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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 태평양 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
노나카 이쿠지로 외 지음, 박철현 옮김, 이승빈 감수 / 주영사 / 2009년 6월
평점 :
'일본은 전략이 없다.' 역사학자 이덕일이 대중강연에서 한 말이다. 나는 이덕일에 놀랐다. 일본이 장기적 전략이 없이 잰장을 했다니, 이것을 믿을 수있을까? 청일 전쟁,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만주를 집어 삼키고 중일전쟁에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키며 승승장구했던 것이 일본이 아니었던가! 진주만 기습을 하면서 보여준 탁월한 기습능력을 떠올리며 이덕일의 설명에 의문을 품었다. 이덕일이 던진 화두에 답할 수 있는 책을 찾아 나섰다. 그래서 '왜 일본 제국은 실패하였는가?'라는 책을 발견했다. 이제 그 화두에 답해보자.
일본군이 일본사에서 자주 인용하는 전술이 있다. 가와나카지마(오랜 기간 준비한 전략 전술을 강조), 히요도리고에(우회 기습전), 오케하자마(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병력을 굴복시키는 전략)가 그것이다. 여기에 근대 서구의 전술을 받아들이고 중일 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육군은 백병총검주의를, 해군은 거함거포주의를 추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전술은 중일전쟁과 러일전쟁, 심지어는 아시아태평양 전쟁 초기에 빛나는 승리를 안겨주었다. 빠른 속도로 진격하는 일본군의 백병총검주의에, 방심하던 대영제국의 군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러일전쟁에서는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발틱함대를 탁월한 명중률과 빠른 포격으로 괴멸시켰다. 이 얼마나 엄청난 승리인가!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일본군의 혁신과 성공은 거기까지였다. 일본은 과거 승리의 족쇄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소련의 명장 주코프 장군은 노몬한 전투 후에 족쇄에 얽매인 일본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군 부사관과 병은 용감무쌍하고, 초급 장교는 마치 광신도 처럼 용맹스럽지만, 고급 장교는 무능한 자들뿐"-65쪽
빠른 속도로 백병총검돌격을 감행해서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고서도 러일전쟁에서 승리했다. 1차세계 대전 이후에 무기가 혁신되면서 전술의 혁신도 이루어졌지만, 갈라파고스섬과 같은 일본군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백병총검돌격만을 고집했다. 노몬한 전투의 실패에서도 그들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않았다. 이책의 저자들도 이러한 일본군의 행태를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통탄한다.
"보충해야할 것은 장비인데도 일본군은 병력을 늘리고 정신력의 우의를 강조하면 다 해결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332쪽
우리가 일본군의 어리석음을 풍자할 때 한장의 그림을 떠올린다. 노몬한 전투 당시, 러시아군의 탱크에 맞서서 일본군이 탱크를 향해서 총검 돌격을 감행하는 '대전차총검술'이라는 그림을 떠올린다. 일본군은 기술보다 정신력을 강조한다. 1대의 전차를 잡는데 10명의 일본군 희생은 감당할 수 있다는 인명경시 풍조 또한 만연해있었다. 화력을 강화하기 보다는 백병총검돌격으로 승리할 수있다는 착각은 중국을 상대로한 전투에서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이나 미국처럼 초강대국을 상대로한 전투에서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해군에서도 일본군의 어리석음은 극명히 나타났다.
"제국해군 역시 미드웨이 패전 이후 항공모함의 증강을 꾀하면서도, 대함거포주의를 구현한 야마토와 무사시의 46센티미터 대표가 위력을 발휘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끝까지 믿고 있었다."-375쪽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일전쟁시기 대함거포가 안겨주었던 승리의 짜릿함을 일본해군은 잊지 못했다. 진주만 기습에 호되게 당한 미국은 이제 전함의 시대는 갔고 새로이 항공모함의 시대가 등장했음을 알았다. 미국은 실패를 통해서 배웠고 일본은 성공을 통해서도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해다. 이러한 일본이 어떻게 메이지 유신을 추진하며 근대화에 성공했는지 의문이들었다. 이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의미 심장한 말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완전한 균형 상태란 적응의 마지막 상태이므로 이는 곧 조직의 죽음을 의미한다. 역설적이게도 적응은 적응 능력을 저해한다."-382쪽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근대화를 이루며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리고 일본은 일본 전통 위에 서양의 근대를 접목시켜 고도로 안정된 일본제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정된 일본제국은 커다란 성공을 일본인들에게 안겨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일본인들의 성공은 일본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있는 능력을 저해했다. 고도화된 백병총검돌격만으로도 싱가포르에서 대영제국의 군대를 무릎꿇리지 않았던가! 결국, 일본은 화력의 증강보다는 백병총검돌격이라는 과거의 성공한 전술을 고집했다. 이러한 일본군의 어리석음이 가장 극적으로 표출된 전투가 임팔전투이다.
'일본인은 초식을 하기에 보급을 필요없다. 필요하면 풀을 뜯어 먹으면 된다.'라는 믿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영국군을 무찌르기 위해서 밀림을 뚫고 진격하겠다는 무타구치 랜야의 작전계획을 대본영이 승인했다. 온정주의와 일본육군대학 출신이라는 학연에 얽매여 엉터리 작전계획도 대본영은 승인한 것이다. 그리고 '멍청한 지휘관 밑에 용맹한 부하'라는 모순된 일본군의 모습이 유감없이 임팔전투에 표출된다. 일본군은 용감하게 돌격했고, 영국군은 현명하게 후퇴하면서 일본군을 함정에 빠뜨렸다. 그리고 일본군은 기아로 쓰러졌으며 인도로 진격하기는 커녕 버마마져도 연합군에게 넘겨주었다.
가미카제 특공대 이야기를 들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본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그러나, '왜 일본 제국은 실패하였는가?'라는 책을 읽고 나자, 그것은 용맹한 모습이 아니라 어리석은 모습이었음을 깨달았다. 화력을 증강시키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적에 대응하기 보다는 사람을 도구화하고, 정신력으로 적을 무찌르라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동정심마져들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일본군의 어리석음을 비웃음으로 넘길수는 없다. 서점가에는 제도와 과학기술의 혁신을 추구하기 보다는 정신력만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가 넘처난다. 무능한 지도자를 선거로 뽑고 오염수도 마실 수 있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일본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본군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를 혁신하지 않는다면, 우리고 일본군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 없이 '불균형을 창조'하며 혁신하는자만이 승리할 수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한다.