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사도들 - 최재천이 만난 다윈주의자들 드디어 다윈 6
최재천 지음, 다윈 포럼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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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심상치 않다. '다윈의 사도들(Darwin's 12 Apostles)'은 다윈을 절대 틀리지 않는 교주로 모시며 일생을 바쳐 다윈의 말이 진리임을 과학적인 근거로 증명한다. 원래는 13명의 사도를 다룰 계획이었으나 하버드 대학교 에드워드 윌슨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이 인터뷰 후에 무자비하게 난도질 당하는 바람에 이 책에 싣지 못했다. 다윈주의자 최재천이 만난 12명의 사도들에게 다윈은 어떠한 매력이 있기에 그들은 기꺼이 다윈의 사도가 되었을까?

 

최재천이 만난 사도들 중에서 나의 흥미를 끈 첫번째 사도는 헬레나 크로닌이다. 그녀는 페미니스트들과 논쟁도 불사하는 전투적 여성이다. 한국에 미투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차기 대권그룹에 있었던 정치인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사태를 겪으며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에게 부정적 발언을 하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사회적 매장을 각오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반박할 수 없었다. 성적 피해를 당했다는 증거를 요구하는 말조차 2차 가해로 뭇매를 당했다. 석연치 않은 의심을 지울 수 없지만 나 또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성인 그녀가 페미니스트와 설전도 불사하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페미니즘을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세상을 더 공평한 곳으로 만들고, 여성에 대한 부당한 처사를 바로 잡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성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 어떻게 더 나은 세상을 구축할 수 있겠습니까? 애초부터 과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한 고려를 배제한다면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습니까? (중략) 이것이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거행된 것들이라면, 저는 정치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은 타당성을 잃었다고 말하겠습니다."-86

 

과학문명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과학에 근거한 판단을 해야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과학적 진실보다는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을 만들려고 과학이라는 지식을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경우가 많다.

1정 연수 때의 일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설명하는 강사가 여성이 남성보다 수학이나 과학을 못한다는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 강사는 강의 중에 남성이 여성보다 수학과 과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서 질문을 했다. "남성이 여성보다 수학과 과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인다면 이를 인정하고 그에 맞도록 수업을 해야하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수학과 과학을 못한다는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된다라는 말은 모순이 아닌가요? 남성이 여성보다 수학을 잘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올바른 교육이 되지 않나요?" 나의 질문에 그 강사는 짜증나는 목소리로 "그건 알아서 잘 이해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때 페미니스트는 감정적일뿐 이성적 사고는 상당히 박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성적 두뇌로 이해되지 않으면 그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 페미니스트 강사는 여권신장이라는 목표에 눈이 멀어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그 강사는 헬레나 크로닌의 책을 읽었어야했다. 헬레나 크로닌이 나의 질문에 답한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멍청이도 많지만 노벨상 수상자도 많네"라고 단순 명쾌하게 말했을 것이다. 경쟁이 많은 남성에게 변이가 많다. 그렇기에 노벨상을 타는 사람 중에 남자가 많지만, 멍청한 사람들 중에도 남자가 많다. 그에 비해서 여성 집단은 서로 비슷하다. 중간층이 두텁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과학과 수학 점수의 상위권자들 중에는 남성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상위권 학생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다수의 남성은 무시된다.

헬레나 크로닌의 설명은 오랜 동안 해결되지 않고 나의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을 깔끔히 정리해주었다. 우리 학교에 남학생들의 학업 성취가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설명해주었다. 우리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과학적 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럴 때만이 하위권의 남학생을 중위권으로 끌어올리고 중위권의 여학생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교수학습 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헬레나 크로닌이 소개한 남녀의 차이를 더 살펴보자. 신생아 중에서 남아는 경쟁적이며, 모빌을 더 선호한다. 그에 비해서 여아는 협력적이며 인간 얼굴을 더 선호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현실을 부정하며 부모의 양육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예외적인 사례를 말한다. 남아인데도 협력적이며 인간 얼굴을 더 선호하는 아이가 있으며, 여아인데도 경쟁적이고 모빌을 선호하는 아이가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남녀의 차이를 규정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매도한다. 헬레나 크로닌은 이에 대한 반론도 제시했다. 가끔 남녀의 차이가 반대로 나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자궁에 있는 동안 남성 호르몬에 노출된 여아는 전형적으로 말괄량이 같고 여성 평균 공간 지각 능력을 초월한다. 남아도 정반대가 성립한다.

나는 역사를 배우면서 ~주의, ~이즘(ism)의 위험성을 많이 보아왔다. 주의와 주장에 매몰되면 진실을 보지 못한다. 자신의 주장과 반대되는 근거는 무시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근거들만 본다. 이른바 확증편향이 형성된다.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이러한 확증편향이 보인다. 과학적 진실을 직시하고 이에 바탕을 둔 활동을 할 때만이 페미니스트들은 확증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떤 페미니스트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정설이 변했듯이, 과학적 진실도 바뀔 수 있지 않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 과학적 진실도 변화할 수 있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세계의 진실을 모두 볼 수는 없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진실을 직시하고 그 범위 내에서 올바른 판단과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결정이 잘못된 결정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고 신중히 판단하고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우리는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나의 흥미를 끈 두번째 사도는 리처드 도킨스, 대니얼 데닛, 마이클 셔머를 비롯한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도들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리처드 도킨스가 진화론의 신봉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 제목 때문에 그의 책을 읽기를 꺼려했다. 인간을 선악설에 근거해서 바라보는 삐딱한 학자로만 생각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까지 쓰면서 종교에 선전포고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윈의 사도들 중에서 한국에 많은 기독교 신자가 있으며 해외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사실을 거론하며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했다. 나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크리스트교는 서양 사상의 기둥이다. 과학문명이 지배하는 시대라 할지라도 크리스트교를 드러내 놓고 비판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선입견이었다. 더욱이 서양에서는 말이다.

 

"무조건적인 찬양 또는 숭배가 그렇습니다. 믿음의 대가로 무언가를 가져가는 것을 숭배하고 찬양하게 만드는 것이나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찬양하기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종교의 부적절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주 강력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런 것들을 빼 버린다면 더 이상 무엇이 남겠습니까?" -205

 

대니얼 데닛의 이 말은 종교에 대해서 평소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다. 역사를 전공한 나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수많은 신화와 설화를 그대로 믿지 않고 그 안에서 역사적 의미와 사실을 끄집어 내려 노력한다. 그런데, 대학에서 한국 사상사 수업을 듣던 중에 교수님이 갑자기 기독교 이야기를 했다. 기독교 신자인 한국사 교수에게 나는 질문했다. "종교 위에 우리의 현실이 있어야합니까? 종교 밑에 우리의 현실이 있어야합니까?" 그런데, 교수님은 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었다. "시대가 변하면 종교의 교리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합니까? 시대가 변해도 종교의 교리는 변하면 안됩니까?" 교수님은 "그것은 함부로 말할 수 없네, 부활 처럼 영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나는 교수님께 다시 질문했다. "신비한 종교의 이야기는 해당 종교를 포교하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 일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교수님은 "그렇다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거짓을 오랫 동안 믿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럴 수가 있나요."라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 교수님은 단군신화를 신화로 가르치면서도 서구 종교의 신화는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고 있었다. 근대 과학문명의 세례를 받은 학자가 종교에서 벌어지는 신이한 기적들을 그대로 믿는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대다수의 다윈의 사도들은 종교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상당히 논리적이며 나의 관점과도 일맥상통했다. 그런데, 종교와 과학은 조화를 이룰 수는 없는 것인가? 아무리 과학적 진실이 진화론이 옳음을 말해도 많은 인간들이 창조론을 믿고 있다. 심지어 인도에서는 11, 12학년 이외의 학년에서는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기로 했다. 진실을 직시하기 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그것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믿으려하는 사람을 과학의 진실 앞으로 끌고 올수는 없다. 강제로 과학의 진실 앞으로 끌고 오려할 때 과학은 또 다른 종교로 변질 될 수 있다. 골턴에 의해서 정립된 우생학이 열등한 사람으로 지목된 사람에게 단종수술을 행하고 열등한 민족을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로 보냈던 죄악을 다시 저지를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지구상에서 바이러스를 박멸시킬 수 없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절대자에게 나약한 자신의 정신을 의탁하고 싶어한다. 그런 의미해서 칸트가 말했듯이 신은 요청되어진 존재이다. 스티븐 핑커는 "왜 이 지구에 보내졌는가?"라는 질문에 "아무런 이유도 없다."라고 대답했다. 스티븐 핑커의 대답이 과학적 관점에서는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나약한 인간은 조약돌에서도 우주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사피엔스는 자신들의 존재가 "아무런 이유도 없다."라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을 고통스러워한다. 결국, 나약한 사피엔스는 종교를 버릴 수 없다. 그렇다면, 나약한 사피엔스를 위해서 과학과 종교의 건전한 공존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만들어진 신'을 나의 독서 리스트에 올려 놓은 것도 이 책을 읽으며 얻은 수확이다. 좋은 책은 다음에 읽을 책을 연쇄적으로 읽도록 한다고 말한다. '다윈의 사도들'이라는 책은 내가 리처드 도킨스의 책들에 입문하도록 나를 인도했다.

책장을 덮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다윈이 이렇게도 중요한 인물인지 새삼스럽게 알았다. 다윈의 두번째 사도 헬레나 크로닌의 말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다윈의 핵심적인 이론은 영원히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생물학은 영원히 다윈주의적일 것이라는 말입니다."-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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