행위, 예컨대 암살자나 독살자의 고용, 항복 조약의 파기, 적국에서의 반역 선동 등을 위해서는 안된다. 


  칸트가 제시한 1번 조항은 전쟁의 화근을 뿌리 뽑는 평화조약을 맺을 것을 당부했다. 칸트는 완전한 평화 세계를 꿈꾸었지만, 현실은 완전한 평화에 다가가려 노력해야하는 것이이다. 지금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 된다할지라도 이것은 평화조약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한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해야한다. 그러나, 핵을 가진 국가와 핵을 가진 국가의 지원을 받는 나라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며, 자칫잘못하면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현실을 고려한다면, 전쟁의 화근을 뿌리 뽑지 못한 미봉책의 조약도 평화를 위한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평화 조약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2번 조항과 4번조항, 5번 조항, 6번 조항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을사늑약도 제국주의 열강들이 약소국 대한제국을 일제가 식민지로 삼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강제 조인된 것이 아닌가! 또한 전쟁은 돈이 없으면 치룰 수 없다. 전쟁을 위한 국채를 발행할 수 없다면 전쟁은 지속될 수 없다. 타국에 대해서 폭력으로 간섭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인권을 비롯한 다양한 핑게꺼리를 들이밀며 타국강제 병합시키려는 야욕을 사전에 제거하려 목적일 것이다. 전쟁을 하더라도 암살자난 독살자를 고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서 전쟁이 끝나더라도 화해할 수 있는 칸트의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상비군을 조만간 완전히 폐지하자는 3번 조항은 이뤄지기 힘들다고 본다. 상비군이 완전히 폐지되기 위해서는 모든 나라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동시에 폐지해야한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가간에 군사비 지출이 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본다면,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평화를 원하는 이들은 전쟁을 준비한다.(Igitur qui desiderat pacem, praeparet bellum)"라는 로마의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가한 말을 우리는 흘려들을 수 없다. 

  칸트가 제시한 국가 간의 영구 평화를 위한 확정 조항 3가지를 살펴보자. 


 1. 모든 국가의 시민적 정치 체제는 공화 정체이어야 한다. 

 2. 국제법은 자유로운 국가들이 연방 체제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된다. 

 3. 세계 시민법은 보편적 우호의 조건들에 국한되어야 한다. 

  

  칸트가 제시한 확정 조항 3가지는 그의 평화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실감케한다. 우선 모든 국가는 공화정체이어야한다는 1번 조항을 살펴보자. 1816년부터 2005년까지 발생한 전쟁을 살펴보면 비민주국가들 사이에서는 205건의 전쟁이 발생했으나, 민주국가 사이에서는 0건의 전쟁이 발생했다. 정확히 말하면 칸트는 민주주의를 외친 것이 아니라 공화 정체를 외쳤다. 칸트가 생각하기에 민주정치는 그리스 시대의 중우정치와 같은 의미의 정치형태였을 것이다. 칸트가 제시한 공화 정체를 현대의 민주 공화정으로 수정한다면 그의 안목을 적중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이를 확산시키는 것은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신의 가족이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것을 민주 공화국의 국민들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명의 미군 생명이 사라지는 것도 미국인들은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러나, 전체주의 국가, 혹은 독재 국가에서 사람의 목숨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충분히 희생시킬 수 있는 도구일 뿐이다. 

  2번 조항은 국제연맹이나 국제 연합을 염두해둔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이 국제연맹을 제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칸트가 제시한 영구 평화론의 확정 조항 2번이 있었다. 물론,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이 가지는 수 많은 문제점과 한계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부족한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야심에 가득찬 독재자들은 더 많은 침략전쟁을 일으켰을 것이다.

 3번 조항을 보면 솅겐조약이 떠오른다. 유럽연합 가입국 국민은 자유롭게 유럽연합 내의 국가들의 국경을 넘을 수 있다. 국경이 의미를 잃은 유럽연합은 적어도 유럽연합 내의 국가들 사이의 전쟁은 사라지게 했다. 이것은 세계로 확대시킬 수 있을까? 그것은 무리일 것이다. 칸트가 그의 책에서 제시했듯이, 서구의 제국주의 국가는 그들이 방문한 지역의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그들을 식민지로 삼았다. 솅겐조약을 세계로 확대 시킬 수는 없지만 이방인을 환대하고 우호적으로 대해야한다는 칸트의 제안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이다. 

  칸트가 영원한 평화를 원했다고 해서 전쟁을 죄악시하는 극단주의자는 아니다. 놀랍게도 '영구 평화론'에는 전쟁의 긍정적인면도 소개되어 있다. 


  "전쟁은 또한 전제정치를 자제시키고, 자유를 가능하게하는 유일한 요인으로 작용한다."-96쪽

  "모든 집단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술의 개발과 촉진에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전쟁은 과거에서나 현재에서나 소질을 계발시키는 원동력이된다"-96쪽


  어니스트 볼크먼의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라는 책에서 소개한 내용을 다시 읽는듯하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기술 개발을 촉진한 사례를 1, 2차 세계 대전에서 우리는 경험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에 전제군주정 혹은 입헌군주제 국가가 몰락하고 민주주의가 확산된 경험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전쟁의 긍정적인 면이 있다하더라도, 전쟁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전쟁이 없는 세계가 더 안전하고 인류를 행복하게할 것이라는 진실은 부정할 수 없다. 칸트도 이를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보았던 철학자 칸트! 그는 철학자가 인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해냈다. 그것은 영원한 평화가 가능하다는 자신의 철학적 기획을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수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국제연맹, 국제연합이 탄생했으며, 세계 여러나라 시민들에게 민주 공화국의 이념을 전파했다. 그가 살았던 유럽에는 유럽연합이 탄생했다. 그가 바란 영구평화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인류를 사랑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만은 영원히 우리 가슴에 남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의와 이익 사이의) 실용적으로 제약된 법이라는 중간 노선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모든 정치는 도덕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정치는 비록 완만하기는 해도 영원히 빛나게 될 단계에 도달할 것을 희망할 수 있다."-79쪽


  현실 정치는 도덕 앞에 무릎을 꿇고 칸트가 제시한 영구평화의 길을 걸어야한다.


ps.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칸트가 29쪽에 제시한 정치체제 분류를 이해해야한다. 칸트는 국가형태를 본래적인 지배형식과 통치 형식에 따라 각각 3가지와 2가지로 분류했다. 본래적인 지배 형식(최고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차이)에 따라서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로 분류했다. 통치형식(국민에 대한 통치자의 통치 형식)에 따라서 공화정체와 전제정체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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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 태평양 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
노나카 이쿠지로 외 지음, 박철현 옮김, 이승빈 감수 / 주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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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전략이 없다.' 역사학자 이덕일이 대중강연에서 한 말이다. 나는 이덕일에 놀랐다. 일본이 장기적 전략이 없이 잰장을 했다니, 이것을 믿을 수있을까? 청일 전쟁,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만주를 집어 삼키고 중일전쟁에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키며 승승장구했던 것이 일본이 아니었던가! 진주만 기습을 하면서 보여준 탁월한 기습능력을 떠올리며 이덕일의 설명에 의문을 품었다. 이덕일이 던진 화두에 답할 수 있는 책을 찾아 나섰다. 그래서 '왜 일본 제국은 실패하였는가?'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제 그 화두에 답해보자.

  일본군이 일본사에서 자주 인용하는 전술이 있다. 가와나카지마(오랜 기간 준비한 전략 전술을 강조), 히요도리고에(우회 기습전), 오케하자마(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병력을 굴복시키는 전략)가 그것이다. 여기에 근대 서구의 전술을 받아들이고 중일 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육군은 백병총검주의를, 해군은 거함거포주의를 추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전술은 중일전쟁과 러일전쟁, 심지어는 아시아태평양 전쟁 초기에 빛나는 승리를 안겨주었다. 빠른 속도로 진격하는 일본군의 백병총검주의에, 방심하던 대영제국의 군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러일전쟁에서는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발틱함대를 탁월한 명중률과 빠른 포격으로 괴멸시켰다. 이 얼마나 엄청난 승리인가!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일본군의 혁신과 성공은 거기까지였다. 일본은 과거 승리의 족쇄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소련의 명장 주코프 장군은 노몬한 전투 후에 족쇄에 얽매인 일본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군 부사관과 병은 용감무쌍하고, 초급 장교는 마치 광신도 처럼 용맹스럽지만, 고급 장교는 무능한 자들뿐"-65쪽


  빠른 속도로 백병총검돌격을 감행해서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고서도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1차세계 대전 이후에 무기가 혁신되면서 전술의 혁신도 이루어졌지만, 갈라파고스섬과 같은 일본군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백병총검돌격만을 고집했다. 노몬한 전투의 실패에서도 그들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않았다. 이책의 저자들도 이러한 일본군의 행태를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통탄한다. 


  "보충해야할 것은 장비인데도 일본군은 병력을 늘리고 정신력의 우의를 강조하면 다 해결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332쪽


  우리가 일본군의 어리석음을 풍자할 때 한장의 그림을 떠올린다. 노몬한 전투 당시, 러시아군의 탱크에 맞서서 일본군이 탱크를 향해서 총검 돌격을 감행하는 '대전차총검술'이라는 그림을 떠올린다. 일본군은 기술보다 정신력을 강조한다. 1대의 전차를 잡는데 10명의 일본군 희생은 감당할 수 있다는 인명경시 풍조 또한 만연해있었다. 화력을 강화하기 보다는 백병총검돌격으로 승리할 수있다는 착각은 중국을 상대로한 전투에서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이나 미국처럼 초강대국을 상대로한 전투에서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해군에서도 일본군의 어리석음은 극명히 나타났다. 


  "제국해군 역시 미드웨이 패전 이후 항공모함의 증강을 꾀하면서도, 대함거포주의를 구현한 야마토와 무사시의 46센티미터 대표가 위력을 발휘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끝까지 믿고 있었다."-375쪽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일전쟁시기 대함거포가 안겨주었던 승리의 짜릿함을 일본해군은 잊지 못했다. 진주만 기습에 호되게 당한 미국은 이제 전함의 시대는 갔고 새로이 항공모함의 시대가 등장했음을 알았다. 미국은 실패를 통해서 배웠고 일본은 성공을 통해서도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해다. 이러한 일본이 어떻게 메이지 유신을 추진하며 근대화에 성공했는지 의문이들었다. 이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의미 심장한 말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완전한 균형 상태란 적응의 마지막 상태이므로 이는 곧 조직의 죽음을 의미한다. 역설적이게도 적응은 적응 능력을 저해한다."-382쪽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근대화를 이루며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리고 일본은 일본 전통 위에 서양의 근대를 접목시켜 고도로 안정된 일본제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정된 일본제국은 커다란 성공을 일본인들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일본인들의 성공은 일본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있는 능력을 저해했다. 고도화된 백병총검돌격만으로도 싱가포르에서 대영제국의 군대를 무릎꿇리지 않았던가! 결국, 일본은 화력의 증강보다는 백병총검돌격이라는 과거의 성공한 전술을 고집했다. 이러한 일본군의 어리석음이 가장 극적으로 표출된 전투가 임팔전투이다. 

  '일본인은 초식을 하기에 보급을 필요없다. 필요하면 풀을 뜯어 먹으면 된다.'라는 믿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영국군을 무찌르기 위해서 밀림을 뚫고 진격하겠다는 무타구치 랜야의 작전계획을 대본영이 승인했다. 온정주의와 일본육군대학 출신이라는 학연에 얽매여 엉터리 작전계획도 대본영은 승인한 것이다. 그리고 '멍청한 지휘관 밑에 용맹한 부하'라는 모순된 일본군의 모습이 유감없이 임팔전투에 표출된다. 일본군은 용감하게 돌격했고, 영국군은 현명하게 후퇴하면서 일본군을 함정에 빠뜨렸다. 그리고 일본군은 기아로 쓰러졌으며 인도로 진격하기는 커녕 버마마져도 연합군에게 넘겨주었다. 

  가미카제 특공대 이야기를 들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본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그러나, '왜 일본 제국은 실패하였는가?'라는 책을 읽고 나자, 그것은 용맹한 모습이 아니라 어리석은 모습이었음을 깨달았다. 화력을 증강시키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적에 대응하기 보다는 사람을 도구화하고, 정신력으로 적을 무찌르라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동정심마져들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일본군의 어리석음을 비웃음으로 넘길수는 없다. 서점가에는 제도와 과학기술의 혁신을 추구하기 보다는 정신력만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가 넘처난다. 무능한 지도자를 선거로 뽑고 오염수도 마실 수 있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일본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본군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를 혁신하지 않는다면, 우리고 일본군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 없이 '불균형을 창조'하며 혁신하는자만이 승리할 수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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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 평화를 빼앗긴 사람들 세계 시민 수업 8
정주진 지음, 이종미 그림 / 풀빛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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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평화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세계 시민 수업'이라는 단어에 끌려 읽었다. 고등학생 수업준비를 위해서는 별로 큰 소득을 얻지 못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에게 알맞은 수준의 책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총기가 많은 나라가 미국이고, 그 다음이 인도와 중국, 파키스탄 순이란 점이다. 군인보다 민간인이 총을 많이 갖고 있으며, 그 비율이 15% 대 85% 정도 된다니, 인도와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조심해야할 것 같다. 그런데, 인도와 중국에서 발생하는 총기 사고가 외신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그 사회의 폐쇄성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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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기회인가 위기인가 - GPT-4로 급변하는 미래 산업 트렌드 전망
서민준 외 지음 / 동아엠앤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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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를 출간했을 때, 나는 책을 읽지도 않고 미래는 인류 모두가 기계와 결합하여 신의 반열에 오를 것을 상상했다. 그리고 '호모 데우스'에서 그러한 미래를 예언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일부는 '호모 데우스' , 일부는 '신이된 인간'이 되고, 일부는 신이되지 못할 것이라 예언했다. GPT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호모 데우스'라는 책을 떠올렸다. 인류의 미래에는 천년 왕국이 예약되어 있지 않다. 새로운 과제가 인류에게 던져졌다. GPT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 새로운 구분선이 생길 것이라는 예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GPT 위기인가, 기회인가'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GPT가 출현하고 우리에게 던져준 충격파는 과히 대단하다. 미술분야로 진로를 결정했던 한 학생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자신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다면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소설, 시 등의 인간만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창작의 영역도 인공지능이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서점가에는 챗GPT가 창작에 참여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현실은 챗GPT와 같은 '언어 모델의 능력은 '발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정도로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하고 특정을 알아가는 느낌'(79)이라고 저자가 말할 정도로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고 "어떨 때는 무섭기도하다."는데 있다. 인공지능 개발자들이 6개월 동안만이라고 인공지능 개발을 멈추고 진지한 논의를 하자고 제안할 정도로 챗GPT 이후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광풍속을 고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인류가 막을 수 없다. 그 폭풍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챗GPT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고 이어령 교수가 '말과 경쟁하려하지 말고, 말에 올라타라!'라고 말했듯이, GPT와 경쟁하려 하지 말고, GPT에 올라타서 챗GPT가 나의 말이 되게 해야한다.

그렇다면, GPT에 올라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책에서는 "어떤 일을 하건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결정과 판단을 내리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역량을 갖도록 성장하는것"(136)을 주문한다. GPT가 사람이 아니기에 어떠한 결정에 법적 책임을 질 수 없다. GPT가 사람을 도와줄 수는 있으나 결정을 해서는 안된다. 결정은 인간이 해야만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생성한 콘텐츠의 신뢰도와 정확성을 판단하고 인공지능이 작성한 초안을 바탕으로 더 좋은 콘텐츠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챗GPT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잘 질문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GPT와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코파일럿 활용'능력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서 우리 교육도 잘 질문하는 능력과 코파일럿 활용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한다.

장병택 교수는 인공지능 수준을 6단계로 나누었다. 그중 레벨5는 강인공지능이다. 인간처럼 학습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레벨6은 초인공지능이다. 전세계 인류 지능의 총합을 뛰어 넘고, 스스로 자아를 갖고 발전한다. 이러한 특이점을 2045년으로 보았다. 초인공지능이 출현하며 인류는 기술이 기술을 발전시키는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초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사육당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떤이는 인간은 제3의 두뇌를 갖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논리의 좌뇌와 감성의 우뇌에 이어서 정보제공과 데이터 분석을 담당하는 인공지능 두뇌 즉, 인공지능이 세번째 두뇌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인간의 지능을 대폭 향상시키기 위해서 트랜스휴먼화가 진행 될 수도 있다. 트랜스 휴먼이 초인공지능에 대항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초인공지능을 탑재한 호모 데우스가 된 인류와 그렇지 못한 인류의 새로운 계급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러나, 초인공지능을 탑재한 호모 데우스와 그렇지 않은 인류의 대립을 논하기보다는 챗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에 인류가 노예가 되지 않는 길을 먼저 고민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한다. 프로그램이 인공지능에 도달했는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을 튜링 테스트라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역으로 인간을 테스트한다. 이른바 역튜링 테스트(Reverse Turing Test)가 이뤄진다.

 

"챗봇은 역튜링 테스트를 통해 면접관의 지능 수준에 따라 페르소나를 구성할 수 있고, 또한 판단 과정의 일부로 면접관의 의견을 페르소나에 통합하며 답변을 통해 면접관의 편견을 강화한다."-(30)

 

이 부분을 읽으며 소름이 돋았다. 인간이 챗봇을 테스트하고 이용하지만, 챗봇도 인간을 테스트하며 그들의 편견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인간을 돕기 위해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오히려 인간의 편견을 고착화시키고 인간의 정신을 황폐화시킬 수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챗봇 엘리자를 만들었지만 인공지능 분야에 회의를 느끼고 떠난 바이첸바움의 책 '컴퓨터의 힘과 인간의 이성'이라는 책의 일부분을 이용한다.

 

"기계와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인간이 기계라고 믿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193

 

고된 창작의 작업을 겪지 않고 챗GPT를 활용해서 쉽게 쓰여진 소설들이 넘쳐난다면 자기 복제한 수많은 표절물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창작의 영역에 챗GPT가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챗GPT는 보조적 수단이어야 한다. GPT에게 모든 창작의 권한을 넘겨주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 노예가 되고 만다. 그러한 사람이 인간이 기계라고 믿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챗GPT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의 노예가 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은 지금 시작되었다. 인공지능의 노예가 되지 않고 주인으로 인공지능을 부릴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낼 방법을 우리 사회는 고민해야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최종 판단의 주체는 인간이며, 책임의 주체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주지하고, 모든 창작의 최종 주체도 인간이 되어야함을 깨닫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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